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41)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41화(141/497)
113. 물갈이
후우우우웅―――
강렬한 바람이 위에서 아래로 불어오자 새하얀 모래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드디어 도착인가.”
고든 파비안은 비공정이 바닥에 내려앉자 가득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제이건.”
“네, 단장님.”
“남부에 도착해서 우리가 얼마나 하늘에 떠 있었지?”
“열흘입니다.”
교도 용병단의 부단장인 제이건은 심기가 불편한 고든의 모습을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흐음…….”
고든은 아무렇지 않게 중얼거렸다.
“그년 목을 분질러 버릴까.”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남의 일인 양 대수롭지 않아 보였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남부와 전쟁이라도 치르시겠다는 겁니까. 황제와의 약속은 어떻게 하시구요.”
하지만 이제 고든을 모시는 데 이력이 난 부단장은 그런 그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못할 것도 없지. 어차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온 거잖아. 둘 중 한 놈이 죽으면 분쟁이 일어나지도 않을 테니까.”
남들이 하면 헛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고든 파비안이 말하면 충분히 현실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뭐, 그것도 한 방법이긴 하겠네요. 단지 크로멘 황자님께서 동의를 해주신다면요.”
“저 때문에 고든 경이 수고가 많으십니다. 형님들이었다면 이렇게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텐데…….”
고든은 자신의 허리에도 채 닿지 않은 작은 소년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그 미소마저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보여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제가 죄송할 따름입니다, 황자님. 아무래도 남부의 야만족들은 촌구석에만 박혀 있어 고든 용병단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나 봅니다. 본보기로 몇 놈의 사지를 찢어 버리겠습니다.”
“아, 아뇨.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크로멘은 고든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손을 저었다.
“흐음.”
“굳이 고든 경께서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는 그를 향해 크로멘은 웅얼거리듯 말했다.
“황자님, 가시지요.”
이번 여정에서 크로멘의 호위 기사로 그를 수행하고 있는 노기사인 케플란은 태어났을 때부터 그를 돌본 집사였다.
어쩌면 제국 내에서 유일한 크로멘의 지지자일지 모른다.
수많은 황궁의 암투 속에서도 지금까지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케플란이 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고작 노기사 한 명의 영향력이 얼마나 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건 그의 실력보다 배경이 큰 것이다.
“남부는 역시나 뜨겁군요.”
이번 원정에서 황제의 명에 참가하게 된 1급 사제인 유린 휴가르가 특이하게도 집사인 그에게 예의를 갖추어 얘기했다.
전장의 광인이라 불릴 이 남자가 오히려 한 발 먼저 물러나며 오히려 크로멘에게보다 더 조심스러워 하는 진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게 케플란의 배경의 힘이었다.
바로,
교단(敎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유린 경. 저는 그저 이번 원정에 황자님의 수발을 들기 위해 따라온 시종에 불과할 뿐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케플란 님이 계시기 때문에 폐하께서 저를 이곳에 함께 보내신 걸 수도 있으니까요.”
“설마. 그러시겠습니까.”
평상시와 다르게 유린은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케플란은 과거 차기 주교로까지 추대받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교단을 버리고 조용히 여생을 제3황자의 보호자가 되어 살고 있었다.
‘뭐……. 그 덕분에 우리야 편하지만.’
그와 황제 간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유린은 지금의 주교와 달리 보수적이고 딱딱한 그가 차라리 교단을 버리고 나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에 1급 사제일 때는 꽤나 날렸다고 듣긴 했는데……. 뭐, 나이가 나이인 만큼 지금은 종이호랑이겠지.’
애초에 교도 용병단에 고든이란 규격 외의 괴물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나 케플란 같은 자는 오히려 일반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황자님, 모시겠습니다.”
유린이 무슨 말을 하든지 상관없다는 듯 케플란은 크로멘의 옆에 서서 커다란 우산을 들고 뜨거운 햇볕을 가렸다.
그리고 그의 뒤를 티렌 맥거번이 따랐다.
“형님,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엘리엇이 나지막이 물었다.
“너는 이 조합이 의미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지?”
“네?”
티렌의 물음에 그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병, 교단 그리고 황권.’
사실상 가장 약하고 영향력이 없는 3황자이지만 조합상으로만 본다면 힘만 있는 1황자와 오직 자신뿐인 2황자와 다르게 가장 다채롭고 가능성이 많았다.
‘폐하께서는 단순히 황자의 보호를 위해서 교도 용병단을 붙였을까.’
그는 이곳에 오기 전 고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곳에서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황자의 미래가 달렸다는 말.
대륙제일검이라 불리는 최강자인 크웰 맥거번의 아들이긴 하지만 자신은 황궁에 이렇다 할 측근도 없는 새파란 피라미에 불과하다.
‘너무 큰 짐이야…….’
하지만 티렌은 해내야 한다.
“디곤의 막사입니다.”
그런 그의 고민도 잠시.
용병단의 안내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거대한 야만족의 거점이 보였다.
“후우…….”
티렌은 자신의 첫 임무에 긴장된 듯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지 못한 채.
* * *
“너로군. 우리를 기다리게 한 디곤의 여왕이란 자가.”
막사 안.
대륙의 다섯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강자는 수천 명의 전사가 눈앞에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참아 왔던 말부터 꺼냈다.
“딱 봐도 알겠군. 당신이 고든 파비안인가.”
“딱 봐도 알겠다면서 뭘 묻지?”
은은하게 흘러나오던 살기는 어느새 날카롭게 돋아나 주위를 짓눌렀다.
디곤족의 전사들은 수적으로 자신들이 우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든이 내뿜는 기세에 움찔거렸다.
“용병왕이라는 자가 입에 걸레를 물었나 싶어서.”
“열흘이나 사람을 기다리게 해놓으면 용병왕이 아니라 제국의 황제라도 이럴걸.”
“아하.”
“아하?”
고든 파비안을 두고도 밀리아나는 절대로 밀리지 않았다.
실력으로 따진다면 소드 마스터의 정점에 오른 그를 그녀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부의 패자로서 자존심을 굽히는 것 역시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려기사단의 사건에 대하여 황제 타이란 슈테안께서 해결코자 크로멘 황자를 남부에 파견하셨습니다.”
“그래?”
밀리아나는 티렌을 바라봤다.
“황자의 이름을 말하는 걸 보니 네가 황자는 아닐 테고. 넌 누구지?”
“……저는 크웰 맥거번의 차남. 티렌 이라고 합니다.”
“황자 밑에 사람이겠군?”
“물론입니다.”
“그럼 넌 빠져.”
티렌은 크웰이라는 이름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하는 그녀에게 자존심이 상했다.
“남부는 오직 우두머리의 결정을 따른다.”
그러고는 천천히 크로멘에 시선을 옮겼다.
“네가 아니라 저 꼬마가 내게 직접 말해야지. 네가 가져온 패를 보여 봐. 값어치에 따라서 살려 보낼지 죽일지를 결정할 테니.”
“무례한……!!”
엘리엇이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무례? 야만족에게 예의를 차리라는 것도 개소리지만 옳고 그름은 따져야지. 5대 일가를 먼저 친 건 너희들이다. 나는 분명 남부의 문을 열어 주었고 그에 대한 대가가 뭐지?”
“…….”
그들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실,
디곤이 어째서 남부의 문을 열어 주었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비밀리에 거래를 한 대상은 제국이 아닌 올리번이었고 그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얘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부 야만족의 기습으로 이 일을 포장했으니까.
“뭐, 좋아. 5대 일가 놈들이 나락 바위를 가는 너희 기사들을 막았을 수 있지. 그리고 싸울 수도 있어. 남부에서 전투는 정당한 이유만 있다면 언제든 가능하니까.”
밀리아나는 말을 이었다.
“하나 너희 제국은 1황자를 통해 군사를 출병했다고 들었다.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거지? 화친을 할 건지 척화를 할 건지 결정하기 힘드니까 둘 다 내보이고 협박하듯 내키는 대로 하겠다는 건가?”
그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절대 그런 게 아닙니다.”
크로멘은 당황한 듯 말했다.
하지만 이미 노련한 밀리아나의 페이스에 어린 황자는 대처하지 못했다.
“제국의 오만이냐?”
“그건…….”
그때였다.
“확실히 네 말대로 야만족에게 예의를 차리라는 건 개소리군.”
잠자코 보고 있던 고든이 몸을 돌렸다.
“돌아가시죠.”
“네?”
그의 말에 크로멘은 깜짝 놀란 듯 바라봤다.
고든은 황자 대신 티렌을 바라봤다.
“…….”
자신에게 이번 일의 중책을 맡겼던 그에게서 싸늘한 대우를 받자 티렌은 마지막 자존심마저 구겨진 듯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철컥―
막사 밖으로 나서려는 그의 앞을 병사들이 가로막았다.
고든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의 팔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우드득―――!!
마력을 쓴 것도 아닌데 오직 완력만으로 병사의 팔을 그대로 으스러뜨렸다.
“컥…… 커컥!!”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고든은 반대쪽 병사의 무릎을 그대로 발로 찍었다.
콰득!!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던 병사조차 그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부러진 다리뼈가 살을 뚫고 튀어나왔다.
“이건 남부의 오만이냐.”
고든은 쓰러진 두 사람을 같잖다는 듯 발로 밀며 말했다.
순간,
무거운 긴장감이 막사 안에 감돌았다.
“남부는 오직 우두머리만 따른다고? 그럼 내게도 발언권이 있겠군. 내 결정에 따라 교도 용병단이 디곤을 쓸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
밀리아나는 그를 바라봤다.
“이봐, 여왕. 적어도 남부의 열기에서 열흘을 기다린 자에게 네놈들이 할 첫 마디는 거래나 대가 따위를 지껄일 게 아니라 최소한 자리에 앉으라는 말이어야지.”
지금까지와는 다른 중압감이 느껴졌다.
고든 파비안은 막사의 문을 걷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우린 조금 더 조율할 필요가 있겠군.”
* * *
“……이거면 됐나?”
“그래.”
밀리아나는 크로멘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붉은 노을이 조금 전의 숨 막혔던 상황과는 상반되게 무척이나 여유롭게 보였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할 짓이 못 되는군. 저 괴물. 당신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데 조금만 긴장을 늦춰도 몇 번이나 목이 뜯겨 나가는 기분이었어.”
“앞으로 몇 번 더 올 거다. 이대로 포기할 리가 없으니까.”
“쳇, 이 짓을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더 해야 하다니. 죽어 나가겠군.”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디곤의 여왕이 앓는 소리를 해서 쓰나.”
“하루에 두 번이나 패배감을 느끼는 게 얼마나 뭣 같은 일인지 알아?”
“패배감은 아니고 한 번은 진짜 패배지.”
“……너도 못지않게 재수 없군.”
카릴은 투덜대는 그녀의 말에 옥좌 뒤에 기대어 가볍게 웃었다.
구구절절 설명할 것도 없이 인정할 건 인정하는 맺고 끊음이 확실한 그녀의 성격은 전생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거래를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란돌을 그녀에게 맡길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고.’
“지치는 일이야. 이런 일이라면 네가 우리에게 제시했던 청린의 제공량을 다시 조정해야겠어.”
밀리아나는 지친다는 듯 커다란 방석에 대(大)자로 누우며 말했다.
“바랄 걸 바라. 애초에 내가 아니었다면 청린을 얻을 수도 없잖아. 청린을 나눠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
“나 참. 뭐, 솔직히 당신이 청린병을 그 정도로 준비했을지는 몰랐으니까. 뒤통수 맞은 기분이긴 하지만……. 올리번이 실패하고 난 뒤에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걸로 디곤을 칠 생각이었나?”
“상황에 따라서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밀리아나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무슨 생각이지? 어떻게 되든 디곤은 제국과 이 일을 일단락 지어야 해. 그냥 이렇게 보낸다고 해서 서로가 ‘네’ 하고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란 건 당신도 잘 알 텐데.”
“일단락을 짓기 위해 하는 일이야.”
“뭐?”
그녀는 여전히 카릴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는 걸까.
일 대 일의 싸움이 아니라 그와 전쟁을 치른다 하더라도 승산이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대어를 낚기 위해서는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하는 법이지.”
“대어……?”
카릴은 눈빛을 빛냈다.
“그럼. 크로멘은 아주 좋은 미끼가 되어 줄 테니까.”
하지만 밀리아나는 그런 그의 계획에는 놀라지 않고 오히려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한 가지 묻지.”
“뭔데?”
“네가 용마력을 얻게 된 건 비밀이라고 치고. 내가 너의 용마력을 배우게 되면 저 덩치를 내 앞에 무릎 꿇릴 수 있을까.”
“고든?”
아무래도 조금 전 그의 기세에 눌렸던 것이 그녀로서는 여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나보다.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묻는 것 같아서 카릴은 피식 웃고 말았다.
“붙어 본 적이 없으니 평가를 내릴 순 없겠지만……. 적어도 넌 내가 생각하는 대륙의 강자 중에 일곱 번째다.”
“일곱 번째? 뭐야? 그 애매한 위치는.”
카릴의 대답에 그녀는 석연치 않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질문에 카릴은 대답하지 않았다.
‘비교할 수 없던 건 고든이 네가 백금룡을 만나기 전에 죽었기 때문이지.’
카릴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밀리아나를 바라봤다.
‘전생에 너는 최강이라 불렸던 대륙의 다섯 소드 마스터. 그리고 나를 제외하고 분명 가장 강한 자였다.’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분명한 건.”
밀리아나가 카릴을 올려다봤다.
“최강좌(最强座)가 다섯으로 굳어졌던 시간이 너무 오래되었다는 거지.”
카릴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든이 떠난 길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제 물갈이될 때도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