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43)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43화(143/497)
115. 진범
“용기는 가상하구나. 단신으로 디곤의 영토에 혼자 들어오다니 말이야.”
“여왕님의 얼굴을 뵙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서 말입니다. 고심 끝에 이번에는 제국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래?”
티렌은 망설임 없이 말했지만 밀리아나는 그런 그의 말이 이미 뻔히 보인다는 듯 묘한 미소를 지었다.
서걱-
퉁……!!
그 순간,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밀리아나가 자신의 허리에 있던 세검을 뽑아 던졌다.
티렌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굳은 상태로 그녀를 바라봤다.
주르륵…….
그의 뺨에서 붉은 선이 그어지며 피가 흘러내렸다.
기둥에 박힌 검은 그 뒤로도 그녀의 힘을 이기지 못한 듯 파르르 떨렸다.
“내가 널 만나서 사이좋게 이야기를 할지 아니면 그 목을 답례품으로 네 황자에게 돌려보낼지 무슨 자신감으로?”
티렌은 뺨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닦았다.
“사이좋게 이야기를 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죽이시진 않으리라곤 생각했습니다.”
“왜?”
“저희도 여왕님도 사실 피를 원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밀리아나는 제법이라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뭐, 이쯤 해둘까.’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습에서 한마디 할 때마다 반응이 재밌어 조금 더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카릴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그녀는 다음 계획으로 넘어갔다.
“찾아온 이유가 뭐지? 제국의 대변인이 아니라 개인적인 일이라는 게?”
그녀는 살짝 턱을 치켜들며 물었다.
스윽-
티렌은 막사 기둥에 박힌 검을 뽑아 그녀의 앞에 내려놓았다.
“란돌 맥거번.”
그러고는 자신이 꺼내고자 하는 카드를 얘기했다.
“려기사단의 생존자이자 그는 저희 가문의 다섯째입니다. 이곳에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아니라면?”
“맞을 겁니다. 믿을 만한 자가 그리 말했으니까요.”
‘그래. 근데 그자가 네 동생의 기사단을 전멸시킨 장본인이라는 것까지 알까 모르겠네.’
밀리아나는 마치 흥미로운 공연을 보는 것처럼 즐기는 표정으로 말했다.
“맞아. 그는 우리가 살피고 있었다. 부상이 꽤 심했거든. 네 말대로 제국의 일은 제국의 일이지. 형과 동생과의 재회까지 막을 필욘 없다.”
그녀는 막사의 끝을 가리켰다.
“나가서 오른쪽 다섯 번째 막사에 있다. 사실 그전에 얘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아직 요양 중이라서.”
“네? 그때 이후로 꽤 오래 지났는데……. 아직까지? 부상이 심합니까?”
차가워 보이던 티렌의 눈빛이 떨리며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평민과 귀족 출신이었지만 자신의 힘으로 기사 서임을 받은 란돌을 티렌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게다가 꽤 오랜 시간을 황궁에서 함께 있었기에 그를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다.
“아니, 뭐……. 그때 상처는 아니고…….”
걱정 가득한 그와 달리 밀리아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뺨을 긁적였다.
* * *
“형님…….”
티렌은 오랜만에 재회하는 동생을 바라봤다.
여기저기 붕대를 감고 있는 그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지끈거리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죄송합니다.”
고개를 떨구는 그를 보며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말씀이 정말 사실이었다는 것에 티렌은 생각했다.
‘카릴은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크웰 맥거번은 카릴이 란돌의 소재를 알고 있다는 것만 티렌에게 얘기했을 뿐, 그가 타투르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은 함구했다.
아버지로서의 배려인지 아니면 확실치 않은 사항에 대한 조심스러움인지는 모른다.
‘이 일과 연관이 있을지도.“
티렌은 황제가 다시 국정을 돌보게 되는 계기를 카릴이 도왔다는 크웰의 말에서 그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녀석 역시 똑같은 야만의 피를 가진 이민족이니까.’
다른 동생들과 달리 카릴이 처음 저택에 왔을 때부터 그를 인정하지 않은 티렌이었다.
잠자코 없는 사람처럼 살았다면 모를까.
비록,
제국인도 아닌 이민족이 제국의 정세에 관여한다는 것을 그는 용납할 수 없었다.
“잠깐.”
티렌이 막사를 한번 훑었다.
“디텍션(Detection).”
그러고는 손을 펼쳐 수인을 긋자 그를 중심으로 정방형의 푸른 막이 생성되었다.
우우웅……!!
일순간 번뜩였던 빛이 사라지면서 막이 점차 커져 란돌이 있는 막사의 크기만큼 커지더니 흡수되듯 사라졌다.
“흐음. 감시하는 자들은 없는 건가.”
탐지 마법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자 티렌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형님……. 4클래스 반열에 오르신 겁니까?”
그 모습을 보고 란돌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오래되진 않았다. 이제 겨우 일 뿐이야. 아카데미엔 나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들이 수두룩해.”
“그래도 축하드립니다. 아버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다.”
티렌은 그 말에 옅게 웃었다.
“아버지는 네가 살아 있는 걸 더 기뻐하실 거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란돌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티렌은 살짝 주위를 훑고는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네?”
“려기사단……. 너희를 전멸시킨 자를 기억하느냐.”
끄덕.
란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상착의가 어떻게 되지?”
티렌의 물음에 그는 기사단이 전멸한 기분 나쁜 기억을 떠올려서인지 아니면 패배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나이는 저와 비슷한 또래거나 조금 어렸습니다.”
“……뭐?”
생각지 못한 대답에 티렌이 되물었다.
“갈색 눈과 머리카락을 가진 걸 봐서는 아마 제국인일 겁니다. 흔한 색이죠.”
란돌은 한숨을 내쉬었다.
“매서운 검술이었습니다. 황궁에 온 뒤 기사들의 검술도 봤었지만 그런 건 처음 봤습니다. 게다가…….”
“게다가?”
“어떤 속성의 마력을 쓰는 것인지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보랏빛의 마력이었습니다. 그런 마나 블레이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마를 짚으며 힘겹게 말했다.
‘보랏빛?’
“처음에는 무색에 가까운 마나 블레이드였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격돌에서 분명 보랏빛이 났습니다.”
“으흠.”
“제 생각엔……. 나락 바위에 있는 비전의 샘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락 바위에서 퇴각했을 때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
란돌은 그걸 떠올리면서 말했다.
“정말 보랏빛이었더냐.”
“어찌 잊겠습니까.”
기사들의 마나 블레이드는 단 한 명의 마력에 어떠한 반기도 들지 못했다.
화(火), 수(水), 풍(風), 토(土), 뇌(雷).
세계를 구성하는 5대 속성이 모두 그 힘에 대항했으나 무참히 깨어졌다.
압도적인 강함.
모든 속성이 이길 수 없다는 절대적 상성이 깨진 순간 느꼈던 절망감.
“보랏빛이라…….”
란돌의 말에 티렌의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딱 한 번.
아카데미의 도서관에서 봤던 옛 고서에서 그런 마력을 가진 마법사에 대한 문구를 본 기억이 있었다.
비전술사, 알른 자비우스.
“7인의 원로회…….”
티렌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태초라 불리는 마도 시대의 사람들이야.’
그것도 무려,
1천 년 전의 인물이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그 힘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지금껏 비밀로 지켜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단지…….
란돌의 말을 듣자 티렌은 불안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황궁의 복도에서 들었던 이야기.
‘익스퍼트 마법 경연의 우승자.’
그가 경연 우승의 보상으로 회색교장에 들어가 그곳을 공략했다 했다. 그 덕분에 려기사단이 청린을 찾기 위해 비전의 샘으로 갔던 것이었고.
회생교장이 어떤 곳인가.
7인의 원로회와 관련된 장소 중에 유일하게 아직까지 공략이 되지 않은 미탐사 지역이었다.
“그가 검술을 썼다고 했지?”
“네, 처음 보는 검술이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기묘하고 정적이면서도 동적이었습니다.”
“감탄을 하려고 묻는 게 아니다. 그 검술이 어느 정도의 수준이냐는 게 중요하지. 소드 익스퍼트의 기사들조차 이길 수 없는 마력이라면 4클래스의 반열에 오른 것일 수도 있다.”
거기에 검술까지…….
사실상 한두 명도 아닌 기사단을 전멸시킬 만큼의 실력이라면 이미 검술까지 정점에 도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
바로,
그 정체불명의 적이 소드 마스터의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
“나는 검술에 대해서는 모른다. 하지만 마력만으로 기사단을 전멸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검술마저 정점에 도달했느냐.”
“그게…….”
란돌은 티렌의 물음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잘 생각해 보거라, 란돌. 비록 아버지께서 손속에 사정을 두시긴 했지만 우리들은 소드 마스터의 검술도 보고 자라지 않았느냐.”
그의 모습에 티렌은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자가 아버지보다 강하더냐.”
“……잘 모르겠습니다.”
쉽사리 대답을 내리지 못하는 란돌을 보며 티렌은 자신도 모르게 낮은 탄성을 질렀다.
“알겠다. 그 정도의 적이었단 말이지. 또 다른 특이점은 없었나.”
“으음……. 우연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으나……. 비전의 샘에서 그자와 격돌했을 때 샌드 서펀트가 난입했습니다.”
“……뭐?”
“제가 쓸데없는 소릴 했습니다. 구릉의 주인을 길들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겠죠. 나락 바위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먹잇감을 찾아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연일까.
하지만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이상했다.
티렌은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전신이 섬뜩해지는 기분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닐 수도 있어.”
“네?”
“올리번 황자님께서 남부로 오지 못하고 기수를 돌린 이유가 샌드 서펀트가 가도를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황자님께서 제국으로 돌아가셨단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닌 듯싶다. 재정비를 하고 계신 것 같지만……. 결정적인 상황에 같은 서펀트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 게 단순히 우연일까?”
“형님.”
란돌은 티렌을 바라봤다.
그가 긴장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자 티렌 역시 마른 침을 삼켰다.
“기사단을 전멸시켰던 그자가 이곳에 있습니다.”
“……뭐!?”
“제가 똑똑히 봤습니다. 디곤의 여왕과 결투를 하던 것을요. 제가 그사이에 끼어드는 바람에 이렇게 되어버렸지만…….”
티렌은 그의 말에 차갑게 그를 바라봤다.
“너 그놈에게 두 번이나 당했단 말이야?”
“……죄송합니다.”
패배에 대한 책망이 아니었다.
맥거번가의 형제를 이렇게 만든 것에 대한 분노였다.
“사죄는 내게 할 것이 아니라 폐하께 해야겠지. 하나 중요한 걸 말해줬다. 네가 여기에 있었던 게 어쩌면 천운일지도 모르겠구나.”
“그게 무슨…….”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가 려기사단이 전멸당한 일 때문이니까. 5대 일가와 기사단의 문제 때문에 디곤은 협조적이지 않아.”
‘하지만 그 범인이 디곤과 연관이 있다면 말이 달라지지. 도리어 책임을 그녀에게 물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된다면 지금까지의 판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여왕을 만날 방법이 떠올랐다.’
티렌은 자신도 모르게 쥔 주먹에 힘을 주었다.
“란돌,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지?”
“부끄럽지만 이런 상황이라……. 형님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습니다.”
그의 대답에 티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개인적인 복수는 안 된다. 이 일은 이미 너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제국의 일이다.”
란돌의 생각을 읽은 듯 그가 말렸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대로 돌아가는 것은 저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부디 네가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길 바란다.”
그의 말에 란돌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으로 돌아가 마땅한 벌을 받겠습니다.”
“녀석.”
티렌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나는 황자님과 함께 다시 올 것이다. 그때 네가 중개자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몸을 잘 추스르거라.”
돌아가서 내일을 대비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아쉽지만 오랜만의 재회일지라도 이대로 시간을 허비할 순 없었다.
스르륵-
돌아가려던 티렌이 막사의 문을 젖히고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의아한 눈빛으로 란돌이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으마.”
“네?”
티렌은 남부로 와서 란돌을 만나고 나서까지 계속해서 입 밖으로 이 물음을 꺼낼까 말까 고민을 했었다.
갈색 눈, 갈색 머리, 마력까지.
어느 것 하나 연관성이 없는 것인데도 이상하게 머릿속에 사라지지 않는 의문 하나가 계속해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바보 같은 질문인 것 나도 안다. 한데 혹시…….”
그는 조심스럽게 란돌을 향해 물었다.
“널 습격했던 자가 혹여 카릴과 닮진 않았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