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44)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44화(144/497)
116. 뒷 작업 (1)
“려기사단을 전멸시켰던 범인이 디곤에 있다고 합니다.”
“그럼……. 여왕이 그자를 숨겨주고 있다는 말인가?”
디곤에서 돌아온 티렌의 보고에 크로멘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저희와의 만남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도 모두 그자와 한패이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유린 휴가르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밀리아나의 문전 박대로 이미 심기가 상할 대로 상한 그는 마침 꼬투리를 잡은 듯한 표정이었다.
“관계까지는 알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여왕을 만나고 난 뒤에 밝힐 수 있을 듯싶습니다. 다만, 이 문제를 제기하면 더 이상 저희와의 만남을 거절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으흠……. 자네가 고생이 많았군.”
크로멘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송구하옵니다.”
“그런데……. 그럼 지금 자네 동생이 디곤의 영토에 있다는 말인가?”
티렌의 말을 듣고 있던 케플란이 그에게 말했다.
“네. 그를 만나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기사라면 모름지기 황자님을 뵈옵고 예의를 갖추어야 하지 않는가. 어째서 지금까지 아무런 보고도 없었지?”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이지 않았던 그가 잘잘못을 따지자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했지만 케플란에게 있어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사도였다.
“죄송합니다. 부상이 심하여 그동안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 괴인과 다시 한번 격돌하는 바람에…….”
하지만 티렌은 그런 그의 성격을 이미 예상했는지 막힘없이 말했다.
란돌이 디곤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제국의 귀족들에게는 쉽게 용인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케플란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 자신 역시 이민족인 카릴을 형제로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비불외곡(臂不外曲)이란 말처럼 시비를 떠나 란돌을 감싸려고 하는 것은 형제애임과 동시에 이들에게 자신의 수완을 보여 줄 기회였기 때문이다.
“대신 그 덕분에 그의 검술을 확실히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를 찾는데 란돌이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왕과의 만남에서 그가 중개자로 나설 것입니다.”
티렌은 크로멘에게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그러니 부디 제 동생의 불충을 용서해 주십시오. 황자님.”
“일어나게. 자네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했을 거야. 부상자에게 불충이라니. 가당치도 않네.”
선수를 치듯 먼저 무릎을 꿇는 모습에서 크로멘은 황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어린 황자는 다행스럽게도 노집사와 달리 그런 예의보다 지금 자신에게 놓인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여우 같아졌네. 저 녀석.’
경험의 성장이랄까.
이론으로는 절대로 익힐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기 시작한 티렌을 보며 유린 휴가르는 짧은 시간에 노련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 제가 여왕과의 만남을 다시 요청하겠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걸세.”
“네. 철저히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티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카릴……? 설마 여섯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란돌은 티렌의 물음에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마법도시에서 있었던 경연의 우승자 이름이 카릴이라고 하더군.
-으흠…….
-익스퍼트 경연은 마법사의 반열에 오른 자들만 참가할 수 있는 것이야.
생각지 못한 이야기라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비웃고 넘어갈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가설을 말한 건 다름 아닌 티렌이었으니 란돌 역시 조금은 진지하게 그 말을 들었다.
-동명이인 아니겠습니까? 대륙에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아예 없다는 보장도 없고요.
-그럴 수도 있지.
-게다가……. 그 아이는.
란돌은 조심스럽게 티렌을 바라보며 말했다.
결정적으로 그의 가설이 이뤄질 수 없는 이유를 자신도 그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 이민족이지. 마력이 없는 그리고 가질 수도 없는. 나도 안다. 내 물음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를.
티렌은 고개를 돌렸다.
-기억하느냐. 그 아이가 처음 저택에 왔을 때 아버지께 바랐던 것.
-물론입니다. 마법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었죠.
-그래.
티렌은 카릴을 떠올릴 때마다 마치 꼬리표처럼 마법이란 것이 따라 다니는 기분이었다.
지금 그가 이런 의심을 하는 것도 저택에서부터의 그의 특이한 행동들이 기억에 남아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우리를 이기기 위해 마법을 파헤치겠다는 이유였지 않습니까.
-맞아. 다만 널 습격한 그자가 검을 썼다는 것이 자꾸 걸리는구나.
란돌은 그런 티렌을 향해 말했다.
-이민족의 검은 눈동자는 마법으로 바꿀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지금껏 이민족에 대한 갖은 연구와 실험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마법사들에게 가장 이슈가 되었던 것은 특유의 눈동자와 머리카락 색이었다.
오직 이민족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검은색.
마법사들은 외부에서 마법으로 그들의 색을 바꿔보려 했으나 그 어떤 마법으로도 성공하지 못했다.
마치,
그들의 눈동자는 텅 빈 주머니처럼 모든 마법을 집어삼키거나 혹은 딱딱한 벽처럼 반발하면서 마력 그 자체를 거부했다.
이민족의 검은색은 그렇기 때문에 이단이라 칭해지며 그 증거가 되었다.
-그렇겠지.
티렌은 란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그들은 가장 중요한 하나를 놓치고 있었다.
티렌조차 눈치채지 못한 것.
내로라하는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실험을 했다고 판단했다.
다섯 가지의 속성으로 세계가 구성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까지 유효했다.
즉,
이민족에 대한 마법사들의 실험은 결국 인간의 영역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무색(無色)의 속성.
아무리 똑똑한 티렌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예측하긴 쉽지 않았다.
-그래. 내가 너무 생각이 깊었다. 어떤 가능성을 다 갖다 붙여도 결국 카릴이 마력을 가졌다는 전제조건이 성립돼야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의 말에 란돌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녀석에 대해 생각했던 모양이야…….’
* * *
“후우…….”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티렌은 그날 밤 란돌에게 했던 물음을 후회했다.
“창피할 지경이군.”
그는 품고 있던 의문을 날리려는 듯 고개를 젓고는 내일 밀리아나를 상대로 어떤 얘기를 할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사각-
종이 위에 마력을 담아 글을 썼다.
그가 한 글자를 쓰면 그 뒤에 글자가 마치 누가 지우개로 지우는 것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마력을 불어 넣자 사라졌던 글자들이 마치 파도처럼 나타났다 다시 사라졌다.
마법각인(魔法刻印).
특수한 마법 술식을 통해 시전자의 눈에만 글이 보이게 만드는 방법.
마도 시대에 언령서약서를 만들 때 사용된 방법이었으나 그 당시보다 마법이 떨어지는 현재는 언령을 사용하지 못하는 관계로 개량이 되어 지금처럼 마법사들이 만드는 마도서약서에 이용된다.
“흐음.”
그는 빈틈없이 서약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실수해서는 안 된다.
혹여 자신이 놓친 부분으로 인해 이제 막 대등하게 만들 수 있게 된 판이 기울어져서는 안 되니까.
이 일을 완수한다면 스스로 껍데기를 깨는 계기가 될 것이란 것을 그는 직감했다.
짹깍…… 짹깍…… 짹깍.
시계의 바늘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들렸다.
“후우…….”
그가 펜을 놓았을 때,
어느새 동이 트기 시작하는 새벽이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빼곡하게 적혀 있는 조항들을 보며 티렌은 피로한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역시 제국으로 돌아가면 스승님께 여쭈어봐야겠다.”
끝내,
카릴에 대한 의심의 꼬리를 지울 수 없던 그였다.
* * *
“다시 뵙게 되어 기쁩니다.”
밀리아나는 크로멘과 함께 온 티렌을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과 달리 그녀의 막사엔 그들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어쩐지 애초에 첫 만남이 아닌 지금을 기다렸다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자신이 있는 표정이군. 그날 밤이 뭔가 도움이 되었나 보지?”
그녀의 물음에 티렌은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그저……. 몇 가지 확인을 할 필요가 있는 것뿐입니다. 서로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티렌은 밤새 준비한 서약서가 든 상자를 그녀의 앞으로 밀며 낮은 숨을 토해냈다.
“흐음, 그런데 그 덩치는 없군.”
하지만 밀리아나는 그것에 관심이 없는 듯 크로멘의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든 경께서는 더 이상 제국과 디곤과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역시나.”
‘……역시나?’
밀리아나의 묘한 대답에 의아한 티렌이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교도 용병단이 아니라 눈앞의 여왕이었으니까.
‘집중하자. 티렌.’
티렌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몇 번이나 속으로 읊조렸다.
하지만 정작 긴장 가득한 그와 달리 밀리아나는 여전히 관심이 없는 표정으로 먼 곳을 응시할 뿐이었다.
* * *
“고든 파비안.”
의자에 앉아 팔짱을 낀 채로 눈을 감고 있던 그는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살짝 이마를 꿈틀거리며 앞을 바라봤다.
비공정의 집무실까지 들어오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뿐인 출입구를 통해야 한다.
“용병단 소속의 용병들도 가끔 길을 헤매는데…….”
게다가 그 안에 복잡한 계단들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안에 있는 보초의 수만 해도 수십 명이었다.
“용병도 아닌 녀석이 용케도 내 방까지 왔군.”
고든은 천천히 문 앞에 서 있는 인영(人影)을 바라보며 말했다.
“죽으러 왔나?”
파가각……!!!
순간,
그가 눈을 부릅뜨자 몰려오는 살기만으로 책상 주변에 있는 집기들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문 앞에 있는 자는 그의 살기를 보고도 미동 하나 하지 않았다.
“이것 참…….”
고든은 그런 그를 보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오랜만인데 여전하네요.”
파직-
말이 끝나기 무섭게 쓰고 있던 가면의 끝부분이 금이 쩍 갈라졌다.
카릴은 아쉬운 듯 살짝 찡그리며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네놈…….”
낯익은 얼굴이 보이자 표정 변화가 없던 고든마저 살짝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바라봤다.
“죽으러 온 게 맞나 보네.”
고든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계약을 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비공정의 엔진에 대한 얘기는 깜깜무소식이야?”
카릴은 그의 말에 가볍게 웃었다.
맹수의 으르렁거림처럼 들렸지만 어쩐지 고든의 목소리엔 살기보단 반가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쁘지 않군.’
처음 그를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쭈뼛쭈뼛 서는 긴장감에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전생에 내가 검성의 반열에 올랐을 때……. 대륙의 강자라고 불리던 다섯 소드 마스터 중에 살아 있던 자는 단 두 명뿐이었다.’
권왕(拳王) 발본트와 낙인의 기사라 불렸던 가네스.
지금도 그렇지만 권왕은 이후에도 대륙의 일에 관여를 하지 않았기에 유일하게 카릴이 붙어 본 상대는 가네스뿐이었다.
‘마력을 감춰야 했던 아버지 때와는 다르다.’
몇 년 전에만 하더라도 육체가 본능적으로 고든과의 대결을 피했다면 이제는 흥미가 생겼다.
그가 전생에서 상대했던 강자들은 결국 인간이 아닌 타락이란 괴물들뿐이었으니까.
“그래도 절 기억하시고 계시네요.”
카릴은 그에게 말했다.
“계약 이행까지는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남았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잡은 건 마광산의 개발이 끝나고 8각석을 세공할 수 있는 장비까지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있나?”
카릴은 고든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탁이 내려진 뒤 전생에선 그 엔진을 장착한 비공정을 타본 적도 있는 그였다.
확신이 없었다면 단순히 미하일을 얻을 목적으로 거짓으로 고든과 계약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계약 만료까지 3년이었지?”
“그렇습니다.”
“하……. 그때까지 나보고 기다린 말이냐? 늙어 죽겠군.”
고든은 실망스러운 듯 말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순간,
그의 눈빛이 바뀌었다.
애초에 첫 질문부터 잘못되었다. 엔진 따위는 그저 인사치레에 불과한 것이었다.
진짜 질문.
“네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냐.”
느슨한 척 보이지만 가슴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질문을 할 때마다 느껴지는 살기가 따끔거렸다.
하지만 카릴은 기다렸다는 듯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3년이 뭐가 깁니까? 대단하신 고든 파비안이 고작 3년 만에 늙어 죽는 건 말도 안 되죠.”
“…….”
“말은 바로 하시죠. 늙어 죽는 게 아니라 지병으로 죽겠죠.”
“……뭐?”
카릴의 한마디에 고든 파비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천하의 고든 파비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단장을 왜 옆에 계속 둘까. 그가 여우 같긴 하지만 그만큼 영리하기 때문이지.”
고든은 카릴의 말을 들었다.
“자신이 죽게 되면 용병단을 이끌 사람 중에 그나마 쓸 만한 녀석이 누군가 고민했을 때 그가 가장 나았을 테니까. 독불장군이라 해도 용병단의 자존심보다는 용병단의 존속이 중요하니까.”
“미친놈.”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카릴은 기세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몇 년 전부터 느껴지는 가슴 통증.”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소드 마스터라면 자신의 몸에 대해서 굳이 치유사에게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테고. 점차 심장이 굳기 시작하는 걸 느끼고 있겠죠.”
저벅- 저벅- 저벅-
카릴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치료법을 찾았겠지만 찾을 수 없었고 지금까지 이런 병이 있었다는 경우도 없지. 어쩔 수 없이 지병이라고 치부하고 포기하고 있던 거 아닙니까? 근데 아냐.”
“……뭐?”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혈맥에 흐르는 피가 끓어 사라지기 때문에 당신의 마력혈에 온전하게 마력을 순환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니까요.”
고든의 눈빛이 흔들렸다.
“심장이 굳는 건 그로 인한 부가적인 결과일 뿐.”
카릴은 지금까지 대륙 전역을 조사했던 그가 가장 듣고 싶고 가장 궁금했던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해주었다.
“산화혈액증.”
꿀꺽-
맹수와 같은 그가 처음으로 긴장된 얼굴로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게 당신 병입니다.”
쿵-
“게다가 불치병도 아니지.”
카릴은 들고 있던 커다란 뭔가를 내려놓았다.
“당신이라면 황자의 일에 가타부타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아마……. 황자 쪽은 황자 나름대로 거래의 저울질을 하고 있느라 바쁜 것 같은데…….”
그건,
미노타우르스의 마굴에서 얻은 전리품이었다.
“우리도 해볼까요?”
그 순간,
고든은 대답 대신 주먹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