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49)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49화(149/497)
118. 몰이 사냥 (2)
“당신이 시키는 대로 크로멘의 제안을 거절했다.”
밤이 되어 비공정에서 돌아온 카릴을 밀리아나가 맞이했다.
“잘했어. 화친의 대가로 그가 뭘 제시하던?”
“청린. 당신이 먼저 제시하지 않았더라면 솔직히 혹했을지도 모르지. 어떻게 알았어?”
카릴은 그녀의 말에 입꼬리를 올렸다.
“안게 아냐. 예측했을 뿐이지. 그런데 고작 그것뿐이야? 다른 게 있었을 텐데.”
밀리아나는 그 말에 신기하다는 듯 카릴을 바라봤다.
“어디서 티렌을 훔쳐보기라도 한 거야? 어떻게 알았지? 당신……. 인간 맞지?”
“완벽하게 인간이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얘기나 해봐.”
카릴은 흙먼지가 잔뜩 묻은 망토를 벗어 구석에 걸어 놓으며 말했다.
“청린의 채취 말고도 티렌이란 녀석이 서약서를 만들어 왔더군. 마력이 담긴 서약서 말이야.”
“그래? 혹시 사용한 종이가 기억나? 낡거나 왼쪽 상단에 특수한 마크가 그려져 있던 건 아냐?”
“음? 아냐. 그냥 양피지였어.”
카릴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언령 서약서는 아닌가 보군.”
그녀의 말에 카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약서를 직접 만든 모양인데……. 그 정도라면 티렌 역시 마법사의 반열에 오른 모양이군.’
전생에 그는 제국의 재상이란 자리에 오를 정도로 비상(非常)했던 만큼 마법사로서의 재능도 나쁘지 않았다.
재상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 잘 언급이 되지 않았지만 6클래스까지 도달했던 티렌은 충분히 고위 마법사로서도 능력을 갖춘 셈이었다.
“그래서?”
“디곤의 약점을 잘 알더군.”
“오아시스?”
밀리아나는 카릴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맞아. 그전에 청린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어쨌든 남서쪽에 있는 땅을 우리에게 주겠다고 하던데.”
“크로멘의 땅이군.”
카릴은 설명을 듣지 않아도 단번에 티렌이 제안한 곳이 어딘지 알아봤다.
“그 일은 황제가 윤허한 것은 아닐 거야. 그래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애초에 거긴 사람이 살지 않는 불모지에다가 크로멘이야 영지를 관리할 능력도 안 되니까.”
‘그래도 녀석이 황제에게 받은 몇 안 되는 땅 중 하나인데 꽤나 큰 수를 두었군.’
자신이 가진 영토를 야만족에게 제안할 만큼 크로멘 역시 벼랑 끝에 몰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마저 거절을 당했으니 티렌은 물론 어린 크로멘은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 터.’
고든이 회군의 뜻을 밝힌다면 크로멘은 당장에라도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주무르는 것 따윈 카릴에게는 손바닥 뒤집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아쉽나?”
“뭐……. 딱히 그런 건 아니야.”
“확실히 그 땅을 받는다면 식수 문제는 해결될 수 있겠지. 하지만 타이란 슈테안이 어떤 인간인데. 언제든 빼앗을 수 있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제안을 한 것이기도 하겠지.”
카릴의 말에 밀리아나의 얼굴이 굳었다.
“……왜? 그렇게 보지?”
“내 말에 뭔가 떠오르는 게 없나?”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대로 생각해. 티렌은 네게 식수 문제의 해결책을 준 거야. 받아 낼 필요 없어. 빼앗으면 돼.”
“미친……. 지금 협상을 물린 것도 모자라서 제국과 한판 하라는 말이야?”
“언젠가는.”
밀리아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디곤이 멸망하게 되면 네 책임이다.”
“싸울 의향은 있고?”
“없어. 지금도 충분히 당신 때문에 무리하고 있는 거니까. 대초원의 4부족과 나락 바위의 5대 일가를 구워삶든 마음대로 하는 건 상관없지만 디곤까지 얽히게 하진 마.”
“덕분에 우리가 싸우지 않고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잘된 것 아냐? 공공의 적이 있으니 같은 방향을 볼 수 있잖아.”
카릴은 그녀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나를 상대하는 것보다 제국을 상대하는 것이 더 나을 테니까.”
“자신감이 아니라 그건 오만이야.”
“그래? 지금 당장 확인을 시켜 줄 수도 있는데.”
“…….”
어처구니가 없는 듯 그의 말을 되받아쳤지만 결국 그녀는 입술을 씰룩이는 것으로 그쳤다.
“농담이다. 어쨌든 이번 협상이 결렬되도 디곤에게 피해가 가진 않을 거야.”
“제국이 우릴 공격할 가능성이 없다는 말이야?”
“응. 맞아.”
“또 무슨 수를 써 놓은 거야?”
“조금은.”
밀리아나는 단호하게 대답하는 카릴을 보며 못 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매번 이렇게 확신에 찬 얼굴로 말할 수 있는 거지?”
그런 그녀의 대답에 카릴은 그저 피식 웃었다.
“뭐, 제국에게 있어서 강대국의 자존심이라는 건 중요하지. 하지만 아무리 제국이라 하더라도 4만의 목숨을 외면하고 끝까지 고집을 피우긴 힘들 테니까.”
“4만의 목숨……?”
밀리아나가 그를 바라봤다.
“그런 게 있어. 그러니 걱정 마. 내가 움직이지 않는 이상 최소한 제국이 공격을 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 순간,
그녀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소리치려다 입을 막으며 말했다
“설마……. 이스트리아 삼국의 트윈 아머에서 루온 황자를 대패(大敗)하게 만든 것도 당신이 한 일인 거야?”
카릴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밀리아나는 그 침묵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질리는군. 내로라하는 제국의 두 황자가 당신 때문에 남부에서 일을 망쳤다니 말이야.”
‘둘이 아니라 셋이야.’
그녀의 말에 카릴은 가볍게 웃었다.
올리번을 막은 샌드 서펀트까지 카릴이 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녀는 놀라 자빠질 테니까.
밀리아나는 지친다는 표정으로 커다란 방석에 누우면서 말했다.
“뭐,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지만 티렌은 그것 말고 내게 또 얘기한 게 있다.”
“그게 뭔데?”
“영토를 약속함과 동시에 려기사단이 5대 일가를 기습하는 걸 도운 것을 묵인해 줄 수 있다고 하더군.”
“협박?”
“아니, 사실이라고 해야겠지.”
그녀는 같잖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올리번과 네가 밀약을 맺은 거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야. 단지 대외적으로는 려기사단이 너와의 계약을 어기고 5대 일가를 기습했고 디곤 역시 사실을 몰랐으니 피해자라고 우길 뿐이지.”
“우기다니 무슨…….”
카릴은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솔직히 서로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야. 대 놓고 말을 못 할 뿐이지 누가 봐도 다 아는 사실 아냐?”
“어찌 되었든 그 티렌이란 녀석은 조심해야 할 거다. 눈 가리고 아웅을 하든 어쨌든 당신 말대로 디곤에게 그런 협박을 할 수 있는 건 웬만한 녀석이 아니라는 거니까.”
“그는 더 성장할 거야.”
“당신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데??”
“그건 모르는 일이지. 지금부터 그가 볼 광경이 꽤나 충격적일 테니까.”
카릴은 디곤에서 돌아갈 때의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 티렌. 넌 성장하겠지. 하지만 이번 일로 꽤나 마음고생을 하겠지. 하지만 이 정돈 감수해야지. 얼마나 네가 날 부려 먹었는데.’
전생의 자신을 지독하게 고생을 시켰던 그였다.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자신의 말로써 재상 티렌 맥거번은 카릴을 냉정하게 이용했다.
물론,
그걸 원망하지 않는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단지 아주 조금 불세출의 천재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얼굴을 볼 수 있을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친 게 아쉬울 뿐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데? 고든 파비안을 만나러 간 일과 관련이 있는 건가.”
“맞아.”
“당신을 보고 있으면 목숨을 내놓고 사는 사람 같아.”
“천하의 여제가 나를 생각해 주는 건가?”
“생각은 무슨……. 당신한테 패대기쳐져서 바닥에 갈린 얼굴이 아직도 아프거든?”
그때였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카릴이 다가와 누워 있는 그녀의 뺨에 손을 가져갔다.
“뭐…… 뭐야.”
깜짝 놀라며 밀리아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가만히 있어.”
카릴이 그녀의 턱을 잡고는 양쪽 뺨을 살폈다.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일지 모르지만 남부의 패자라 불리는 그녀가 어쩐 일인지 순한 양처럼 가만히 있었다.
“…….”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
얼마나 흘렀을까.
어색한 시간은 1분 1초가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아 밀리아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그저 카릴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였다.
“상처도 없네, 뭐. 가죽이 튼튼한가 봐.”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카릴의 평가에 밀라아나의 표정이 싹 변했다.
“가죽이라니……. 잘도 그런 말 같잖은 소릴 하네. 보호 마법을 써서 그런 거거든.”
“별로 대단치도 않던데 그 보호 마법.”
“닥쳐.”
그의 말에 밀리아나는 입술을 씰룩이고는 자신의 턱을 잡고 있는 카릴의 손을 툭! 하고 치면서 말했다.
‘이 내가 시답잖은 농담에 맞춰주고 있다니…….’
듣기로 고작 14살밖에 안 된 꼬마였다.
10살이나 차이가 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하는 말끝마다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따금 보이는 말투나 행동거지에서 어린아이라는 걸 잊게 만들었다.
속내를 전혀 알 수 없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일어서는 카릴을 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미쳤어.’
밀리아나는 자신도 모르게 화끈거리는 뺨에 손등을 가져갔다.
“란돌은? 크로멘과 함께 돌아갔나?”
“남았어. 묻는 걸 보니 그것까진 예상 못 했나 보네.”
“그럼. 내가 신도 아니고.”
카릴은 밀리아나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의 마음까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 참, 대국은 훤히 보는 사람이 한 사람의 생각은 예측 못 하는 거야?”
그녀의 말에 카릴은 피식 웃었다.
“대국은 그저 큰 흐름일 뿐이니까. 물꼬만 튼다면 물살에 밀리듯 휩쓸려가게 마련이니 예측도 계획도 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열 길 물속은 쉬워도 한 길 사람 속은 어려운 법이거든.”
“내 눈에 당신은 딱히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데.”
밀리아나는 지금까지 카릴이 자신을 대하는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친근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그녀로서는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전생에 두 사람은 수년간 생사고락을 함께했었던 사이라는 것을.
하지만 란돌은 다르다.
그가 죽기 전에도 이렇다 할 인연도 없었거니와 현생에 와서도 저택을 나온 이후 시간이 흘러 지금의 란돌이 가지는 이념을 카릴이 알 리 없었다.
‘검의 재능 이외에 내가 그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가 귀족이 아닌 평민이라는 점이다.’
“녀석이 디곤의 검술을 얼마나 익혔지?”
“기본기는 모두. 사실 지금부터가 고민이야. 당신 부탁으로 그를 가르쳤지만, 이 이상은 일족이 되지 않는 이상 곤란해.”
“거기까지면 충분해. 만약 그가 디곤에 일족이 되겠다고 하면 그때 정수(精髓)를 가르치도록.”
“그가 우리 일족이 될 거라고 봐?”
“티렌도 그렇지만 베스탈 후작령에서 벌어질 일이 그들의 미래를 결정지을 거야.”
카릴은 눈빛을 빛냈다.
“두 사람 모두 1년 뒤 가장 필요한 사람 중 한 명이 될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황자에 대한 충성심을 꺾을 필요가 있지.”
“1년 뒤?”
“아직은 몰라도 되는 일이야.”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1년 뒤에 신탁이 내려진다.
하지만 카릴에 의해 제국조차 황위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신탁이 그때처럼 내려질지, 그는 시험 하고자 했다.
‘만약 1년 뒤가 아니라 제국의 기틀이 잡히고 대륙의 통일 이후에 신탁이 내려지는 것이라면…….’
신탁이 인간이 타락과 싸울 수 있는 기반이 준비되고 나서야 시작된다면, 파렐의 등장도 타락과의 전투도 모두 신의 의지가 반영된 것일지 모른다.
‘만약 신탁이 아닌 파렐을 만든 것조차 율라(Yula), 네놈의 소행이라면 내가 인류의 수장으로 있을 이 현생만큼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카릴은 생각했다.
“란돌은 당분간 계속 이곳에서 맡아줘. 조만간에 스스로 떠나겠다고 얘기할 것이다. 그는 날 찾기 위해 디곤을 떠날 테니까.”
“굳이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해야 할까? 난 당신이 하려고 하는 게 뭔지 이해가 가지 않아.”
“극적인 상황을 위해서는 연출이 필요한 법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꽤나 재밌는 걸 보여 줄 테니까.”
카릴은 잠시 호흡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듯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말했다.
“알겠지? 내가 방금 말한 것들. 잊어버리지 마. 기억하고 본다면 앞으로 내가 만들 무대를 즐겁게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카릴의 입꼬리가 올라가자 밀리아나는 이제는 그가 웃을 때 도대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의 거래는?”
“안 그래도 오늘 그 일도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내일이면 디곤을 떠나야 하니까.”
“오늘? 하루 만에 그게 가능해?”
“하루도 안 걸리지. 지금 넌 혈맥은 3개가 뚫린 상태지만 그에 비해 마력혈 안에 있는 마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지.”
밀리아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 않아. 실제로 용마력은 현존하는 마력에 비해 훨씬 농도가 짙다. 대(代)를 지나오면서 옅어졌다고는 하지만 충분히 강하지.”
카릴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나만큼의 마력을 가지진 못했지만.”
“……그래서?”
“네게 부족한 건 혈맥이야. 소드 마스터의 기준이라 할 수 있는 4개의 혈맥이 뚫려 체내에 마력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뤄진다면 넌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
집중해서 듣던 그녀는 카릴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혈맥을 뚫는 게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걸 누가 몰라? 방법이 없으니 못하고 있지.”
“그 방법을 내가 안 다는 거지.”
“뭐?”
카릴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모든 혈맥을 뚫는 것은 무리겠지만, 최소한 1개의 혈맥을 뚫는 건 가능해. 비전력이란 특수한 마력을 이용한다면.”
그 순간,
그의 손에서 보랏빛의 마력이 서서히 응축되며 모이기 시작했다.
“다행이지. 내가 그 비전력을 가지고 있거든. 믿어도 돼. 나 역시 같은 힘으로 혈맥을 뚫었다.”
밀리아나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카릴의 마력을 바라봤다.
“게다가 넌 운이 좋아. 마력을 전수해 주는 게 귀신이 아닌 나처럼 친절한 인간이니까.”
카릴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옷 벗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