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53)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53화(153/497)
119. 움직이는 말
콰아아앙—!!!
“자네 이게 무슨 짓이야!!!”
하룬 자작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건너편 건물에 있는 크로멘의 방의 문을 마르트는 거칠게 열었다.
복도의 소란도 잠시.
부서질 듯 열린 문 안쪽에 소파에 앉아 있는 크로멘과 함께 차를 마시던 올리번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어쩐 일이지? 마르트. 난 자네를 부른 기억이 없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가?”
너무나 평온한 그 모습에 마르트는 할 말을 잃은 듯 굳은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감히……! 이 무례한!!”
뒤에 서 있던 하룬 자작이 그의 어깨를 찍어 누르며 소리쳤다.
쿵……!!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마르트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럼에도 그는 크로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 내가 무슨 짓을…….’
밀려들어 오는 후회감.
잠깐이지만 올리번을 의심했다는 것과 지금 자신이 만든 소란에 대한 죄책감까지.
하지만 그와 동시에 크로멘이 살아 있다는 안도감이 함께 느껴졌다.
“그만. 하룬, 마르트를 일으키게. 같은 동료끼리 지금 이게 무슨 짓인가.”
“하오나…….”
“큭……!!”
하룬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마르트를 바라보며 짓누르고 있던 어깨를 잡은 손에 다시 한번 힘을 주었다.
“황가의 핏줄이 머무는 처소에 막무가내로 들어오는 것은 벌을 받아 마땅한 일이나 그는 크웰 맥거번의 아들이지 않은가.”
올리번은 입에 가져가려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단지 크로멘만이 긴장한 얼굴로 목이 타는지 차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타당한 이유가 있기에 이런 무례를 저지른 것이겠지. 안 그런가?”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마르트를 향해 걸어갔다.
“놓아주게, 하룬.”
“……알겠습니다.”
올리번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제야 하룬은 마르트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어깨에 손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상급 소드 익스퍼트의 실력인 그의 힘은 조금만 더 세게 잡아도 마르트의 어깨뼈를 바스러뜨리기 충분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이곳은 베스탈 후작령이네. 보는 눈이 많아서 모두가 조심스러워하고 있지. 그런데 아닌 밤중에 소란이라…….”
올리번이 마르트를 바라봤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어쩐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겠지?”
“그게…….”
긴장된 얼굴로 마르트의 입술이 떨렸다.
“뭔가 이상한 인기척이 느껴져서……. 무례를 용서하시옵소서. 저하.”
“하하, 아닐세. 인기척이라니. 만약 그랬다면 하룬 경이 먼저 알아차렸을 거야. 신경을 써주는 것은 고맙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 없네.”
올리번은 탁자에 뒀던 자신의 찻잔을 들었다.
“아무래도 첫 출전이다 보니 여러모로 긴장을 많이 한 듯하군. 그동안 내 호위를 하느라 지쳤나 봐. 안 그래?”
“……죄송합니다.”
그는 이해한다는 듯 마르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말했다. 그러고는 찻잔을 그에게 건넸다.
“자네도 한잔하겠는가? 맛이 좋아.”
찻잔 안에 투명한 차.
기묘하게도 아무런 향이 나지 않았다.
“…….”
스치는 불안감.
마르트는 올리번이 건넨 차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마시지 않고 황급히 무릎을 꿇고는 소리쳤다.
“아, 아닙니다!! 두 분의 시간을 방해해서 송구스럽습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돌아가 보겠습니다……. 저하.”
“그래?”
* * *
“정말 네 말대로……. 마르트가 올리번을 찾아갔군.”
고든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마력을 집중시키자 그의 눈동자 속에 황금빛으로 빛나며 홍채를 중심으로 원형의 고리 같은 마크가 생겨났다.
수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거리였지만 그의 눈에는 건물 안의 광경이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망원경으로 보는 것처럼 건물의 크기가 점차 확대되는 듯 가까워지면서 고든의 눈에는 올리번의 표정까지 보였다.
“…….”
시야를 높이는 보조 마법인 이글 아이(Eagle Eye)를 뛰어넘어 소드 마스터와 같은 극의의 신체를 가진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만환(卍環)이었다.
건물 안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며 고든은 끝내 눈을 감으며 낮은 한숨을 토해냈다.
“올리번이 어떤 인간인데. 그렇게 쉽게 꼬리를 밟히겠습니까. 이런 곳에서 대놓고 크로멘을 죽일 리가 없죠.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증거를 만들어 두는 것이 더 중요하겠죠.”
게다가 마르트가 동년배에선 나름 뛰어난 실력을 가진 검사지만 하룬 자작이 막고 있는 문을 뚫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부러 보여주기 위함이다.’
두 사람이 안전하게 있다는 것을.
크로멘의 죽음이 자신과 연관되지 않다는 걸 보이기 위함이었다.
“사악한 녀석. 덕분에 마르트가 앞으로 곤욕을 치르겠군. 낚으려는 대어가 황자가 아니라 저 녀석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카릴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마르트여야만 했으니까요.”
만약,
올리번이 이곳에서 크로멘을 죽일 작정이었다면 굳이 살인 현장을 보여 줄 사람으로 마르트를 선택할 필요는 없었다.
마법사의 반열에 오른 티렌이야 자신의 변환마법을 눈치챌 가능성이 있어 배제한다 하더라도 하룬이라든지 제르반그와 같은 실질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자를 끌어들였을 것이다.
‘내가 그 많은 사람 중에 마르트를 선택한 이유.’
카릴은 그를 잘 안다.
마론 협곡에서 마족에게 심장이 꿰뚫린 채 죽어 가던 첫째는 여섯 형제 중에 티렌과 함께 가장 오랫동안 자신이 봐왔던 남자였다.
“마르트라면 분명 눈치챘을 겁니다.”
크웰 맥거번이라는 위대한 남자의 아들로서 그는 귀족적인 면모를 보이는 장남이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지기 싫어하고 주위의 눈치를 살핀다는 것.
꼼꼼하지 못한 엘리엇이나 올리번을 끝까지 믿는 다른 충신들은 안 된다.
‘그만큼 의심도 많지.’
게다가 어머니인 이사벨 에시르는 아들들에게 엄격하게 귀족의 예법을 가르쳤다.
식기를 다루는 방법에서 차를 마시는 것까지.
비록 지금은 약소가문에 불과하지만, 구 제국 건국의 공신이었던 대마도사인 카이에 에시르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강한 여자였다.
자신의 자식들이 다른 귀족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실수를 겪지 않도록.
그런 마르트라면 의아할 것이다.
‘너라면 분명 알아차리겠지. 세상에 향기가 없는 차는 없다는 걸.’
굳이 그런 것을 찾는다면 물뿐일 것이다.
하지만 황자들이 아무것도 넣지 않은 끓인 물을 마신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쌍한 크로멘. 그 아이는 긴장해서 맛을 느끼기는커녕 그저 형이 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먹을 뿐이겠지.’
물이 아니라면 하나뿐이다.
전생에 올리번이 크로멘에게 먹였던 무색무취의 독약.
미명(未明).
“진짜 그런 독이 있나. 솔직히 난 아직도 믿기 어렵군……. 올리번이 크로멘에게 독을 먹인다는 게.”
“곧 알게 될 겁니다.”
카릴의 기억 속에 크로멘의 죽음은 확실히 남아 있었다.
황제는 모든 귀족이 참석하도록 명하며 성대하게 국장(國葬)을 치렀고 석 달 동안 술과 노래를 금하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그 약에 죽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겠지만.’
비록 전생에는 이번 원정과 같은 사건은 없었지만 적어도 그 이전부터 독을 먹었던 크로멘의 죽음의 시기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게 바로 이 시기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라면 올리번은 오히려 크로멘의 죽음을 디곤에게 떠넘기기 위해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제 예상대로라면 두 사람이 황궁에 도착한 뒤에 크로멘의 비보가 저희에게 들릴 겁니다. 그것이 올리번의 입장에서 가장 완벽한 죽음이니까.”
“흐음…….”
“그렇게 되면 마르트는 정말로 의심하겠죠.”
카릴은 눈빛을 빛냈다.
“그리고 네 녀석이 그런 그를 이용해서 크로멘의 죽음을 밝히겠지. 그런데 굳이 이렇게 복잡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원한다면 내가 녀석의 가면을 벗길 수도 있다.”
고든의 말에 카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됩니다. 올리번 한 명만을 노리는 거라면 그럴 수도 있겠죠. 가장 극적인 순간에 제가 만든 무대에 모두가 올라와 있어야 하니까요.”
그 순간, 카릴의 눈빛이 빛났다.
‘올리번 뿐만이 아니다. 황제와 루온까지 동시에 끌어내리기 위해선……. 크로멘의 죽음이 필요하다.’
그는 낮게 말했다.
“이게 마지막입니다. 결말은 황도에서 치러질 것입니다.”
오싹-
그 순간 고든은 직감했다.
지금껏 카릴이 한 모든 것이 단순히 진실을 밝히려는 정의감이 아닌 그 자신이 그 무대 위에 서기 위함이라는 것을.
‘어디까지 생각하는 거지? 네 녀석이 만들 무대라는 게 제국을 집어삼키기 위함인 것이냐.’
“후회하십니까?”
카릴이 확인을 하듯 고든 파비안에게 물었다.
어찌 되었든 크로멘을 남부로 데리고 온 사람은 고든이었으니까. 그의 죽음에 고든 역시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다. 이번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황위에 오를 수 없는 아이다. 언제라도 죽을 녀석이야.”
고든은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그 죽음이 의미를 가진다면 그에게는 조금이라도 나은 걸지 모르지.”
“흐음…….”
카릴이 눈을 옅게 뜨며 말했다.
“당신이 막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가능합니다. 비공정에 엘릭서가 있지 않습니까. 그거라면 크로멘이 먹은 독을 중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의 말에 고든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허허, 네놈이 그걸 어떻게 알지? 그건 황제도 모르는 일인데.”
엘릭서(Elixir).
만능의 영약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마도 시대 엘프의 산물이라 알려져 있으며 지금은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물건.
하지만 딱 한 곳.
교도 용병단의 비공정에는 그 유물이 남아 있었다.
그가 어떤 식으로 그 영약을 찾아낸 것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가 전생에 엘릭서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카릴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불치병에도 쓰지 않고 아껴뒀던 그 영약을 아버지에게 넘겼지.’
카릴은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른다.
단순히 강자로서 만남으로 이뤄진 우정일까.
아니면 자신이 모르는 그 어떤 관계가 숨어 있는 것일지도.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무척이나 특이한 사람이야. 내 친부의 이름을 부를 때도 이민족으로 대한 것이 아닌 마치 친구의 이름을 부르듯이 했었지.’
전생에는 그저 크웰 맥거번에 대한 적대감뿐이었기에 몰랐지만 카릴은 다시 돌아온 이 현생에서 크웰이 자신에게 칼리악에 대해 했던 얘기들을 떠올렸다.
그가 카릴에게 아그넬을 건넸던 날.
확실히 크웰은 그 검이 검은 눈 일족의 수장인 칼리악이 남긴 유품이라 말했지 그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이라 말하지 않았다.
카릴이 아는 크웰은 결코 거짓말을 할 위인이 아니었다.
‘네 아비가 나에게 남긴 거다.’
유일한 검은 눈 일족의 생존자인 자신에게 맡기지 않고 칼리악은 크웰 맥거번에게 유품을 남겼다.
이민족이 제국인을 믿는다?
확실히 그 관계는 평범하지 않았다.
‘어째서 아버지께서는 나를 양자로 받아들이신 걸까……. 황제의 명을 어기면서까지.’
생각해 보면 크웰의 행동들은 단순하지 않았다.
게다가 교도 용병단의 고든 파비안 조차 자신의 목숨이 아닌 크웰 맥거번에게 하나뿐인 엘릭서를 남기지 않았는가.
‘아버지는 이민족에게 신임을 받고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결국 이단섬멸령을 이끈 북부 정벌대의 지휘관이 그였다.’
너무나 반대되는 양면적인 모습.
그것에도 이유가 있는 걸까.
어려운 일이다.
카릴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히 검(劍)으로 자신을 관철시켰던 전생과 달리 정치라는 것, 암투라는 것에 더욱 깊게 알수록 그는 세상의 흐름이란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는 무엇을 하고 싶으셨던 걸까.’
꽈악-
‘하지만 그래 봤자…….’
카릴은 자신도 모르게 저 멀리 건물을 주시하며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놈에게 죽임을 당했지.’
그는 고개를 돌렸다.
‘크로멘. 비록 널 살려주진 못하지만 적어도 네 죽음만큼은 이번 생엔 밝혀주마. 그게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배려다.’
수많은 죽음을 기억하고 있다.
모든 사람을 살릴 순 없다.
몇 번이나 다짐했고 숱하게 겪었던 일이다. 하지만 역시나 죽음 앞에서 익숙해질 수는 없었다.
“이거.”
“뭐지?”
카릴은 쪽지 하나를 건넸다.
비공정 위에 있던 서 있던 고든 파비안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저번에 우리가 했던 거래. 이 일을 성사시키고 나면 드리겠다고 했는데. 당신의 병의 치유약을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고든은 쪽지를 펼쳐 읽고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카릴을 바라봤다.
“여기에 있다고?”
“네.”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여기에 가라고?”
“맞습니다.”
“……지금 장난해?”
그런 그의 반응에 카릴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반응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쪽지에 그려져 있는 지도가 가리키는 곳은 마도 시대에도 공략되지 못해 금역의 땅이라고 불리는, 망령의 성.
고스트 캐슬(Ghost Castle)이 있는 장벽 너머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나 원 참, 살려고 들어갔다가 죽어서 나오겠군.”
고든은 카릴이 건넨 쪽지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듯 갈기갈기 찢어 바람에 날리며 투덜거렸다.
“너무 억울해하지 마십시오.”
카릴은 고든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저도 함께 갈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