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54)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54화(154/497)
120. 살아남는 자
“마스터에게서 전갈이 왔다.”
“계획대로?”
“당연히. 계획대로.”
두샬라는 남부의 열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막사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얼굴을 가리고 있던 히잡을 풀며 부채질을 했다.
이마에 맺힌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촉촉하게 젖은 입술이 씰룩였다.
“뭘 봐?”
그녀의 등장에 멍하니 있던 투 부족의 부족원들은 순식간에 열기를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차가운 그녀의 말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베이칸은 피식 웃었다.
대초원에서 가장 용맹한 전사들이라 여겨지는 투부족의 전사들이 그녀의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하고 벙어리가 되니 말이다.
“다시 바빠지겠군.”
카릴과 함께 남부로 온 베이칸과 키누는 카릴이 디곤과의 일전을 벌이는 동안 대초원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교도 용병단이 오아시스를 습격할 때 막았던 병력은 그들이었다.
사실상 남부의 야만족의 힘은 강력하기는 하지만 용병단을 상대로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두샬라, 수안 그리고 에이단이 합류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마치 교도 용병단과 한 판 붙을 것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카릴은 그 세 사람을 먼저 남부로 보내어 그들의 동태를 살피게 했었다.
“다시 보게 될 때는 타투르에서려나?”
“아마도.”
“이번엔 오래 걸리겠어.”
오랜만의 재회의 회포를 푸는 것도 잠시 이제 다시 흩어진다는 사실에 에이단은 조금 아쉬운 듯 말했다.
“그래서 마스터가 뽑은 인원은?”
“너와 수안.”
에이단의 물음에 두샬라는 두 사람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좋아. 마스터께서 이번에 기회를 주시는군.”
그녀의 말에 수안 하자르는 주먹을 쥐며 기쁜 듯 말했다.
그는 이번 마굴 토벌과 함께 트윈 아머에서 있었던 전투에 참가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었던 모양이었다.
베이칸과 키누는 그런 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망령의 성은 야만족들도 찾지 않는 금단의 구역이다. 잘 알고 있겠지?”
“물론.”
빛의 신, 율라(Yula)의 힘이 닿지 않는 유일한 땅.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곳을 저주받은 곳이라 부르며 거대한 장벽을 세워 아예 막아버렸다.
“조심해. 250년 전 대마도사인 카이에 에시르조차도 그곳을 그냥 두었으니까. 암시장의 모든 정보를 뒤져도 거기에 대한 것은 없어. 그만큼 알 수 없는 곳이라는 말이지.”
“그러니 더더욱 기대되는데.”
수안 하자르는 겁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그의 성격 때문에 어쩌면 천 년 동안 공략되지 못한 던전을 노리는 토벌대에 적합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럼 우리들은? 마스터께서 따로 계획을 주셨나?”
“물론. 허술한 분이 아니시니까. 마스터의 예상대로라면 보름 안에 크로멘 황자의 비보가 알려지게 될 거라는군. 나머지들이 움직일 때는 그때야.”
“으흠…….”
두샬라의 말에 베이칸과 키누 무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3황자의 예견된 죽음은 이미 카릴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고작 10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역사의 희생양이 된다는 것은 야만족인 그들에게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결국…….”
“누군가의 죽음이 신호라…….”
베이칸의 혼잣말에 두샬라는 땀을 닦아내며 차갑게 얘기했다.
“그 표정은 뭐야? 설마 지금 그 녀석을 불쌍하게 여기는 거야? 우리가 죽여? 아주 성인군자 납셨어. 지금 이 상황에 적에게 아량을 베풀 여유가 있어?”
“두샬라,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수안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흥.”
그녀는 못마땅한 듯 콧방귀를 뀌었다.
오히려 이 상황을 매몰차게 대하는 것이 그녀 나름의 배려일지도 몰랐다.
“아량이 아니다. 여유도 아니지. 야만족은 사냥을 할 때도 최선을 다하듯 우리는 적에게 자비를 두지 않는다. 하나 가족은 달라.”
“적어도 우린 가족을 죽이진 않는다. 죽음에도 종류가 있다. 비참한 죽음에 있어서는 최소한의 애도는 할 수 있는 법이야.”
베이칸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고통 없이 죽이는 것이 야만의 아량이다.”
그는 막사 밖으로 걸어나가며 말했다.
“독 따위가 아니라.”
키누 무카리는 그 말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뒤를 따랐고 에이단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칫, 남정네들이 모두 이렇게 물러서야. 원…….”
두샬라는 그들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저 같은 관리자였던 수안만이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어깨를 두들겼다.
“참, 수안.”
“음?”
“마스터께서 망령의 성에 가기 전에 네게 따로 시킨 일이 있어.”
“그게 뭐지?”
“나야 모르지.”
언제나 그렇듯 두샬라는 수안에게 쪽지 하나를 건넸다. 그는 황급히 그걸 받아 읽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야? 여기에 다녀오면 시간이 맞지 않잖아. 나보고 망령의 성에 가지 말라는 뜻하고 똑같은걸.”
두샬라는 조금 전과 달리 실망 가득 울상이 되어버린 수안을 바라보고는 들고 있던 쪽지로 시선을 옮겼다.
“코브?!”
수안은 불안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쪽지에 그려진 지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지금 나보고 코브를 다녀오라니. 이게 말이 돼? 그럼 망령의 성은? 여기서 공국까지 얼마나 먼데.”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빨라도 석 달은 넘게 걸릴걸.”
“네 조타술로도?”
“그래, 내 조타술로도 말이야.”
두샬라는 투정을 부리듯 말하는 수안을 향해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덩치는 산만한 녀석이 그런 걸로 울상을 짓지 마. 잘 생각해 봐. 분명 마스터는 너와 에이단을 지목했어.”
“그건 네가 돌아올 때까지 널 기다린다는 뜻일 수도 아니면 그 전까지 망령의 성이 공략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닐까?”
“하지만…….”
쪽지 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코브로 가 슈프림(Supreme)과 함께 돌아오라.>
“족히 석 달이 넘게 걸릴 텐데 그때까지 마스터가 날 기다리실까?”
“애초에 우리의 계획이 시작되는 건 크로멘이 죽고 난 뒤부터야. 올리번도 머리가 있다면 당장에 그를 죽이진 않을 거야. 시기를 노리겠지.”
앓는 소리를 하는 수안을 바라보며 두샬라는 어쩐지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녀는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어쩐지……. 그래서 마스터가 네게 전하라고 나에게 한 말이 있었구나. 이제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뭐?”
“마스터의 전언이야. 이제 그걸 쓸 때다.”
두샬라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으음……?”
하지만 수안이 여전히 그녀의 말이 제대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바라보자 두샬라는 낮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뭔지 모르겠어? 타투르에서 너만이 다룰 수 있는 게 하나 있잖아.”
그녀는 힘을 주며 말했다.
“마도범선(魔道帆船).”
“……!!!”
수안은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거라면 시간을 반으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두샬라의 말에 수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1/3로도 가능하지.”
당장에라도 달려갈 듯 수안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신나게 막사 밖을 향해 나가던 수안이 천막을 걷다가 멈칫하면서 물었다.
“슈프림이 누구야?”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두샬라는 수안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가보면 알겠지. 절대로 마스터는 의미 없이 일을 시키진 않을 테니까.”
* * *
“나도 간다.”
베스탈 후작령으로 떠난 카릴을 기다리던 밀리아나는 그가 돌아오자마자 밑도 끝도 없이 말했다.
“뭐? 어디를?”
카릴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어디든.”
너무 당당해서 오히려 물은 카릴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망령의 성에 갈건 데도? 남부의 야만족들은 금역이라고 발도 들여놓지 않은 곳인데.”
카릴의 말에 이번에는 살짝 당황한 듯 밀리아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내 곧 마음을 다잡은 듯 말했다.
“사, 상관없어. 잘됐네. 이참에 지긋지긋한 장벽도 무너뜨리고 영토를 넓힐 수 있겠어.”
목소리가 살짝 떨리면서도 호기롭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카릴은 피식 웃었다.
“네가 가면 란돌은?”
“그게 왜? 설마 그 녀석이 디곤 일족에게 잡아먹히기라도 할까 봐 걱정하는 거야?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내게서 디곤 검술의 기본기를 모두 익힌 녀석이야. 검술로 란돌을 이길 사람은 우리 부족에서도 나를 제외하고 단 셋뿐이다.”
카릴은 밀리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지 궁금하지 않나 봐?”
그런 그의 반응에 오히려 실망한 표정으로 그녀가 카릴을 바라봤다.
“응. 대충 알 것 같아서. 딱히 궁금하지도 않고.”
“뭐야? 재미없긴……. 설마 디곤에도 끄나풀을 심어둔 건 아니겠지?”
“내가 안 심어도 이미 있을걸. 5대 일가와 4부족이 호락호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뻔하군. 타샤이 놈들이구만.”
그녀는 살짝 입술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5대 일가 중에 한 부족인 타샤이는 남부를 통틀어서도 가장 은밀한 부족이었으니까.
그녀의 예상대로 나락 바위에 려기사단이 습격했을 때에도 그들이 가장 먼저 반응을 한 것은 맞다.
하지만 타샤이의 보고가 없어도 카릴은 이미 그 셋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여왕의 검’이라 불리며 남부 일대의 타락들을 쓸어버렸던 강자들.
검술만 놓고 본다면 소드 마스터에 버금갈 정도였으니 카릴도 인정하는 자들이었다.
특이한 것은 모두가 여자라는 점.
‘잘 알지. 밀리아나, 바로 너의 자매들이잖아. 아쉽게도 용마력을 이어받지 못했지만.’
하지만 오히려 드래곤의 육체를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 정도로 육체적인 능력은 수장인 그녀보다 뛰어났다.
전생에 검성(劍聖) 올랐던 카릴조차도 그 셋과 동시에 싸울 때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정말로 따라올 거야?”
“몇 번이나 말해. 날 놓고 갈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 남부 일대에 내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없으니까.”
밀리아나는 이미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 자신의 애검인 아크와 게일을 챙기면서 말했다.
“어차피 당신 말대로라면 당분간 디곤과 제국이 맞붙을 일은 없을 테고……. 황제라면 당장에라도 남부를 쓸어버리고 싶겠지만 트윈 아머에 있는 4만의 포로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겠지.”
정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그녀의 말에 카릴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로들을 오랫동안 잡아 둘 생각은 없어. 소모되는 식량도 만만치 않으니까. 일단 타투르로 옮길 생각이야.”
“흐음.”
“그들은 이제 남은 마지막 계획이 끝날 때까지 방패막이가 되는 걸로 제 몫을 다 하는 거지.”
“그럼? 끝나면 제국으로 돌려보낼 거야?”
“물론. 하지만 그동안 재워 주고 먹여 줬는데 공짜로 보낼 순 없지.”
카릴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또 알아? 의외로 타투르가 좋아서 남고 싶어 하는 자들도 있을지.”
“당신……. 또 뭔가 꿍꿍이가 있는 얼굴인데.”
이제는 그가 이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터진다는 걸 잘 알았다.
“뭐, 좋아. 사실 손이 조금 부족했는데……. 네가 온다면 나야 환영이지.”
카릴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크로멘이 죽으면 올리번은 그걸 네게 뒤집어씌울 거야. 이번에야말로 제국은 남부를 토벌할 좋은 빌미를 가지게 되는 거지.”
“알고 있어. 나라도 그럴 거야. 형제의 자리싸움이 죽음까지 치달았다고 말할 수 없으니. 아주 좋은 기회 아냐?”
“다녀와서도 꽤나 힘들 거야.”
“언젠가 진실은 밝혀지겠지. 그러기 위한 계획이었잖아. 네가 말한 몰이 사냥. 애초에 올리번과 타이란 슈테안을 동시에 잡으려는 거였어.”
밀리아나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너. 끝까지 악역을 잘할 수 있겠어?”
카릴의 물음에 그녀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악역?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면 그건 영웅이지.”
그녀는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카릴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