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56)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56화(156/497)
122. 장벽 너머
“휘유, 엄청나군.”
밀리아나는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장벽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인간의 키에 수십 배는 될 것 같은 높이에다 양옆으로는 끝을 알 수 없는 길이. 오랜 세월만큼 장벽은 낡았어야 할 터인데 신기하게도 마치 새것처럼 깨끗했다.
그 모습이 장관이라 압도적인 위용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았다.
“도대체 누가 이런 걸 만들었을까요?”
퉁…… 퉁…… 투우웅…….
에이단이 마치 문을 두들기는 것처럼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손가락으로 치자 묘한 울림이 들렸다.
“…….”
단단한 벽이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 잔잔한 수면 위에 파문이 생기는 것처럼 벽돌들이 흔들리자 그는 놀란 눈으로 자신의 손을 황급히 돌렸다.
마치 속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잘 봐. 벽이 흔들리는 게 아니야. 장벽 위에 껍질처럼 마법이 걸려 있는 거지.”
밀리아나는 그런 에이단을 보며 피식 웃고는 짐짓 아는 척, 그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손가락을 튕겨 벽을 두들겼다.
둥…… 둥…… 두웅……!!
에이단과는 다른 소리였다.
게다가 확실한 촉감이 있었다.
하지만 귀에 울리는 울림이 너무 현실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그녀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듯 놀란 표정으로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이 장벽은 인간이 만든 게 아니라고 하더군.”
카릴이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말했다.
“음……? 그럼?”
“드래곤이 만들었다.”
고든이 그의 말을 이어받았다. 그는 한발 물러섰던 밀리아나를 바라봤다.
“그래도 디곤의 여왕이긴 한가 보군. 우리 같은 자들이 장벽에 다가가면 텅 빈 소리가 나지만 드래곤과 같은 용마력에게는 반응을 한다지?”
“아…….”
그의 설명에 그제야 밀리아나는 이해가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두 사람의 대화 중에 처음으로 다투지 않고 정상적으로 넘어간 대화가 아닐까 싶었다.
“이제 알겠냐. 그래서 카릴이 널 부른 거겠지. 이 장벽은 용마력이 있는 자만이 문을 열 수 있으니까.”
고든의 말에 밀리아나가 살짝 고개를 돌리며 카릴을 바라봤다.
나름 그럴싸한 추측이었지만 애초에 자신보다 더 짙은 용마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카릴이었으니까.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고든이었기에 카릴은 옅은 미소를 짓고는 그녀에게 그냥 넘어가라는 투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문은?”
밀리아나가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고든은 그걸 왜 내게 묻느냐는 표정으로 오히려 그녀를 바라봤다.
“왼쪽.”
그 순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카릴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냥. 감이야. 왠지 그쪽 같아서. 밀리아나가 제대로 확인을 하겠지만. 안 그래?”
“아, 응. 으응.”
눈치 빠른 밀리아나는 카릴의 말에 장벽에 손을 가져가서는 마치 길을 찾는 시늉을 했다.
“왼…… 쪽이야.”
그러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카릴을 쓱 바라보고는 황급히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내 마력이 늘어난 거 맞긴 하지?”
발걸음을 떼면서 그녀는 카릴의 옆을 지나치며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녀의 물음에 카릴은 피식 웃고 말았다.
“물론. 너도 느끼고 있을 텐데. 혈맥 1개가 더 뚫렸고 내 마력을 너에게 전해줬다. 단지 네가 지금 네 마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야.”
“끄응…….”
부정하진 않는다.
확실히 강해진 마력을 느끼고 있으니까.
하지만 워낙에 카릴의 용마력이 비교 불가한 존재였으니 소드 마스터에 근접하게 된 그녀였음에도 불구하고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어느새 카릴이란 존재 역시 다른 이들에게는 규격 외의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밀리아나는 카릴의 말에 어쩐지 막사에서의 그 날 밤이 떠올라 괜스레 옷매무새를 추슬렀다.
‘생각해 보니 지금 이 파티……. 엄청난 멤버로군.’
장벽을 따라 걷던 카릴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4명 중 소드 마스터급이 3명이었다.
게다가 에이단 역시 전생의 성장 속도를 생각하면, 나중에 소드 마스터에 근접한 실력을 가진 암살자로 성장했다.
이 정도면 가장 많은 기사를 보유하고 있는 제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력이었다.
‘어느새 이 정도가 되었군.’
카릴은 조금씩 조금씩 전생에는 이루지 못했던 대륙의 강자들과의 인연이 새롭게 생겨남을 느꼈다.
“내 얼굴에 뭐 묻기라도 했어?”
카릴의 시선을 느낀 밀리아나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아냐.”
이어졌던 인연은 더욱 단단하게,
“못생긴 얼굴을 봐서 뭐해?”
연륜이 있는 고든은 어쩐지 밀리아나의 감정을 눈치챈 듯 놀렸다.
“뭐? 이 망할 늙은이가…….”
처음 시작되는 인연은 새롭게,
카릴은 다시 한번 전생과 달라진 현세를 느꼈다.
쿠우우웅…….
미약한 떨림이 느껴졌다.
거대한 장벽 아래에서 카릴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에 도착했다.”
* * *
“여기서 기다려.”
밀리아나가 마력을 집중시키며 장벽에 손을 가져가자 주위에 희뿌연 안개가 생겨나더니 빛의 문이 나타났다.
죽은 자들이 머무는 땅이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마법은 확실히 용이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크르르르…….]장벽으로 그들을 데려다준 샌드 서펀트는 카릴을 독기가 가득한 안쪽으로 가게 하는 것이 못내 걱정되는 듯 낮게 울었다.
그런 녀석의 커다란 뺨을 카릴이 쓱 만졌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로 이 안으로 들어오지 말고 구릉으로 돌아가라. 알겠지?”
[크륵…… 크르륵…….]샌드 서펀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사람들은 신기한 듯 그를 바라봤다.
“준비됐습니다.”
에이단이 장벽의 열린 문을 보며 카릴에게 말했다.
“그런데 수안을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우리가 들어가고 나면 수안 혼자서는 어차피 장벽을 넘지 못해. 그를 위해서라도 일단 장벽에 쳐져 있는 마법을 제거해야지.”
“고약한 냄새도 좀 환기시키고요.”
“그래.”
카릴은 에이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쩌그덕…… 쩌그덕……
장벽 반대편에서 그들은 맞이하는 듯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가 있었다.
뼈가 맞물리며 갈리는 듯 소리.
죽은 사자들의 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수백 마리의 스켈레톤이었다.
“많기도 하군.”
“이걸 뚫어야 한다, 라…….”
에이단과 밀리아나가 그 모습에 질린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흥.”
하지만 문을 연 그녀의 뒤에 서 있던 고든은 쏟아질 듯 밀려오는 언데드들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고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지겨운 놈들.”
그는 괜히 5대 소드 마스터라는 명성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두 번의 삶을 산 카릴을 제외하고 이곳에서 가장 많은 마굴을 공략한 사람이었으니까.
언데드뿐만 아니라 실체가 없는 사령(死靈) 계열의 몬스터들까지 잡아 본 경험이 없을 리가 없었다.
퍼어억……!!!
있는 힘껏 내지른 정권에 그의 앞에 있던 스켈레톤 한 마리의 머리통이 완전히 박살이 났다.
바닥에 쓰러진 녀석의 갈비뼈를 그대로 짓밟자 이쑤시개가 부러지듯 와장창 요란한 소리를 내며 뼈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네?”
고든은 마치 산책하러 가는 것처럼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주변엔 그를 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퍽!! 퍼벅! 퍽!!
하지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었고, 그의 공격에 허공에 가루를 뿌리는 것처럼 뼛조각들이 산산이 부서져 희뿌연 연기를 만들어 냈다.
“…….”
그런 그의 모습에 두 사람은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고스트 캐슬에 내 약이 있다고 했잖아.”
“그렇죠.”
“그거……. 제대로 된 약이긴 하냐? 천 년이나 처박혀 있던 유물이면 오히려 먹다가 탈이라도 나는 거 아냐?”
파스슥-!!
고든은 잡고 있던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부숴버리면서 찝찝한 표정으로 물었다.
“또다시 시체라도 먹으라는 헛소리를 하면 네 녀석부터 이렇게 만들 거다.”
그러자 카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에이……, 전에 드신 몬스터도 족히 수백 년은 살아온 녀석일걸요? 그런 놈도 달여 잡수신 분이 새삼스럽게. 약인데 뭐든 못 먹겠습니까.”
“그게 이런 놈들하고 같냐.”
[쿠오…… 옥…….]카릴의 말에 고든은 인상을 찡그리며 옆에 있던 좀비의 머리를 잡아 덜렁덜렁 흔들며 말했다.
퍼억-!!!
좀비의 머리가 터져 나가며 썩은 악취와 함께 오래돼서 점액질같이 끈적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괴물…….”
하지만 반대로 밀리아나와 에이단이 놀란 얼굴로 황급히 그를 바라봤다.
“미쳤네. 진짜. 몬스터를 먹었다고? 와, 우리 야만족도 몬스터의 가죽은 팔아도 먹진 않는데.”
못 당하겠다는 듯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놀리듯 말했다.
“시끄럽다. 대륙 전쟁도 겪어보지 못한 꼬마 녀석이. 네 어미가 디곤을 지킬 때는 몬스터가 다 뭐야? 식량이 부족해서 그것도 없을 판이었는데.”
“…….”
“내가 어쩌다 이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과 함께 와서는…….”
고든은 밀리아나는 보며 “쯧-” 하고 혀를 찼다.
“네 녀석은 네 어미가 고생고생해서 오아시스를 파놓은 걸 고맙게 여겨라.”
“아 넵. 그런 고마운 걸 협박에 쓰려고 노리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몬스터들 앞에서도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대화는 끊이질 않았다.
그들의 모습에 카릴은 오히려 재밌다는 듯 피식 웃었다.
“고든, 너무 불만만 가지지 마십시오. 또 언제 이런 경험을 하겠어요? 오히려 평생 추억에 남을 일이 될 거니까.”
“뭐? 추억은 무슨……. 잊고 싶은 기억이겠지.”
퍼억-!!!
고든은 또 한 마리의 스켈레톤의 머리를 부수면서 카릴을 바라봤다.
그의 등에 거대한 모우터가 매달려 있었지만 그걸 꺼낼 필요도 없다는 듯, 그는 마력도 쓰지 않은 채 오직 완력으로 몬스터를 말 그대로 부숴버리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여태껏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니까요.”
카릴은 조금씩 가까워져 오는 망령의 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한 거 아냐? 망령의 성을 공략하러 온 사람들은 우리가 처음인데.”
밀리아나는 별소리를 다 한다는 표정으로 카릴에게 말했다.
“그렇지. 처음이지.”
두 번의 삶 동안에도 말이다.
이건,
카릴이 만들어 낸 미래의 변화 같은 게 아니다.
그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존재하지만 누구도 공략하지 못한 도전이었으니까.
‘나는 단순히 고든의 약을 구하기 위해서 온 게 아니다.’
과거,
알른 자비우스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비전의 샘을 통해 담금질을 하게 되면 5대 무구의 정령력이 강화되어 영혼까지도 담을 수 있다.
처음에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나락 바위를 찾았던 카릴이었지만 오히려 알른은 비전력을 전수해 주고는 사라졌다.
‘비록 알른의 영혼을 담지는 못했지만, 얼음 발톱의 담금질은 완성되었다.’
폭염왕인 라미느의 영체를 담기에는 검이 가진 속성이 맞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정수인 아인 트리거가 이미 카릴의 몸 안에 박혀 있으므로 얼음 발톱의 자리는 비어 있다고 해도 맞을 것이다.
‘냉기(冷氣).’
그 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영체야 두말할 것도 없이 5대 정령왕 중 한 명인 해일의 여왕 에테랄일 것이다.
하지만 라미느를 제외하고 나머지 정령왕의 존재를 찾을 수 없는 지금 얼음 발톱의 차가움과 가장 잘 어울리는 영체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뿐이었다.
망령(亡靈)의 왕.
리치(Lich), 자르카 호치.
죽음.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한기를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얻어야 할 마지막 군세.’
그 군세가 준비되는 순간 드디어 제국과의 전면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휴, 근데 너무 먼데요? 이래서 어떻게 가죠? 진짜 비공정으로 갔으면 편했긴 했겠어요.”
끝없이 쏟아지는 언데드 공세에 조금씩 지쳐가는 듯 에이단이 중얼거렸다.
“고든, 이 위를 비공정으로 지나가 본 적이 있습니까?”
카릴이 그의 투덜거림에 담담하게 물었다.
“물론이지. 예전에 동방국을 가기 위해서 한번 지나간 적이 있다. 솔직히 그때도 꽤나 애를 먹었지.”
동방국이란 이름이 나오자 에이단도 흥미가 동했는지 그를 바라봤다.
“왜요? 언데드들이 하늘도 나나요?”
“어.”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피식 웃으면서 말했지만 고든은 에이단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기다려 봐. 어차피 곧 나타날 거니까.”
그 순간,
마치 고든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저 멀리서 괴상한 포효 소리가 들렸다.
카릴은 외침 속 마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본 드래곤(Bone Drag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