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60)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60화(160/497)
126. 자르카 호치
“뭐, 결국 성안으로 들어가야 답을 알겠지.”
침묵을 깨고 고든이 말을 꺼냈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여기 있습니다.”
에이단이 상자 안에서 얻은 휘장을 카릴에게 건넸다.
“으흠…….”
카릴 역시 알른 자비우스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우우우우웅……!!
그때였다.
에이단에게서 건네받은 휘장을 집는 순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카릴이 입고 있던 갑옷이 휘장과 반응을 하듯 옅은 녹색의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이게 무슨?”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당황한 적이 없던 카릴조차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렇다 할 변화 없이 휘장에 반응을 했던 빛은 다시금 힘을 잃고 사라졌다.
“…….”
카릴은 겉옷 안쪽에 감춰져 있는 자신의 갑옷을 쓰윽 하고 만졌다.
차르릉…….
사슬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거 평범한 갑옷이 아닌가 보군?”
고든이 그의 옷깃 사이로 보이는 은색의 체인 메일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엘븐 메일(Elven Male)입니다.”
“허…….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갑옷 말이야? 그거 엘프들의 작품이잖아. 5대 무구도 모자라서 엘프의 유물까지 가지고 있었나.”
고든이 카릴의 말에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카릴은 피식 웃었다.
“타투르의 암시장엔 없는 것이 없으니까요.”
사실 카릴이 입고 있는 엘븐 메일은 노움 세공사인 칼립손이 떠나기 전에 그에게 남겼던 물건이었다.
다시 말해 암시장이라고 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건 엘프의 작품이 아니라 노움의 작품이기도 하고.’
만약 아직 살아 있는 노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교도 용병단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에 카릴은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의 갑옷이 엘프의 산물인 노움이 만든 것이든 어쨌든 모두 엘프의 땅이라 불리는 에리얼 우드(Aerial Woods)에 자라는 세계수의 가지로 만들어진 것만은 틀림없다.
뛰어난 방어력을 가진 갑옷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베일에 싸인 기능이 있는지는 카릴도 알지 못한 일이었다.
“어째서 엘븐 메일이 이 휘장에 반응하는 걸까요?”
“글쎄…….”
“망령의 성안에 주인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여튼, 잘 가지고 있어라. 보기 힘든 물건이니까. 또 모르지. 엘프를 만나게 되면 그걸 보고 좋아할지.”
‘노움이 만든 거지만요.’
카릴은 속으로 대답을 하며 말했다.
“그러네요. 엘프는 저도 한번 보고 싶긴 하네요. 노움이나 드워프는 소수지만 살아 있다고는 하지만 엘프는 본 사람이 없잖아요.”
유사 인종이라 불리는 그들은 1천 년 전 마도 시대때에만 하더라도 왕성한 숫자를 자랑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제 노움과 드워프의 숫자는 멸족 위기에 놓여 있을 만큼 현저하게 줄었고 특히나 엘프는 대륙 서쪽 끝의 작은 숲인 에리얼 우드(Aerial Woods)에 있다고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하나 많은 모험가와 탐험가가 대륙의 서쪽 끝까지 탐사를 했었지만 엘프의 숲은 찾지 못했다.
그저,
에리얼 우드는 소문만 무성한 전설의 땅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성시될 수 있었는데 교단의 성지인 헤임(Heim)이 그곳을 본 떠 만든 곳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게 어째서 휘장과 반응한 걸까…….’
이상했다.
카릴은 이 둘의 연관성을 찾아보려 했지만 접점이 없어 결국 답이 나오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네 얼굴을 보니 정확히 알지는 못하는 것 같군. 하지만 뭔가 연관성이 있는 것 같으니……. 그 휘장은 네가 가지고 있거라.”
“그러죠.”
“그럼 이제 출발해 볼까?”
크게 고민을 하지 않고 고든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런데……. 앞으로 더 가려면 장벽을 부숴서 독기를 빼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다른 분들처럼 저길 뚫고 갈 자신이 없습니다.”
에이단이 뿌옇게 서려 있는 독기들이 떠다니는 길을 바라봤다. 그 끝에 있는 망령의 성까지 가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다.
“본 드래곤에게서 봉인 마법을 푸는 열쇠를 찾지 못했으니 이제 어쩌죠?”
“걱정 마.”
“독기를 빼는 거라면 간단하다.”
“네?”
좀 전에만 하더라도 장벽 안으로 들어오는 것조차 어려웠던 일이었는데 고든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쿠웅…….
그러고는 바닥에 세워 뒀던 모우터를 어깨에 짊어지고는 천천히 장벽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흡!!”
고든이 있는 힘껏 해머를 휘둘러 장벽을 내려쳤다.
콰아아앙—!!!
콰강-!!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해머가 닿은 장벽의 안쪽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봉인 마법이 걸려 있어 흠집 하나 낼 수 없었던 장벽이라는 알고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장벽을 보며 놀란 얼굴로 고든을 바라봤다.
“카릴, 너라면 느꼈을 텐데?”
“네. 상자가 열린 순간 장벽에 걸려 있던 마력이 사라졌습니다. 아마도 에이단이 휘장은 꺼냈던 것이 봉인을 푸는 방법이었나 봅니다.”
“맞아. 만약 그냥 상자를 두고 갔다면 봉인이 풀리지 않고 헤매거나 결국 성안으로 갔겠지. 자칫 고립될 뻔했는데 부하 한번 잘 뒀군.”
“그러니까 눈독 들이지 말아주시라니까요.”
“흥, 녀석…….”
마르지 않는 에이단의 칭찬에 고든은 살짝 입술을 씰룩이며 말했다.
휘이이이익……!!
휘익……!!
마치 장벽 안쪽은 보이지 않는 천장이 있었던 것처럼 독구름이 가둬져 있었는데 뚫린 구멍 사이로 지면 독기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꼭 봉화(烽火)를 올린 것 같이 보였다. 이 정도 독연(毒煙)이라면 포나인 건너 제국까지도 보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높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고든은 몇 개의 구멍을 더 뚫고서 말했다.
“뭐 해? 너희들도 거들어라. 이 넓은 지역의 독기를 모두 뺄 순 없겠지만 어느 정도 옅어지기만 하면 성안으로 갈 수 있을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
그의 말에 밀리아나와 에이단이 움직였다.
“어떠냐. 카릴, 네가 기다리는 애송이도 이 정도 표시를 해두었으니 알아서 들어오겠지?”
“네, 봉인 마법만 해제되면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수안은 이쪽으로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요.”
“음……?”
카릴은 열심히 구멍을 뚫고 있는 장벽 반대편을 가리켰다.
“바다를 건너올 거라서.”
* * *
처음 우려와 달리 옅어진 독기를 뚫고 가는 동안 이렇다 할 마물이 튀어나오진 않았다.
장벽이 부서진 것에 대해 망령의 성의 자르카 호치가 무슨 수작을 부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그는 일행을 기다리는 듯 길을 내주었다.
끼이이이익…….
성 앞에 도착하자 일행을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성문이 열렸다.
“허…….”
그들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저마다 낮은 탄성을 질렀다.
“반갑습니다.”
눈이 아플 정도의 빛이 쏟아졌다.
반듯하게 차려입은 집사가 기다란 냅킨을 한쪽 손목에 감싸고 반대쪽 손을 뒷짐 지고는 카릴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디링…… 디리링…….
디리링…….
성안에서 옅은 선율이 들렸다.
마치 고급스러운 연회장처럼 벽면에는 수십, 수백 개의 촛대가 아름답게 타고 있었고 천장에 달린 커다란 샹들리에는 조금 전까지 죽음의 땅을 건너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이게 무슨…….”
에이단은 자신도 모르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들어오시지요.”
“…….”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따뜻한 공기가 카릴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향긋한 향기와 입맛을 돋우게 하는 맛있는 음식들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축제가 벌어진 것처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고 춤을 추고 있었다.
“하하하하!!”
“호호……!”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게 들렸다.
수많은 사람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깔깔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그때였다.
사람들의 무리에서 한 남자가 성큼성큼 카릴을 향해 걸어 왔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겨울이 와서 날씨가 꽤 춥죠? 한 잔 드시겠습니까.”
그는 호쾌한 웃음과 함께 손가락을 튕기자 집사가 쟁반에 김이 나는 술이 담긴 컵을 가져왔다.
“몸이 따뜻해질 겁니다.”
남자가 쟁반 위에 있는 커다란 술잔을 건네자 잔 안에 들어 있는 향긋한 향기는 지금껏 맡아 보지 못한 달콤한 향이 났다.
“흠…….”
고든이 물끄러미 술잔을 바라보더니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콰아악……!
그 순간,
그가 커다란 손바닥으로 남자의 얼굴을 감쌌다.
그러고는 천천히 들어 올리자 남자는 들고 있던 술잔을 떨어뜨리고는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허공에서 두 다리를 바둥거리며 고통스러운 듯 컥! 컥! 거리는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아악!!”
“꺄아아악!!”
그 광경에 연회장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콰악……!! 퍽!!!
남자의 머리가 그대로 고든의 악력을 버티지 못하고 풍선이 터지듯 터졌다.
뇌수가 사방으로 튀고 바둥거리던 남자의 다리가 힘을 잃고 그래도 축 늘어졌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고든 파비안은 남자의 시체를 발로 차고는 손을 저어 묻은 피를 털어내면서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뭔, 개수작이야. 이 새끼들이.”
화아아아악……!!!
사르르륵……!
그 순간,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따뜻한 온기가 가득했던 연회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매서운 한기가 이들의 주위에 쏟아졌다.
“흐익?!”
에이단은 들고 있던 술잔이 낡은 그릇으로 변하고 향긋했던 술은 지네와 해충들이 둥둥 떠 있는 썩은 물로 변하자 자지러지며 그릇을 던져 버렸다.
연회장 곳곳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
천장에 샹들리에는 마치 단두대의 도끼처럼 바람에 흔들렸고 을씨년스러운 연회장엔 불 하나 없었다.
콰득-
밀리아나는 자신의 발치에 걸린 시체의 옷이 낯익다는 것을 깨달았다.
“…….”
조금 전 그들을 안내했던 집사의 옷이었다.
그녀는 그걸 보며 기분 나쁜 듯 발로 해골을 차버렸다.
“퉷! 환영 마법을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엄청난 규모는 처음이군. 이 안에 사는 녀석은 대마법사라도 된단 말인가?”
고든 파비안은 심하게 나는 악취에 침을 뱉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아름다운 광경을 즐기지 못하는 녀석들이로군.]연회장의 끝.
단상 위 무대에 있는 커다란 의자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네놈이군. 이런 병신 같은 짓거리를 하는 정신병자가. 시체를 살려서 춤추게 만드는 게 아름다움이냐?”
고든은 그를 향해 말했다.
“네 머리통을 깨부수는 게 더 미덕이겠지.”
[클클…….]그의 말에 남자의 어깨가 가볍게 떨렸다. 은빛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가려진 얼굴이 드러났다.
시체의 산과 어울리지 않을 놀라울 정도의 미모를 가진 남자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그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따로 있었다.
“봤냐? 카릴.”
“네.”
“네 갑옷이 어째서 그 휘장과 반응을 했는지 이유를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군.”
“저도요.”
고든은 콧방귀를 뀌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망령의 성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라 엘프였다니.”
“그러게요. 처음으로 엘프를 보게 된 건데 하필 뼈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시체라니. 좀 아쉽네요.”
카릴의 말에 옥좌에 앉아 있던 자르카 호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은빛 머리카락 사이로 기다랗게 자라있는 귀가 보였다.
“신성지(神聖地)는 개뿔. 이 모양이니 어떤 모험가도 찾을 수 없었지.”
고든은 자신의 해머인 모우터를 어깨에 걸치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가 바로 엘프의 땅. 에리얼 우드(Aerial Woods)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