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67)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67화(167/497)
130. 엘프의 보고 (2)
[놀랍군. 아직도 이게 남아 있다니. 이건 마도 시대보다 더 오래전에 생긴 것이군.]침묵을 깨고 입을 연 것은 폭염왕 라미느였다.
그는 보고 안에 있는 오래된 분수대를 바라보며 감회가 새로운 듯 말했다.
분수대의 문양은 신기하게도 시간이 멈춘 듯 잘 보존되어 있는 다른 무구들과 달리 유일하게 세월이 흐른 것처럼 낡아 있었다.
‘아니, 조금 다른가……. 낡은 게 아니라 힘을 다하고 남은 껍데기 같다고 해야 하나.’
카릴은 분수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화르륵……!!
그의 손등에 박힌 아인 트리거가 살짝 빛을 내며 작은 화염구가 주위에 일렁였다.
지금까지 굳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던 그가 이렇게 적극적인 것에 카릴도 조금은 신기한 듯 화염구를 바라봤다.
다행히 사람들은 라미느의 화염을 단순히 카릴이 만든 불꽃이라 생각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영혼샘이 뭔데?’
[일종의 차원문이다.]‘차원문……?’
카릴은 그의 말에 파렐(Pharel)을 떠올렸다.
그 역시 타락이라는 이계의 마물을 쏟아 내던 일종의 차원문이였으니까.
[정령계로 갈 수 있는 문이지. 일전에 내가 정령계가 거의 소실되었다고 했었지? 그건 더 이상 인간계와 전령계가 연결되는 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정령술은?’
[지금으로써는 유일하게 정령계의 문을 연다면 그 방법뿐이지. 하지만 문이 사라지면서, 정령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인간계에서 정령술사들이 힘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겠나? 정령 계약을 통한 문은 일시적이고 그 힘도 미약하지.]카릴은 라미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대륙에서 정령술사라는 존재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저 안에 들어 있는 정수에 짙은 정령의 기운이 느껴진다. 나와 같이 누군가 봉인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 정도의 농도라면 한 번 정령계를 열 정도는 될 것 같은데.]‘그럼 이걸 열면 정령계로 갈 수 있다는 말이잖아? 라미느, 네가 정령계에도 정령왕들이 남아 있다고 하지 않았어?’
카릴의 말에 라미느는 부정의 의미로 그의 주위를 몇 바퀴 돌며 말했다.
[불가능해. 정수가 있다고 모두가 차원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혼샘을 발동시킬 정도의 정령력이 있어야 가능하지.]‘흐음……. 네 힘이 있는데도?’
[넌 내 힘이 있어도 비전력에 2대 광야의 힘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잖아? 나 역시 자르카 호치와 똑같다. 너는 내 힘을 온전히 쓰지는 못해. 다만 내가 그보다 좀 더 네게 호의적이라 도움을 주는 것일 뿐.]‘신랄하네.’
[너 정도면 현실을 알아야지.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으니까.]카릴은 라미느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정령계로 넘어가 남아 있는 정령왕들과 계약을 함으로써 정령력을 증가시키려고 했던 그의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나름 네게 기대하고 있다고. 꽤나 포악스러운 방법으로 나와 계약을 하긴 했지만 말이야.]라미느는 카릴이 허리에 차고 있는 얼음 발톱 주위를 몇 바퀴 돌다가 사라졌다.
[게다가 저건 오래돼서 사용할 수 없다. 다른 영혼샘을 찾아야 할 거야. 그걸 알기 때문에 엘프들이 정수를 남겨 놓은 것이겠지.]내심 기대를 했던 카릴이기에 라미느의 말이 더욱 아쉬웠다.
[만약 영혼샘을 재건한다면……. 또 모르지. 정령계 전체가 너에게 감사를 표할지.]그의 목소리가 카릴의 귓가에 맴돌았다.
탈칵-
카릴은 분수대 위에 놓여 있는 영혼샘의 정수가 담긴 유리병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
그러고는 무언가 생각을 하듯 안에 든 액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품 안에 조심스럽게 그것을 넣었다.
“카릴, 설마 지금 이걸 내게 먹으라는 거냐.”
감상을 깨는 고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분수대 옆에 자라난 거목의 진액을 가리켰다.
부글…… 부글…….
끈적끈적한 진액이 고여 있는 웅덩이엔 기포가 터지며 고약한 악취를 뿜어냈다.
“크루아흐의 진액입니다. 그거 돈 주고도 못 사는 귀한 거 에요. 에이단, 너도 담아 둬. 나중에 우리도 쓸 곳이 있으니까.”
“네? 저도요?”
카릴의 명령에 에이단도 꺼림칙한 표정으로 물었다.
“크루아흐? 그거 그린 드래곤의 이름 아냐? 서북쪽 레어에 자리 잡고 있는.”
밀리아나가 카릴의 말을 듣고 되물었다.
“맞아. 그린 드래곤이 가장 좋아한다는 잎사귀가 바로 저 거목의 잎이거든. 과거에 엘프들이 관리를 했다고 하더군.”
“엑? 그럼……. 크루아흐는 1천 년이나 산 드래곤이란 말인가?”
“아닐걸. 지금 레어를 가진 드래곤 중에서 1천 년 이상 산 드래곤은 백금룡이 유일해. 그만이 마도 시대를 겪은 유일한 존재지.”
“그래?”
“지금의 크루아흐는 기껏해야 200년도 채 살지 않은 애송이거든. 잘은 모르지만……. 크루아흐는 아마 성(姓) 같은 게 아닐까?”
밀리아나는 카릴의 말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걸 다 알고 있는 거야?”
“별거 아냐.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녀석과 친했을 뿐이니까.”
“드래곤의 이야기가 쓸데없다고? 누군지 나도 한번 만나보고 싶네.”
그녀의 말에 카릴은 피식 웃었다.
‘만나면 놀랄걸. 드래곤인데.’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함께했던 나르 디 마우그가 지금은 의심의 의심을 하게 되는 상대라니.
카릴은 씁쓸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 참.”
그러고는 뭔가 생각이 난 듯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밀리아나, 이 진액의 다른 이름이 뭔지 알아?”
“야, 하지 마라.”
그 순간 고든이 말하지 않아도 뭔가 불안한 기운을 감지한 듯 먼저 선수를 쳤다.
“크루아흐의 배설물.”
“…….”
카릴의 말에 그의 얼굴이 구겨졌다.
“고든, 싫으면 전에 얘기했던 방법을 쓰세요. 한 10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산화혈액증은 나을 겁니다. 아, 물론 육류도 금해야 하고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마력 순환도 해야 할 겁니다.”
“……닥쳐.”
술을 끊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고든 파비안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결국 영혼샘 옆에 있는 고목의 진액을 수통에 담았다.
“그런데 뭔가 아쉽지 않아? 저 분수대가 대단한 유적인 건 알겠지만……. 엘프의 보고치고는 좀 심심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단 말이지.”
“보고 안에 있는 무구들은 모두 평범한 게 아닙니다. 눈독 들이지 마세요. 제가 모두 가져갈 거니까.”
고든은 카릴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나 참, 저것들을 다 가져가서 전쟁이라도 치를 생각이냐.”
“네.”
“…….”
당당하게 말하는 카릴의 모습에 고든은 입술을 씰룩이고는 말했다.
“저것들이 모두 A급 무기들이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자르카 호치가 자존심 강한 블레이더의 일원이었다면 저런 무기들을 자신의 보고에 보관하는 것으로 만족했겠냐는 말이다.”
“흐음…….”
“뭐……. 엘프 자체가 뭔가를 만드는 데 대단한 자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명색이 블레이더라면 말이지.”
카릴은 고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으음.”
“그 휘장 말이다. 5대 무구를 만든 블레이더의 증표잖아. 그래서 조금은 기대했거든.”
틀린 말은 아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
영혼샘은 엘프의 유산이기는 하지만 블레이더가 만든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블레이더의 유산이 아직 남아 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스터, 어쩌면 고든 경의 말씀이 틀린 게 아닐지 모릅니다.”
진액을 담던 에이단이 코를 막던 손을 떼서는 영혼샘 안쪽을 가리켰다.
“……음?”
모두의 시선이 그가 가리킨 곳에 쏠렸다.
“휘장을 잠깐 줘보실래요?”
수통을 내려놓고 에이단이 영혼샘의 분수대로 다가갔다. 분수대 안은 말라 있었지만 외부의 아래쪽은 고목의 진액이 고여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전 에이단과 고든이 진액을 옮기는 바람에 가려졌던 분수대의 아래쪽 기둥이 나타났다.
“운이 좋았어요.”
그의 말에 고든이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아무래도 본 드래곤의 상자에 있던 봉인쇄는 동방국이 흑마술과 관련 있어서가 아니라 블레이더하고 관련이 있던 게 아닐까 싶은데요?”
에이단이 가리킨 분수대 아래쪽엔 놀랍게도 휘장이 들어 있었던 상자의 봉인쇄와 비슷한 것이 있었다.
“저 덩치 덕분에 비밀을 찾은 건가. 늙은 목숨도 때로는 도움이 되는군.”
밀리아나의 말에 카릴은 그녀의 옆구리를 툭 치면서 말했다.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라는 말 몰라?”
“알지. 적어도 너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지만.”
“내가 왜?”
“몰라서 그래? 내가 당신과 적이 되지 않으려는 이유도 그 때문인데.”
카릴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탈칵-
에이단이 카릴에게서 둥근 휘장을 받아서 영혼샘 안쪽에 작은 틈에 그것을 끼워 넣었다.
눈썰미가 좋지 않으면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아주 작은 틈이었다.
쿠그그그그…….
놀랍게도 작은 원판이 벽돌 틈 사이를 채우자 분수대가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그 안에 작은 상자가 나타났다.
휘장에 그려진 탑 문양과 똑같은 문양이 상자에 찍혀 있었다.
“아무래도 블레이더란 작자들은 모두 어딘가에 숨겨 놓는 걸 좋아하나 보군.”
에이단이 상자를 꺼내는 걸 보며 카릴은 얼음 발톱을 얻을 때를 떠올렸다.
“이번에는 쉽게 찾았네?”
밀리아나가 상자를 바라봤다.
“휘장 자체가 열쇠였나 봅니다. 아니면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게 봉인을 할 필요 없이 어마어마한 녀석이던가요.”
“어마어마한 녀석이면 오히려 봉인을 해야 하는 것 아냐?”
에이단의 말에 밀리아나가 되물었다.
“멋대로 열었다가 아주 엿 되는 수가 있을지도요. 주인 허락 없이 여기에 들어왔다는 것은 두 가질 테니까요. 몰래 들어 왔던가, 주인을 죽이고 들어 왔던가 말이죠.”
“……네가 열어봐.”
그 말에 밀라아나는 카릴에게 상자를 건넸다.
“어?”
상자 안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고든 역시 궁금하긴 했는지 밀리아나의 어깨너머로 안을 바라봤다.
“의외로 평범한 게 들어 있네요.”
“그러네.”
모두의 기대와 달리 상자 안에는 오래된 건틀릿 한 쌍이 들어 있었다.
“흐음.”
옅은 옥(玉)빛을 내고 있었는데 광물 중에서 이런 오묘한 색을 내는 것은 카릴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파아아앗……!!
그때였다.
상자 안의 건틀릿을 꺼내려는 순간, 카릴의 시야가 새하얗게 변하면서 빛이 그를 덮쳤다.
“……어?”
시야가 돌아오자 카릴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자신 혼자 남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또 무슨 조화야? 흐음……. 일단 이게 함정인지 아닌지부터 확인을 해야 하나.”
카릴은 에이단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다행이라면 모두 사라졌지만 상자 안에 꺼낸 건틀릿만큼은 그의 손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는 점이었다.
“쉽게 주진 않겠다……. 뭐 이런 건가.”
어찌 된 영문인지 카릴은 혼자 남은 아공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놀라거나 당황해 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
새하얀 공간 속에 이질적으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거대한 산 하나가 있었다.
카릴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것을 올려다봤다.
쿠으으으으…….
산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봉우리가 위로 올랐다 내려오기를 반복하며 움직였다.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그는 건틀릿과 눈앞의 산을 번갈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크르르…….]카릴의 목소리에 반응을 하듯,
움직이던 산의 떨림이 멈추고 낮은 으르렁거림이 들렸다. 동굴처럼 보이는 산 밑 커다란 구멍에서 황금빛 안광이 번뜩였다.
서늘한 그 기운에 카릴의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자세히 살피자 높다란 산처럼 보인 그것은 거대한 등껍질이었고 동굴처럼 보였던 구멍엔 안엔 머리가 숨어 있었다.
“하…….”
카릴은 눈앞에 잠들어 있던 엄청난 크기의 푸른 거북을 바라보며 낮은 탄성을 질렀다.
3대 위상(位相)이라 불렸던 이제는 멸종되어 사라졌다고 알려진 마도 시대의 신수(神獸).
그중의 하나.
꽈악-
카릴은 자신의 손에 들려진 건틀릿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청귀(靑龜) 칼두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