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68)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68화(168/497)
131. 칼두안
[크우우우오오오……!!!]카릴은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신수의 울음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비틀거리며 건틀릿을 떨어뜨렸다.
“크윽?!”
황급히 귀를 막았지만 손을 뚫고 들어오는 괴성은 마치 뇌를 울리는 것처럼 그의 머리를 흔들었다.
“대가 끊겼다고 알려져 있던 신수가 이런 곳에 봉인되어 있을 줄이야. 어떤 면에서 엘프들이 더 잔혹한 종족일지도 모르겠는데.”
아찔한 통증에 고개를 가로젓던 카릴이 눈앞에 거대한 신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도 시대 이후 멸종이 된 게 아니라……. 설마 무구의 재료가 된 것인가?”
카릴은 떨어뜨렸던 건틀릿을 다시 주웠다.
블레이더의 5대 무구 중 전생에 소재가 밝혀지지 않아 찾을 수 없었던 2개.
어쩌면 지금 이 건틀릿이 그중에 하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거의 확실하지. 신수를 봉인할 정도의 무구가 평범한 것일 리가 없으니까.’
과거,
3대 위상(位相)이라 불렸던 세 마리의 신수는 정령왕 혹은 드래곤과도 필적한 힘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었다.
신록(神鹿), 알카르.
혼백랑(魂白狼), 로어브로크.
청귀(靑龜), 칼두안.
하지만 이들은 정령처럼 영체가 아닌 시간이 지나면 쇠약해지는 육체를 가졌으며 드래곤에 비해 오랜 세월을 사는 것이 아니기에 자손을 낳아 대를 이어 그 힘을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신수의 피와 가죽 그리고 살은 귀한 재료가 되어 마도 시대 때는 용 사냥꾼과 함께 신수 사냥꾼이라는 직업이 있을 정도였다.
[다 옛날이야기다. 그리고 신수 사냥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3대 위상은 오히려 보호를 받는 존재였으니까.]화르르륵-!!
라미느의 불꽃이 카릴의 몸에서 튀어나왔다. 아공간이지만 오히려 자연계의 힘이 충만했기에 아인 트리거는 평상시보다 더 큰 구체의 형태를 유지했다.
[카릴, 너도 사람이긴 한가 보군. 실수를 하는 걸 봐서는 말이야.]화염구가 움직이더니 작은 정령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라미느는 오랜만에 그리운 공기를 마시는 듯 크게 기지개를 켰다.
[확실히 정령의 힘을 가진 신수가 있는 곳이야. 거암 군주의 냄새가 짙어서 조금 그렇지만 그래도 인간계의 탁한 공기보다 훨씬 낫군. 마도 시대에 비해 마력도 약해져 더 답답해졌으니 말이야.]“거암 군주? 대지의 정령왕 막툰을 말하는 거야?”
카릴의 물음에 작은 라미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촛불처럼 일렁이는 그의 머리가 흔들렸다.
[맞다. 칼두안은 막툰의 힘을 받아 태어난 신수니까. 대지의 힘을 강하게 가지고 있지.]“넌? 신수를 남기지 않았나?”
[모든 정령왕이 자신의 힘을 닮은 생명체를 남기는 것에 동의를 한 것은 아니니까. 3대 위상이라 불리는 신수는 인간들의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하기 위한 정령왕의 배려일 뿐.]라미느는 팔짱을 낀 채로 도도하게 말했다.
[불꽃은 그 자체로도 이미 인류에게 가장 큰 삶의 진화를 주었으니까 신수까지 남길 필요 없지.]“틀린 말은 아니군.”
카릴은 눈앞에 거대한 푸른 거북을 바라봤다. 녀석은 처음 카릴을 경계하듯 날카로운 포효를 질렀지만 그 뒤로 다시 등껍질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고는 눈을 감았다.
“그런데 실수라니?”
[자세히 봐. 뭔가 이상한 걸 느끼지 못했나?]작은 라미느가 날아올라 칼두안의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카릴에게 말했다.
[실체가 아니다. 네 말처럼 엘프들이 잔인하게 봉인을 하거나 한 게 아냐. 자르카 호치가 한 것은 더더욱 아니고.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혀 살던 로맨티스트가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지.]“뼈밖에 남지 않았지만 말이야.”
카릴은 천천히 잠들어 있는 칼두안에게로 다가갔다. 그가 손을 뻗어 청귀를 잡으려 하자 놀랍게도 그의 손이 그대로 청귀를 통과했다.
“정말이군.”
라미느의 말대로 실체가 아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기억? 누구의?”
카릴의 물음에 라미느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그건 지금부터 알 수 있겠지.]“……!!!”
그 순간,
라미느의 불꽃이 카릴을 덮쳤다.
아니, 덮친 듯 보였다.
카릴의 의식이 다시 한번 흔들렸고 붉은빛과 함께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깊은 해저 속에 있는 것처럼 몸이 무겁게 느껴졌고 이런 이질감은 아인헤리에서 용의 심장을 먹고 염룡의 기억을 들여다봤을 때와 비슷했다.
“…….”
하지만 그때와 달리 미증유의 세계 속을 부유해도 카릴은 의식을 잃지 않았다.
리세리아의 육체에 동화되었던 것과 달리 몸 안에서 의식이랄까 영혼이 꺼졌다가 다시 작동하는 듯한 기분 나쁜 경험은 없었다.
화르르륵…….
그를 덮쳤던 라미느의 불꽃이 오히려 그를 휘몰아쳤던 칼두안의 기억 속에서 그를 보호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랜만인데.”
카릴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잠식해 들어갔지만 그는 그때와 달리 자신의 의식이 또렷하게 존재하고 있었고 칼두안의 육체에 동화된 것도 아님을 알았다.
“라미느.”
카릴은 자신의 몸을 옅은 보호막으로 감싸고 있는 불의 힘을 느끼며 폭염왕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힘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왠지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일인 듯 보였다.
“기다림의 보람이 있구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가 나를 찾아오다니 말이야.”
그때였다.
노랫소리같이 옅고 고운 목소리가 들렸다.
“……?!”
카릴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둡고 끈적끈적한 기운으로 전신을 짓눌렀던 밤의 세계가 사라지고 싱그러운 풀 내음이 느껴졌다.
주위의 풍경이 바뀐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했는데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카릴은 들판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
새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는 파도가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지만 짠 내는 느껴지지 않았다.
불어오는 바람은 아공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뜻했다.
“누…… 구?”
카릴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습지만 그는 자신이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황제를 눈앞에 두었을 때도 대륙 최강이라는 소드 마스터와 일전을 벌여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
그럴만했다.
하늘거리는 드레스가 바람에 흔들렸다.
겹겹이 싸여 있는 불투명한 천들 사이로 가려진 얼굴이 보였다.
꿀꺽-
카릴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인간이 아닌 신족이라 불리는 네피림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새하얀 얼굴에 여인이 있었으니까.
단순히 아름답다, 라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이 여자……. 인간…… 이겠지?’
카릴은 그녀를 바라보면서도 확신이 들지 않는 듯 생각했다.
새하얀 머리카락은 북부의 눈보라보다도 더 하얗고 맑아 보였고 탐스럽게 붉게 빛나는 입술은 움직일 때마다 물을 머금은 것 같았다.
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수면에 가라앉듯 카릴을 바라봤다.
“반갑구나. 나는 쿼니테라 한다.”
“……!!!!”
그 순간,
카릴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를 지를 뻔했다.
‘세기의 정령술사이자 마력이 아닌 오로지 정령의 친화력만으로 새로운 계보를 만든 개척자. 모든 정령왕과 계약을 한 유일무이한 존재.’
그녀를 기리는 수식어는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이미 정령술사의 수가 손에 꼽힐 정도로 줄어든 지금, 그녀의 일대기는 마치 카이에 에시르가 이뤘던 업적과도 같이 흘러간 전설에 불과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글쎄요. 당신이 살아온 날이 언제인지 저는 잘 모르니까요. 엘프라는 소문도 있었고 혹은 그보다 더 고귀한 하이 엘프라는 얘기도 있었으니까.”
카릴은 그녀의 귀를 가리켰다.
“그런데 둘 다 아닌 것 같긴 하네요.”
“날 기억하는 자들이 있을까?”
“있겠죠. 저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7인의 원로회만큼은 아닙니다. 마법은 숭배받지만 정령술은 아니니까요.”
“슬픈 일이로군…….”
“차라리 아예 잊혀진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같은 마법이라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선 전설은커녕 그저 흘러간 과거로 변모하니까요.”
카릴은 방치된 아인헤리를 떠올렸다.
제국의 개국공신이자 용 사냥꾼이라는 이명을 가졌던 그가 남긴 보고였지만 그의 핏줄이 더 이상 마법사로서 가치가 사라지자 지금은 변방에 낡은 창고로 치부되고 있으니 말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황가의 모습만 보아도 충분히 에시르 가문의 몰락은 짐작 가능한 일이었다.
“뭐,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는군요. 신수의 기억이 남아 있는 것도 모자라 위대한 정령술사를 만나다니. 블레이더의 능력에 놀라야 할지……. 아니면 당신도 블레이더의 일원인 건지.”
“그런 것 치고는 그다지 표정의 변화가 없어 보이는데.”
“뭐, 이쪽도 나름 산전수전을 겪은 몸이라 서요.”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용마력이라…….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무색의 힘을 인간이 가졌다니. 내가 관심을 가졌던 카이에 에시르보다 더 재밌는 아이구나.”
쿼니테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카릴에게 다가왔다.
“만약 내가 실체 할 수 있다면 너와 해보고 싶은 것이 참으로 많았을 것을. 아쉽구나.”
“절 실험 대상으로 쓰고 싶다는 건 아니겠죠? 그건 사양하겠습니다.”
카릴의 말에 쿼니테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나는 블레이더의 일원도 아니며 엘프에 의해 봉인이 된 기억도 아니다. 단지 나의 의지로 칼두안의 건틀릿을 얻게 될 자에게 전언을 하기 위해 남아 있었을 뿐이다.”
“전언이라……. 블레이더의 5대 무구를 사용하는 것이 그 정도로 위험한 것인지는 몰랐군요.”
그녀의 말에 카릴은 자신의 얼음 발톱을 보이며 말했다.
“얼음 발톱의 주인이 칼두안의 건틀릿을 얻게 될 줄은 솔직히 몰랐지. 하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가 카릴을 바라봤다.
마치 보름달이 떠 있는 것 같은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카릴을 꿰뚫어 보는 기분이었다.
“아쉽게도 너는 이 건틀릿을 쓸 수 없겠구나.”
“그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그러기 위해서 내가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칼두안은 과거 나를 따르던 신수였으니 말이야.”
카릴은 그녀의 말에 살짝 입술을 씰룩였다.
‘정령왕과 계약을 한 것도 모자라 3대 위상 중 하나인 신수까지 길들였다는 말인가. 도무지 그녀의 능력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군.’
“너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너를 뛰어나게 보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화르르륵……!!
쿼니테의 손이 카릴의 가슴 언저리에 닿자 아인 트리거가 빛났다.
“네 몸속에 흐르는 피는 대지의 기운보다 불꽃이 더 어울린다. 폭염왕이 너를 선택한 이유도 어쩌면 그 때문일지 모르지.”
쿼니테는 카릴의 손에 들려 있던 건틀릿을 받아 들고서 말했다.
“네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
그녀의 말에 카릴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 한편이 시큰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말대로다.
맥거번가를 증명하는 마법의 힘은 화염(火焰).
용의 심장을 먹은 그야 당연히 다른 속성의 마력도 쓸 수 있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가 가장 많이 썼던 속성 역시 불꽃이었다.
“끼워 맞추지 마십시오. 우린 피도 섞이지 않은 형제니까. 가족애라든지 형제애라든지 그런 신파로 마음을 흔드는 짓은 딱 질색입니다.”
하지만 카릴은 그녀의 말에 냉소를 지었다.
“혹시……. 당신이 250년 전 카이에 에시르와 함께했던 2인 중 한 명이십니까?”
쿼니테는 카릴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네가 묻는 자들이 누군지 예상은 가나, 내가 그들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카이에가 달가워하진 않을 것 같군.”
카릴은 그녀의 말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데 그걸 왜 묻지?”
“카이에 에시르가 남긴 유언에 쓰여 있었거든요. 자신과 닮은 빌어먹을 것들이 두 명 더 있다고 말이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기에 혹시나 그중에 한 명인가 했죠.”
“…….”
신랄한 그의 말에 수백 년을 살아온 쿼니테마저 할 말을 잃은 듯 그를 바라봤다.
“내가 블레이더의 상자를 연 것은 허락을 받기 위함이 아니다.”
카릴은 그녀의 손에 있는 건틀릿을 빼앗아 그녀의 앞에 보이며 말했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쓸 수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