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70)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70화(170/497)
133. 삶과 죽음
“카…….”
새하얀 빛무리가 사라지고 흐릿한 그의 시야가 천천히 돌아왔다.
“카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밀리아나의 외침에 정신이 번뜩 든 카릴은 고개를 돌렸다.
“이런 멍청한……!! 도대체 제정신인 거야? 너 같은 사람이 함정이 발동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안일하게 대처하다니!”
그녀는 어쩐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칼을 들이밀면서 혹시 사령술에 잡아 먹힌 건 아닌지부터 확인할 줄 알았는데.”
“쓸데없는…….”
카릴의 농담에 밀리아나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괜찮으세요? 상자 속 건틀릿을 잡자마자 기절해 버리셔서 다들 엄청 놀랐어요.”
“아아……. 그래? 내가 얼마나 기절을 했던 거지?”
에이단의 말을 들으며 카릴은 몸을 일으켰다.
분명히 지하에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노을이 지기도 전이었는데 어느새 노을은커녕 깜깜한 밤이 되어 있었다.
“열 시간은 족히 쓰러지셨을 겁니다.”
“당장에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얼마나 걱정했다고.”
에이단의 말을 이어 밀리아나가 말하자 카릴이 그녀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이야, 네가 그렇게 말하니 기쁜데. 디곤의 여왕에게 이렇게 관심을 받고 있다니 말이야.”
“무, 무슨…….”
“연애질은 나중에 안 보이는 데서 하고 그래, 몸은 괜찮은 거냐.”
고든의 말에 카릴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밀리아나의 말대로 디곤으로 가려고 했는데……. 고든 경께서 일단 안정을 취하면서 지켜보자고 하셔서 말이죠.”
에이단이 고든을 바라봤다.
“네 녀석이 설마 함정 따위로 죽을 위인도 아니고 말이다. 계속해서 건틀릿이 반응을 하는 것을 봐서는 뭔가 교감 중이라는 걸 알았지.”
고든은 그의 옆에 내려놓은 칼두안의 건틀릿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뭐가 있던? 그 건틀릿이 에고 웨폰(Ego Weapon)이라도 되더냐.”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그런 건 아닙니다. 딱히 무구 자체에 의지가 있을 것 같진 않으니까요. 만약 그렇다고 해도 녀석하고 대화를 나누려면 아마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겁니다.”
“……음? 그게 무슨 말이야?”
카릴은 자신이 만났던 거대한 푸른 거북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쿼니테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기껏 칼두안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크르르-’ 하는 울음소리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잠깐 아공간에 있었던 것뿐인데……. 이렇게나 시간이 흐르다니. 정령계와 인간계의 시간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주의해야겠어.’
그는 마치 오랜 시간 여행을 하고 돌아온 것처럼 나른한 기분을 느끼며 생각했다.
‘만약 영혼샘을 발동시켜 정령계의 문을 열 수 있다 하더라도 사용하는 시점을 잘 정해야겠어. 중요한 순간에 다녀왔다가 순식간에 몇 년이 흘러버리거나 하면 낭패니까.’
카릴은 아직 정령력을 얻기도 전인데 이미 그에 대한 걱정까지 하는 자신을 보며 피식 웃었다.
“신수인 칼두안의 힘이 봉인되어 있는 무구입니다. 블레이더의 5대 무구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
“……!!”
그의 말에 모두가 놀란 듯 다시 한번 건틀릿을 바라봤다.
“칼두안?! 설마 전설로 알려진 3대 위상 중 하나인 청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신수의 전설은 동방국도 아나 보지?”
“물론입니다. 동방국에도 3대 위상과 비슷한 것이 있으니까요. 저희는 뱀을 숭상합니다.”
“꼭 자기들하고 닮은 걸 믿는군.”
에이단의 말에 밀리아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뭐, 어쨌든 다행이야. 뱀이든 거북이든 무구에 잡아 먹히지 않고 돌아왔으니까. 그것 말고는 별다른 건 없었고?”
“네. 다만……. 청귀가 아무래도 절 마음에 들어 하지 않나 봅니다. 건틀릿의 주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듯싶습니다.”
카릴은 고든에게도 굳이 쿼니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아직 그녀가 건틀릿 안에 자신의 기억을 남겨 둔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흐음. 하긴, 청귀라면 토(土)의 기운을 가진 영물이니까. 너와는 좀 어울리지 않지.”
“고든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카릴은 쿼니테와 똑같은 평가에 아쉬운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의외로 건틀릿에 흥미가 없으신가 보네요. 여기서 칼두안의 건틀릿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고든, 당신이라 생각하는데.”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4명 중 유일하게 토(土) 속성의 마력을 가진 소드 마스터가 바로 고든이었기 때문이다.
쿠웅…….
카릴의 말에 고든은 자신의 옆에 세워 둔 모우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가볍게 둔 것뿐인데도 그 무게에 마치 바닥을 두들기는 듯한 소리가 났다.
“난 이걸로 충분하다. 어차피 내 마력은 방어술인 오토마타에 집중되어 있으니까. 굳이 다른 방어구를 착용하는 건 마력의 소모만 늘릴 뿐이야.”
“블레이더의 무구인데도요?”
확인을 받듯 되묻는 카릴의 물음에 고든은 고개를 저었다.
“됐다. 난 이곳에서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다. 목숨을 구했는데 다른 것까지 욕심을 내면 안 되지. 그건 네 수고비라 생각하고 가져가라.”
“제가 못쓴다고 얘기해서 그러시는 건 아니고요?”
“그것도 좀 있고.”
카릴은 고든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하는 얘긴데. 고든, 약은 드셨습니까?”
“……어? 이거 이대로 그냥 먹는 거냐. 설마?”
그의 물음에 고든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물론이죠. 아직도 안 드셨습니까? 여기에 온 이유가 병을 고치기 위함이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 말에 밀리아나와 에이단은 사뭇 놀란 표정으로 고든을 바라봤다.
“쓸데없는 소리 하긴…….”
천하의 고든 파비안이 병이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병에 걸린 게 저 정도라고?’
‘멀쩡한 사람들보다 더 날아다니던데. 소드 마스터들은 모두 괴물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군…….’
하지만 고든의 우려와 달리 두 사람이 생각하는 놀라움은 다른 의미였다.
“에이단.”
“네?”
“우리 중에 건틀릿을 쓸 만한 사람이라면 누가 떠오르지?”
카릴의 물음에 고든은 그래도 은근 기대를 하는 듯 슬쩍 그를 바라봤다.
“우리 중에서라……. 역시 그 녀석이죠. 아직 오지 않은 한 명.”
“그렇지?”
생각보다 고민 없이 대답하는 에이단과 기대했던 대답이기에 카릴은 피식 웃었다.
“그 녀석이 좋아하겠네요.”
그의 생각을 읽은 듯 카릴 역시 옅은 웃음을 띠었다.
“뭐야. 이미 생각해 둔 녀석이 있나? 뭐, 상관없겠지. 어쨌든 이걸로 끝인가? 돌아가려면 또 한참 걸리겠군.”
머쓱해진 고든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지금쯤이면 저희를 마중 나와 있을 테니까.”
“……누가?”
카릴은 건틀릿을 쥐고서 말했다.
“이걸 받을 녀석이죠.”
* * *
촤아아아악……!!
촤악……!!
기다렸다는 듯 돛을 활짝 피고 순풍에 파도를 가르며 질주하는 마도 범선을 향해 카릴을 손을 흔들었다.
“허…….”
배라고 하기엔 엄청난 속도.
다른 이들도 놀라긴 매한가지였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고든 파비안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저건…….’
그의 생각을 예상한 듯 카릴은 팔짱을 낀 채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네. 마도 시대의 물건입니다. 교도 용병단의 비공정과 같은 구조죠. 날지는 못하지만.”
“저런 걸 어디서 구했지?”
“운이 좋았습니다. 타투르에 있었거든요.”
“미치겠군. 제국도 갖지 못한 걸 네가 갖고 있구나. 설마 저 배의 시동석이 내게 제안했던 것이냐?”
질주하는 범선을 가리키며 고든이 말했다.
“네. 시제품이지만요. 8각석을 합성한 것이 아니라 6각석을 합성한 것이긴 하지만 비공정과 달리 추진력을 위한 거라 충분하죠.”
카릴은 기대하는 고든의 얼굴이 재밌다는 듯 바라봤다.
“그리고 이제 곧 비공정에 쓰이게 되는 걸 보실 겁니다. 3년 뒤에도 살아 계실 테니까요.”
그의 말에 고든은 피식 웃었다.
“저런 걸 누가 만들었지?”
“이스트리아 삼국의 베릴 남작이라고 아십니까?”
고든 파비안은 카릴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 늙은이? 썩어도 준치라더니……. 한때 천재라고 불렸지만 한물간 마법사 아냐?”
카릴은 그의 말에 입꼬리를 올렸다.
“그 말대로죠. 썩어도 준치. 천재의 비상함이 어디 가겠습니까. 마력이 낮을 뿐이지 머리는 여전합니다. 게다가 울카스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톰슨이 그를 보좌하고 있기도 하고요. 운이 좋다면 처음 얘기했던 3년보다 더 앞당겨질지도 모릅니다.”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카릴과 달리 고든은 여전히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건 또 뭐야? 울카스? 들어 본 적이 없는 길드인데. 어디 소속이지? 대륙에 웬만큼 이름을 날리는 길드를 내가 기억 못 할 리가 없는데.”
“당연합니다. 이름을 날린 적이 없거든요.”
“…….”
고든은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카릴 때문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앞으로 기억해 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조르의 영주가 6클래스 상급 마법사인 건 아시죠?”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울카스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곧 그와 동급의 마법사가 될 거니까요.”
“허……. 일개 길드에서 상급 마법사라고?”
카릴의 말에 고든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설마 그것도 네가 한 일이냐?”
그의 말에 카릴은 옅게 웃었다.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녀석이군. 황자들을 쥐락펴락하는 것도 모자라서 말이야.”
“별말씀을.”
“목표가 뭐야? 대륙이라도 집어삼킬 작정이냐.”
고든은 비록 남부 여정의 시작은 제국 때문이었지만 어느새 지금은 카릴에게 더 매료되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유지 되었던 제국, 공국 그리고 이스트리아 삼국의 3강 구도가 깨어지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았으니까.
자신을 포함해서 5명의 소드 마스터와 4명의 대마법사 그리고 마지막 1명인 동방의 비술사를 포함한 대륙 10강이라 불리는 강자들.
이 많은 강자가 있으면서도 200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천하삼분(天下三分)은 깨지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저 녀석을 알기 전까진.’
고든 파비안은 수통에 든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진액을 단숨에 들이켰다.
“크…….”
목을 타고 넘어가는 쓴 기운이 여실히 느껴졌다.
‘카릴, 네가 진짜 하고자 하는 것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너는 분명 이 정도로 만족할 리가 없을 테니까.’
그토록 먹기 싫어하던 진액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그는 모두 삼켰다.
“조금 더 널 지켜보겠다.”
카릴은 그런 그를 보며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 * *
“풉……!!!”
재채기가 나오려는 입을 황급히 막았다.
오랜만에 볕이 드는 창가 아래에서 기분 좋게 식사를 하는 기쁨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가뜩이나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인데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이 싫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하, 하하…….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제국의 3황자 크로멘이었다.
‘좋은 분위기를 나 때문에 깨고 싶지 않아.’
남부로 돌아온 뒤 계속해서 잔병치레 치렀던 그가 이상하리만치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별궁을 나와 이렇게 다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크…… 크로멘.”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황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
크로멘은 그제야 자신의 입가가 축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재채기를 참으려다 먹던 스프가 묻은 것이 틀림없었다.
스윽-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머님.”
그는 황급히 테이블에 있는 냅킨으로 입 주위를 닦았다.
“……어?”
어째서인지 냅킨에 묻은 스프의 색깔이 붉은색이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크로멘이 황후를 바라봤다.
주르륵…….
그때였다.
황자의 코에서 코피가 흘렀다.
“이, 이게 왜 이러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크로멘은 피 묻은 손을 옷에 닦고는 주섬주섬 주위의 냅킨을 잡으려 했다.
쨍그랑……! 와장창……!
하지만 힘이 빠진 손은 제대로 냅킨을 쥐지 못하고, 놓여 있던 접시와 그릇을 치는 바람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아아…….”
울먹이는 얼굴로 크로멘이 주위를 바라봤다.
쿠웅……!!
지끈거리는 두통과 함께 시야가 흐릿해지는 기분에 쏟아진 그릇들이 있는 바닥으로 그가 쓰러졌다.
“이게, 왜…….”
크로멘은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테이블을 잡은 손이 미끄러지면서 손바닥에 묻은 붉은 핏물이 주르륵 선을 그리며 선명하게 새겨졌다.
“쿨럭, 쿨럭…….”
코에서 흐르던 피는 이제 입과 귀까지 뚫고 흘러내렸다.
정적이 흘렀다.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크…… 크로멘!!!!!”
그 순간,
쓰러지는 황자의 몸을 끌어안는 올리번.
누구보다 비통한 그의 외침만이 홀 안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