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72)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72화(172/497)
135. 장례 준비
“꽤나 즐거웠다.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물론이죠. 비공정의 시동석이 완성되면 찾아뵙겠습니다.”
마도 범선의 갑판에서 고든 파비안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내 생각에 그전에 볼 것 같은데. 안 그래? 부디 그 날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지만……. 힘들겠지.”
“제가 터뜨리지 않아도 그들이 가만있지 않을 수도 있죠. 다들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기회일 테니까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글쎄. 내 생각엔 그들이 아니라 네가 터뜨릴 것 같은데.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말이야.”
고든은 카릴의 말에 입맛을 다셨다.
“어쨌든 재회가 썩 유쾌한 장소는 아니겠어.”
그가 말하는 사건이 크로멘의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고든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3황자가 디곤과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엔 자신의 책임도 있었으니까.
“다음에 만나게 될 곳이 장례식장이니 말이야. 전에 말했던 무대라는 게 그곳이지?”
“그때 했던 말을 아직 기억하십니까?”
“나이를 먹으면 쓸데없는 것을 잘 기억하거든.”
고든은 베스탈 후작의 영지에서 올리번이 크로멘에게 독을 먹이던 장면을 마르트에게 보이게 했던 날을 떠올리며 말했다.
“후회하십니까?”
카릴의 물음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전에도 똑같은 질문을 했듯이 내 대답도 변하지 않는다. 누가 황위에 오르던 남은 둘은 어차피 살아남지 못해.”
단지 대륙의 강자로서 고든이 석연치 않은 부분은 자신은 살기 위해 망령의 성을 공략하기까지 했는데 어린 황자는 정세에 휘말려 희생양이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이번 일로 올리번의 가면이 벗겨질까?”
“아뇨. 단지 누군가는 가면을 알게 되고 누군가는 여전히 가면을 씌우려고 하겠죠.”
“그걸 밝히기 위해 네가 움직이려던 게 아냐? 크로멘을 죽여서까지 말이야.”
고든은 카릴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물었다.
“제국이 단 한 번으로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올리번이 크로멘을 죽인 범인이라는 걸 알게 되면 황제는 오히려 옳다구나 하고 황자들을 쳐내버릴걸요.”
“으음…….”
고든은 카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란 슈테안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으니까.
아들에게조차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정복왕이었으니.
“겨우 꺾인 황제의 날개에 힘을 실어 줄 생각은 없습니다. 전 의심의 씨앗을 준 것뿐입니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합니다. 제가 원하는 건 단순히 황자들의 몰락이 아니니까.”
카릴은 마르트를 떠올렸다.
크로멘의 죽음 이후 과연 그가 어떻게 행동할까.
백작가의 첫째라고는 하지만 마르트는 어리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적었고 영향력도 크지 않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다르다.
올리번의 가장 큰 지지 세력이자 대륙제일검이라 불리는 크웰 맥거번.
‘그저 올리번을 폐위하게 만들 거라면 처음부터 이런 번거로운 일을 계획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녀석이 황위에 오르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인재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황가의 핏줄도 아닌 자신이 단순히 힘으로 제국을 흡수해서는 결코 그들을 얻을 수 없을 테니까.
‘마르트를 통해 대륙제일검인 아버지를 내 편으로 만들게 된다면…….’
그를 따르는 무수한 기사와 강자들이 모두 자신의 밑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앞으로 있을 더 큰 전쟁인 신탁 전쟁을 준비하는 발판이 될 권세다.’
카릴의 눈빛이 빛났다.
“도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보는지……. 네가 하려는 일을 나는 이제 가늠할 수가 없겠다. 퇴물은 빠져 줄 테니 알아서 날뛰어 봐.”
“퇴물이라뇨. 제 눈엔 괴물입니다.”
고든의 말에 카릴은 옅은 웃음을 지었다.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크로멘의 마지막 가는 길엔 제국도 주지 못하는 선물을 줄 겁니다.”
“선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인 네가 잘도 그런 말을 하는구나. 그래, 기대를 해야 하냐 아니면 걱정을 해야 하냐.”
고든의 말에 카릴은 옅은 웃음을 지었다.
“둘 다.”
촤아아아악……!!
침묵이 흘렀다.
마도 범선이 정박한 뒤,
자신을 마중 나온 교도 용병단의 부하들을 바라보며 고든 파비안은 이제 정말로 카릴과의 여정을 끝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웅성- 웅성-
그의 부하들은 처음 보는 엄청난 범선의 위용에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놀란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녀석들의 입단속은 내가 시킬 테니 걱정 마라. 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제국이 그 배를 알게 되면 눈독을 들일 테니까.”
카릴은 고든의 말에 옅게 웃었다.
“어차피 저에게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겁니다. 내전이 터진 지금이야말로 공국을 치는 절호의 기회인 걸 알면서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공국도 제국도 결국은 자기들 밥그릇 싸움에서 허덕이고 있으니 말이죠.”
“그러는 동안 넌 조용히 세력을 넓히고? 하여간 무서운 녀석이야.”
고든은 직접 남부의 패자라 불리는 디곤 일족의 여왕인 밀리아나가 이미 카릴을 따르고 있음을 확인했으니까.
명실공히 이제 카릴은 남부의 왕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뭐라 한마디 더 하려는 듯 입술을 씰룩였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수안 하자르라고 했던가? 제법 틀이 잡히긴 한 거 같은데 망령의 성에서 얻은 건틀릿을 쓸 때 조심하라고 전해라. 자칫 잘못하면 그 힘에 오히려 당할 수 있으니 말이야.”
쓸데없는 걱정일지도 모르지만 어쩐 일인지 고든 파비안은 건틀릿에 새겨진 칼두안이란 이름이 못내 걸렸다.
“왜 그러십니까?”
“지금은 사라졌지만 칼두안은 마도 시대 때 정령왕 혹은 드래곤에 필적하는 힘을 가진 신수다.”
카릴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과거의 전설일 뿐입니다. 신수가 사라진 지 이미 수백 년이니까요.”
쿼니테가 만든 아공간에서 이미 칼두안을 봤던 카릴은 육안으로도 신수의 위용을 느꼈기에 동감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신수가 살아 있을 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청귀의 습성이지.”
“습성이라뇨……?”
쿼니테에게서도 듣지 못했던 얘기였다.
카릴이 흥미로운 듯 고든을 향해 물었다.
“대지의 정령왕의 환생이라고 불리는 그 거북은 다른 위상들과 달리 특수한 조건으로 계약을 한다.”
“조건?”
“손가락을 건다더라.”
카릴은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정령왕급의 동물을 길들이는 데 약속이라도 하는 건가요.”
카릴이 새끼손가락을 까닥거리자 농담을 했지만 고든은 여전히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게 아니다, 녀석아.”
“네?”
고든은 낮은 한숨을 내쉬고는 카릴에게 말했다.
“손가락을 건다는 건 그런 게 아냐. 청귀의 전설은 칼두안의 힘을 한 번 빌릴 때마다 계약자의 손가락을 대가로 정말 먹어 치운다는 의미다.”
“…….”
“뭐, 전설은 전설일 뿐이니까. 블레이더가 만든 무구가 설마 그런 괴상한 조건까지 전설을 따라 남기진 않겠지.”
카릴은 다시 한번 건틀릿에 있었던 칼두안의 모습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뭐, 어쨌든 강한 힘을 쓰는 데엔 분명 그에 대한 조건이 따르는 법이다.”
그는 카릴의 허리에 있는 얼음 발톱을 가리켰다.
“너 역시 마찬가지지. 그 안에는 사자(死者)의 힘까지 녹아 있으니 말이야.”
“명심하죠. 수안에게도 주의를 시키도록 하죠.”
카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연이 닿는다면 발본트에게 보이는 것도 좋겠지. 현시점에서 그 건틀릿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이니까.”
“권왕 말입니까?”
“그래. 뭐, 괜한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 인간은 무구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으니까.”
고든의 말에 카릴은 피식 웃었다.
그럴만했다.
소드 마스터의 반열에 오른 5대 강자 중에 유일하게 무기를 쓰지 않는 그는 오로지 자신의 육체가 곧 무기라고 말했으니까.
발본트의 정식 제자는 아니지만 그에게 태세를 배웠던 수안이 그와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 계신지 아십니까?”
“글쎄. 워낙 자유분방한 사람이니 말이야. 하지만 몇 달 전에 날 찾아 왔었다.”
“당신을?”
“폐하의 명이 있기 바로 직전이었지. 듣자 하니 트라멜에 간다고 하더군.”
카릴이 그의 말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트라멜이라면……. 그 고대 요새를 말하는 겁니까?”
“맞아. 마도 시대에는 주요한 거점이었지만 지금은 폐허에 불과하지. 그래서 도망친 노예들이 살고 있는 땅으로 변해버렸지만.”
한때 요새로서 위용을 자랑했던 트라멜이지만 그건 과거의 영광일 뿐, 카릴에게 그곳은 다른 의미로 기억되었다.
비록 지금은 휴지기에 접어들어 닫혀 있지만 대륙에서 가장 큰 마굴인 선혈동굴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
동굴은 수백 년간 활동이 멈춰 있어서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곳이었는데 시간이 흘러 타락의 최초 거점이 되어 트라멜 전역이 죽음의 땅으로 변모했다.
“뭐, 유적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거의 폐허에 가깝지. 그가 왜 거길 가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군.”
“다른 말은 없었습니까?”
“그 작자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지.”
그 순간,
‘역시…….’
카릴은 기다렸다는 듯 고든 파비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때가 왔군.’
그는 수안 하자르의 스승으로 권왕을 염두에 두면서 항상 잊지 않고 있었다.
‘권왕 발본트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서 제자를 두지 않게 되었다. 그로 인해 발본트 8태세가 소실되어버렸지.’
카릴은 그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수안 하자르를 그의 제자로 두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은 알지만 언제 어떤 일이 발단이 되는 것인지 까지는 몰랐다.
그전에 발본트를 만나 친분을 쌓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까지도 쉼 없이 계획을 진행했던 그였는데 권왕에게까지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이 많은 자신의 수족인 수안을 미하일처럼 몇 개월씩이나 권왕이 나타날 것이라고 알고 있는 타지에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선혈동굴(鮮血洞窟).’
발본트가 트라멜을 향한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머지않아 카릴이 기억하는 ‘사건’이 발발할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권왕의 목적지가 선혈동굴이 아니라 트라멜인 건 어째 서지? 거긴 정말 아무것도 없을 텐데.’
선혈동굴에서 일어난 사건에 발본트가 개입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선혈동굴이 아닌 트라멜에 볼 일이 있었다는 것은 카릴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굴 이전에 고대 요새에 뭔가 있는 건가…….’
카릴은 기억을 떠올려봤다.
하지만 전생에 그가 트라멜을 갔던 것은 딱 한 번뿐. 그것도 이미 선혈 동굴이 타락의 거점이 되어 마굴과 함께 트라멜을 파괴하기 위해서였다.
‘그때에도 선혈 동굴만 갔었지 트라멜을 직접 보지는 못했었어.’
어쩌면 자신이 놓친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들었다.
‘당분간 수안과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도 함께 가야 할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생각하자 카릴은 옅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갈 곳이 한 군데 더 늘었군.’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정보에 카릴은 다시 한번 고든 파비안과의 만남이 자신에게 큰 수확이 되었다는 걸 상기했다.
“뭐, 내가 오지랖이 넓었군. 너와 별의별 일들을 많이 겪어서 그런가 보다. 쓸데없는 말까지 하는 걸 보니. 어쨌든 네 부하가 운이 따른다면 권왕과도 인연이 닿을 수도 있겠지.”
“그렇겠죠.”
카릴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말과 달리 수안과 권왕의 만남은 운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만들 거지만.’
“곧 보자. 나름 즐거웠다.”
“고든.”
카릴은 수통 하나를 그에게 던졌다.
툭-
“크루아흐의 배설물입니다. 한 번 더 마셔야 효과가 있을 겁니다.”
“…….”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카릴과 달리 그의 말에 고든 용병단의 단원들이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고든을 바라봤다.
“아오, 저 새끼…….”
카릴은 그런 그에게 피식 웃으며 손을 들었다.
* * *
촤아아악……!!
촤아악……!!
마도 범선이 해협을 통과해 포나인의 강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곧 타투르입니다.”
범선의 갑판 위에 팔짱을 낀 채로 서 있는 카릴에게 에이단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포로들은?”
“아마 두샬라가 준비를 끝마쳤을 겁니다.”
“그래.”
카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든에게 했던 선물을 떠올리며 그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4만의 목숨……. 그래, 최소한 황자의 장례식에 가져갈 조의품으로 이 정도는 돼야지.”
그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