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79)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79화(179/497)
142. 브랜 가문트
“…….”
“…….”
어색한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브랜 가문트였다.
“에…….”
하지만 그는 뭐라고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몰라 난처한 표정으로 카릴을 바라봤다가 애꿎은 책들만 뒤적였다.
“여기에 계셔도 괜찮습니까?”
“상관없습니다.”
브랜은 카릴의 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는 문밖에 서 있는 병사들을 바라봤다.
기세가 범상치 않은 것을 봐서는 평범한 보초가 아닌 황실 친위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렇다면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도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란 의미였다.
혹은,
그만큼의 위험 요소를 가진 사람이란 뜻이기도 했다.
그런 두 사람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거의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아카데미 뒤편에 있는 창고였다.
폐기 처분된 책들이 쌓여 있기도 하고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마법 무구들도 어지럽게 너부러져 있었다.
“어디…… 가시는 길이 아니셨습니까?”
“맞습니다.”
카릴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폐하를 뵈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쿵……!!!
사다리에 올라 찬장 위에 올리려던 책을 떨어뜨리며 브랜이 할 말을 잃은 듯 그를 바라봤다.
카릴이 떨어진 책을 주워 브랜에게 건네자 그는 황급히 책을 얹어 놓고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귀한 손님을 모셔놓고……. 아직 할 일이 끝나지 않아서 말이죠.”
브랜은 서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습에 오히려 카릴은 피식 웃었다.
정말로 귀한 손님이라 생각한다며 할 일도 제쳐 두고 자신을 먼저 맞이했을 테니 말이다.
“괜찮습니다. 황자의 장례식이라 하더라도 모두가 애도만 하고 있다면 나라가 어찌 유지되겠습니까.”
카릴은 쌓여 있는 책 중 한 권을 꺼내 펼치면서 말했다.
“지금도 누군가는 살기 위해 일을 하고 누군가는 밥을 먹고 있을 텐데요.”
그의 말에 브랜은 묘한 눈빛으로 카릴을 슬쩍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황자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시네요. 조심하시는 게 좋습니다. 이곳에선 경어를 쓰지 않다가는 목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는 그쪽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탁-
카릴은 펼쳤던 책을 덮었다.
인사치레는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을 했던 걸까.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무리 도서관에 박혀 있었다고 하더라도 몇 달 동안 이어졌던 제국의 정세를 아예 모를 리는 없을 터.”
“…….”
“게다가 황자의 장례식이라면 일주일이 아닌 그보다 더 전부터 요란스럽게 준비하고 있었을 테니 황자의 죽음이야 당연히 알 테고…….”
브랜이 사다리에서 천천히 내려와 카릴을 바라봤다.
“백번 양보해서 내가 며칠 전 피웠던 소란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해도 당신이 날 이곳에 데리고 온 것에서 이미 끝났다고 보입니다만.”
“허허…….”
“어떻습니까. 직접 날 보니까. 당신의 평가를 듣고 싶은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브랜은 카릴의 말에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길을 잘못 들었다? 설마……. 당신이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되는 건 내 착각일까?”
일면식도 없는 자신을 어떻게 그렇게 단정을 짓는지 브랜은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게다가 감시를 달고 있는 나를 이런 낡은 창고에 데리고 온 것은 적어도 편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은데.”
“편하게 이야기라니요. 창밖으로 보초들이 버젓이 서 있고 이곳은 아카데미입니다. 마법사의 반열에 오른 학생들이 수두룩하며 전 지역에는 궁정 마법사인 카딘 루에르 경의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여긴 아니지.”
“……네?”
브랜 가문트는 카릴의 말에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당신 말대로 뒤에 보초는 있지만 여긴 황궁 내에서 유일하게 감시 마법이 없는 곳 아냐? 굳이 따지자면 궁내에서 당신이 갈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지만 마법은 속이기 어려우니까.”
하지만 반면 카릴은 여전한 태도로 일관했다.
“예? 제가요? 죄송하지만 전 카릴 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만…….”
“내가 말을 잘못했군. 나에 대해서 궁금한 것보다 다른 게 더 궁금했을 테니까.”
카릴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과연 4만의 포로가 어떻게 제국 안으로 몰래 들어왔는지.”
“…….”
“그래서 날 보러 온 거겠지. 그런 대담한 짓을 한 사람이 과연 어떤지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말이야. 안 그래?”
카릴의 말투가 변하는 순간 브랜 가문트는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 기분에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히죽거렸다.
“하하……. 카릴 님의 날카로운 안목에 두 손을 들었습니다. 아마 황궁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카릴 님을 궁금해할 겁니다.”
“아니면 이게 궁금했나? 가문트가가 멸문하고 고아가 된 당신을 거두어 준 아지프 경의 발목을 어떻게 잡았는지. 트윈 아머에서 있었던 일. 과연 어디까지가 내가 벌인 일인지 말이야.”
“…….”
“혹은 자신이 마음속으로 점찍어 놓은 왕과 비교를 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카릴의 물음이 이어질수록 미소를 띠었던 브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카릴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도 당신을 보고 궁금했거든. 언제까지 서기에 머물러 있을지 말이야.”
“하하……. 저 같은 게 무슨.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그래?”
이제 겨우 첫 만남에 불과했다.
카릴은 첫술에 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이 만남은 브랜 가문트의 마음이 동할 미끼를 던져 놓기 위함이었으니까.
“다른 건 기밀이라 얘기하기 어렵지만 첫 번째는 말해 줄 수 있어. 어차피 곧 폐하께도 고하려고 한 일이기도 하고 수감 되어 있는 포로들이 이미 말했을 수도 있지.”
그러고는 그는 브랜에게 말했다.
“혹시 지도가 있나?”
“아, 네.”
카릴의 말에 브랜은 품 안에 있는 지도를 꺼냈다. 얼마나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는지 접은 부분이 너덜너덜해 보일 지경이었지만 지도 자체는 꽤나 최신 것이었다.
받아 든 지도를 보며 자신의 기대 대로라는 듯 카릴은 피식 웃었다.
“항상 지도를 가지고 다니나 보지?”
“별건 아닙니다. 과거의 전술들을 지도를 펼쳐 놓고 그려보는 게 취미라…….”
“좋아. 과거의 유명했던 전투를 복기하는 것은 전술가로서 훌륭한 일이니까.”
“과찬이십니다. 그저 아카데미의 서기에 불과한걸요.”
브랜은 그렇게 말했지만 카릴이 고작 서기에게 관심을 가질 리가 없다는 것을 그 역시 알고 있었다.
“250년 전, 구제국이 처음 건국이 되었을 당시 황도를 건설한 것이 대마도사인 카이에 에시르라는 걸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리고 150년 전에 현재의 제국이 세워졌고요. 현제국의 초대 왕이신 막스 슈테안께서는 구제국의 뜻을 이어받는다는 의미로 수도를 바꾸시지 않으셨죠.”
“맞아. 그 이후 황궁을 새로 건설하고 황도의 장벽을 새로 새웠지.”
“그런데 그거 알아? 구제국 시대의 황도는 지금의 3배는 되었다는 것을.”
카릴의 말에 브랜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초의 용 사냥꾼인 카이에 에시르 경을 필두로 그야말로 황금시대라 불리며 막대한 부와 강력한 힘을 증명하던 시절이지 않습니까.”
황도의 면적만 하더라도 수백 킬로미터였다. 그에 3배라면 실로 엄청난 크기가 아닐 수 없었다.
“현재의 황도는 구제국 시절의 황도 위에 새로이 지어진 것. 위에 보이는 것들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지하는 250년 전 그대로야.”
“설마…….”
카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지금의 황도는 도시를 건설할 때 이미 구제국 시대에 만들어 놓은 상하수도 시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
그러고는 천천히 황도에서 화살을 쐈던 북쪽 산맥을 손가락으로 이으며 말했다.
“구제국 시절에 만들어진 지하의 하수도 시설 중에는 북쪽 산맥을 관통해서까지 이어져 있는 것들이 있지.”
브랜은 그의 말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불가능합니다. 황도 내에 있는 상하수도 시설은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맞아. 그렇지. 하지만 몇몇 입구는 그렇지 않아. 이미 버려진 곳이거든.”
카릴은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황도 주변을 크게 돌아 북쪽을 가리켰다.
“설마…….”
“이민족이 살고 있는 이곳은 다르지. 이미 버려진 폐허라서 여기까진 제국군의 손이 닿진 않거든.”
“그 말은 지금 4만이나 되는 병력을 북쪽으로 이동시켜 구제국 하수도를 통해 북부 산맥으로 이동시켰다는 겁니까?”
“맞아.”
“어떻게…….”
“이동은 육로가 아닌 배를 타고 해협을 따라 이동했거든.”
“바다로요?”
브랜은 카릴의 말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겨울인 지금은 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바람이 분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보다 남쪽에 위치한 타투르에서 바다로 북상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어쩐 일인지 운이 좋게도 파도가 제국을 향해 불더라고. 신기하지?”
항해에서 바람이 중요한 이유는 파도를 타기 위함이었다. 하나 해협에 살고 있는 해왕이 물살을 일으킨다면 불어오는 바람과 상관없이 포로를 실은 배들이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브랜으로서는 카릴이 한 모든 것이 마치 마법처럼 느껴졌다.
4만이란 엄청난 숫자를 아무도 모르게 제국의 앞마당에 둔다는 것은 진짜 마법이라 해도 믿을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카릴의 말에 브랜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구제국 하수도를 통해 황도를 관통한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기도 하면서 자칫 이 길이 전쟁에 사용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들었다.
‘전생에 내가 알고 있는 황도의 비밀은 이것 말고도 많다. 가지고 있던 패 하나를 보이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패는 가지고만 있다고 끝이 아니었으니까.
그보다 더 큰 걸 얻기 위해서는 패를 던질 줄 아는 용기도 필요했다.
“허…….”
카릴은 브랜을 향해 말했다.
“이건 백날 지도를 본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냐. 역사서엔 더더욱 남아 있지 않지. 비단 하수구뿐만이 아냐. 자랑스러운 제국인들이야 이민족들이나 아는 샛길을 무시하지만…….”
그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 말이 무슨 뜻 인지는 네가 더 잘 알 거야. 곧 우린 샛길이 아닌 당당히 대륙의 길을 걸을 것이다. 자, 두 번째, 세 번째 답변도 필요해?”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창고 안에 울렸다.
“브랜 가문트. 과거를 살피는 것은 훌륭한 자세지만 책상에만 앉아 있어서는 결코 위로 올라갈 수 없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카릴은 브랜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직접 부딪혀야지. 상상해 봐. 네 손끝에서 움직이는 수만의 대군을 내려다보는 광경을. 그건 결코 과거의 역사엔 없는 거야.”
“…….”
“네가 역사에 새로이 쓸 일이니까.”
카릴은 창고의 문을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속삭이듯 말했다.
“난 네게 그것을 해줄 수 있다.”
쿠그그그…….
문밖으로 나가기 전 카릴은 마치 비밀이라는 듯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며 살짝 눈짓을 주었다.
털썩-
브랜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이토록 숨이 막힐 듯 몰아치는 대화를 나눈 것이 언제였던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음을 깨달았다.
“카릴 맥거번…….”
그가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브랜은 멍하니 지도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