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80)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80화(180/497)
143. 계획대로
“고개를 들라.”
황제의 낮은 목소리가 홀 안에 울려 퍼졌다.
아카데미 뒤편에 있는 창고에서 나온 카릴은 그대로 본궁으로 향했다.
자신을 안내한 두 보초는 그가 궁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뒤에 곧바로 사라졌다.
아마 각자의 세력에 보고를 위해 달려간 것이 틀림없었다.
《카릴 맥거번이 브랜 가문트를 만났다.》
그들은 그 말을 할 것이고 어떤 이는 의아해할 것이며 어떤 이는 의심할 것이다.
한낱 황궁 도서관의 서기를, 황제를 만나기 전에 만났다는 것은 충분히 혼란스러운 일이었으니까.
‘브랜 가문트가 금기사단의 부단장인 아지프의 먼 친척이라는 건 전생에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문제는 아지프가 브랜의 재능을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가 중요하겠지.’
아직까지 그를 서기에 머무르게 둔다는 것은 아지프가 그의 번뜩이는 재능을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혹은 브랜이 교묘하게 그를 거절하고 있는 상황일 수 있다.
‘후자일 가능성이 높겠지. 왜냐면 브랜 가문트는 올리번이 황위에 오르기 전에 이미 그의 측근이 되어 있었으니까.’
사실,
전생에는 카릴의 양형제인 둘째 티렌 맥거번이 정계에 진출한 시기는 지금보다 훨씬 늦었다.
‘고블린 습격으로 인해 티렌과 란돌이 황궁에 오게 된 것은 내가 만든 현세의 변화.’
티렌이 궁정마법사인 카딘 루에르의 제자로 들어간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올리번의 양옆에는 최고의 군사가 둘이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애초에 자신의 방 앞에 세워 둔 보초들이야 루온과 올리번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던 카릴로서는 브랜과의 만남이 그들의 귀에 들어가도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두 황자가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 병사를 대기 시켜 놓았다 하더라도 그들이 이곳까지 들어올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일이야말로 브랜 가문트뿐만 아니라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일일 테니까.
“폐하를 뵈옵니다.”
대신들이 모여 있는 태양홀이 아닌 오직 황제의 허락 없이는 들어 올 수 없는 본궁.
카릴은 타이란 슈테안을 향해 무릎을 꿇고서 얘기했다.
“너는 제국의 절대간극을 아느냐.”
태양홀과는 달리 소박한 의자 위에 앉아 있는 황제가 그를 향해 물었다.
그 역시 카릴이 본궁을 향하던 도중 브랜을 만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소한 것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것에 관해 묻지 않았다.
“네. 구제국 시대부터 내려온 불문율이지 않사옵니까.”
본궁의 실내는 화려한 황궁의 모습과 다르게 깔끔하고 단출했다.
언제나 빛나는 모습만을 보였던 타이란 슈테안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방 안의 장식들.
하지만 신기하게도 황제는 여느 때보다 평온한 얼굴이었다.
“태양홀에서 황제를 영접하는 거리는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150미터를 깰 수 없다, 라는 것입니다.”
카릴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맞다. 250년간 그 규율을 깬 것은 아마 손에 꼽히는 일일 터. 또한 현 제국에서는 네가 유일할 것이다.”
‘유일하진 않지.’
그런 황제의 말에 카릴은 생각했다.
현 제국에서 눈앞에 있는 타이란 슈테안, 그가 태양홀에서 황좌에 앉아 있는 자신의 아버지의 목을 직접 베었던 일화는 유명하니까.
게다가 그는 전(前)황제의 피가 묻어 있는 황좌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었다.
스스로 절대간극을 깨버린 자이니 어쩌면 그에게는 그런 규율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영광이옵니다, 폐하.”
카릴은 타이란 슈테안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왜 너를 규율조차 어기고 그 날 너를 짐의 가까이에 오게 했는지 말해 보거라.”
황제는 이미 자신의 물음에 카릴이 답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말했다.
“폐하의 위엄을 보이기 위함이 아닌지요. 태양홀에 있던 모든 대신은 저에 대해 모릅니다. 저를 그 자리에 세웠다는 것은 여전히 폐하께서는 수많은 대신도 모르는 일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황권이 건재함을 보이시려 하는 것이 아닌지요.”
“클클클…….”
카릴의 대답에 황제는 웃었다.
“역시 너는 내가 생각한 대로다. 내 두 아들보다 너야말로 이 자리에 어울리는 자로구나.”
“과찬이십니다.”
황제는 눈빛을 빛냈다.
“만약 내가 이 자리를 네게 주겠다 약속하고 나를 도우라 한다면 너는 따르겠는가.”
“…….”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황제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른 사람들이 듣는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약속이라…….”
하지만 카릴은 파격적인 그의 말에도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미 약속을 어기신 분께서 하시는 약속을 제가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뭐?”
황제의 얼굴이 굳어졌다.
“태양홀에 왔을 때 폐하의 뒤에 벨린 경과 크웰, 두 기사를 동시에 자리에 두셨더군요. 제가 분명히 크웰 경을 폐하의 곁에 두라 청하였을 텐데요.”
“클클클……. 네 말대로 정치가 쉬운 줄 아느냐. 당장에 총기사단장인 벨린을 실권시키고 크웰을 친위기사로 명한다? 그런 북부 국경?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그렇습니까?”
카릴은 황제의 반발에도 감정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뭐, 상관없습니다. 폐하께 크웰 경을 곁에 두라 했던 것은 폐하의 안위를 위한 것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
“그럼, 저와의 약속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분명 제국이 삼국을 치는 일이 없도록 부탁드렸습니다. 하나 약속과 달리 루온 황자는 7만이란 대군을 이끌고 트윈 아머를 쳤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때로는 제국의 위상을 위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일도 있는 법이니까. 제국이 군을 일으키지 않고 사신만 보낸다면 이 또한 남부의 야만족들이 우습게 볼 터.”
황제의 대답에 카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제국의 입장을 이해하겠다는 친절한 제스처가 아니었다.
잡설은 됐다는 의미였다.
“어느 것 하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셨는데…… 제가 어찌 폐하와 또 약속을 할 수 있겠사옵니까.”
카릴의 말은 자칫 목이 날아가도 할 말이 없는 도발적인 말이었다.
천하의 황제 앞에서 약속을 운운하다니…….
“하지만 네가 루온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더냐. 결과적으로는 이스트리아 삼국은 살아남았고 루온의 무능함을 보였으며 너는 내일이 되면 4만의 포로를 돌려보낸 공으로 내게 상을 받겠지. 안 그러냐.”
하지만 황제는 화를 내기는커녕 턱을 괴고는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채찍이 아니라 당근을 주시기로 결정하신 것이옵니까? 폐하.”
카릴의 말에 황제는 피식 웃었다.
“그건 지금 네가 하는 답에 따라 달렸지만.”
황제는 어쩐 일인지 눈앞의 소년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지극히 즐거웠다.
“너는 황자에게 반기를 든 적이 될 수도 제국을 위한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카릴이 언젠가 자신의 목에 검을 드리울 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황좌에 다시 돌아온 이래로 자신의 아들들보다 카릴이란 소년이 더 뇌리에 남아 있었다.
그는 이제 카릴이 어떤 대답을 할지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럼 한 가지만 여쭈어도 괜찮겠습니까.”
“말하거라.”
“원래 폐하께서 바라셨던 장례는……. 셋 중 누구였습니까.”
그 순간,
황제 타이란 슈테안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당혹감 때문이 아니었다.
“클클……. 말한다면…….”
오히려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는 카릴에게 말했다.
“네가 이루어 줄 수 있느냐.”
* * *
저벅- 저벅- 저벅-
카릴은 본궁은 나와 복도를 걸었다.
복도에는 각종 감시 마법들이 걸려 있었지만 다행이라면 생각을 읽는 정도의 고위 마법은 걸려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곧,
마음껏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흐음…….”
게다가 처음과 달리 황제의 명령으로 더 이상 그를 감시하는 병사도 없어 자유로웠다.
카릴은 고작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답답했던지 그는 크게 기지개를 켜고서 주위를 바라봤다.
‘황제는 역시 두 황자에게 황위를 물려줄 생각이 없는가.’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둘을 모두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그는 무능한 이스트리아 삼국의 왕들과 다른 제국의 황제였으니까.
‘꼭두각시가 필요한 것이겠지. 황위를 물려주고 난 뒤에도 자신의 말을 따르는.’
하지만 황제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루온과 올리번은 꼭두각시가 되기에는 너무 영특했다.
‘올리번이 타이란 슈테안이 가장 사랑했던 아들이 크로멘이었다고 내게 말했었는데……. 왠지 그 이유가 가장 다루기 쉬운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
카릴은 두 달이나 되는 긴 애도의 기간을 둔 황제의 결정에서 애정이라는 것은 사실상 없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씁쓸하게 느껴졌다.
‘이제 만날 사람은 한 명인가.’
지금까지는 생각대로였다.
하지만 그조차도 딱 하나 가늠을 할 수 없는 불안 요소가 있었다.
바로,
마르트 맥거번.
‘과연 그가 움직일지…….’
지금쯤 크로멘의 암살에서 올리번을 의심하고 있을 유일한 사람.
‘결행은 내일이다.’
* * *
카릴이 제국을 향하기 일주일 전,
크로멘의 죽음을 보고 받고 두샬라와 대화를 나눌 때였다.
-두샬라, 일전에 너희들이 남부로 향하기 전에 내가 하시르에게 시켰던 일이 있다.
두샬라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트윈 아머의 일이 끝나고 디곤 일족의 영토에서 카릴을 기다리던 그녀는 카릴이 당도하는 시점에서 하시르가 자신을 찾아왔던 것을 기억했다.
-네. 생각나네요. 북부에 다녀왔었죠? 그다음에 남부에서 베스탈 후작령 조사하고 나서 저와 함께 타투르로 올라왔으니까요.
그녀는 살짝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지금은 포로들을 이송시킬 때 쓸 북부 산맥의 통로를 확인하러 갔구요.
-아마 지금은 산맥에 없을 거야. 이민족이 있는 곳에 가 있을 거다.
-에? 또 어딜 갔어요?
카릴의 말에 두샬라는 입술을 씰룩였다.
-그럼, 이제 남부가 아니라 북부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니까. 앞으로 그가 해야 할 일이 많아. 그리고 덩달아 너 역시.
카릴은 피식 웃었다.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이 시기에 제국의 2차 이단섬멸령이 시작된다. 그리고 동시에 황제의 죽음으로 백성의 지지를 업고 루온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올리번이 황위에 오르고.’
그가 황좌에 올라 처음으로 한 업적이 이단섬멸령을 철회하는 것.
대륙에 남아 있던 인종 차별을 없앤다는 것은 처음에는 귀족들과 제국인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제국인 내에서도 노예와 하인이 분명 존재했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널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지.’
선왕 올리번을 위해.
카릴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개입으로 인해 지금 황제가 살아 있다. 그리고 크로멘의 죽음으로 이단섬멸령 자체가 일어나지 않아 전생보다 더 많은 북부 이민족을 살리게 된 결과를 낳았다.
‘이번 남부 여정을 통해 디곤의 15만 군세까지 나를 따르게 되었다. 대초원의 4부족과 남부 5대 일가 그리고 디곤 일족을 모두 합치면 약 45만의 가까운 병력이 된다.’
제국의 80만 대군에 비한다면 아직은 양으로나 질적으로나 부족 할지 모르지만 전쟁을 치른다면 불가능한 숫자도 아니었다.
이제 남부의 힘은 대륙 3강 체제와 맞먹는 힘을 가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카릴은 눈빛을 빛냈다.
‘북부의 이민족.’
남부와 달리 이민족은 소규모 부족으로 그 규모 자체에서 약세지만 개개인의 능력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마력을 가진 디곤을 제외하고 4대 부족이나 5대 일가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육체적인 능력은 제국인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었다.
실제로 카릴 그 자신이 전생에 그것을 보였으니까.
‘마력이란 단점만 보완한다면 이들은 제국군보다 더 뛰어난 힘을 가진 군사가 될 수 있다.’
카릴은 이미 그 해결책으로 마광산과 청린에서 찾았다.
‘남은 건 하시르가 얼마나 많은 북부인을 소집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족.
극독 미명(未明)을 쓰는 잔나비들.
-믿어 주십시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남부에서 떠날 때 하시르는 카릴에게 그렇게 말했다. 구두로 하는 약속이란 참으로 보잘것없이 가벼울 수 있으나 카릴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너라는 사람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 널 믿는다. 이번 결행의 모든 열쇠는 네가 가지고 있으니까.’
카릴은 눈빛을 빛냈다.
‘그가 일을 잘 처리하게 되면……. 제국 역사상 가장 재밌는 일이 황궁에서 벌어질 것이다.’
카릴은 두샬라와의 대화를 회상하고 난 뒤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저 멀리 북부 산맥을 바라봤다.
당연한 일이지만 아직은 이렇다 할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타이란 슈테안.’
자신의 재판이 있을 내일.
그의 계획대로라면 모두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당신의 생각대로 나 역시 딱히 황자들을 위할 마음은 없어.’
복도를 걷는 그의 발걸음에 힘이 들었다.
‘그런데 당신을 위할 생각은 더더욱 없지.’
카릴은 입꼬리를 올렸다.
‘기대해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