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83)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83화(183/497)
145. 황궁에서 (2)
장내는 혼돈의 도가니였다.
청천벽력 같은 카릴의 말에 공작들을 비롯한 대신들 모두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총기사단장인 벨린 발렌티온마저 넋이 나간 얼굴로 화를 내지도 못한 채 크웰을 바라봤다.
하지만 크웰 역시 카릴의 행동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에 놀라긴 매한가지였다.
‘카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 게냐. 루온 황자가 3황자님을 독살했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루온은 세 명의 황자 중 가장 먼저 남부로 향했다. 그리고 최근 장례식이 있기 전까지 황궁에 없었기에 3황자와의 접점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출병을 하기 전에도 크로멘의 건강이 나쁘지 않았다는 건 모든 대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궁내에서 일어났을 가능성도 적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웰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부 이후 크로멘과 접점이 있는 사람은 루온이 아니라 올리번이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그 누명을 그가 모시는 올리번이 뒤집어쓸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크웰은 그저 이 상황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왜 그러느냐.”
그는 자신의 옆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마르트의 안색을 살피며 나직하게 물었다.
“아, 아닙니다.”
유난히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은 그를 보며 크웰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카릴이 마르트를 이 재판에 참석시키길 원했던 걸까. 그의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하는 것도 아닌데…….’
전날 재판이 있기 전에 크웰이 마르트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지만 자신 역시 카릴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럴 수밖에.
마르트 역시 그가 크로멘의 독살에 관한 얘기를 꺼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한 베스탈 후작령에서부터의 고민을 말이다.
“증거는? 네가 말한 이야기는 이제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자칫 거짓이라면 그 목으로도 갚을 수 없는 죄일 터.”
황제는 소란스러운 홀에서 조용히 말했다.
그는 아직 카릴의 계획이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만약 카릴이 실수라도 한다면 이번 기회에 그에게 목줄을 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듯했다. 그는 만일의 경우까지 놓치지 않았다.
피이이이이잉—!!
그때였다.
대답 대신 태양홀 밖에서 마치 비명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
모두가 깜짝 놀라 고개를 황급히 돌렸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흑철석과 적명석을 가루로 내어 폭발시키면 저렇게 폭음이 납니다. 바로 그 소리입니다”
카릴은 창밖을 바라보는 대신들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살상 효과는 없습니다. 마도 시대엔 아이들의 장난감으로도 쓰였다고 하더군요. 아, 박식하신 궁정 마법사께서는 아마 아실 듯싶습니다.”
카릴은 넉살 좋게 붉은 로브를 입고 위엄 있게 서 있는 카딘 루에르를 향해 말했다.
“흥…….”
단지 장내를 환기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카딘은 카릴의 말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예사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소년이 이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완급을 조절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음에 놀랄 따름이었다.
“저기 연기가 보이십니까? 북부 산맥입니다. 신호를 보아하니 아마 성공한 듯싶습니다.”
“성공?”
황제는 이제 이 상황을 즐기는 듯 물었다.
“이번 일과 관련된 것이더냐.”
“물론입니다, 폐하.”
“흐음……. 그래, 무엇을 준비했는지 보도록 하지.”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1황자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인 장난감이라 생각했다.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이참에 조금 더 루온의 목을 쥘 수 있다면 좋을 것이며, 혹여 반대되는 상황이 되더라도 카릴에게 죄를 물을 수 있을까.
‘발칙한 녀석…….’
황제는 당돌한 카릴이 썩 마음에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오히려 두 황자보다 더 위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직감했다.
“제가 포로들을 이송하는 과정에서 지금은 쓰지 않는 구제국의 길을 이용했다는 것은 폐하께서도 아실 겁니다. 아, 물론. 제가 알고 있는 지리 정보는 이번 일이 끝난 뒤 모두 제공할 예정이오니 방위사령관께서는 너무 잡아먹을 듯 절 보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크흠…….”
카릴의 말에 흑기사단의 단장인 카이신이 헛기침을 했다.
그는 크로멘의 장례를 기리기 위해 카릴이 쏘아 올린 4만의 불화살 때문에 며칠 동안이나 곤욕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화르르륵……!!!
카릴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맹렬한 불꽃이 그의 팔을 감싸고 피어올랐다. 몇몇 귀족들은 그 모습에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카릴은 아무렇지 않은 듯 화살이 쏘아졌던 방향이 있는 곳을 향해 화염구를 쏘아 올렸다.
팟-!!
그 순간,
화살 하나가 날아와 카릴이 있는 자리 바로 아래에 박혔다.
“저…… 저런……!”
“이곳이 어디라고 화살을……!!”
대신들은 그 광경에 여전히 으르렁거리듯 말했지만 누구 하나 그의 행동을 제지하는 자는 없었다.
“흐음.”
화살은 수십 킬로미터가 떨어진 북부 산맥에서 쏘아진 것과 달리 무척이나 가까운 곳에서 날아온 듯 보였다.
“…….”
소리치는 대신들과 달리 기사들은 촉이 없는 화살임에도 불구하고 대리석 바닥에 정확히 박혔다는 것에 주목했다.
화살대엔 쪽지 하나가 달려 있었다.
카릴은 그것을 읽고는 다시 홀 안으로 들어와서는 말했다.
“미명(未明). 안개강아지풀과 잿가루잎 그리고 말린 눈물이끼를 갈아서 섞은 다음에 1년간 응달에서 썩힌다. 그다음 부족의 비약을 넣어 다시 1년간 양달에 말린 뒤 물에 섞으면 무색무취의 극독이 만들어진다.”
“…….”
그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릴 때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하나 유일한 단점이라면 다른 것과 섞을 수 없으며 오로지 미명 자체만을 써야 하는데 미명은 육안으로도 마법으로도 확인했을 때 물과 전혀 다를 바 없기에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카릴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대량의 미명을 단시간에 섭취했을 때는 몸 전체에 힘이 빠지며 몸속 혈액이 역류하여 더 나아가 전신의 구멍에서 피를 토하게 된다.”
대신들은 미명의 증상을 들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반대로 소량을 오랜 시간 복용하면 미명이 뇌에 침투하게 되면 사고 능력이 저하되며 이따금 기억을 잃기도 하지만 그 변화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그 순간,
조금 전 크로멘의 증상과 동일한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무표정이었던 황제의 얼굴이 굳어졌다.
‘역시…….’
카릴은 그 찰나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 상태로 계속 미명을 복용하게 되면 뇌에 피가 쏠리게 되어 처음에는 눈이 충혈되고 그다음엔 입술이 마르며 식도를 타고 혈흔을 뱉게 되는 순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꿀꺽-
누군가 긴장 가득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결과적으로 그 끝은 동일하니 양을 늘리게 되면 섭취하는 순간 죽게 만들 수도 아니면 천천히 말려 죽일 수도 있는 지독한 독이다. 아니, 미명은 단순한 독약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상대를 죽일 수 있게 만드는 살해 도구다.”
카릴은 쪽지를 읽자마자 구겨 바닥에 던지고는 말했다.
“폐하, 하루의 말미를 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이 독을 다루는 잔나비 부족을 이곳에 대령하겠나이다. 이후에 모든 것을 소상히 밝히겠습니다.”
웅성- 웅성-
대신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카릴은 확신에 찬 얼굴로 황제를 바라봤다.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되겠지. 어디서 많이 본 증상이니까. 타이란 슈테안. 치사하게 혼자 이 무대를 즐기기만 하면 안 되지. 이 안에 있는 황가의 핏줄 중에 내가 여유롭게 놔둘 놈은 아무도 없어.’
뱀 같은 황제는 미명의 중독 상태가 자신이 겪었던 증상과 비슷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으니 쉽사리 단정 짓진 못할 터.
그렇기 때문에 잔나비 부족을 데려오겠다는 카릴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
타이란 슈테안은 굳은 얼굴로 루온을 바라봤다.
형제간의 싸움은 상관없다.
황위란 그만큼 피와 시체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것이니까.
그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 검이 형제가 아닌 그에게 향한다면 달라진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범인이 정말로 아들인 루온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아들은 맞지. 하지만 첫째가 아니라 둘째지만.’
카릴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 * *
“카릴.”
늦은 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카릴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구나. 저택에서 본 뒤로 처음이로구나.”
“잘 지내셨습니까, 형님.”
“평생이 지나도 네가 날 형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르긴 흘렀나 보구나.”
“저희가 이렇게 황궁에서 만난 것만 하더라도 많이 변하긴 했지요.”
마르트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으냐.”
“네. 이런 방이면 호사를 누리는 것이죠. 다행히 폐하의 배려로 감옥에 가지는 않았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카릴은 피식 웃었다.
태양홀에서 있었던 재판은 카릴의 요구대로 하루가 더 이어졌다.
황제는 루온과 카릴을 격리시켰으나 황자에 대한 처우를 위해 저번과 마찬가지로 감옥이 아닌 별궁에 가두었다.
‘오늘 같은 날 날 찾아온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해야 하는 일인데…….’
카릴은 마르트를 바라봤다.
‘청기사단 소속인 그는 마음만 먹었다면 어젯밤 아버지와 함께 나를 찾아 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일부러 피한 것일 테니까.’
이유?
간단하다.
자신을 피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인 크웰 맥거번을 피하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울 거야. 마르트는 지금 올리번을 지지하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것이.’
그렇다고 자신이 가진 진실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할 용기도 내지 못한다.
‘크로멘이 죽은 지금 올리번에 대한 의혹은 커졌지만 그 의심을 얘기하는 순간 아버지와 적대가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할 터.’
장남으로서 마르트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릴은 마르트를 바라봤다.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오늘 날 찾아온 것이겠지. 오늘뿐이니까. 크로멘을 죽인 진범으로 그는 올리번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내가 범인으로 루온을 지목했으니. 그것도…… 자신이 의심하던 독살의 증거까지 정확히 내세워서 말이야.’
머뭇거리는 마르트를 향해 카릴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형님께서는 기사 서임을 받은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나 말이냐. 성인식을 치르고 나서 바로 기사가 되었으니……. 4년이 되었구나.”
“기사 서약도 하셨겠군요.”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나. 왜? 제국 기사에 관심이 있느냐. 대부분은 성인이 되고 나서 기사가 된다지만……. 란돌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네 공이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것이다.”
마르트는 그렇게 말하다가 결국 입을 다물고 말았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랬겠지.
하지만 이번에 이런 엄청난 사고를 터뜨리고선 제국의 기사는커녕 살아남기만 해도 다행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기사엔 관심 없으니.”
카릴은 마르트의 대답에 고개를 저었다.
제국의 기사?
웃기는 소리였다.
다시는 누구의 아래에 있지 않을 것이다.
“단지……. 우연히 서약의 비문에 꽤나 멋진 말을 보아 기억에 남아서 여쭈어 봤습니다.”
“…….”
그 한마디의 마르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꿀꺽-
목젖이 움직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릴 정도로 마르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니다. 아무것도…….”
그는 결국 이렇다 할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 재판에서 보자꾸나.”
그때였다.
카릴은 나가려는 마르트의 등에다 낮은 목소리로 한 문장을 읊조렸다.
“율라(Yula)에 맹세하노라. 나는 오직 신이 허락하는 진실 된 명예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다.”
기사의 서약.
자신 역시 전생에 했던 약속.
억겁의 시간 동안 파렐을 거슬러 오며 다시는 말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그 말을 내뱉으며 카릴은 쓴웃음을 지었다.
가장 원망에 마지않는 신에게 바치는 맹세.
“형님.”
카릴은 문 앞에 멈춘 마르트를 향해 말했다.
“참 멋진 말이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