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86)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86화(186/497)
146. 재판 (2)
“재밌는 짓을 했구나. 하지만 결과가 나쁘지 않군.”
재판은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황제는 본궁으로 카릴을 불러들였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둘만 남게 되자 황제는 그제야 갑갑한 듯 제복의 단추를 거칠게 풀고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이동 마법진을 통해서 녹기사단이 피아스타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나절이면 충분할 터. 그 시간 동안 양쪽 대신들이 머리를 굴리겠지.”
그는 마치 남 일처럼 찻잔에 담긴 달큰한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말했다.
“이제는 물도 마음 편히 마시지 못하겠군. 안 그러냐.”
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황제가 카릴을 바라봤다.
“어차피 귀족은 물을 마시지 않지 않습니까. 향이 나지 않는 물을 마시는 건 평민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그에게 황제는 끌끌- 하며 혀를 차듯 웃었다.
“꼭 그렇지도 않아. 난 물을 마신다. 네 말대로 귀족들은 쓸데없는 것에서까지 평민과 자신을 나누려고 하니 그런 말이 나왔지만…….”
“그런 것에 개의치 않으시다는 말씀이십니까.”
의외라는 표정으로 카릴은 물었다.
“독을 가진 찻잎은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으니까. 내 아비이자 전 황제께서도 차에 든 독을 먹고 죽었지.”
“그래서 차가 아닌 물을 드시는 겁니까.”
“글쎄.”
애매한 그의 대답에 카릴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로군. 아비가 차를 마시지 않으니 물과 같은 독을 먹인 건가.’
“네게 한 가지 묻겠다.”
황제는 재판 도중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묻고자 카릴을 불렀다.
원칙대로라면 카릴 역시 다시 재판이 거행되기 전까지 독방에 있거나 루온과 같이 감옥에서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황제는 그를 둘 뿐인 본궁으로 불렀다.
물론 그런 황제의 행동에 누구도 반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판결을 내릴 사람은 한 명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황제의 심기를 건드리는 바보 같은 짓을 할 사람은 없었다.
“내가 미명에 중독되었던 것이냐.”
황제는 돌려 묻지 않았다.
이미 예상을 했던 것이기에 카릴은 오히려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폐하.”
“헤임에서 우리가 만났던 시기만 하더라도 네가 말했던 증상. 나 역시 그것과 똑같았다.”
“설마…….”
카릴은 아무것도 모른 척 물었다.
“루온 황자가 3황자뿐만 아니라 폐하까지 독살을 하려 했다는 것입니까.”
“그건 모르는 일이지. 정말 루온이 미명을 구한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니까.”
황제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태양홀에서는 루온을 몰아세웠지만, 이곳에서는 반대로 루온을 두둔했다.
‘조금 전에 피아스타로 보낸 기사단이 녹기사단이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역시나 녹록지 않은 상대다.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자신 이외에 누구 하나 유리한 위치에 서게 하지 않는 걸 보면.’
하지만 그런 상대 앞에서 카릴 역시 이미 루온 다음 목표로 누구를 세워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황제와 올리번 중에 자신의 상대로 누구를 남겨 둘지 말이다.
“폐하께서 미명에 중독되었었다니……. 거기까지는 저도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괜찮다.”
“화룡의 거처에서 얻은 풀이 도움이 되었나 보군요. 건강을 되찾게 되신 것은 폐하의 천운이 따르신 것이겠지요.”
황제는 카릴의 말에 옅게 웃었다.
“클클클, 너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가당키나 한 일이겠느냐. 게다가 너는 내게 4만의 병사를 돌려주었고 귀족의 지지를 받던 루온의 힘을 빼앗았지.”
그는 살짝 어깨를 들썩였다.
“너는 눈치챘겠지. 황궁에서 죄를 만드는 데 있어 증거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저 의심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재판의 결과는 이미 나왔다.
녹기사단이 레이지 남작의 비밀 장부를 가져오는 시점에서 1황자를 후원한 내역만 찾게 되면 끝이었다.
물론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황제가 루온의 힘을 약화시키고자 마음먹은 지금 그 반박은 먹힐 수 없었다.
무죄를 증명할 증거 역시 없기는 매한가지였으니까.
‘죄가 없는 자이니 죄가 없음을 증명할 수 없지.’
모순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황제의 앞에서 그것을 잡아낼 용기를 가지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이걸로 만족하시지 못하시겠지요.”
카릴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원하는 것은 완벽한 증거가 아닌 완벽한 결말이다.”
황자는 한 명이 아니었으니까.
처음 그를 독대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카릴은 말했다.
“첫술에 어찌 배부를 수 있겠습니까, 폐하.”
“검을 뽑았으면 끝을 봐야지.”
카릴의 말에 황제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크로멘은 그렇다 쳐도 내게 독을 먹인 자가 꼭 루온이란 보장은 없으니까.”
욕망에 있어서만큼은 혀를 내두를 사람임은 확실했다.
카릴은 어째서 올리번이 루온을 처리하기 이전에 황제부터 처리하려 했는지 이해가 갔다.
‘올리번, 한편으로는 네가 대단하다 느껴지는군.’
혹시라도 언젠가 이 일을 그와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떻게 이런 자에게 독을 먹였는지 말이다.
“현재 황가의 균형이 깨어졌던 이유는 폐하의 병환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폐하께서 건강을 되찾으신 지금 자연스레 황권은 다시 폐하께 집중될 겁니다.”
“흐음…….”
“게다가 루온 황자가 3황자의 독살 혐의로 인하여 실권될 경우……. 2황자를 싫어하는 귀족들은 당연히 폐하께 힘이 되겠지요.”
카릴의 말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여전히 석연치 않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리고 카릴의 말이 이어지자 그제야 바라는 대답을 기대하는 듯 고개를 들었다.
“폐하의 말씀대로 검을 뽑았다면 끝을 봐야 하는 법. 지금 당장 2황자의 지지 기반을 무너뜨릴 수는 없으나 충분히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지?”
“두 황자의 기반은 전혀 다릅니다. 귀족들의 지지를 받는 1황자와 달리 2황자를 따르는 자들은 대부분 기사입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적기사단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경 수비를 맡고 있는 기사단들입니다.”
“잘도 알고 있구나.”
카릴의 말에 황제는 입술을 씰룩였다.
카릴은 일전에 피아스타에서 수안 하자르가 감금되어 있을 때 올리번의 옆에 자르반트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자르반트 레다크 백작.
적기사단의 단장이자 세 황자의 검술 교관인 그는 황실 친위대 중 유일하게 올리번을 따르는 기사였다.
금기사단의 벨린 발렌티온과 더불어 자르반트는 가장 오랫동안 제국을 받든 노기사였다.
하나 그 둘이 각각 다른 황자를 지지하는 것을 황제로서는 못마땅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충신이 갈라선 것이 못마땅한 것이 아니었다.
아직 자신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황자를 선택해 버린 그들의 불충이 그의 분노를 산 것이다.
“기사들을 견제하게 된다면 올리번 황자의 힘은 자연스럽게 약화될 것입니다.”
“어떻게? 려기사단은 당분간 구실을 못한다 하더라도 네 아비의 청기사단의 힘은 강력하다. 또한 등기사단 역시 루온을 지지하나 머저리 같은 단장 덕분에 실상은 올리번의 세력이지.”
황제는 거침없이 말했다.
어째서일까.
그는 공작들에게도 하지 못할 이런 이야기를 서슴없이 했다.
“간단합니다. 외부에 신경을 쓸 적을 만들면 됩니다. 기사의 본분은 나라를 수호하는 것. 청기사단이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일대의 몬스터까지 모두 토벌이 끝나 안전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안전이 오히려 내게는 독이 된다는 말이냐.”
카릴은 황제의 말에 옅은 웃음을 지었다.
“등기사단의 국경엔 남부의 야만족이 있으니 쉽게 움직이지 못할 터. 폐하께서는 청기사단의 움직임에 제약을 주시면 원하시는 바를 이루시게 될 것입니다.”
“일전에는 크웰을 내 곁에 두라 하지 않았더냐.”
“그건 1황자의 힘을 견제하기 위함이었으나 이제 그 힘이 다했으니 폐하께 집중시켜야 하겠지요.”
황제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카릴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카릴은 목표에 있어서 다른 누구에게도 사정을 두지 않고 거침없었기 때문이다.
“네 말대로 청기사단을 국경에 잡아 놓는다 하더라도 무슨 수로? 또다시 이단섬멸령을 내리란 말이냐.”
황제는 놀리듯 말했다.
“뭐, 크로멘을 위한 애도의 기간이라고는 하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더러운 이단들이 타락한 물건들을 제국에 들여놓아 3황자를 죽게 만든 것이니까.”
“…….”
카릴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폐하, 북부의 이민족 중에서는 율라(Yula)를 믿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엔 많은 감정이 실려 있었다.
“율라의 은총이란 마력이다. 북부인과 남부인들은 신조차 버린 족속들이다. 타투르에 있는 너라면 알 텐데. 특히 남부의 야만족들은 주술이란 괴상한 짓거리를 하는 걸.”
하지만 황제는 카릴의 말을 비웃었다.
북부의 이민족은 남부의 야만족들과 달리 정령이나 주술을 숭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유일신인 율라를 믿는 자들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태어날 때부터 마력이 없다는 이유로 북부인들을 이단이라 칭했다.
화르르륵……!!
그때였다.
카릴은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손등에 박힌 아인 트리거가 붉게 변하며 뜨거운 화염을 내뿜었다.
“그럼……. 저 역시 이단입니까, 폐하.”
마치 참았던 물음을 토해내듯 카릴이 타이란 슈테안을 향해 말했다.
자신의 힘이 율라의 마력이 아닌 정령왕의 능력이라는 것을 공표한 그였다.
“다르지.”
황제는 마치 어린아이의 치기를 보는 것처럼 카릴의 말에 피식 웃었다.
“네 정령의 힘은 이단이 아니라 신의 은총이지. 너 역시 마력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저기 북부의 쓰레기들과는 다르지.”
“…….”
카릴은 입술을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황제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었다.
[너는 왜 싸우지?]그 순간,
마치 알른 자비우스가 마지막으로 했던 물음이 들리는 기분이었다.
“후…….”
카릴은 들리지 않게 낮은 숨을 토해냈다.
울컥하는 마음에 지금껏 준비한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 수 없는 일이다.
“청기사단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지? 생각해 둔 것이 있을 텐데.”
“폐하.”
차가워진 얼굴로 카릴은 담담하게 말했다.
“피아스타를 제가 가지겠습니다.”
그 순간,
“크…… 크크크……!!”
황제는 카릴의 말에 뒤로 젖혀질 듯 웃었다.
“네가 레이지 남작의 목을 비튼 이유를 이제야 알겠군. 그 도시가 탐났더냐.”
“…….”
“하지만 불가능하다. 네 공은 크긴 하나 그렇다고 너에게 그 큰 도시를 맡긴다면 대신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터.”
“저 역시 제국의 이름으로 피아스타를 거저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곳은 그곳대로 그냥 두시면 됩니다.”
카릴의 말투에 황제의 뺨이 씰룩였다.
“그럼?”
그는 품 안에서 양피지 하나를 꺼냈다.
언령 서약서.
황제는 그것을 바라봤다.
“제가 원하는 것은 타투르의 독립입니다.”
“흐음…….”
놀랄 것이라고 예상했던 황제는 의외로 카릴의 말에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카릴이 건넨 서약서를 살폈다.
“이미 그곳은 독립 도시이지 않느냐. 대륙 3강의 중심의 자유도시로서 3강의 세력들은 구도를 맞추기 위해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이니 말이야.”
황제는 카릴의 서약서를 가볍게 흔들면서 말했다.
“도시가 아닌 국가라…….”
그는 마치 시답잖은 일이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왕이라도 되고 싶은 게냐.”
자유도시 타투르.
제국의 입장에서는 작은 도시지만 그 위치가 언제나 걸림돌이 되었다.
대륙을 관통하는 포나인 강의 중앙에 있는 이곳은 위로는 제국이, 강을 따라 서쪽에는 공국이 그리고 남쪽에는 이스트리아 삼국으로 갈 수 있는 교두보로서, 만약 이 도시가 어디에라도 넘어가게 된다면 3강은 타투르를 되돌려 놓기 위한 전쟁을 불가피하게 치르게 될 것이다.
‘카릴 맥거번.’
게다가 어린 나이지만 이미 타투르의 주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크웰의 양자이다.’
올리번을 지지하고 있다고는 하나 제국의 충신인 크웰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절대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왕이 되고 싶은 욕심은 어린 사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지.”
그는 카릴을 향해 말했다.
“다만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바로 타고난 난세의 재능에서 결정짓게 되는 것.”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투르가 독립 국가가 되면 공국과 삼국은 더욱더 중앙을 치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자유도시로 놔두는 것이 아닌 제대로 된 통치자를 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더욱이 그자가 크웰의 아들이라면 제국의 입장에선 타투르를 다루기 더 쉬워질 터.’
황제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골칫거리였던 도시까지 제국이 흡수할 수 있는 기회가 될지 모른다.’
설마 자신의 아비가 있는 제국에 반기를 들겠는가.
‘자유도시 하나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별것 아닌 당근을 던져 주고 오히려 더 큰 화근이 될 수 있는 녀석을 다룰 수 있다면 이득이겠지.’
황제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타투르를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어차피 지금과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게 어째서 피아스타에서 청기사단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되는 것이지?”
“그곳에 라바트 길드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타투르의 관리자 중 한 명인 캄마가 운영하는 라바트 길드엔 각종 부족이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을 통해 피아스타는 더욱더 밀거래에 대한 감시가 심화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피아스타의 밀수입 단속을 북부 경계를 맡고 있는 청기사단에게 일임하시면 될 것이옵니다.”
“차라리 네녀석들의 길드를 없애 버리면? 라바트 길드가 결국 문제이지 않느냐.”
황제의 말에 카릴은 옅게 웃었다.
“귀족들의 욕심이야 끝을 알 수 없는 법. 약소국인 이스트리아 삼국조차 자신의 배를 채우기 바쁘니 라바트가 없다면 더 한 방법으로 그들의 밀거래는 계속될 것입니다.”
“…….”
“독을 두어 더 위험한 독을 막듯이 라바트 길드가 없어지면 제국의 폐해는 더 심해질 것입니다. 차라리 그들을 두시고 적당히 청기사단의 시선을 빼앗는 것이 폐하에게 득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 길드를 네가 다룰 수 있으니 말이냐.”
“물론이옵니다.”
“모든 일에는 명분이 있어야 하는 법. 그렇지 않다면 힘이 있다 한들 역사는 그저 한낱 무뢰배로 기억할 뿐이지.”
황제는 카릴의 말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라면 무법 도시가 아닌 한 나라의 왕이 되어야지.”
쿠웅-
황제의 인장이 찍히는 소리가 궁 안에 울려 퍼졌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보는 눈이 되어 있구나. 납득할 만한 이유를 내게 보였으니 말이야.”
타이란 슈테안이 카릴을 바라봤다.
‘어차피 내전 중인 공국은 크게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공작가의 1, 2위인 프란과 튤리는 누가 공국의 왕이 된다 한들 거래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이스트리아 삼국은 이미 내게 포섭되어 있는 상황.’
하지만 그런 칭찬 따윈 관심 없다는 듯 카릴은 그저 황제가 들고 있는 서약서를 바라볼 뿐이었다.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저것을 얻기 위해 이런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인가 싶을지 모르지만 황제의 말처럼 명분이란 중요했다.
‘제국을 무시하고 타투르를 독립시킨다면 제국이 향했던 남부의 화살이 타투르에 쏠릴 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직은 제국과 전면전을 벌일 순 없었다.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싸운다면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후 신탁 전쟁에서 싸울 사람이 없어진다.
‘하나씩 하나씩. 느리지만 확실하게 제국의 인재들을 살려 내 것으로 만든다.’
그게 카릴의 큰 그림이었으니까.
“……하여 제국은 타투르를 독립 국가로 인정한다.”
황제가 양피지 안에 적힌 긴 서약문을 모두 읽고 나자 맹약의 마법이 발동하며 양피지 위로 옅은 금빛이 흘러나왔다.
“이로써 너와 나의 거래도 끝이군.”
“이제 시작이지요.”
“클클……. 녀석.”
황제는 이 거래가 만족스러운 듯 피식 웃었다.
카릴은 그런 황제를 바라보며 태양홀에서 생각했던 계획을 다시 떠올렸다.
‘명분. 그래, 중요하지. 타이란 슈테안, 당신 말대로 이제 나는 이단이란 오명 아래가 아닌 타투르의 왕으로서 정당한 명분으로 황제의 목을 벨 수 있게 되었다.’
꽈악-
서약서를 쥔 카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