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89)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89화(189/497)
148. 타투르에서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제국이 난리가 난 모양이던데요.”
카릴은 두샬라의 말에도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며 그저 서 있었다.
그는 오랜만에 돌아온 타투르의 풍경을 감상했다.
생각해 보면 전생에는 이렇다 할 자신의 집이 없었다.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집이 아닌 돌아갈 수 있는 곳.
동료가 있는 그런 장소.
굳이 따지자면 전생의 동료라면 신탁의 10인이겠지만 파렐을 오르기 직전까지 그들과 함께했던 곳은 그저 피비린내가 그득한 전장뿐이었다.
“왜 그러세요?
“아냐. 아무것도.”
두샬라는 자신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있는 카릴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그냥 좋아서.”
카릴의 대답에 순간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뭐, 뭐예요?”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뒷걸음질 치다가 탁자에 발등이 찍힌 그녀가 찌릿한 통증에 그만 비명을 질렀다.
“……꺅!!”
“푸하하, 바보 같긴. 정신을 어디 다 두고 다니는 거야?”
“…….”
수안이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그러자 에이단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넌 아무래도 평생 혼자 살 거 같다.”
“음? 내가 왜?”
“아니다.”
에이단의 말에 수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주위를 둘러봤지만 방 안에 있는 사람 중에 누구도 이렇다 할 대답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이스트리아 삼국 상황은 어때?”
“이제 정말 제국엔 신경 안 쓰시나 봐요?”
두샬라는 정리해 둔 서류를 카릴의 앞에 건네며 말했다.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제국은 이제 그냥 둬도 알아서 안에서부터 썩을 테니까.”
“내분의 시작이란 말씀이시군요.”
카릴은 그녀의 말에 옅은 웃음을 지었다.
‘판은 깔아줬어. 이제 말을 움직이는 건 내가 아니라 스스로니까. 결코…… 휘둘리지 마라.’
그러고는 그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 * *
콰앙……!!! 쨍그랑……!!!
지금까지 언제나 조용했던 본궁에서는 며칠째 요란하게 깨지는 소리만이 들렸다.
복도 밖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시종과 하녀들은 그저 집기들이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소리에 창백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비키게. 들어가 볼 테니.”
“재…… 재상님!”
하인들 사이에 있던 시종장은 복도 끝에서 들린 목소리에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사람들을 모두 물리게. 자네들 잘못이 아니니.”
“죄…… 죄송하옵니다.”
시종장은 황급히 하인들에게 손짓을 하며 내보냈다.
“후우…….”
복도가 조용해지자 재상 브린 이니크는 며칠째 밤을 새운 탓에 주름이 한층 깊게 팬 얼굴로 문 앞에서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 한 순간에 모든 게 엉망이 되어 버렸다.
특히나 자신이 지지했던 제1황자는 지금 그를 지지하던 귀족들이 유배지로 쫓겨나 줄이 끊어진 연처럼 힘없는 상황이었다.
‘정신 차려라. 이럴 때일수록 내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황자의 일은 황자의 일일 뿐이다.
황제가 존재하는 한 황자들 간의 다툼은 그저 다음의 일일 뿐.
후대의 싸움이야 제국이 존재해야지만 성립되는 일이었으니까.
‘일단 제국부터 안정시켜야 한다.’
꽈악-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그리 생각했지만 브린 이니크는 문고리를 잡은 손을 쉽사리 돌리지 못했다.
‘용서치 않겠다…….’
갑자기 나타나 모든 것을 뒤엎어 놓은 카릴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 역시 황제처럼 집히는 대로 전부 던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폐하.”
그는 이를 악물며 본궁 안으로 들어갔다.
“……!!”
문을 열자마자 서슬 퍼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황제의 눈빛에 브린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하고 말았다.
“아아……. 브린 경, 그래 마침 잘 왔네.”
“……예?”
황제의 말에 다짐을 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브린은 오히려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크웰 맥거번. 그자의 저택이 에시르가의 영지에 있다고 했었지?”
황제는 분을 삭이지 못해 얼마나 입술을 깨물었는지 여기저기 갈라진 상처 사이로 피가 고여 있었다.
“아, 네……. 그렇사옵니다.”
마치 생간이라도 씹어 먹은 것처럼 입가에 지저분하게 핏물이 묻어 있는 모습이 꼭 흡혈귀를 보는 기분에 브린은 눈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크웰의 양자가 몇이랬지?”
“적자인 마르트를 제외하고 모두 다섯인 줄 아뢰옵니다. 그중 둘째인 티렌 맥거번은 현재 아카데미의 수련생으로 있으며 넷째인 란돌은 려기사단 소속으로 현재 행방불명입니다.”
“그래? 그것참……. 안타깝군. 양자라고는 하나 아비 된 입장으로 아들의 생사도 알지 못하니 말이야.”
황제는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브린 이니크. 자네도 알 거야. 황자들이 내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걸. 자네도 꽤나 곤욕이겠어. 내가 루온을 그리했으니 말이야.”
“황공하옵니다…….”
“하나 황제의 자리란 그런 거지. 내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내 자리를 탐할 적이 될 것이라는 걸 말이야.”
“…….”
“내 아비도 그랬겠지. 이 자리에 앉아보니 알겠더군. 나 역시 똑같았으니 말이야.”
1황자가 아닌 황제가 형제들을 밟고 이 자리에 올라섰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더욱이 그 역시 전 황제의 목을 스스로 베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디 열 손가락 중에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는가. 오로지 황좌만을 바라보는 그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클클…….”
자조적인 웃음.
이런 상황에서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브린 이니크는 떨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나름 두 아이가 경합을 벌이는 것을 보는 게 싫지만은 않거든.”
“황공하옵니다…….”
“그런데 말이야.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으나 그게 곪아 썩었다면 깨무는 게 아니라 아예 잘라 버려야지.”
제국의 역사는 피로 일구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복왕 타이란 슈테안은 비록 노쇠하였으나 전 황제처럼 쉽게 자리를 내어줄 위인은 아니었다.
“아이들의 재롱은 봐줄 수 있어도 내 목을 죄려는 녀석들은 그냥 둘 수 없지. 그게 내 아이든 남의 아이든 말이야.”
황제는 차갑게 말했다.
“그럼 크웰의 저택엔 지금 셋째와 다섯째가 있겠군.”
“아마도…….”
“셋째와 다섯째 손가락도 똑같이 아프겠지.”
“지,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브린 이니크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했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충성스러운 제국의 기사라면 본디 받드는 왕의 아픔을 함께해야 하지 않겠는가.”
“…….”
“선택권을 줘야겠지. 셋째와 다섯째……. 그리고 마지막 손가락 중에 과연 뭐가 더 아플지 말이야.”
황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크웰 맥거번을 불러오게.”
* * *
“이 보고가 맞아?”
두샬라에게서 받은 보고서를 읽던 카릴은 헛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말도 마세요. 지금 마광산에서 6각석을 채취 가능하게 되었잖아요. 칼립손이 있었다면 6각석을 쉽게 세공했을 텐데 그의 부재 때문에 한동안 판매를 금지했었죠.”
“그렇지.”
카릴은 노움국의 마지막 핏줄을 찾기 위해 떠났던 노움 세공사 칼립손을 떠올렸다.
벌써 그가 타투르를 떠난 지 2년이 훌쩍 지났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지금쯤이면 녀석을 만났을 것 같은데…….’
그는 칼립손에게 호위를 붙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때로는 스스로 해야만 하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칼립손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자신이 필요한 것은 노움 1명이 아닌 노움국의 힘이었으니까.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세워진 나라는 또다시 멸망의 길을 걷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칼립손, 그 노인네가 쉽게 죽을 위인은 아니니 조금 더 기다려봐야지.’
전생의 그를 떠올리면서 카릴은 마음을 다잡았다.
“공급이 중단되니까 당분간 상위의 속성석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거죠. 머리 나쁜 인간들이 또 그런 건 빨라 가지고…….”
“서로 동급의 속성석을 가진 지금이 전력상 가장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 거군.”
“맞아요.”
‘나 참……. 그렇다고 마광산 때문에 결국 전쟁이 터지다니. 하여간 멍청한 인간은 변하지 않는군.’
카릴은 두샬라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전생이나 현생이나 똑같네. 결국 마광산 때문에 스스로 자멸하게 생겼으니 말이야.’
“삼국 모두 전쟁 중인 건가?”
“그건 아니에요. 이스탄하고 트바넬이 지금 영지전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전쟁으로 커진 건 아니지만 국경에 있는 귀족들이 슬슬 마찰이 있나 봐요.”
“흐음.”
“속성석 때문에 올라간 전력을 써보고 싶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그 나라들이 멸망하지 않고 있는 게 신기합니다.”
“쓸데없는 짓을 하긴……. 그런데 이스탄과 트바넬이라……. 노인네들의 속이 뒤집어지겠군.”
기껏 트윈 아머에서 고군분투를 하여 제국의 침공을 막아 냈는데 오히려 내부에서 이렇게 난리를 치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뭐, 이참에 이스탄의 방패가 우리 쪽으로 넘어 와주면 고마운 일이죠.”
“그 고집 센 양반이? 쉬운 일은 아닐걸.”
마치 마르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투로 말하자 두샬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속 터져서 죽는 것보단 그래도 전장에서 죽는 게 낫지 않겠어요?”
“크큭.”
그녀의 말에 에이단이 피식 웃었다.
“하긴. 그 말도 일리는 있네. 어차피 이스탄과 트바넬에서 얻을 만한 전력은 그 둘이니까. 일단 삼국 쪽은 좀 더 놔둬도 되겠어.”
“당분간은 제국이 급습할 일은 없으니까요.”
“맞아.”
카릴의 생각을 읽은 듯 두샬라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지. 전생에서도 그 둘은 결국 이스트리아 삼국과 함께 유명을 달리했으니까.’
오랜 세월 충성을 바친 충신들이었기에 쉽게 돌아서진 않겠지만 만약 그 둘을 얻게 된다면 분명 큰 힘이 될 것이다.
‘그 둘이라면 오합지졸인 이스트리아의 군사들을 한층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왕을 따르지 않기 위해 정계를 포기한 깨어 있는 젊은 인재들까지 등용할 수 있을 테니까.’
카릴은 펼쳐 놓은 지도에 두 왕국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펜리아 쪽은?”
“그쪽도 그쪽대로 꽤나 난리던데요. 아시다시피 펜리아 왕국은 왕자 없이 왕녀만 세 명이잖아요.”
“그렇지.”
“얼마 전이었을 거예요. 3왕녀인 비올라가 독립을 선언했거든요. 판피넬 가문을 기반으로 스스로 독자적인 노선을 걷겠다고 했습니다.”
카릴은 두샬라의 보고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독립을 했다는 말은 비올라 왕녀가 판피넬의 영지에 거점을 두고 공작령을 만들었다는 말이야?”
왕가의 핏줄 중 왕을 제외한 나머지는 관례적으로 공작과 동등한 힘을 가진다.
이따금 왕위를 물려받지 못한 왕자 혹은 왕녀 중에 공작의 직위를 주어 왕국을 통치하는 데 기여하도록 했던 사례도 있었다.
물론,
이러한 일은 극소수에 불과할 뿐 왕권쟁탈이 끝나고 나면 혹시라도 있을 위험에 대비해 모두 죽이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표면상으로 따지면 그렇겠네요. 1천 명도 되지 않는 사병을, 공작령이긴 하지만 말이죠.”
그런 상황에서 비올라가 공작령을 선포했다는 것은 펜리아 왕국과 전면적으로 갈라서겠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했다.
“흐음……. 승산이 있다고 봐?”
푸드드득……!!
그때였다.
집무실의 창가로 전서구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왔다. 발목에는 푸른색 끈으로 묶인 쪽지가 달려 있었다.
무법항에서 온 보고였다.
두샬라는 쪽지를 펼쳐 읽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승산이 있는지는 당사자께 직접 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음?”
그녀는 쪽지를 카릴에게 건네며 말했다.
“무법항에서 판피넬 공작령의 비올라 왕녀가 주군을 뵙길 청하고 있다네요.”
“지금? 아무래도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군.”
카릴은 그녀의 말에 피식 웃었다.
“여기서 주군을 기다린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어요. 다 좋은데 한눈팔지 마시고 똑바로 하시고 오세요.”
“내가 무슨 한눈을 팔아?”
그러자 그의 말에 두샬라는 그저 콧방귀를 뀌며 카릴의 등을 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