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9)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9화(19/497)
17. 계획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보내지 못하겠지.’
어둠 속에서 카릴의 눈빛이 빛났다.
‘아무리 아버지라도 이민족인 나를 황도로 보낼 수는 없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모두가 잠든 밤.
수천 마리의 고블린을 소탕한 병사들은 곯아떨어져 있었다.
깨어 있는 사람은 경계를 서고 있는 몇몇 병사들이 전부.
‘이미 다른 방법을 생각해 놨으니까.’
“충성!”
카릴은 어렵지 않게 마차 위에 만든 임시 감옥으로 들어왔다.
아니.
오히려 병사들은 존경의 눈을 담아 그에게 경례했다. 카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창살 안쪽에 쓰러져 있는 술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따금 몸을 부르르 떨 뿐이었다.
카릴은 어렵지 않게 보초를 지나 들어 올 수 있었다. 전투에서 보여준 그의 무용은 이미 병사들의 머릿속에 각인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첩자에 대한 보고가 먼저 황궁에 전해지겠지. 아마 국경을 지나 북쪽으로 이동하시기 전에 아버지께서 저택을 들리실 거다.’
“일어나.”
그는 철창 안을 바라봤다.
‘오히려 아버지가 저택에 도착하고 나면 귀찮아진다. 그전에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
크웰이 없는 지금 카릴의 행동을 알아차릴 실력자는 이곳에 없었으니까.
“…….”
그는 손바닥 안에 쥐고 있는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베이커.”
카릴이 쓰러져 있는 고블린 술사의 이름을 불렀다.
쿵-!!
“흐익……!?”
카릴이 철장을 가볍게 흔들자 녀석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를 바라봤다.
가면 속의 눈빛이 번뜩였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 * *
“네가 한 말이 전부 사실이겠지. 베이커.”
“그렇소……. 제발…… 선처를…….”
힘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더 이상 반항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듯 로레인 공국의 술사인 그는 바닥에 쓰러진 채 울먹거렸다.
“이제 곧 저택이다. 아버지께서도 오늘 밤 돌아오시겠지. 그럼 넌 황도로 가게 된다.”
카릴은 창살에 기대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오랜만의 느끼는 숲 내음이 나쁘지 않은 듯 그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조용한 숲엔 이따금 벌레들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그곳에 가면 두 팔이 잘린 것 따윈 우스울 정도로 더 한 고문을 받을 거다. 고문 감독관인 모리스에 대해서 알고 있나?”
“…….”
“손톱의 모리스, 무슨 이상한 별명인가 싶겠지만 그자의 유일한 즐거움이 죄수의 손톱을 아주 조금씩 잘게 잘게 바늘로 구멍을 뚫는 거라던데.”
카릴의 목소리가 감옥 안에 울렸다.
“넌 팔이 없으니 모리스가 꽤 실망하겠지만……. 대신 발톱에다가 구멍을 뚫으려나.”
꿀꺽-
그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다음엔 살점을 하나하나 발라내고 그 안에 보이는 뼈에다가 자신의 이름을 새긴다고 하더군. 손톱을 뚫었던 바늘로 말이야.”
“…….”
“모든 걸 다 얘기해 봐야 네가 남은 건 지독한 고문과 고문 그리고 또 고문뿐이겠지. 죽을 때까지. 나중에 돼서는 차라리 자백을 한 걸 후회하며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
카릴은 손바닥을 펼쳤다.
옅은 마나가 응축되다가 사라졌다.
그의 손바닥에 들풀처럼 작은 풀잎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게 뭔지는 굳이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더 잘 알 터. 마력 족쇄가 채워진 네게 마법은 통하지 않지만 이건 분명 도움이 될 거다.”
창살 안으로 그는 작은 잎 하나를 바닥에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처를 바란다고?”
막사로 돌아가는 그의 마지막 말이 풀숲 사이로 나직하게 들려왔다.
“잘 생각해.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선처다.”
* * *
며칠 뒤.
와아아아아—!!!
와아아—!!
마을의 초입부터 영지민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티렌과 란돌은 그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제국의 보물들이십니다!”
“도련님들을 이렇게 뵐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박수갈채.
스스럼없이 백작의 아이들에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맥거번가(家)의 영지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저분이 그 소문의 여섯째이신가?’
‘그런데 왜 가면을 쓰고 계시지?’
‘글쎄…….’
영지 내에 카릴에 대한 소문은 이미 쫙 퍼져 있었다. 하지만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
영지민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그의 모습에 당황스러운 듯 소곤거렸다.
“허리를 펴라. 너 역시 맥거번가(家)의 아들이니.”
“그래, 네가 가장 큰 공훈을 세우지 않았더냐. 너야말로 선두에 서야 했는데.”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카릴을 향해 티렌과 란돌이 말했다.
그런 둘을 보며 카릴은 가볍게 웃었다.
‘전생과는 확실히 달라. 란돌이 살아남은 것이 과연 어떤 변화를 줄지 궁금하군.’
“상관없다.”
카릴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의 옆구리를 차며 좀 더 속도를 높이는 그를 바라보며 란돌은 고개를 저었다.
“건방지긴…….”
하지만 그런 그가 싫지는 않은 듯 보였다.
“란돌, 너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들의 이름이 황도에 알려졌을 거다. 폐하께서 우리를 황궁으로 부르실 수도 있다.”
“네?”
“그때도 그런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을 거냐. 너 역시 맥거번가(家)의 아들이라는 걸 명심해라.”
티렌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그의 말에 란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카릴은? 나는 그가 싸우는 걸 봤다. 카릴이 받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닌가?’
그나 앞서가고 있는 카릴을 바라봤다.
‘앞으로 너는 더욱 주목받겠지.’
뛰어난 재능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나타나는 법.
‘그러나 이민족이란 출신이 너를 붙잡을 거다.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란돌은 카릴의 자신감이 부러웠다.
그건 마르트의 도도함이나 티렌의 고고함과는 다른 무언가였다.
마치.
밑바닥에서부터 정상까지.
그 모든 것의 가치가 무의미하다는 듯 그는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도……. 너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하게 살아왔던 자신이었다.
평민의 아들.
그것이 마치 족쇄처럼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보다 더 험난한 삶을 산 이민족의 아이가 누구보다 먼저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꽈악-
고삐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처음으로.
조용한 그의 마음에 약하지만 분명하게 파문이 일어나고 있었다.
* * *
늦은 밤.
카릴은 집무실의 문을 두들겼다.
“백작님께서 찾으십니다.”
시종장인 테일러는 마치 도둑질이라도 하는 듯 은밀히 그를 불렀다.
“대단한 공을 세웠구나.”
황궁에서 돌아온 크웰이 굳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그를 바라봤다.
약 한 달 만의 만나는 재회의 기쁨보다는 그들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알고 있다.
크웰이 서둘러 저택에 돌아온 이유도.
그리고 오자마자 자신을 찾은 이유 역시.
“운이 좋았습니다.”
카릴은 그것이 익숙한 듯.
낮은 한숨을 내쉬면서 준비했던 대답을 꺼냈다.
“운을 잡는 것도 실력이지. 너는 단순히 첩자를 잡은 것이 아니라 형제들의 목숨도 살린 거다.”
저택으로 돌아온 크웰은 누구보다도 먼저 카릴을 찾았다.
“너의 대한 얘기는 황궁에도 이미 퍼졌다. 아마……. 황도에서 널 찾는 전갈이 올 것이다.”
“그렇습니까.”
잠시 뜸을 들이던 크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너를 황도로 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
카릴은 말없이 크웰을 바라봤다.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안타깝지만 아직 너의 태생을 황궁에 알릴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의 말에 카릴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하여……. 황궁에서 전갈이 온다면 티렌과 란돌을 보낼 생각이다.”
많은 고민을 하고 내린 결정이란 것이 아버지께서는 역력하게 느껴졌다.
그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나름의 배려도 느껴졌다.
‘어머니께서 서운해하시겠군. 솔직히 마르트를 보내도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뭐니 뭐니해도 가문의 대표는 장남이니까. 하지만 토벌에도 참가하지 않은 그를 대표로 보내는 건 아버지에겐 용납할 수 없는 일이겠지.’
“상관없습니다.”
카릴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이것은 황궁으로 갈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이대로 황궁으로 간다 한들 오히려 자신의 신분 때문에 문제가 될 게 틀림없었다.
‘내가 바라는 건 이런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