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92)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92화(192/497)
151. 소인배의 검
“우웁…….”
“속을 진정시켜주는 약입니다. 11월이 되면 포나인의 강물이 가장 포악해지니까. 건너오느라 고생했나 봅니다.”
두샬라의 보고를 받은 카릴은 타투르 도시가 아닌 무법항에서 마르트 맥거번을 맞이했다.
“포나인의 물살은 워낙 유명하니까요. 몇몇 솜씨 좋은 자들에게 조타술을 가르치긴 했는데 아직 손이 거친가 봅니다.”
“……괜찮다.”
우습게도 그는 강을 건넌 뒤에 멀미로 그대로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르트는 카릴이 건넨 약을 입안에 털어 넣고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조금 전에 펜리아 왕국의 비올라 왕녀가 찾아왔었습니다.”
“펜리아? 이스트리아 삼국 말이냐?”
“네.”
괜찮다는 말과는 달리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는 마르트는 왜 그걸 자신에게 말하는지 의아한 얼굴로 카릴을 바라봤다.
“타투르 안까지 잘 왔더군요. 토하지도 않고.”
“…….”
왕녀보다 못한 기사라는 말을 단번에 알아들은 마르트는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틀-
다리에 힘이 없어 일어서려던 그는 중심을 잃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침대의 끝을 잡고는 일어섰다.
“좀 더 쉬시죠.”
“그럴 수 있는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밖으로 나가자.”
마르트의 말에 카릴은 옅은 웃음을 지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 * *
“황궁에서 그렇게 난리를 치고 난 뒤에 아버지의 입장이 얼마나 난처해졌는지 말하지 않아도 예상이 되겠지.”
“그래도 설마 대륙제일검이자 북방의 수호를 맞고 있는 청기사단의 단장을 내칠 일이야 있겠습니까.”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카릴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마르트는 눈을 흘겼다.
“이따위 무뢰배들과 노예들이 사는 도시가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좋다.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 한들 이곳이 독립된다 해서 뭐가 좋아지지? 오히려 불순분자들을 세상에 내어놓는 것일 뿐이다.”
강가를 따라 걸어가던 마르트가 황급히 몸을 돌리며 말했다.
“너 때문에 루온 황자가 크로멘 황자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쏙 들어가고 모든 화살이 아버지께 쏠리기 시작했단 말이다.”
“흐음…….”
목소리에 힘을 싣는 그와 달리 카릴은 가만히 그의 말을 들을 뿐이었다.
“형님.”
카릴은 담담하게 그를 불렀다.
“이곳에 온 이유가 전자입니까 아니면 후자입니까.”
“……그게 무슨 말이지?”
“절 찾아온 이유 말입니다. 루온 황자님이 크로멘 황자를 죽였다는 이야기 때문인지 아니면 귀족들이 아버지를 몰아붙이기 때문인지 입장을 좀 명확하게 해주셨으면 해서요.”
“…….”
그 순간 마르트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카릴은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형님께서 말씀하시는 쓰레기들은 어차피 자유도시를 그냥 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국가라는 울타리에서 그들을 관리하는 게 대륙의 입장에선 더 유익한 일일 겁니다.”
카릴은 뒷짐을 지고는 마르트보다 한 걸음 더 먼저 앞으로 나갔다.
“직접 타투르까지 오는 위험을 무릅쓰고 절 만나러 온 게……. 귀족이신 형님께서 관심 가질 일이 없는 하층민들 때문일 리가 없으니 말이죠.”
그가 몸을 돌려 마르트를 바라봤다.
“그러니 솔직하게 입장을 밝혀야 서로 이야기가 빨리 진행되지 않겠습니까.”
“너…….”
마르트는 카릴의 말에 바득 이를 갈았다.
“왜 그렇게 물었지? 루온 황자님이 크로멘 황자를 죽이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지?”
그의 물음에 카릴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전 사실만 보고 드렸을 뿐입니다. 피아스타에서 이민족의 물품들이 거래가 되었고 그중에 미명의 재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피아스타의 관리자인 레이지가 1황자파였다는 것까지 말입니다.”
카릴은 어깨를 들썩였다.
“형님께서야말로 오히려 루온 황자가 3황자의 살인에 무관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폐하의 판결에 이의를 제시하시는 겁니까?”
“그, 그럴 리가…….”
“아니면 뭐 다른 거라도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없다.”
마르트는 단호하게 얘기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모르는 것 같았다.
아무런 의혹이 없는데 굳이 힘들게 포나인을 건너 자신을 만나러 올 리가 없었으니까.
“뭐, 알겠습니다. 장남으로서의 책임은 알겠는데……. 아버지의 일 때문에 징징거리려고 날 찾아온 거면 돌아가십시오.”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카릴이 손을 저었다.
“……너!”
쿠득……!!
그 순간 마르트는 자신도 모르게 짓눌릴 듯한 기세에 한 걸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
“전 맥거번가의 양자이지만 타투르 자유국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나지막한 카릴의 목소리가 마르트의 귀에 꽂혔다.
‘뭐, 뭐야……. 이 힘은.’
숨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
아버지인 크웰에게서도 보지 못한 기세였다.
황궁 때와는 달리 더 이상 자신의 힘에 제약을 두지 않은 카릴이 있는 힘껏 마력을 뿜어내자 마르트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굽히고 말았다.
“형님에 대한 예우로서 제가 이곳에 왔습니다. 하나 이곳은 제 영지이고 저는 이곳의 군주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입장을 확실히 해달라는 이야기엔 저와 형님의 관계도 있습니다.”
카릴은 주저앉은 마르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더 이상 관심 없다는 듯 그를 지나쳐 걸었다.
“……만약.”
그때였다.
마르트의 목소리에 돌아섰던 카릴의 발걸음이 멈췄다.
“내가 찾아온 이유가 후자가 아니라 전자의 이유라면……. 조금 더 내게 시간을 할애해 주실 수 있습니까?”
카릴의 압박에 힘겹게 마르트가 말했다.
“……타투르의 왕이여.”
그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돌아선 카릴은 기다렸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잠시 눈을 감고는 낮은 숨을 토해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크로멘 황자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형님, 왕이 아닌 맥거번가의 사람으로 묻겠습니다. 혹시……. 형님께서 절 찾아온 이유가 크로멘의 죽음에 아버지가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까?”
카릴은 강압적인 위치에서 스스로를 내려 마르트에게 말했다. 과거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면 이제는 마르트가 비밀을 털어놓기 편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3황자의 죽음의 이유와 전말이야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그였다.
당연하지만 마르트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아버지가 얽혀 있다면 편했겠지. 그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이유는 간단해. 아버지가 모시는 올리번이 얽혀 있기 때문이지.’
마르트 맥거번이 가지고 있는 의심.
크로멘 황자를 죽인 게 루온이 아닌 올리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누구에게 말할 수 있겠는가.
자칫 그 말 한마디로 맥거번가는 황실 모독죄로 처벌받을 수 있으며 정말 올리번이 범인이라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의 지지자인 크웰이 봉변을 당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진 꼴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 때문에 오히려 가장 연이 없던 자신에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니다. 아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아버지는 관련 없다.”
“그게 무슨 애매모호한 말씀입니까.”
카릴은 말을 하면서 고개를 젓는 마르트를 향해 피식하며 말했다.
사실,
이번 재판에서 카릴의 목적은 크로멘의 범인을 밝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했던 것이 바로 마르트 맥거번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였다.
‘하지만 결국 움직이지 못했다.’
자신의 기대가 컸던 걸까.
애초에 그가 큰 그릇의 남자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티렌과 란돌의 삶이 변했듯 이번 사건이 바로 마르트에게 변화의 기회를 줄 수도 있었다.
‘성장을 하는 것은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여 주는 것과는 달라. 당장에 허기를 해결하는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법을 찾는 거니까.’
기회는 만들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쟁취하느냐 외면하느냐는 결국 각자의 몫이었으니까.
“관련이 있는 건…….”
마르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올리번 황자님이시다.”
그의 말에 카릴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지금 그 말. 꽤나 위험한 발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내 생각을 네게 말하는 거다. 네 말대로 타투르의 왕이 아니라 맥거번가의 사람에게 말이야.”
“크로멘의 죽음에 루온 황자가 아닌 올리번 황자가 범인이라는 뜻입니까.”
“모르겠다. 증거는 없어. 다만……. 베스탈 후작령에서 올리번 황자님께서 크로멘 황자님께 미명을 먹이는 걸 본 것 같다.”
“본 것 같다? 확실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내 심증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직도 미심쩍음을 지울 수가 없다.”
카릴은 마르트의 말에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잊으십시오. 결정은 모두 황제가 내리는 것입니다. 설사 그것이 부당한 결과일지라도 말이죠.”
“하지만……!”
“재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드셨다면 형님께서는 왜 그때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랬다면 지금쯤 이렇게 절 찾아올 수고를 하지 않으셔도 됐을 텐데.”
신랄한 그의 말에 마르트는 뭐라 대답하지 못한 채 그저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때도 널 찾아갔지만 황궁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았어. 널 찾아간 것만으로도 대신들에게 문책을 받았으니까.”
마지막 재판 때 두려운 얼굴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바라만 봤던 이유가 그 때문일까.
충분히 이해가 갔다.
재판이 한창이었던 시기였으니까.
맥거번가의 두 사람이 과연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에 대해서는 모든 귀족의 귀추가 주목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진실을 말하기엔 겁먹었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형님은 소인배에 불과하네요.”
“……뭐?”
“정작 앞에서 말하지 못했다는 말 아닙니까. 아니면 어쩔 수 없었다고 내게 위로라도 받고 싶어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까 분명 말했을 텐데요. 징징댈 거면 그냥 아무 말 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예상과 달리 카릴은 차갑게 말했다.
그의 모습에서 마르트의 얼굴이 울상이 되며 구겨졌다.
“그럼 난……!!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냔 말이야?”
결국 토해내는 한마디.
카릴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마르트 맥거번은 기사 서약을 받을 만큼 실력도 제법 뛰어난 남자다.
문제는 그릇.
덕분에 지금껏 저택의 형제들을 비롯해서 모든 이가 그를 떠받들었다.
‘소인배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깜냥보다 더 많은 사람이 우러러 봐줄 때 그 기대가 무너질까 두려워하지만 반대로 그것을 무너뜨리지 않게 부단히 노력하니까.’
물론, 그것이 꼭 올바른 방향으로의 노력만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겠지만.
마르트가 첫 만남에서 일부러 자신을 누르려고 했던 것도 다 이런 성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그걸 이용해서 도발을 했던 것도 모르고 말이다.
“아버지께 말씀드리십시오.”
카릴은 담담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기껏 기대했던 해답이 결국 크웰에게 말하라는 그의 말에 마르트의 얼굴이 구겨졌다.
“나참……. 쪼르르 아버지께 달려가 일러바치란 말이더냐. 그래, 네 말대로 나는 소인배일지 모른다. 하지만 못난 놈이 되긴 싫다!”
“그것조차 못하면 그거야말로 소인배겠지요.”
“……뭐?”
“누가 형님께 반역을 저지르라고 했습니까 아니면 황제를 알현하여 다시 재판을 열라고 간청하라고 했습니까. 형님께 바라는 것은 대단한 위업이 아닙니다. 스스로 소인배라 생각한다면 거기에 걸맞게 행동하십시오.”
카릴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소인배는 소인배의 검을 휘두르십시오.”
멈췄던 발걸음을 뗐다.
그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록 소인배라 할지언정 형님은 기사(騎士)지 않습니까. 검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단 검을 뽑으십시오. 거기서부터 서약의 시작이니까.”
마르트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채 그저 돌아가는 카릴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
카릴이 사라진 이후로도 한참 동안 그가 간 방향을 바라봤다.
꽈악-
얼마나 흘렀을까.
우두커니 강가에 서 있던 마르트는 이내 뭔가를 결심한 듯 주먹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 * *
“마르트가 움직일까요?”
“글쎄. 쉽진 않을 거야. 마음먹기 나름이겠지.”
타투르로 돌아온 카릴은 마르트가 무법항을 떠났다는 보고를 받고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억겁의 시간을 거슬러 오면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검을 베면서도…… 내가 마르트를 이렇게 이용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
카릴은 창밖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상 그는 내가 생각했던 필요 목록에 없었던 자니까.’
그런데 지금 마르트는 누구보다 가장 큰 톱니바퀴가 되어 제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위치에 있었다.
‘마르트, 나는 인간의 성향이 쉽게 변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올리번이 독약을 쓴다는 걸 네가 알아차릴 거라 확신한 것도 그 성향 때문이니까.’
하지만…….
카릴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반대로 널 시험대에 올린 이유 역시 바로 그 때문이야.’
크웰 맥거번이 모았던 가문의 양자들은 모두 뛰어난 인재들이지만 결국 전생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없었다.
“올리번이 크로멘을 죽인 범인일지 모른다는 말.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믿음에 금을 긋는 일을 하는 게 쉽진 않을 겁니다.”
“맞아.”
두샬라의 말에 카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트, 서운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난 고작 가문 하나를 지키고자 회귀를 한 것이 아니다.’
이제 곧 전란을 넘어 격변의 시대가 온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가문의 안위를 지키는 것은 왕이 아닌 가주의 몫이었다.
‘마르트. 난 네게 맥거번가를 맡길 생각이다.’
미래의 가주로서 올바른 길로 가문을 이끄는 것이야말로 장남으로서 해야 할 일이니까.
그러니…….
카릴은 마치 조금 전 만남에서 하지 못했던 말을 토해내듯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맥거번가(家)의 전환점을 네가 만드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