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196)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196화(196/497)
154. 안티훔의 폐허
‘뭐……. 상관없나.’
카릴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불멸회라면 여명회와 달리 워낙에 폐쇄적인 집단이기에 그 역시 자세히 아는 것이 없었다.
“……이쪽입니다.”
베네딕이 엉망이 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카릴이 말했다.
그의 손길이 닿자 그는 깜짝 놀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지하게 생각해 봐. 마력 그물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마법사면 차라리 도서관의 서기도 나쁘지 않으니까.”
“…….”
베네딕은 카릴의 말에 입술을 씰룩였다.
하지만 행여나 불똥이 튈까 봐 그는 서둘러 일행의 눈 밖으로 도망쳤다.
“불멸회의 마법사들도 별거 아니네요.”
“저 노인네가 별 볼 일 없는 거지. 5클래스도 아직 안 되었어. 저 나이에 그 정도면 재능이 없는 거지. 마력전략부? 애초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멋모르는 애송이들에게 거드름이나 피우려고 만든 거야.”
카릴은 불멸회의 진짜 마법사들은 모두 다 지금 눈앞에 있는 대도서관의 지하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그 사람 얼굴도 볼 수 있겠군.’
그는 해골의 입에 둥근 손잡이가 달린 문고리를 잡아 두들겼다.
철컥-
문고리를 잡은 손에 마력을 끌어 올리자 위에 달려 있는 해골의 두 눈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동시에 음산한 검은 연기가 천천히 카릴의 팔을 감쌌다. 검은 연기는 곧바로 그의 전신을 뒤덮었고 뒤에 서 있던 미하일과 세리카는 그 모습에 깜짝 놀랐다.
철컥-
잠금쇠가 풀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쿠그그그그그…….
마치 귀곡성(鬼哭聲)처럼 문이 열림과 동시에 묘한 소리가 들렸다.
“어둡군.”
입구에서 흘러나오는 빛 이외에 대도서관 내부는 정전이 된 것처럼 어두웠다.
게다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새하얀 물안개 같은 것이 자욱하게 깔려 있어 얼굴에 닿는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염지(炎指).”
화르르륵……!!
카릴이 손을 젓자 그의 손가락 끝에서 다섯 개의 불꽃이 돋아났다.
그는 오랜만에 라미느의 불꽃이 아닌 마법으로 불꽃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화(點火).”
다섯 개의 불꽃이 폭발하듯 커졌다.
츠즈즈즈–!!
도서관 안에 자욱했던 안개가 카릴의 불꽃에 닿자 타들어 가는 소리를 냈다.
뜨거운 열기가 점차 채워지자 서서히 시야가 선명해졌다.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네요.”
미하일은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이 사람 사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도서관 안은 마치 마굴 속을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렇지? 마법사들은 괴짜니까. 이따금 그들이 지은 건물 중엔 마굴의 성향을 띠는 곳들이 있지. 상아탑도 비슷할걸? 응축된 마력을 물론이거니와 곳곳에 함정들도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아.”
착- 착- 착-
카릴이 도서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어두웠던 복도 양 벽에 걸린 횃불이 일제히 켜졌다.
“와…….”
불이 켜지자 내부는 또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까마득한 높이의 천장까지 벽면이 모두 책장으로 되어 있어 그 안에는 셀 수도 없는 마법서들이 꽂혀 있었다.
“이방인은 오랜만이군.”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복도의 끝.
마치 이중으로 들리는 것처럼 묘한 말투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미하일과 세리카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짜릉…… 짜르응…….
남자가 발을 옮길 때마다 쇠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클클클…….”
등이 툭 튀어나와 있었고 얼굴은 구울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이 괴상하게 일그러진 남자였다.
‘저 사람이 나인 다르혼?’
‘뭐 저렇게 생긴 사람이 다 있어?’
두 사람은 마치 찝찝한 뭔가를 본 것처럼 인상을 찡그렸다.
“올라오게.”
복도의 끝에 있는 나선 계단을 올라가며 그는 카릴에게 손짓을 했다.
“괜찮을까요? 주군.”
뭔가 께름칙한 기분에 미하일이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혹시 저 사람이 불멸회의 수장인가요? 어후, 딱 봐도 흑마법사 같이 생겼네요.”
하지만 카릴은 어쩐지 그의 말에 피식 웃기만 했다.
“아, 쟤? 별거 아냐.”
“……네?”
* * *
“안티훔 입구에서 소동을 피운 게 네놈들이로군.”
계단을 따라 올라온 미하일은 이상한 상황에 할 말을 잃은 듯 두 사람을 바라봤다.
“소, 송구하옵니다.”
조금 전 음산한 기운을 뿜어냈던 꼽추 남자가 계단을 올라오자마자 꺾인 허리를 더욱 숙이며 안절부절못하며 대답했다.
“수십 년간 외부와 단절한 채 살았는데 고작 이런 꼬마들에 의해 그것이 깨지다니 말이야.”
“……죄송하옵니다.”
그와 반대로 의자에 앉아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은 흑발을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린 미남자였다.
“이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마법사의 반열에 올랐다는 말일 텐데……. 내가 폐관을 한 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는가? 저런 꼬마들이 벌써 4클래스라니 말이야.”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여자라고 오해를 했을지도 모를 정도.
새하얀 피부와 반대로 새빨간 입술은 인간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의자의 팔걸이에 기대어 턱을 괴고는 일행을 바라봤다.
외관으로 보면 꼽추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는 자보다 수십 살은 더 많아 보여 두 사람의 대화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나인 다르혼.”
카릴은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
그 순간,
미하일이 놀란 표정으로 다시 한번 의자에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말도 안 돼. 저 사람이……. 불멸회의 수장인 나인 다르혼이라고?!’
세리카는 왜 그렇게 놀라냐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현존하는 4명의 대마법사 중에서 마탄(魔彈)이라 불리는 루레인 공국의 황금마법회 수장 데릴 하리안을 제외한 3명.
여명회의 수장인 베르치 블라노, 제국의 궁정 마법사인 카딘 루에르 그리고 불멸회의 나인 다르혼까지, 이 셋이 모두 동년배라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동시대에 태어난 대마법사들.
마도 시대 이후 점차 마력이 약화 되는 시점에서 세 명의 대마법사가 태어난 그 시기를 황금의 시대라 부르기도 했으니까.
여명회의 베르치 역시 그들의 거점인 상아탑에서 폐관 수련을 하느라 얼굴을 비치지 않았지만 카딘 루에르만큼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
그를 떠올리면 도무지 20대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나인 다르혼과 같은 나이라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놀랄 것 없어. 얼굴을 바꾸는 거야 마법사만 되면 할 수 있는 일이잖아.”
세리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저 인간은 원래 저 얼굴이야.”
“……에?”
카릴은 그녀의 말에 나지막하게 말했다.
“다르혼가(家)의 피는 조금 특별하거든. 뱀파이어의 피가 약하게 섞여 있어서 잘 늙지 않아. 게다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다른 두 마법사와 또래라고 했지 실제로는 더 늙었을지도 모르지. 혹시 알아? 마도 시대에 살던 노괴일지.”
그의 말에 두 사람은 다시 한번 나인 다르혼을 바라봤다.
“클클……. 잘 아는구나. 카릴 맥거번.”
나인 다르혼은 이미 카릴의 정체를 알고 있었는 듯 그의 이름을 말했다.
“그래도 수장이 낫긴 하군. 정문의 멍청이들은 모르던데. 마도전략부? 그런 시답잖은 것이나 만들다니. 웃음도 안 나와. 불멸회가 언제부터 소꿉놀이를 하는 모임이 되었지?”
신랄한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인 다르혼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무지한 사람들을 보듬기 위해서는 유치한 일도 때론 필요한 법이니까. 재능 없는 이들에게 관모를 씌워주면 누구보다 충성을 다하지.”
“하긴……. 아까 그 양반을 보니 뭘 시켜도 열심히 할 것 같긴 하더군.”
카릴은 베네딕을 떠올리며 말했다.
딱히 전생에 인연이 있었던 곳도 아닌데 묘하게 그가 계속해서 눈에 밟히는 기분이었다.
“자네도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사람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지. 일국의 왕이라면 말이야.”
‘이미 제국에서의 일까지 모두 알고 있군.’
새빨간 입술을 씰룩이며 나인 다르혼이 카릴을 향해 좀 더 고개를 숙였다.
“뭐, 그쪽이 걱정할 일은 아니지. 사람 다루는 건 지금도 잘하고 있고.”
그런 그의 모습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카릴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크클……. 이런 유치한 놀음이 진짜 불멸회의 모습이라 생각하지 말아야 할걸.”
저벅- 저벅- 저벅-
그런 그를 향해 카릴이 걸음을 옮겼다.
일정한 속도의 발걸음 소리가 홀 안에 울리다가 멈췄다.
“진짜 모습이라……. 도서관의 시험을 말하는 건가? 별거 없을 것 같은데.”
카릴은 눈짓으로 바닥을 힐끔 가리켰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그곳인데 어쩐지 나인 다르혼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감이 좋은 녀석이군. 그대로 밟았으면 볼만 했을 텐데.”
발 바로 앞에 쉽사리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게 바닥이 올라와 있었다.
“수장이 유치하니 밖의 놈들도 수준이 그 모양이지. 함정? 이거 밟았으면 그대로 당신 목부터 잘랐을 거야.”
나인 다르혼의 말에 카릴이 맞장구를 쳤다.
불꽃이 튈 것 같은 나인 다르혼과 카릴의 대화 속에서 미하일과 세리카는 긴장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뭐, 좋다. 정문에서의 소란의 대가는 나중에 치르더라도 일단 온 이유부터 물어볼까?”
“잠깐.”
그때였다.
카릴이 갑자기 대도서관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마을 중앙에 세워진 거목을 가리켰다.
어두웠던 복도와 달리 나인 다르혼이 있는 방은 커다란 창문이 뚫려 있어 마을 아래가 훤히 보였다.
“저 나무…….”
굳은 얼굴로 그가 창가로 걸어갔다.
바닥에 함정이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르는데 그는 상관없다는 듯 성큼성큼 걸었다.
“아아……. 감이 좋은 만큼 눈도 좋군. 세계수다. 물론 전설에 나오는 엘프의 세계수는 아니지만. 불멸회가 복원을 했지. 어때?”
“……안 죽었네?”
“뭐?”
나인 다르혼은 무슨 소리냐는 듯 카릴을 바라봤다.
“그래, 저 나무 주변이 완전히 까맣게 변했던 폐허였어.”
카릴은 낮게 중얼거렸다.
이제야 기억났다.
계속해서 느꼈던 이질감.
전생에 이동 마법진을 통해 대도서관으로 이동했을 때 처음으로 봤던 풍경과 전혀 다르다.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저 나무를 보고 나니 이제야 생각이 나다니. 카릴은 자신의 미흡함에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래. 내가 안티훔에 왔을 때엔 이런 거주지 자체가 없었어.’
남아 있는 것은 중앙 건축물인 대도서관 하나뿐.
이조차도 워낙 크고 웅장해서 그 당시엔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보이는 것이라곤 앙상하게 말라 까맣게 변해 버린 세계수가 힘없이 세워져 있었을 뿐.
‘왜 사라진 거지?’
안티훔에 온 것은 기껏해야 전생과 현생을 비교해도 3개월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리 길지 않는 그 간극 사이에서 이 정도 규모의 마을이 사라질 만큼 강렬한 폭발은 없었다.
소리 소문도 없이 통째로 사라진 거다.
마을 전체가.
“…….”
카릴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이거 안 되겠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나인 다르혼의 창백한 얼굴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로 그를 향해 카릴이 말했다.
“너희들. 도대체 여기서 무슨 짓거리들을 하고 있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