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213)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213화(213/497)
165. 이스라필 (1)
송곳의 이스라필.
그는 신탁의 10인 중 가장 개성이 없는 사람임과 동시에 가장 개성이 뚜렷한 자였다.
커다란 체구에서 보이는 특이점도 있었지만,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분함과 나태함.
때로는 그 존재감마저 희미해지는 기분이라 세리카 로렌은 그를 볼 때마다 안개 같다는 얘기를 했다.
-저 인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보고 있으면 가끔 기분 나빠.
언제나 똑 부러지는 성격인 그녀는 속을 알 수 없는 이스라필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내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 냉정한 그녀의 평가를 이해하지 못했다.
신탁 전쟁이 시작되고 신탁을 수행하는 치열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책을 놓지 않고 항상 읽었기 때문이다.
검은 현자.
그 모습에 병사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이스라필을 그렇게 불렀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야 그렇지. 그는 확실히 전쟁과 어울리지 않는 남자야.’
카릴은 포자를 앞에 두고 어리둥절한 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신탁을 수행하면서 9명 모두 세리카 로렌의 평가에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생각하면 이질감을 알아차릴 것이다.
전쟁과 전투보다 책에 파묻혀 사는 평온함을 사랑하는 이 남자가 속해 있는 곳은 저주와 사령을 다루는 불멸회였다.
‘게다가 그에게 붙여진 이명은 아이러니하게도 송곳이기도 하지.’
이스라필 카즈빈.
그는 신이 내린 이명만큼이나 이중적인 남자였다.
“검은 포자군요.”
사람들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그였지만 정신을 차리고 카릴이 건넨 포자를 보자 이스라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알고 있어?”
나인 다르혼은 신기한 듯 되물었다.
대마법사인 그도 마계에 대한 것은 잘 알지 못했다.
비단 그의 지식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라 마계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1천 년 전인 마도 시대에 이미 단절된 마계였으니까 말이다.
남아 있는 거라고는 유적에서 이따금 발견되는 유물들이었지만 이마저도 확실하게 마족과 관련된 물건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계를 비롯해서 정령계, 천계 그리고 악마계까지.
기껏해야 음유시인들이 남긴 시가라던지 역사서에 한 편에 몇 줄 써 있는 것이 다였다.
“네. 『데프나 지옥도』에 적힌 글을 보면 마계도 인간계처럼 작물을 기른다고 합니다. 마계의 위계는 마왕을 비롯해 그 아래에 4기사가 존재하며 인간처럼 많은 귀족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족의 서열에 대해서는 『마계 위보』에 언급이 되어 있는데 그중에 ‘자간’이란 고위 마족이 역병을 다루며 저주에 능통하다고 합니다. 이 검은 포자도 그가 기르는 작물 중 하나입니다.”
이스라필은 빼곡하게 꽂혀 있는 책들을 꺼내며 조금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제가 정리해 놓은 바에 의하면 검은 포자는 수확을 하는 즉시 시들어서 ‘숨 막히는 역병 가루’나 ‘녹아내리는 산(酸)의 비’ 등 마법 재료로 즉시 쓰이기에 자간의 저택은 마계 동남쪽 작은 섬에 따로 작물을 기르는 농경지에 함께 있다고 합니다.”
백과사전마냥 두꺼운 책을 뒤적이면서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것들은 뭐야?”
나인 다르혼이 표지에 제목이 적혀있지 않은 책이 궁금한 듯 물었다.
“아, 이건……. 이곳에 있는 책의 내용 중에 마계와 마족에 관한 것만 발췌해서 모아 놓은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것 전부?”
이스라필의 대답에 나인은 질렸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네. 마계뿐만 아니라 천계와 악마계에 관한 것도 정리 중입니다.”
고작 몇 줄이라도 나올까 말까 한 이야기들.
이런 정리를 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 책의 내용을 모두 읽어야 한다는 것이니까.
“내 말이 맞지?”
“……그러게.”
카릴은 나인 다르혼의 수긍에 피식 웃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문헌에 적혀 있는 대로라면 인간계에 검은 포자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자간이 작물을 수확하고 나면 금세 시든다고 써 있으니까요. 인간계까지 올라올 수가 없는데…….”
이사라필은 여전히 생생한 검은 포자를 바라보며 의아한 듯 여겼다.
“만약 이게 마계에서 온 게 아니라 인간계에서 작물을 재배한 것이라면?”
“……네?”
카릴의 물음에 모두가 놀란 듯 그를 바라봤다.
“그럴 수가 있어? 마계의 작물이라면서. 여기서 키울 곳이 어딨어?”
“완전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사라필은 굳은 얼굴로 집게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잠시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와르륵……!
그러고는 쌓여 있는 책 무더기를 정신없이 뒤지다가 낡은 종이 뭉치를 집어 들었다.
“물론 전제조건이 깔리긴 합니다. 마계와 연결된 통로가 있긴 해야겠죠. 대신 운반을 수확물이 아닌 씨앗 그 자체로 가져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단 마계와 연결된 마굴이 있느냐부터…….”
“쉿.”
카릴 역시 입을 가리며 나인의 불만을 일축 시켰다.
“계속.”
“아, 넵. 수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일단 이어진 통로가 있어야 씨앗을 가지고 올 수 있겠죠.”
“마족과의 계약을 통하면 굳이 통로가 없어도 가능해. 하지만 작물은 당신 말대로 마계에서 넘어오는 순간 시들지. 완성품이면 말이 다르겠지만……. 이건 작물 그 자체니 어떤 마법적 가미도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지.”
이스라필을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씨앗을 가져오기만 한다면……. 인간계에 마계의 환경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 수만 있다면 작물을 키우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기본적인 마계와 인간계의 환경 자체는 비슷하다고 했으니까요. 다만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게……. 결정적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가 펼친 종이에는 그림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대지에는 괴상하게 생긴 마물들이 득실거렸고 그 위에 구름이 낀 하늘 아래로 붉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로 마계의 공기엔 피가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림 속에 내리는 비는 그저 핏빛의 비가 아니라 진짜 피였던 것이다.
“마계의 작물은 피를 먹고 자랍니다. 하지만 단순히 피를 땅에 뿌려서는 안 됩니다. 공기 중에 섞여 있어야 가능하죠.”
“뭐야, 그럼. 불가능한 일이잖아 이게 마계를 그린 그림이란 말이지? 비가 아니라 피가 내리는 기후? 이런 끔찍한 환경이 인간계에 있을 리가 없잖아.”
나인 다르혼은 이스라필의 설명에 코웃음을 쳤다.
“있어.”
카릴은 이스라필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이게 이런 식으로 연결이 될 거라고는 전생을 경험했던 나조차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마계와 가장 비슷한 환경.
게다가 전생에는 마계를 잇는 최초의 통로로써 이용된 휴지기의 마굴.
“……네.”
놀랍게도 이스라필은 카릴의 예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입을 모아 그 이름을 얘기했다.
“선혈동굴(鮮血洞窟).”
* * *
“선혈 동굴이라면……. 트라멜 고대 유적지 근처에 있는 마굴?”
“맞아. 지금은 활동이 멈춘 휴지기의 마굴이지.”
나인 다르혼은 카릴의 말에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제국이나 공국이 허투루 일을 하지는 않아. 마법회도 물론이고. 대륙에 있는 휴지기 마굴은 모두 조사가 끝났어. 선혈 동굴엔 아무것도 없다.”
“맞습니다. 하지만 몬스터에 대한 조사는 끝났지만 마굴 안의 공기까지 조사를 하진 않았을 테니까요.”
카릴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 안의 공기가 아직도 피 내음을 머금고 있는 것이라면 완전한 휴지기의 마굴이라 할 수 없겠지. 마굴의 특성은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니까.”
“바로 그겁니다.”
이스라필의 대답에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 가설이 맞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여겼던 정설은 완전히 뒤엎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마굴의 몬스터가 없다 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공기, 물 혹은 입자 하나라도 아직 마굴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멈춘 게 아니라는 말이니까요.”
[흥, 셀린 한.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서 그런 어정쩡한 이론을 만들다니……. 7인의 원로회 이름에 먹칠을 하는군. 그러니 그런 두꺼비 같은 후손이 태어나지.]알른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아조르의 영주인 파시오 한의 조상이자 7인의 원로회 중 유일한 여성 마법사인 그녀의 이름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그뿐일 것이다.
“아직은 속단하기 이릅니다. 확인을 해봐야 알 수 있는 거라…….”
이스라필은 알른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자존심이 구겨진 알른과 달리 카릴은 이스라필의 말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해답을 이런 식으로 찾을 줄이야…….’
이미 그의 가설이 맞다는 것에 확신이 들었으니까.
그는 선혈 동굴이 마족들이 인간계로 넘어오게 되는 첫 번째 거점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생에도 모든 휴지기의 마굴이 통로로 쓰인 것은 아니었다.
‘우습게도 신탁을 경험한 전생의 너도 마굴의 통로화에 대해서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이스라필은 모를 것이다.
신탁은커녕 아직 송곳이라는 이명조차 받지 못한 현생의 그가 전생의 자신을 뛰어넘는 업적을 이뤘다는 것을 말이다.
‘뿐만 아니라 나 역시 모든 마계의 통로가 된 모든 마굴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마굴이 마족의 통로가 될 것이다.
마계로 이어지는 마굴은 마치 개미굴처럼 수많은 갈래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그 입구를 찾는 것도 그 이후 통로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가설이 맞다면 적어도 앞으로 생성될 통로를 미리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역습(逆襲).
그들의 공격을 대비하고 오히려 과거 마족들에게 당했던 그 아픔을 되돌려 줄 수 있게 된다.
“선혈 동굴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마굴 중에 이러한 특이점이 남아 있는 곳들이 분명 많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제국과 공국 그리고 마법회의 전문가들도 찾지 못한 아주 작은 흔적입니다.”
카릴은 이스라필을 바라봤다.
“현시점에서 마굴에 대해서 당신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겠죠.”
“네? 제가요?”
“당신이라면 분명 그 작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스스슥…….
검은 포자가 드디어 힘을 잃고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카릴이 가루가 되어버린 그것을 바라보고서 다시 이스라필에게 말했다.
“마계의 작물이 인간계에 나타났고 그게 만약 마굴에서 재배 되고 있는 것이라면……. 인간 중 마족과 손을 잡은 자가 있다는 말일 겁니다.”
“…….”
“우리는 늦기 전에 그곳들을 조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배후 역시 찾아야 할 테죠. 그러기 위해서 이스라필,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꿀꺽-
이스라필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나와 함께 갑시다.”
그는 자신을 향해 내민 카릴의 손을 바라봤다.
“야, 너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불멸회의 마법사를 데리고 가려고 한다? 불멸회는 오직 안티훔을 위해서만 일한다는 걸 몰라? 아무 데나 들쑤시는 여명회와는 달라.”
나인 다르혼은 그런 카릴을 향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뭐, 이 일이 아니라도 데리고 갈 생각이었어. 미리 말했잖아?”
“……허락을 한 적은 없는데?”
“그럼 넌 이 사태를 보고도 가만히 있을 거야? 마족이 인간계에 개입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이거 인성이 안 되겠네.”
카릴은 고개를 저었다.
“알른, 7인의 원로회는 인류를 이롭게 하기 위해 마법을 전파했다면서 저런 녀석을 제자로 들여도 되겠어?”
그러고는 알른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뭐, 너 같은 놈도 있는데.]하지만 정작 질문을 받은 알른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하나 나도 카릴의 말에 동의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인간계는 인간의 것이다. 과거에도 마족과 계약을 하는 자들이 있긴 했으나 모두 처단되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래야겠지.]“어떻게 했는데?”
카릴의 물음에 알른 자비우스는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네가 제일 잘하는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