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230)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230화(230/497)
175. 상자를 열다 (1)
“뭘 봐?”
집무실에 모인 사람들에게서 평상시와 달리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타투르에 내로라하는 강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을 짓누르는 기운에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었다.
평상시와 달리 그곳엔 낯선 사람이 한 명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소드 마스터의 위압인 건가…….’
‘저번보다 더 짙어진 느낌이야.’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로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밀리아나였다.
“너희 둘이 대초원 4부족의 전사들인가?”
“투부족의 베이칸입니다.”
“키누 무카리입니다.”
그녀의 말에 두 사람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창 일가의 여식은 보이지 않는군.”
“그녀는 나락 바위를 점검하기 위해서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남부로 가는 동안 이스트리아 삼국의 전쟁 상황을 살피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키누 무카리가 밀리아나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만. 입이 너무 가벼운 것 같은데 조금 신중해 줬으면 좋겠네요.”
그의 대답에 두샬라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단하신 디곤의 여왕께서 어째서 여기에 계신지 다들 궁금해하는 것 같은데……. 다들 전쟁이라 난리인데 남부는 할 일이 없나 보군요?”
“바빠 죽겠는데 너희 왕이 내가 없으면 죽어도 안 된다고 사정사정 매달리지 뭐야.”
“…….”
밀리아나는 두샬라를 향해 살짝 콧대를 세우며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말을 할 때마다 마치 조각을 한 것 같은 탄탄한 복근이 꿈틀거렸다.
“인사는 이제 모두 나눈 거야? 황도에서도 본 사이끼리 왜 이렇게 딱딱해?”
그때였다.
집무실의 문이 열리면서 카릴이 들어오자 밀리아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조금 전 밀리아나를 바라봤던 얼굴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경악스러움이 그들에게서 느껴졌다.
‘미하일에게 얘기는 들었지만…….’
‘이게 가능한 일이야? 아니,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군……. 소드 마스터가 6클래스의 벽까지 허물게 되면 이렇게 되는 건가…….’
‘농담 삼아 괴물 같다는 얘기를 했었지만 이제는 정말 규격 외가 되어버리셨구나…….’
베이칸과 키누 무카리 그리고 수안 하자르는 경외에 찬 눈빛으로 카릴을 바라봤다.
소드 마스터인 밀라아나에게서 느껴졌던 기운도 분명 날카로웠지만 카릴의 것은 그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밀리아나가 바늘이라면 카릴은 거대한 태도를 연상케 했으니까.
“오셨습니까.”
놀라움에 입을 닫지 못하는 그들 사이에서 역시나 두샬라가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눈치 빠르게 허리를 숙이며 카릴에게 인사했다.
“별일 없었지?”
숨 막히는 기운이 조금은 옅어지는 것 같았다.
카릴은 자리에 앉아 그녀를 바라봤다.
“네. 이스트리아 삼국은 계획대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이미 상당수의 귀족들이 저희들에게 포섭이 되어 있었던 상황인지라 자유군이 지원한다는 것을 안 귀족들이 빠르게 투항을 하는 모양입니다.”
두샬라는 다시 재회한 카릴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쩐지 조금 기쁜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쉽게도 검은 베일에 가려 그녀의 표정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
단지 카릴의 뒤에 서 있는 밀리아나만은 어쩐지 못마땅하다는 눈치로 그녀를 보며 눈썹을 씰룩였다.
그런 그녀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서 두샬라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어느 정도 승기가 비올라 왕녀 쪽으로 기우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세한 건 카일라 창이 확인하여 보고를 올릴 것입니다.”
“두샬라, 내가 자리를 비운 지 얼마나 되었지?”
“네? 아……. 석 달 정도입니다.”
“맞아. 석 달이지. 안티훔행을 원래는 두 달을 계획했었지만 사정이 생겨서 아조르에까지 들리느라 시간이 지체되었어.”
“하지만 덕분에 6클래스의 반열에 오르시지 않으셨습니까. 축하드리옵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에도 카릴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지 마. 내가 분명 안티훔에 다녀올 두 달 동안 삼국의 정리를 끝내라고 명령했던 것을 잊은 건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난 분명 군사의 수를 아끼지 않아도 되니 정확한 시간 안에 전쟁을 끝내라고 했다. 그런데 한 달이나 지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쟁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건 누구의 잘못이지?”
카릴이 차갑게 물었다.
아주 조금 풀어졌던 공기가 이번에는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게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내가 기대한 자유군의 힘이 약한 건가? 아니면 비올라 왕녀의 무능함을 탓해야 하는 걸까?”
당장에라도 튀어 나가 그대로 목을 벨 것 같은 투지가 느껴졌다.
이미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내로라하는 강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의 압박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역시나네요. 비올라 왕녀가 정확히 두 달째가 되는 날 타투르에 왔습니다. 주군께서 오시면 꼭 전해달라는 말씀이 있어서요. 아마 지금처럼 물으실 거란 걸 알고서 그러신 게 아닐까 싶은걸요.”
“흐음?”
두샬라는 그 위압 속에서도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물론,
주먹을 쥔 그녀의 손이 미약하지만 파르르 떨리고 있음에 압박을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확실히 그녀 역시 과거 암연 출신. 비록 동방국의 탈주자이긴 하지만 암살자답게 티를 내지 않았다.
“그녀의 전언이라도 있나?”
“네. 판피넬 가문을 필두로 한 그레이스 경의 기사단이 규모는 작으나 개개인의 능력이 제법 뛰어나더군요. 두 달째가 되는 시점에서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세력이 정리되긴 했습니다.”
“그런데 왜 석 달째가 되는 동안 결론이 나지 않았지?”
“이스탄의 방패 때문입니다. 트윈 아머를 지키는 마르제와 아벤 두 사람을 영입하기 위해 꽤나 공을 들이는 모양이던걸요. 아마도 주군께서 그들과 싸웠던 당시에 마음에 두셨던 걸 기억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마르제라…….”
카릴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촤르륵-
두샬라는 책상에 쌓여 있는 양피지 중 하나를 꺼내어 확인하며 말했다.
“비올라 왕녀의 전언입니다. 건국 때부터 외세의 침략을 막아 두 왕국을 존속시켰던 트윈 아머의 가치는 이스탄과 트바넬, 두 왕국의 무능한 왕보다 더 높다 할 수 있다.”
어쩐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카릴은 피식 웃었다.
“단순히 삼국을 힘으로 통일하는 것은 타국의 힘을 빌린 반쪽짜리 통일이기에 민심을 하나로 모을 수 없을 터. 구국의 영웅이자 두 왕국의 노장인 이들을 아래에 둔다면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흐음.”
맞는 말이었다.
자신 역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1황자를 몰아세울 때 일부러 트윈 아머에 비중을 둔 것이기도 했다.
‘나를 따라다니면서 보고 느낀 걸 허투루 쓰지는 않는 것 같군.’
“음음.”
두샬라는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약속은 지켰다. 이스트리아 삼국은 이제 판피넬 가문의 기사단으로도 충분히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이다. 타투르의 왕께서 필요하시다면 자유군을 모두 철수해도 좋다 전하라.”
“나 참, 약속을 지키긴 뭘 지켜? 내가 말한 두 달의 기간은 그 안에 확실한 결과물을 보이라는 뜻이었는데.”
카릴은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결론이 썩 나쁘지는 않은 듯 그는 턱을 괸 채로 피식 웃었다.
“삼국은 일단락이 되어 가는 것 같고……. 그동안 다들 잘 지냈나? 다들 보아하니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말이야.”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카릴은 빠르게 사람들을 훑었었다.
특히나 놀라울 정도의 성장을 보인 것은 마력이 없는 베이칸과 키누 무카리였다.
전생에도 이미 바바리안으로 이름을 날렸던 베이칸은 협곡에서 병사 500명을 단신으로 상대했던 전사였다지만 이 정도의 성장은 이루지 못했었다.
‘마굴 토벌이 확실히 도움이 된 모양이야. 야만족들은 전투를 거듭할수록 더 강해지니까.’
“공국으로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주군, 이번에야말로 꼭 절 데려가 주십시오.”
그들의 감상도 잠시 카릴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수안 하자르였다.
말을 꺼낸 그는 잔뜩 긴장된 얼굴이었다.
그가 어떤 심정으로 말을 한 것인지 잘 알고 있는 카릴이었기에 옅은 웃음을 지었다.
“물론이지. 걱정 마. 공국으로 가는데 네가 가야지 누가 가겠어?”
“저, 정말요?”
하지만 카릴의 한마디에 그는 예의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입을 벌리며 웃었다.
“칼 맥이 없는 상황에서 해협을 건너려면 네가 배를 몰아야지. 안 그러면 한참 걸릴 텐데. 안 그래?”
“그럼요!! 항해에서 저를 빼놓으면 안 되죠!”
수안은 반색하며 외쳤다.
그토록 지겹도록 한 조타였지만 전장이 기다린다는 생각에 흥분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응. 우릴 내려 주고 너는 곧장 타투르로 돌아와.”
“…….”
하지만 기뻐하는 것도 잠시.
찬물을 붓는 듯한 카릴의 말에 수안은 다시 울상이 되어버렸다.
“아니 왜요!!!”
지금까지 한 번도 카릴의 명령에 반항한 적이 없던 그가 처음으로 소리쳤다.
모두가 그의 모습에 놀란 듯 바라봤지만 카릴은 오히려 어린아이를 보는 것처럼 흐뭇하게 웃었다.
“공국 같은 작은 일에 널 쓸 순 없지.”
“네?”
“넌 더 중요한 일이 있다. 돌아오면 곧장 이스라필을 도와서 마굴을 조사하도록 해. 아마 첫 목적지는 트라멜 유적지에 있는 선혈 동굴이 될 거야.”
“마굴이요……?”
카릴은 날카롭게 눈을 뜨며 그에게 말했다.
“안티훔에서 마계와 관련된 흔적을 발견했다. 어쩌면 대륙 전체의 운명이 네게 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그런 일을 제가요?”
“엘프의 보고에서 얻은 네 건틀렛. 3대 위상(位相)이라 불리는 과거의 신수 중 한 명인 청귀(靑龜) 칼두안의 힘이 봉인된 것이라는 건 알겠지.”
끄덕-
수안이 카릴의 말에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3대 위상은 정령 다음으로 순수한 자연계의 힘을 가진 존재다. 만에 하나 마족을 상대해야 할 일이 있다면 지금 이곳에서 너만큼 적임자도 없지.”
카릴은 한 번 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이건 오직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저만이 할 수 있는…….”
수안은 카릴의 말을 한 번 더 읊었다.
“믿는다.”
“걱정 마십시오!!”
그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물론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을 때 당장 선혈 동굴에서 마족이 튀어나올 일은 없겠지만……. 수안, 너는 마족 대신 그곳에서 권왕을 만나야 하거든.’
카릴의 속내를 알 리 없는 수안은 주먹을 꽉 쥐며 결의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사람 하나는 기가 막히게 다룬다니까.’
‘역시…… 주군이야.’
‘그런데 수안이 저런 녀석이었나? 전엔 꽤나 날이 서 있었는데…….’
그 모습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마다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럼 지금부터 나와 함께 공국으로 갈 인원을 호명하겠다. 우리가 갈 곳은 한창 내전 중인 전쟁터이다. 전장이란 목숨을 걸어야 할 곳임을 알겠지만 고작 그런 싸움에 귀한 목숨을 걸 필욘 없다.”
카릴의 목소리에 모두가 긴장된 얼굴로 그를 주목했다.
“그저 타투르의 힘을 보여 줄 무대에 불과하니까.”
“네-!!!”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일제히 대답했다.
* * *
“흠…….”
늦은 밤.
카릴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조용해진 낮은 숨을 토해내며 눈을 떴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던 집무실은 이제 그 혼자 남아 방 안은 침묵이 감돌았다.
탈칵-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상자.
전생에 나르 디 마우그가 숨겼던, 회색 교장에서 얼음 발톱과 함께 있었던 상자였다.
[결심이 선 모양이로군.]그의 뒤에 모습을 드러낸 알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도 모른다고 했지?”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은 말이야. 그 상자를 만든 것은 셀린 한이지만 그녀는 그저 물건을 만들었을 뿐 이걸 넣은 자는 누구도 몰라.]“아무도? 7인의 원로회가 아니라는 말인가?”
카릴은 알른의 말에 불현듯 백금룡의 얼굴이 떠올랐다.
[글쎄, 지식의 보고를 열어라. 내가 아는 것은 이미 너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니. 네게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느냐고 묻는 건 어리석은 질문이겠지?]“진실을 마주할 용기라…….”
카릴은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진실을 알고자 할 때 필요한 건 용기가 아니야.”
그러고는 상자 위에 손을 얹고는 천천히 마력을 흘려보냈다.
“분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