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232)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232화(232/497)
175. 상자를 열다 (3)
콰아아아앙—!!!
카릴은 얼음을 깨는 것처럼 있는 힘껏 검을 지면에 찍어 눌렀다.
하지만 투명한 바닥에 검은 연기와 물방울들만이 사방으로 흩뿌려질 뿐 유리처럼 보이는 바닥은 깨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 안에 들어 있는 게 라미느가 말했던 해일의 여왕을 찾을 수 있는 단서인가?’
바닥은 신기하게도 한없이 투명해 보이면서도 그 내부는 또 한없이 불투명해 보였다.
말이 맞지 않은 설명이지만 분명 바닥 아래 뭔가가 있음을 확신한다. 하지만 정작 두 눈에 마력을 집중해 살피려고 하면 보이지 않았다.
그 짙음은 마력의 강도에 따라 더 강해져 만환(卍環)을 쓰게 되면 도리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력에 반응하는 건가.’
카릴은 몇 번이나 더 검을 내려쳤지만 검날을 덮고 있는 아케인 블레이드 비전력 역시 마력의 응축이었기에 검날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더욱 단단해졌다.
“흐음…….”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 카릴은 낮은 한숨과 함께 바닥에 쓰러져 있는 분신의 뒷덜미를 잡아 끌어올렸다.
“말해봐. 저 안에 있는 게 뭔지. 네 본체라도 되나? 네 정체가 뭐야?”
엉망이 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을 아니었지만 카릴은 망설임 없이 녀석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우린……. 욕망이다.]그때였다.
분신에게서 들리는 목소리가 아닌 마치 메아리처럼 저 멀리서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
카릴은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스으으으윽…….
그 순간 그가 잡고 있던 분신의 몸에서 바닥에 흐르는 검은 연기와 똑같은 연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황급히 녀석의 몸을 발로 밀어 버리며 검은 연기에서 떨어졌다.
분신의 몸이 줄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관절이 제각각 움직이며 바닥에 너부러졌다.
[나는 15번째.]바닥에 쓰러진 분신의 피부가 허물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카릴은 조용히 그의 변화를 바라봤다.
“퉷-”
하다 하다 이제는 자신이 녹아내리는 모습까지 보고 있음에도 오히려 그는 그 속에 보이는 분신의 정체를 보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게 네 모습인가.”
인간의 모습은 사라지고 똬리를 틀고 있는 푸른색의 뱀이 날카로운 혀를 내밀며 카릴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기는 카릴의 키를 훌쩍 넘었다.
마치 서펀트를 바라보는 것 같은 거대한 크기로 녀석은 그를 압도했다.
[나는 불변하는 영속된 자리의 주인이다.]‘15번째……?’
카릴은 그 순간 알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15명의 블레이더.
‘그중에 둘은 변하지 않는다.’
그 말은 그 둘 중 한 명이 썼던 무구가 눈앞에 있는 저 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녀석이 그중 하나인가. 아니면 그 자리의 주인이 썼던 무구인가.’
카릴은 아직 뱀의 정체를 가늠할 수 없어 조심스럽게 녀석을 살폈다.
[15번째는 오직 하나이나 이 자리를 노리는 후보는 여럿이지. 걔 중에는 늑대도 있었고 자칼도 있었으며 곰과 말도 있었지만 모두 내 송곳니에 제물이 되었을 뿐.]“…….”
세엑…… 세에엑……!!
푸른 뱀이 아가리를 벌리자 길게 자라 있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였다.
[나는 신이 만든 독이다.]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녀석이 입을 벌릴 때마다 투명한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과거에 사마에르(Samael)라 불렸으며 누구에겐 디아고라 불리기도 했으며 오늘의 역사엔 마엘이라 불리겠으나 사실 이름은 중요치 않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욕망이자 힘. 그리고 그것이 내 먹이이자 힘이니까.]카릴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저벅- 저벅- 저벅-
그러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뱀의 앞에 서서 그는 목을 들어 녀석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중요하지 않다면서 자기 이름 소개를 뭐 그렇게 길게 해? 꼭 그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것처럼.”
카릴은 녀석의 몸을 툭툭 두들겼다.
“마엘(Mael)이라……. 그래, 이름이 있어야 부르기 편하겠지. 그래야 내가 널 부르는지 알 테니까.”
[…….]뱀은 그의 말에 같잖다는 듯 혀를 내밀었다.
[네가 나를 가질 적법한 주인이라 생각하는가? 신령대전부터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싸움 그리고 15번째가 가지는 의미도 모르는 녀석이.]하지만 카릴은 그런 녀석의 반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너는 내 주인이 되지 못한다. 과거의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영웅이 되고자 하는 자는 결국 신의 욕망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으니까.]녀석은 마치 그를 놀리듯 말했다.
[만전을 가했던 과거의 전쟁도 패배했던 인간을 믿으라고? 너희는…….]파르르 떨리는 것처럼 빠르게 날름거리며 혀를 움직이는 녀석을 바라보며 카릴은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말을 끊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왜 내가 영웅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카릴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머릿속을 봤다면 알 거 아냐. 내가 왜 탑을 올랐는지. 배신한 친우에 대한 복수? 그거라면 이미 전생에도 끝냈어. 하나뿐인 친우라 믿었던 녀석을 내 손으로 죽였으니까.”
그러고는 으르렁거리듯 녀석을 향해 말했다.
“볼 거면 똑바로 훔쳐보고 말해. 내가 왜 율라를 증오하는지. 무슨 생각으로 탑을 올랐는지. 네 말대로 하찮은 인간끼리의 문제가 아니니까.”
턱-
그는 마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신이 만든 유산. 파렐을 올라 인류를 구하기 위해 돌아오지 않았느냐. 그 신이 내려다보고 있음을 알면서도.]카릴은 그의 말에 비소를 지었다.
“무슨 개소리야. 난 한 번도 그들을 위해 싸운다고 말 한 적 없는데?”
[……뭐?]“내가 왜 생면부지의 인간들을 위해 이런 개고생을 해야 하지?”
카릴은 거대한 녀석의 몸을 밟고 뛰어올라 마치 애완동물의 머리를 두들기듯 뱀의 머리를 툭툭 쳤다.
그 순간,
마엘은 그의 눈빛 속에서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알 수 없는 깊이를 그에게서 느꼈다.
“블레이더? 너희가 무슨 사명을 가지고 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과 달라.”
그의 말에 마엘은 침묵했다.
“너희들이 얼마나 대단한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명 따윈 개나 주라지. 난 날 위해 싸우는 거다.”
“운명이란 포장으로 내 삶을 이따위로 만든 신이란 놈에게 검을 박아 넣기 위해서 말이야.”
어째서일까.
카릴과 대화를 하던 마엘이 어느 순간 그저 그의 말을 들을 뿐이었다.
“굳이 나와 겨룰 것이 있다면 그건 과연 내 욕망이 큰지 신의 것이 더 큰지겠지. 패배. 그래, 신도 한 번은 그걸 느껴봐야지. 그래야 공평하잖아.”
카릴은 차갑게 그를 바라봤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심정이 뭔지 말이야.”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억겁의 시간을 오직 하나의 욕망을 위해 탑을 걸어 온 그를 단순히 인간의 잣대로 판단하려는 것이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크크큭? 네가……? 네가 신을 죽인다고? 웃기는 소리 하고 있군. 고작 인간이?]“내 발아래 쭈그려 있는 녀석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카릴은 마엘의 머리를 지그시 밟았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하고 못 하고에 대해서 네게 허락을 받으려고 여기에 있는 게 아니야.”
[정말로 내가 너를 죽이지 못해 이런 결과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내 머리 위에서 허세를 부리는 것도…….]“신화시대의 블레이더들은 신살자(神殺者)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것 치고는 엄청나게 무른 녀석들이었나 봐. 이런 말 많은 놈을 그냥 두고.”
마엘은 자신의 말을 다시 끊는 카릴의 모습에 살짝 언짢은 듯 인상을 찡그렸다.
뱀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은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었기에 꽤나 인상적이었다.
[……뭐?]“지금 네 앞에 있는 게 누구지? 네 상황을 잘 파악하라는 말이야. 신과 싸우고 자시고는 추후의 문제지. 날 거역하면 그 전에 나한테 죽을 거니까.”
뱀은 카릴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솔직해지자고. 네가 그렇게 대단한 녀석이라면 고작 6클래스의 마력을 가진 내가 열 수 있을 상자에 봉인되지 않았겠지. 차라리 라미느나 두아트의 봉인이 더 까다로웠어.”
전투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신과의 승부는 솔직히 말해 지금껏 그 어떤 존재와의 싸움보다도 싱거울 정도로 쉽게 끝났다.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봉인을 푼 것 치고는 결과가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했다.
“애초에 6클래스라는 상자의 봉인은 한낱 장치에 불과한 거지. 이 공간의 문을 열고 안 열고는 네 의지에 달린 거야. 안 그래?”
[크…… 크큭.]뱀의 혀가 파르르 떨리자 카릴은 자신의 추측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너는 나와 싸울 생각이 없었어. 이미 내 힘을 알고 내 목표를 알고 있었으니까.”
툭-
“그리고 그게 네가 바라는 것이라는 것도.”
카릴은 그의 머리 위에서 내려와 차가운 눈빛으로 마엘을 바라봤다.
“그런 주제에 지금 나와 거래를 하려고 혀를 놀려? 고작 뱀 따위가? 머리를 처박고 부탁해도 모자랄 판에.”
[……뭐?]마엘은 당혹스러운 듯 되물었다.
“네 주제를 파악해.”
카릴은 그 표정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음 발톱으로 바닥을 두들겼다.
“널 죽이지 않은 이유는 하나야. 네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기 때문이지. 무슨 이유인지 신령대전에 관해서 정령왕들은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 말이지.”
[…….]“뿐만 아니라 네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블레이더가 무엇인지까지. 모두 말해야 할 거야.”
그의 말에 뱀의 눈이 흔들렸다.
쿠우우웅…….
힘을 다해 검을 찍어 누르자 지면이 흔들리는 듯한 울림이 울렸다.
“너도 바라는 거 아냐? 내가 선사할 율라의 최후. 이런 상자 속에 갇힌 네 송곳니가 과연 신에게 닿기라도 할 수 있을까? 신에게 반기를 들고 싶다면 줄을 제대로 서야지.”
카릴의 말에 뱀은 어이가 없었다.
신화시대 때부터 끝없이 많은 전쟁을 치렀던 자신이었다.
영웅이라 불리는 자부터 패자라 불리는 자까지 수많은 인간을 봐 왔지만 그에게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 과연 있던가.
“나는 너희가 왜 신과 싸웠는지 몰라. 너희가 말을 해줘야 알지. 말하기 싫다는 녀석의 과거까지 파고들 만큼 한가로운 사람이 아냐. 하지만 이건 확실하다. 내게 눈을 깔고 머리를 조아린다면 적어도 네게 다시 한번 복수의 기회를 주마.”
카릴은 조금 더 가까이 고개를 내리며 말했다.
“내가 뱀 따위에게 겁먹을 것 같아? 내가 씹어 먹은 건 고작 너 같은 뱀이 아니라 용의 심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