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234)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234화(234/497)
175. 상자를 열다 (5)
“안 그래? 라미느. 별것도 아닌 걸 듣기 위해서 내가 이 고생을 해야 했나? 여길 나가는 즉시 마력에 버무려 줄 테니까 각오하고 있어.”
[자…… 잠깐!!!]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당황하는 라미느의 불꽃이 뛰쳐나왔다.
[네게 이야기해 줄 수 없었던 것은 규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령대전에서 패배했고 우리의 패배는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인될 수 없는 사실이다. 패자는 승자가 만든 규율을 따라야 한다.]“너는 내가 사과나 듣자고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생각해?”
[……뭐?]라미느는 카릴을 바라봤다.
“너는 사과를 해야 할 것이 아니라 화를 내야지. 제3자인 내가 이렇게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그게 무슨…….]“율라가 말을 하지 말라 명했다는 것은 패자로서 따를 수밖에 없다지만 대륙에 남아 있는 후손인 우리들에게 보란 듯이 북부의 동굴에 블레이더를 봉인해 둔 것에 대해서 말이야. 마치 전쟁의 승자가 본보기로 자신의 성문 앞에 시체를 걸어 놓은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이냐.”
빠득-
카릴은 이를 갈았다.
“너희는 그런 치졸한 짓이 과연 신이란 작자가 할 행동이라고 생각되나?”
[……그자의 눈이 검은 것 말고 또 다른 특이점이 있었나?]상황을 듣던 마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궁금해?”
[몇 가지 확인을 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렇다.]카릴은 짐짓 멈칫거리는 그의 모습에 차갑게 대답했다.
“궁금하면 직접 보면 되지. 너나 정령왕들이나 고작 한 번의 패배로 틀어박혀 있으니 이렇게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인 거다.”
[우리는…….]라미느가 뭔가 말을 하려고 했으나 카릴은 조용히 하라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인간의 말엔 이기고 지는 것은 전쟁에 흔한 일이라는 말이 있다. 패자의 핑계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내가 회귀를 한 이유도 그와 같다.”
카릴은 패배했다.
신탁을 수호하기 위해 싸웠던 그가 맞이했던 결말.
그 진실이 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그만이 알고 있지만 적어도 그 사실에 도달했을 때 그는 자신의 친우인 올리번을 죽여야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승자의 규율을 따라야 한다? 대륙의 전쟁은 더럽고 너희가 한 전쟁은 고귀할 정도로 신성한가? 웃기지 말라고 해.”
카릴은 말했다.
“그리고 인간이 자주 하는 말 중에 내가 가장 가슴에 새기는 말이 하나 있지.”
세 사람은 그를 바라봤다.
“마지막에 서 있는 자가 진짜 승리자다.”
그러고는 카릴은 그 세 명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지목하기 시작했다.
“너, 너 그리고 너까지. 모두 죽은 게 아니잖아? 내가 신이었다면 이렇게 무른 짓은 하지 않아.”
[머, 멍청한 소리!! 정령왕이 소멸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이미 우리가 봉인이 되는 것만으로도 정령계는 소실될 위기를 맞이했다.]“근데?”
카릴은 라미느의 변명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차피 지금도 제구실을 못 하고 있는데 사라진들 뭔 차이지? 내가 신이라면 위험 요소인 너희를 차원에서 없애 버렸을 거다.”
[…….]신랄한 그의 말에 셋은 아무런 반발도 하지 못했다.
“너희는 살아 있고 신도 살아 있다. 싸움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콰아앙—!!
카릴이 있는 힘껏 검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전쟁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야. 신화시대부터 마도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전쟁은 계속되어 오고 있다는 말이다.”
쩌적…… 쩌저적…….
그때였다.
지금까지 어떤 방법을 써도 깨지지 않았던 어둠 안에 가려진 투명한 바닥이 얼음이 깨지듯 금이 가기 시작했다.
카릴은 그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저 아래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도 내 말에 조금은 마음이 동한 듯싶은데. 안 그래? 마엘.”
[…….]“대화는 저걸 보고 나서 하마.”
콰아아앙……!!
다시 한번 있는 힘껏 발로 바닥을 내치자 금이 간 바닥이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나며 그의 몸이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라미느, 내 생각에 네가 괴물을 깨운 것 같군.]두아트는 카릴의 뒷모습을 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전에도 말했잖아. 내가 깨운 게 아니라 저 녀석 자체가 괴물이라고.] [감쪽같이 속았어. 그 사람을 카릴이 알고 있을 줄은 말이야. 숨기려고 한 우리가 바보 같군.]라미느는 그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녀석은 가능성 없는 일에 도박을 걸진 않으니까. 그의 말대로다. 블레이더란 존재를 더 이상 그에게 감출 필요 없다면…….]불꽃이 바닥으로 떨어진 카릴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릴 비웃듯 그에게 안식조차 주지 않은 신에게 분노해야 할 때겠지.]사라지는 불꽃을 바라보며 두아트의 그림자 역시 그를 따라 침식하듯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니, 그저 그 말을 믿고 봉인되어 있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자신에게 분노해야겠지.] […….]모두가 사라지고 남은 빈 어둠.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정말로 신에게 다시 대적할 생각이란 말인가.]마엘은 생각지도 못한 이들의 이야기에 당혹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커다란 구멍을 바라보던 그는 결국 낮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너희는 이런 얘기를 정말 내 앞에서 해도 괜찮나?]알 수 없는 말과 함께 그 역시 마음을 굳힌 듯 세 사람이 떨어진 구멍 안으로 몸을 던졌다.
* * *
“바닥 아래 이런 것이 있을 줄은 몰랐군.”
카릴은 고개를 들어 이제 천장이 되어버린 자신이 부순 바닥을 바라봤다.
마치 층이 나눠진 건물처럼 바닥을 부수자 그 안에 나타난 공간은 어둠과는 정반대인 새하얀 백색이었다.
“해일의 여왕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다고 들었는데……. 해일이 아니라 얼음의 여왕이라 해야 맞겠군.”
말을 할 때마다 새하얀 입김인 나왔다.
북부의 냉기 속에서 살았던 그였지만 온통 새하얀 얼음 기둥이 즐비한 이곳은 그에게도 숨을 쉬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빙결(氷結)이 가지는 성질은 무언가를 봉인하거나 그 힘을 억누르는 것이지. 그만큼 이 안에 있는 것이 강대한 힘을 가졌다는 것일지 모른다.]카릴은 라미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하니 더더욱 궁금해지는걸. 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말이야.”
그는 뒤를 따라오는 마엘에게 말했다.
“마엘, 네가 있던 공간과 이곳은 분리가 되어 있던 거 같던데……. 네가 있기 전부터 이 공간이 있었던 걸까?”
[아마도 내가 봉인되기 이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이미 구역이 나누어져 있었으니까. 나 역시 이곳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흐음……. 그럼 한 가지 더 묻지. 7인의 원로회는 이 봉인의 상자를 만드는 의뢰를 한 것이 나르 디 마우그라고 했다. 그렇다면 너를 봉인한 자가 그 녀석인가?”
카릴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알지 못한다. 신령대전 이후 패배한 우리는 신의 뜻에 따라 처분되어야 했으니까. 의식은 사라지고 공허 속에 갇혀 있을 뿐이었으니 이후에 나를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 상황이라…….’
마엘의 대답에 카릴은 살짝 입술을 깨물며 눈을 흘겼다.
백금룡(白金龍).
유일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었던 존재였기 때문에 더욱 의심을 하는 것이 어려웠었다.
‘도대체 너는 내게 무엇을 숨겼던 거냐.’
당장에라도 찾아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상대는 이 세계 먹이 사슬의 가장 정점에 서 있는 존재였다.
물론,
쉽사리 질 생각은 없다.
카이에 에시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 역시 용 사냥꾼이라는 이명에 도전하기에 충분하다 여겼다.
하지만 승패의 결과를 떠나 두 사람이 싸우게 된다면 대륙에 엄청난 피해가 올 것은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백금룡과의 일전은 남아 있는 다른 드래곤들에게까지 반감을 살 수 있는 일이었다.
‘어차피 신탁 전쟁에서 인류를 나 몰라라 했던 놈들이지만…….’
차라리 관여하지 않는 게 낫지 자칫 잘못해 자신 때문에 그들이 신의 편으로 돌아서기라도 한다면 큰 문제였다.
‘과거 신령대전에서 이미 드래곤들이 신의 편에서 인간과 정령에게 싸웠다는 것이 밝혀졌으니까. 이후에도 못할 것도 없겠지.’
비록 개체 수는 많지 않지만, 하나하나가 기사단을 쉽사리 뛰어넘는 힘을 가진 드래곤이기에 결코 적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보이는 모습은 여전히 드래곤을 믿는 것처럼 행하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의심을 놓지 않고 그 의심이 사실이 되었을 때 피할 수 없는 비수를 꽂기 위해.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한다. 어쩌면 신탁을 맞이하기 전에 내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업은 대륙 통일이 아닌 백금룡의 진실을 밝히는 것일지 모르니까.’
저벅- 저벅- 저벅-
지그재그로 얼음 기둥이 얽혀 있는 거대한 동굴을 지나자 그 안에는 마치 신전 같은 새하얀 공간이 나타났다.
“흐음…….”
카릴은 신기한 듯 주위를 훑었다.
‘알른이 남긴 지식의 보고에도 찾을 수 없는 곳이군. 아직 내가 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6클래스에 도달 이후 지식의 보고를 한 단계 더 열 수 있게 되었지만 그가 남긴 모든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결국 7클래스의 벽을 뛰어넘어야 했다.
‘알른도 모를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마엘의 표정을 보니 그 역시 처음인 듯싶으니…….’
카릴은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더 안쪽으로 들어가던 그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
그의 눈빛이 떨렸다.
신전의 끝.
그곳엔 주위에 세워진 기둥들의 몇 배는 더 두꺼운 거대한 얼음 기둥 하나가 박혀 있었다.
“라미느, 아무래도 네가 잘못 생각한 모양이다. 확실히 이 정도의 기운이라면 회색 교장에서 네가 느꼈을 냉기가 물의 정령왕의 것이라고 착각할 만해.”
카릴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작은 물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아니면 저게 정말로 해일의 여왕과 관련이 있는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는 기둥에 눈을 떼지 못했다.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건 북부와 관련된 물건이라는 거다. 아니, 정확히는 이민족과 관련된 것이라 해야겠지.”
[저게 뭔지 넌 안다는 말이냐.]라미느가 물었다.
“물론.”
카릴은 차갑게 웃었다.
“처음 봤지만 보자마자 이게 무슨 물건인지 단번에 알 것 같은 건 비단 내 몸에 이민족의 피가 흐르기 때문만은 아닐 거야.”
그러고는 천천히 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의 손에 들려진 작은 단검.
우우우웅…… 촤르르륵……!!
얼음 기둥의 앞에 검을 가져가자 단단하게만 보였던 기둥이 떨리더니 순식간에 녹아내려 버렸다.
[……!!!] [……!!!]그 광경을 본 마엘을 비롯한 두 명의 정령왕들 역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카릴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내가 사는 지금은 현재다. 너희가 겪었던 전쟁은 그저 과거일 뿐. 내가 앞으로 할 전쟁과는 전혀 다를 거다. 하지만 이걸 보니 몇 가지 확실하게 해둬야 할 게 생겼다.”
카릴은 기둥 안에 있던 물건을 집어 들었다.
“너희는 지금 내 옆에 있지만 너희 역시 과거의 존재일 뿐이야.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고 봉인이 된 채 너희의 시간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니까.”
세 명은 그를 바라봤다.
“과거의 존재는 과거로 그만이니 내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와 함께 현재를 살고 있는 놈뿐이겠지. 과거에 살았고 앞으로 내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딱 한 놈.”
그는 마치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담담했던 표정이 분노로 휩싸이자 그의 주위를 감싼 공기마저 떨렸다.
“마엘,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딱 하나만 말해. 이건 네가 살았던 시간의 물음이니까.”
카릴은 눈을 번뜩였다.
“신령대전 때 백금룡은 누구의 편에 섰었지?”
그 순간,
무거운 침묵이 어둠 속을 내리깔았다.
“어째서 이곳에 아그넬의 검집이 숨겨져 있었는지 이유를 알아야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