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24)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24화(24/497)
22. 그가 모르는 3년의 공백
“흐음.”
카릴은 품 안에 있던 주머니를 꺼내봤다.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쨌든 자금이 필요했다. 주머니 안에는 아인헤리에서 얻은 카이에 에시르의 보화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다시 집어넣고는 또 다른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저택을 빠져나올 때 가져온 것이었다.
카릴은 옅은 미소를 띠었다.
짜르릉-
펼쳐 보자 그 안에도 금화가 있었다.
하지만 아인헤리에 있던 주머니에 들어 있던 금화와는 묘하게 달랐다.
카이에 에시르가 살던 시대에 있던 옛 제국의 금화는 그 자체로도 값어치가 있었지만 사용하기 위해서는 보석상에 팔아야 했다.
마음껏 그것을 쓰라고 했지만 지금의 카릴에겐 아무래도 제약이 있었다.
12살의 꼬마가 상점에서 거래하기엔 과한 물건이 아닐 수 없었다.
“엘리엇이 비상금을 숨겨 놓는 곳이 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야.”
몰락한 상인의 자재 아들이었기 때문일까.
셋째인 엘리엇은 불같은 성격과 돈에 대해 애착을 넘는 집요함이 있었다.
이따금 크웰이 자식들에게 용돈을 주거나 하면 엘리엇은 꼭 쓰지 않고 작은 금고에 넣어 두었다.
“나중에 상단을 꾸리겠다는 꿈은 어차피 전쟁이 터지고 나면 이룰 수 없으니까……. 이 돈은 못 쓰잖아. 그래도 빌린 돈은 꼭 갚으마.”
카릴은 일단 저택에서 멀지 않은 마을에서 말을 한 필 샀다.
자신을 향해 환호했던 백성들이었지만 고블린 토벌 때엔 가면을 쓰고 있었기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택을 나서는 순간 그는 가야 할 목표를 이미 세워뒀다.
‘최종 목적지는 타투르지만 그곳에 가기 위해서 들려야 할 곳이 있지.’
항구 도시, 피아스타.
저택에서 말로 보름 정도를 달려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카릴은 넉넉하게 먹을 것과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마을을 둘러보고 있었다.
“자자, 새로 들어온 가죽입니다!”
“맛 한번 보시죠!”
과일을 든 상인에서부터 여러 가게가 즐비한 크웰령 소속의 마을은 크지는 않았지만 제법 활기찼다.
‘고블린이 깔끔하게 소탕이 돼서 다행이야. 그렇지 않으면 아마 여긴 녀석들에게 쓸려 사라졌을 테지.’
전생에 이곳은 폐허였다.
환하게 웃고 있는 저들도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카릴은 회귀 이후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결과에 만족스러운 듯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와그득-
그러고는 가판에 놓여 있는 사과 하나를 가볍게 깨물면서 주위를 바라봤다.
‘이렇게 자유롭게 제국을 돌아다녀 본 게 언제였지.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르겠네.’
카릴을 새삼 마법의 위대함에 대해 느끼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다들 비키시오!! 빨리 길을 터요!!!”
마을 입구에서 한 남자가 숨을 헐떡이면서 길목에서부터 소리쳤다.
상인과 마을 사람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카릴이 마지막 한 입을 털어 넣으면서 남자가 달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러자 카릴의 시야가 확대된 것처럼 선명해지더니 저 멀리 일대의 무리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며 웅성거릴 뿐이었다.
두두두두……!
하지만 이내 곧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선두에 선 깃대의 문양을 보자마자 사람들은 황급히 주위를 치우기 바빴다.
‘저건 분명…….’
카릴의 눈이 살짝 찡그려졌다.
히이이잉—!!
고삐를 잡아당기자 말이 두 발을 위로 치켜들며 멈춰 섰다.
“이보게, 물을 좀 얻을 수 있을까.”
“네, 넵. 물론입죠.”
선두에 선 기사가 투구를 벗으며 땀을 닦았다. 상인은 다락에서 가장 좋은 집기를 꺼냈지만 어쩐지 망설이고 있었다.
“상관없네. 물을 마실 수만 있으면 그만이니.”
젊은 기사는 가볍게 웃었다.
카릴은 그를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제국 일곱 기사단 중의 하나인 려(?)기사단이잖아? 뒤늦게 저택으로 가는 건가. 하긴……. 아버지의 성격이라면 마도구로 일단 첩자가 죽은 것부터 보고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상했다.
루레인 공국의 첩자인 베이커가 죽은 것은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저들은 동쪽 경계를 맡고 있는 기사단일 텐데……. 아무리 보고를 받았다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올 순 없을 터.’
카릴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하지만 전생에 려(?)기사단이 저택을 방문했었던 적은 없었다.
‘있었다면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상인이 건넨 물바가지를 아무렇지 않게 들이키고 있는 한 기사를 바라봤다.
매끈한 선이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과 고풍스러움이 느껴졌다.
성직자를 해도 될 정도로 얼굴에서 선함이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만큼이나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백성들과 허물없어 지낸 몇 안 되는 귀족 중 한 명.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려기사단의 부단장 자리에 오른 나르일 남작.
‘성품만큼이나 외모도 준수해서 영애들에게도 인기가 많았고 말이야.’
그 성품 때문에 신탁이 내려진 뒤.
황궁으로 소집되었던 당시 이민족이었던 자신을 스스럼없이 대해주기도 했다.
‘저런 순수한 얼굴을 하고서 전장에서는 악귀처럼 변한다는 걸 여자들이 알까 몰라. 뭐, 실력도 출중하고 곧 단장에 오르겠군.’
첫 신탁 전쟁 때를 떠올리며 카릴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카릴의 생각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그의 등에는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배틀 액스가 단단히 메여 있었다.
‘그런데 왜 저렇게 급하게 가는 걸까.’
제국의 일곱 기사단은 당연히도 제1황자파와 제2황자파로 나뉘게 된다.
청기사단의 단장인 크웰이 올리번의 손을 들어 준 것이 그들이 급속도로 빠르게 편이 갈리게 된 계기를 주었다.
‘아직은 중립을 지키고 있지만 려기사단 역시 올리번의 편이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다른 계획이 있었던 건가.’
카릴은 다시금 말을 모는 나르일을 바라보며 살짝 입맛을 다셨다.
‘쫓아가 볼까?’
호기심이 일었지만 이내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어. 괜히 끼어들었다가 문제를 일으키는 건 좋지 않아.’
만약 지금 려기사단의 움직임이 대륙 역사에 큰 영향력을 끼쳤었다면 카릴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후에 자신과 만났던 걸 생각하면 나르일이 죽거나 다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뭐, 그래도 이런 식으로나마 보니까 반갑긴 하네.’
그러고는 떠난 그의 뒷모습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봤다.
카릴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주 조금 자신이 미래가 바뀌었을 뿐이었으니까.
그것이 어떤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 * *
피아스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항구 도시는 분주했다.
“후우.”
오랜 시간을 말을 몰아 겨우 도착한 그는 여독을 풀기도 전에 한 곳을 들렀다.
카릴은 감회가 새롭다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활기 넘치는 사람들의 모습 도시의 분위기는 좋았지만 카릴의 기분은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
“안됩니다. 절대 안 돼요.”
“…….”
끼릭- 끼릭-
카릴의 굳은 얼굴처럼 불어오는 바람에 가게의 간판이 무심하게 흔들렸다.
<상인 조합>
간판의 이름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대륙을 관통하는 포나인 강과 바다가 만나고 있는 곳에 위치한 피아스타는 규모는 작았지만, 입지적 특성 때문에 대륙에 존재하는 상인들 대부분이 이곳을 들린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었다.
카릴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마흔 대가 넘는 짐 마차가 일렬로 서 있는 모습이 장관인 상인 조합은 명실공히 대륙의 모든 정보가 집중되는 정보의 장이었다.
“상단이 길을 떠나지 않겠다니. 일을 하지 않을 생각으로 들리는데.”
“손님, 길도 길 나름이죠.”
번뜩이는 가죽 튜닉을 입고 있는 남자는 손사래를 치며 카릴에게 말했다.
짧게 자른 머리를 쓸어 넘기며 그는 카릴을 슬쩍 훑어보며 고개를 돌렸다.
어린아이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는 듯 그는 선반에 있는 짐들을 정리했다.
“여기에 라바트 길드가 없는가?”
카릴은 그의 태도에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제가 항구에서 터를 잡은 것만 15년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런 길드는 없습니다.”
“…….”
“상인 조합은 여기 말곤 없습니다. 손님께서 말씀하신 루트로 가는 상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니, 저희 말고 도시 어디에 물어도 안 갈 겁니다.”
남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쌓여 있는 상자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이상한데…….’
그 순간.
카릴은 시간을 더듬어 보았다.
‘아직 시기가 안 된 걸까.’
자신이 이곳을 찾은 건 확실히 전생(前生)보다 수년은 빨랐으니까.
‘난감한걸.’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은 위험한 던전도 숲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그곳을 가는 사람이 없었다.
이곳에서 포나인이라는 거대한 강을 따라 배로 이동하다 보면 보이는 운하(運河).
‘그 뒤에 있는 자유도시(自由都市).’
타투르.
그곳이 바로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카릴의 첫 목적지였다.
“목숨이 열 개라도 무법항에 정박하려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남자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 있던 다른 상인들도 부정하지 않는 듯 낮은 신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포나인 강의 끝에 위치한 타투르는 대륙의 그 어떤 왕국과도 다르다.
아니.
왕국이라 할 수 없다.
‘그곳은 대륙에 유일하게 왕이 없는 도시. 그렇기 때문에 자유도시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자유란 반대로 법도 질서도 없다는 걸 의미하지.’
카릴이 그런 무법천지에 가려고 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정보(情報)와 거점(據點).’
대륙을 관통하는 포나인 강의 가운데에 있는 타투르는 지금을 불모지지만 시간이 흘러 뱃길이 열리게 되면 온갖 물자와 함께 대륙의 모든 소식이 움직이는 곳이 된다.
그가 필요한 모든 것이 그곳에 있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포기하쇼. 어린 나이에 일찍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그럼, 그럼.”
“거길 건넌다고? 말이 안 되는 소리지.”
상인들의 낮은 웃음소리에도 불구하고 카릴은 고민을 하는 듯 쉽사리 걸음을 떼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타투르는 육로로 갈 수 없는 곳이다.
오직 포나인 강을 따라 올라가거나 뒤편에 있는 운하를 타고 내려가야만 한다.
즉, 무조건 배로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자유도시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항구.
무법항(無法港).
타투르의 왕은 없지만 항구의 주인은 존재한다.
포나인의 금사자(金獅子)라 불리는 큐란.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타투르의 주인을 사람들은 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인들이 겁을 내는 건 무법항의 주인인 큐란이 해적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공물을 바치면 그 누구도 받아들여 준다.’
그것이 일국의 큰 죄를 지은 역적이라도 혹은 이단섬멸에 쫓기는 이민족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뭐……. 그딴 녀석에게 줄 공물 따윈 없지만.’
하지만 그건 도착해서의 일이다.
그 이전의 진짜 문제는 타투르에 도착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었다.
‘강에 포진되어 있는 몬스터들.’
그중에서도 수왕(水王)이라 불리는 거대한 서펀트는 제국에서도 처리하지 못한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이것도 아니다.
설령.
수왕(水王)을 만난다 하더라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항로가 개척되지 않은 걸 봐서는 아직은 금사자 녀석만 이 방법을 독식하고 있겠지.’
그가 무법항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때문일 테니까.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포나인 강에서 타투르로 이어지는 급류(急流).’
강이라고 불리기엔 너무나도 큰 포나인은 해류라고 해도 될 만큼 조류가 거세다.
‘다리에 흐르는 두 개의 혈맥까지만 뚫려도 플라이(Fly) 마법을 쓸 수 있을 텐데…….’
강대한 마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이 아쉬웠다.
탐욕의 팔찌 덕분에 마력은 안정화 되었지만 혈맥이 뚫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아직 마법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라바트 길드의 마스터, 수안 하자르.’
카릴이 상인 조합을 찾은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그가 최초로 포나인의 조류를 분석해서 타투르와의 수로를 개척한 사람이었다.
마법 같은 조타술과 무모에 가까워 보이는 직감은 카릴의 생애에서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항해사보다 뛰어난 자였다.
‘게다가 육지, 해상 할 것 없이 전투도 탁월했지. 솔직히 상인으로 남기에 아까운 인물이었다. 그의 부하들은 웬만한 군대보다 더 뛰어났으니까.’
노도와 같은 그의 함선과 질풍처럼 빨랐던 그의 상단은 그들만이 알고 있는 루트로 빠른 기습을 감행.
신탁이 내려진 후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해도 전쟁, 바르카 사막전, 잊혀진 수로 사원 공략까지…….’
올리번의 황제 즉위 이후.
대륙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 중에 그를 빼놓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없을 정도였다.
그 때문에 올리번은 그에게 백작 직위까지 수여하려 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끝까지 거절했었지. 어쩐지 군에 대한 얘기를 할 때마다 치를 떠는 모습이었어.’
카릴이 그를 처음 만난 건 15살이 되던 해.
지금으로 3년 후였다.
‘그때 그가 길드 마스터였으니 만약 시간이 일러 그가 마스터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라바트 길드는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생(前生)의 그는 신탁(神託)이 있기 전.
15살이 될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저택에서 보냈었으니까. 어찌 보면 그에겐 3년의 공백이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를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라바트 길드는 황도에까지 이름이 날 정도로 거대 길드였기 때문이다.
그런 길드가…….
고작 3년 안에 성장한 신흥 길드일 줄이야.
카릴은 인상을 찡그렸다.
‘대체 올리번은 어디서 그를 발견한 거지.’
안타깝지만, 알 수 없다.
‘생각지 못한 일에 발목이 잡힐 줄이야.’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쩔 수 없이 금사자 녀석이라도 교섭을 해봐야 하나.’
하지만 이내 곧 고개를 저었다.
“음?”
그때였다.
‘……뭐지?’
거리가 소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