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248)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248화(248/497)
177. 공국 내전 (13)
“헉……!! 헉……!!”
겨울의 마른 수풀들이 꺾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고 그보다 더 거친 숨소리가 숲에 울렸다.
프란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달리는 다리에 속도를 멈추지 않았다.
살고자 하는 욕망의 결과일까.
이틀 안에 도착할 거라는 카릴의 예상과 달리 그는 문 에테르에서 도주한 지 하루가 되었을 때 어느새 빈프레도 강 중류 언저리에 도착했다.
풍덩……!!
프란은 강물이 보이자마자 고개를 처박고 벌컥벌컥 마시고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크르르르르르르―――!!!] [카아악―――!!]그 순간,
대지가 떨릴 듯한 포효 소리와 날갯짓이 만들어 내는 강풍에 나무가 흔들렸다.
“……!!”
프란은 허겁지겁 강물에 처박고 있던 얼굴을 들고서는 기다시피 강 주위에 있는 바위로 몸을 숨겼다.
“비룡 1부대가 벌써…….”
고개를 들자 상공에서 적색의 비늘을 가진 드레이크 수십 마리가 날고 있었다.
그들의 크기는 보통의 비룡 부대와는 확연히 달랐다. 완전히 자란 성체의 드래곤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날개를 펼치자 수십 미터에 달했다.
[캬악……! 캭!!]드레이크들이 날면서도 폭력적으로 송곳니를 드러내며 당장에라도 물어뜯을 기세였다.
비룡 1부대는 다른 비룡 부대와 다르다.
자연적으로 태어난 드레이크에 마도공학으로 만든 목줄을 달아 길들인 것이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손을 거쳐 인공적으로 태어난 녀석들은 염룡(炎龍)이라 불리는 리세리아의 피를 개량한 것이라 레드 드래곤의 포악함을 그대로 물려받은 듯 보였다.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도착해야 한다. 자칫 잘못해서 저들과 싸우기라도 하게 되면 정말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려.’
프란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자신의 주먹으로 두들겼다. 하지만 하루 온종일을 달린 다리는 좀처럼 힘이 돌아오지 않았다.
“제…… 제길!!”
밀려오던 갈증은 해소되었지만 지금 자신의 상황이 너무나도 화가 났다.
‘어쩌다 내가 이런 꼴이……!’
프란은 신경질적으로 강물을 있는 힘껏 주먹으로 내리쳤다. 첨벙거리는 소리와 함께 물방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
하지만 성질을 내는 것도 잠시,
그는 뒤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놀란 토끼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금 몸을 바위 뒤로 웅크렸다.
“누구냐!”
“동작 그만! 그대로 손을 들어라!”
그가 주위를 살폈다.
자신을 향해 창끝을 겨눈 병사들이 경계를 하며 서서히 다가왔다.
“…….”
웅크렸던 프란이 병사들의 갑옷을 확인하고는 낮은 한숨과 함께 당당한 표정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다리에 힘이 들지 않아 일어서려던 그는 비틀거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지만 가까스로 바위에 걸터앉은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앤섬은 어딨지?”
“……?”
갑작스럽게 자신들을 향해 말을 놓는 그의 모습에 병사들은 어리둥절했다.
“지금 누구한테 창을 겨누는 거야! 이 새끼들아!”
콰득―!!
프란은 자신을 향해 겨눈 창들 중 하나를 빼앗다시피 낚아채며 부러뜨렸다.
그러고는 병사들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느냐!! 잘 봐라!! 프란 루레인이다.”
카릴의 앞에서 쭈그리고는 살려 달라고 빌던 남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그는 공작의 위엄을 내뿜고 있었다.
물론,
강물에도 제대로 씻기지 않은 시커먼 잿가루와 여기저기 얻어터져 엉망이 된 얼굴로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과연 그 위엄이 병사들에게 제대로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추…… 충성!!”
가장 선두에서 창을 빼앗긴 병사는 그제야 프란의 얼굴을 알아본 듯 황급히 경례를 했다.
“상황이 급하다. 당장 앤섬이 있는 곳으로 날 안내해.”
* * *
“주…… 주군?!”
막사에 있던 앤섬 하워드는 생각지 못한 등장에 탁자를 박차며 일어섰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앤섬!!”
그를 보자마자 버럭 소리를 치는 프란을 향해 앤섬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단…… 앉으시지요.”
그의 말에 프란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는 병사의 등에 업혀 있는 우스운 꼴이었으니까.
상황이 급하다고 해도 이런 모습으로는 무슨 소리를 해도 먹히지 않을 것이었다.
“…….”
프란이 의자에 앉자 치유사들이 일제히 달라붙어 그의 다리와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치료는 나중이다. 일단 전황을 들어야겠다. 화이트 벙커에서 비룡 1부대가 전선에 투입되었지?”
그가 손짓을 하나 치유사들은 황급히 막사에서 물러났다.
“네, 전날 비룡 부대가 합류하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현재 상공을 날고는 있으나 경계 위주고 이렇다 할 공격은 없었습니다. 비상책이긴 하나 대(對)비룡창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입니다.”
“비룡창?”
앤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막사에 세워놓은 창을 꺼내어 그에게 보여줬다.
“연금술로 만든 특수한 약물을 창날에 벼려 만든 것입니다. 드레이크의 비늘에 효과적입니다.”
“저것도 카릴 그놈이 알려준 것인가?”
“……네?”
프란은 놓여 있는 창을 거칠게 발로 부러뜨렸다.
콰득―!!
“그놈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렸다고! 그런데 네놈은 멍청하게 튤리 군과 싸우고 있단 말이더냐! 도대체 네가 모시는 주군이 누구인지 머릿속에 박혀 있긴 하느냔 말이야!!”
그는 부러진 창대를 신경질적으로 앤섬에게 집어 던졌다. 날카로운 창날이 아슬아슬하게 앤섬의 뺨에 닿을 듯 날아가며 바닥에 꽂혔다.
“…….”
드레이크의 비늘도 녹이는 독이다.
자칫 날이 닿기라도 했다면 그의 피부는 순식간에 녹아 흘러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아는지 모르는지 프란은 그저 앤섬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제가 모시는 주군은 당연히 프란 저하십니다.”
앤섬은 부서진 창대를 주워 옆에 세우면서 말했다.
“그리고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저하께서 하시려는 일을 코브에서 부득이하게 듣고 말았습니다.”
“그……!!”
“주군께서는 정말로 튤리 저하께 패배를 약조하셨습니까. 이미 3만에 가까운 병사들이 그로 인해 희생되었습니다.”
“대의를 위해서는 감내 해야 할 일이다.”
프란은 차갑게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 앤섬은 억울한 듯 되물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주군의 책사인 저에게만큼은 이 일에 대해서 얘기해주셔야 하지 않으셨습니까.”
“자네가 알게 되면 반대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경은 모른다. 공국이 건립되기까지 일어났던 루레인 가문과 우든 클라우드의 관계를 말이야. 실질적으로 공국을 움직이는 것은 우든 클라우드다.”
“정말로 튤리 저하께서 우든 클라우드를 주군께 넘기리라 보십니까?”
“모르면 잠자코 있게. 이건 단순한 이해관계가 아니니까. 자네는 진격을 멈추고 일단 비룡 1부대에 서신을 보내게.”
“단순한 이해관계가 아니라면 더더욱 제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여러 전장에서 병사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몰골로 나타나셔서 전쟁을 멈추라니요! 습격을 한 건 저희가 아니라 튤리 쪽입니다.”
앤섬은 프란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어쩌면 처음으로 프란이 하는 일에 반(反)하는 말을 하는 것일지 모른다.
“이런 바보 같은……!! 한가하게 그런 정의를 논할 때가 아니란 말이다! 지금 문 에테…….”
프란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지금 상황에서 문 에테르가 함락되었다는 것을 말하면 결코 자신에게 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후우……. 일단 비룡 1부대의 단장을 만나야겠다. 서신도 필요 없어.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내가 직접 가겠다. 아직 전투가 벌어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야.”
비룡 1부대의 단장인 테릭스는 프란도 잘 알고 있는 무인이었다.
가네스와 함께 공국의 내로라하는 기사 중 한 명인 그는 기사로서의 실력도 뛰어나지만 그보다 탁월한 비룡 조련술로 유명한 자였다.
‘테릭스는 튤리의 심복 중의 한 명이다. 그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튤리와의 협정이 아직 유효하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병력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미래마저 망가지고 말 것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군께서 적진으로 직접 가신다니요!”
하지만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하는 앤섬으로서는 프란의 요구가 이해가 될 리가 없었다.
“더 이상 전쟁을 할 필요 없다는 뜻이다. 애초에 비룡 1부대나 투입된 것부터 우리에게 승산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이스터 부대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뭐……. 대형 골렘을 운용하는 것도 큰 소모가 필요한 일이지만 말이지. 무의미한 소모전은 여기까지다. 자네도 그걸 원하는 것이 아닌가? 안 그래?”
앤섬은 그를 바라봤다.
‘……비룡 부대가 투입된 지금 패배가 확실하다고?’
그의 눈빛에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왜 전쟁을 시작했느냐 하는 원망의 눈초리였다.
꽈악―
앤섬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 순간,
“그 표정은 뭐지?”
프란은 거칠게 앤섬의 멱살을 쥐었다. 그러고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그는 앤섬에게 말했다.
“내 결정에 불만이 있는 건가? 앤섬, 네가 북진을 하지만 않았더라도 자연스럽게 튤리와의 협정이 이뤄졌을 것이다! 네가 모시는 주군이 누구지? 저 바다 건너 더러운 이민족들이나 데리고 있는 카릴이란 놈에게 마음이라도 빼앗긴 것이더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앤섬이 고개를 떨구었지만 프란은 여전히 화를 삭이지 못하겠다는 듯 소리쳤다.
“그놈이 지금 공국에서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넌 모를 거다!!”
프란은 몰아치듯 앤섬을 향해 말했다.
“그러니 태도를 똑바로 해라. 너는 내 명령을 듣지도 않고 독단으로 여기까지 진격을 한 것이다. 나는 분명 빈프레도 강 하구의 방어선을 유지하라고 했다.”
“…….”
패배의 위기에서 여기까지 병력을 지키고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그였다.
칭찬을 받아 마땅할 그의 피나는 노력의 보상은 오히려 차갑기 그지없는 프란의 눈빛이었다.
앤섬은 뭐라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방어선을 계속 지키고 있었다면 저희는 전멸했을 것입니다, 저하.’
당장에라도 소리치고 싶었던 그 말은 그는 목으로 삼키며 프란에게 말했다.
“……비룡 1부대에 전갈을 넣겠습니다.”
* * *
“프란이 막사를 나서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방향으로 보아 비룡 1부대가 있는 적진으로 향하는 것이 틀림없겠지요.”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안개마냥 흐릿한 인영이 서서히 짙어지자 망토로 몸을 가린 하시르가 나타났다.
“앤섬 그자를 몰아세우는 모습이 마치 악귀 같아 보이더군요. 자신의 실책은 인정하지 않고 엄한 곳에서 화풀이라니……. 크게 될 그릇은 아닌 듯싶습니다.”
“그가 정말 공국 해전 최고의 사령관이 맞습니까? 전황을 읽는 눈이 그리도 없을 수가……. 바다가 아니라 뭍으로 올라와 머리까지 아둔해진 것이 아닌지.”
그의 옆에는 붉은 달 부족의 파툰이 허리를 숙이고 마치 네 발로 선 맹수처럼 팔을 바닥에 짚고 등을 세우고 있었다.
“그만큼 우든 클라우드에 가지는 믿음이 크다는 것이겠지.”
카릴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니면 약물에 의해 뇌가 녹아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고요.”
“…….”
그의 옆에 서 있던 릴리아나가 말하자 모두가 그녀를 바라봤다.
“주군의 말씀대로였습니다.”
그녀의 손바닥엔 작은 알약 하나가 있었다.
프란이 항상 먹던 약통에 들어 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독…… 인가?”
“비슷합니다. 암폐(暗蔽)라고 불리는 말총잎으로 만든 약입니다. 하지만 황제에게 썼던 것 같이 생명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구요.”
릴리아나의 말에 카릴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그래? 그럼 무슨 효과가 있는 거지?”
“일단 암폐의 가장 큰 특징은 그저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드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중독성이 엄청나게 강합니다.”
그녀는 알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한 알만 먹어도 끊기 어려울 겁니다. 자신도 모르게 약에 의존하게 되고 빠르게 뛰는 심장 때문에 약이 없으면 호흡조차 어려울 정도가 되어버립니다. 중독된 후에 약이 없으면 죽기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죠.”
카릴은 눈을 빛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 안의 산소가 부족하게 되어 뇌가 괴사(壞死)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전에 환청이나 환각을 볼 수도 있고요.”
“뇌가 녹아 버린다고……? 그럼 죽는 거 아냐?”
쿤타이는 그녀의 말에 꺼림칙하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의 물음에 릴리아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 달라. 단순한 독이 아니니까. 뇌가 죽어버려도 신체의 기능은 정상으로 유지되니까.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지. 저 정도 중독 상태라면……. 곧 식물인간으로 평생을 살아야 할걸.”
“그렇군.”
‘앤섬조차도 프란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에서 그의 믿음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뤄진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였다.
프란은 우든 클라우드 소속이었다.
그리고 카릴은 우든 클라우드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단어 하나를 떠올렸다.
광신도(狂信徒).
‘수많은 광신도를 만들어 낸 종교 단체인 블루 로어의 전신이 우든 클라우드다. 어쩌면 그 광신도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 약을 통한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안티훔에서 녀석들이 마굴에서 마계의 식물들을 재배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하지 않았던가.
“저희 잔나비들도 쓰지 않는 독초입니다. 도대체 이걸 어디서 구했는지…….”
카릴은 릴리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시험 단계에 불과할지 몰라. 앞으로 녀석들이 마계의 식물과 대륙에 존재하는 독초들 가지고 지금보다 더 강력한 약을 만든다면…….’
지금 프란이 보이는 행동은 앞으로 우든 클라우드가 벌일 일들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전에 싹을 뽑아내야지.”
“준비는 끝났습니다.”
하시르의 말에 카릴이 뒤를 바라봤다.
“이제야 싸우는 거군요.”
“공국의 옷을 입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의 뒤에 서 있는 부족장들이 입고 있는 갑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소매를 잡아당겼다.
툭―
그때였다.
방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의 등장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검은 눈 일족.
카릴은 그가 알 리 없지만 자신과 똑같은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감회가 새로운 기분이었다.
“…….”
그가 카릴의 앞에 던진 것은 포격 대장의 목이었다.
성문을 부쉈을 때 자신들을 향해 불을 뿜으려고 했던 마도 포격부대의 적장.
호표 부족의 쿤타이는 씁쓸한 듯 입맛을 다셨다.
“목숨을 빚졌군. 덕분에 살았다.”
“…….”
하지만 남자는 쿤타이의 말에 별 감흥이 없는 듯 그저 탁상에 놓여 있는 문 에테르 병갑옷을 집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마치 스스로 아직은 카릴과 독대를 나누기엔 공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가 나가기 전 바라본 사람은 다름 아닌 길티안을 죽인 릴리아나였기 때문이었다.
“무뚝뚝한 녀석이로군.”
쿤타이는 내민 손이 머쓱한 듯 그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를 보며 카릴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서둘러라. 오늘 밤 우리는 프란에게 마지막 승리를 가져다줄 의무가 있으니까. 그리고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입어라.”
철컥―
카릴은 투구를 썼다.
황도(皇都)의 태양홀에서 가면을 부순 이후 오랜만에 가려지는 시야에 그 역시 어색한 듯 주위를 한번 훑었다.
“우리는 그에게 승리를 선사하고 대신 그의 목숨을 가져갈 것이니까. 이 옷은 우리가 준비한 상복(喪服)이다.”
검을 뽑았다.
그 순간 마치 날카로운 포효처럼 어둠 속에서 매서운 섬광이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