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25)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25화(25/497)
23. 공백, 새로 채우다
‘기사?’
거리의 사람들이 일제히 양옆으로 벌어졌다.
“모두 비켜라!”
선두에 선 병사가 소리쳤다.
카릴은 중앙에 서 있는 화려한 갑옷을 입은 남자를 바라봤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그는 고개를 숙인 사람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룬 자작이잖아?’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피아스타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영지를 가지고 있는 그는 약 1천 명의 사병을 이끌고 있는 무인이었다.
‘저자가 어쩐 일이지.’
항구 도시인 이곳은 국경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는 국경을 수비하는 발사르가(家)와 맥거번가(家)를 보좌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저 사람인가?”
“그러겠지. 꼴좋다. 그러게 미쳤다고 이민족들을 돕긴 왜 도와?”
“저런 놈은 당장 벌을 받아야 해!”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있었다.
카릴은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것 참…….’
병사들 사이에 엉망이 된 얼굴로 두 팔이 포박된 체로 걸어가는 몇몇 사람들.
“빨리 걸어!!”
퍼억—!!
하룬 자작의 옆에 있던 부관이 검집으로 있는 힘껏 죄수의 머리를 내려치자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힘없이 미끄러지듯 쓰러졌다.
“모두 고개를 숙여라!! 이놈들은 대역 죄인이다!! 눈도 마주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엄포에 사람들은 더욱더 허리를 숙였다.
“허억…… 허억…….”
쓰러진 죄수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
카릴은 자신의 앞에서 일어서지도 못한 채 어깨를 움찔거리는 그를 바라봤다.
‘이것 참…….’
뭐라고 표현을 할 방법이 없었다.
황당하다.
아니면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당신을 찾고 있긴 했지만…….’
카릴의 눈빛이 빛났다.
“일어서!!”
바닥에 쓰러진 죄수를 병사들이 일으켜 세웠다.
그의 눈이 카릴과 마주쳤다.
‘이런 식으로 만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카릴은 포박당한 채로 걸어가는 남자를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뒤엉켰다.
‘수안 하자르.’
……그가 수배범이었다?
이건 과거를 거슬러 온 카릴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도대체 내가 모르는 이 3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신탁이 내려지고 난 뒤에 올리번은 내게 공국의 점령을 위한 급습 작전을 시행하기 위해 타투르로 가는 해로를 탈 수 있는 그를 소개해 줬었다.’
꽤 호인이었던 얼굴과 다부진 체구 때문에 그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사단에 잡힐 정도의 범죄자가 어떻게 이곳에서 길드 마스터가 될 수 있었지?’
이상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 유일하게 타투르로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죽을 남자는 아니다.’
카릴은 마음을 잡았다.
‘그렇다면 그 목숨. 내가 빌리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가 잡혀간 언덕 위에 화려한 저택을 바라보며 카릴은 생각했다.
결행(決行)은 밤으로 정했다.
* * *
언덕 위 저택.
그곳은 피아스타의 관리자, 레이지 남작의 것이었다. 상인 출신인 그는 무예와는 동떨어진 남자지만 항구 도시의 상인 조합을 이끌던 수완가였다.
무역으로 쌓아 올린 부.
레이지 머틀은 평민에서 귀족이 된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항구 도시의 가장 높은 언덕에 있는 호화로운 저택의 불이 화려하게 켜져 있었고 문마다 경비병들이 빼곡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하룬 자작을 접대하느라 정신없나 보군. 하긴 그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지.’
카릴은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뛰어난 안목으로 계급을 떠나 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를 축적한 자였다.’
다만.
그 훌륭한 눈도 마지막 한 수가 어긋났다.
‘제1황자를 후원한 것.’
카릴은 경비병들이 서 있는 곳 뒤편을 바라봤다.
‘돈을 주고 산 직위.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단단히 경비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놨거든.’
그 불안감이 오히려 철옹성 같은 저택에 틈을 만들었다는 것을 레이지 남작은 몰랐다.
‘올리번의 명으로 녀석이 몰래 빼돌린 세금과 부당 이익을 취했던 장부를 찾기 위해 잠입했었던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는군.’
카릴은 기척을 숨긴 채 저택의 뒤편으로 돌아갔다.
경비병의 눈을 피해 언덕에서 아래로 쭉 내려가자 아무도 없는 숲길이 나왔다.
바스락- 바스락-
그는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길이 없는 숲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털컥-
손에 무언가 잡혔다.
숲과는 어울리지 않는 녹이 슨 손잡이였다.
‘역시.’
카릴은 가볍게 입꼬리를 올렸다.
‘있다. 여길 발견한 것도 수년 뒤였지만 저택이 만들어진 건 훨씬 더 전이니까. 이건 내 기억과 다르지 않군.’
그는 주위를 한번 훑어보았다.
예상대로였지만 숲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정면으로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감옥을 경비하고 있는 건 저택의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닌 하룬 자작의 병사들일 테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게다가 하룬 자작은 소드 마스터까지는 아니지만 오랜 경험을 통해 제법 감이 좋은 기사였으니까.
‘충직한 자다. 외골수 같은 그 성격만 아니었다면 좀 더 오래 살아남았겠지만.’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닌 듯.
카릴은 조용히 풀숲 안쪽에 있는 낡은 문을 열었다.
까마득한 어둠 속에 계단이 보였다.
바닥에 흐르는 악취(惡臭).
그건 다름 아닌 피아스타 전역을 관통하는 거대한 하수구였다.
그리고 저택과 이어지는 통로이기도 했다.
‘황궁도 아닌데 이렇게 미로처럼 수십 개의 갈림길을 만들어 놓은 비상구라니.’
그가 생각해 놓은 명단에 레이지 남작은 없었다.
‘이것만 봐도 그자의 그릇을 알 수 있다.’
카릴은 코를 가리고는 천천히 내려갔다.
* * *
세엑…… 세엑…….
낮은 숨소리가 들렸다.
엉망이 된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퉁퉁 부어올라 이제는 누군지도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빌어먹을…….”
온몸이 쑤셔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미쳤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딴 일을 하겠다고……. 내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말이야.’
“아니지. 부귀영화를 누릴 거면 하질 말았어야지. 수안 하자르, 이 멍청한 녀석아. 클클클…….”
낮은 웃음소리가 창살 안에서 들려왔다.
“어이, 조용히 하지 못해!!”
보초를 서고 있던 병사가 그의 말에 소리쳤다.
수안은 이를 악물었다.
뒤로 묶인 족쇄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는 자신의 몸을 살폈다.
‘그래도 어디 베인 곳은 없고. 부러지지도 않았으니 불행 중 다행인가.’
어깨가 시큰거렸지만 이 정도면 양호했다.
‘어디…… 도망쳐볼까.’
옷깃 사이로 작은 쇠바늘 하나가 번뜩였다.
마치.
그는 이런 일이 익숙한 듯 혀로 입술을 살짝 핥으며 능숙하게 자물쇠를 풀기 시작했다.
탈칵-
그때였다.
수안의 손이 멈췄다.
자물쇠가 풀린 것이 아니었다.
그건 지하 감옥의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충성!!”
조금 전 수안을 향해 소리쳤던 병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이군.”
“……!!!.”
수안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놀란 듯 커졌다.
“……!!!”
그리고 또 한 명.
천장의 틈 사이로.
이 광경을 지켜본 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도 안 돼…….’
지하 수로를 통해 저택 안으로 들어온 카릴은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만약 그가 수안을 구출하고자 마음을 먹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모를 일이었으니까.
“만나보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억겁(億劫)의 시간을 지불하고 돌아온 지금도 그의 목소리만큼은 생생하게 자신의 귓속에 남아 있었으니.
‘올리번……?!’
자신의 손으로 죽인 황제.
아니.
그 이전에 함께 수라장을 이겨 냈던 친우(親友).
피를 머금고 쓰러지던 그때와 다른 앳되고 총명한 눈빛이 반짝였다.
‘어째서 네가 여기에…….’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당연히 황실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변방이라 할 수 있는 항구 도시에 있을 줄이야.
우연인가?
그럴 리 없다.
그렇다면 이유는 단 하나.
‘황제가 아니라 올리번이 그를 체포했다는 말인가.’
“…….”
카릴은 숨을 죽이고 둘을 바라봤다.
“수안 하자르, 아니…….”
하지만 올리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뒷말은 더욱 충격적인 것이었다.
“노예왕(奴隸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