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253)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253화(253/497)
178. 앤섬 하워드
“정말…… 이게 가능한가?”
“나도 모르지. 하지만 시키는 일이니까 해야지.”
눈보라를 뚫고 서 있는 몇몇 병사들은 새하얀 흰뿔토끼로 만든 망토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다.
몇몇은 바닥을 기며 땅에 코를 박고 연신 냄새를 맡고 있었고 또 다른 몇몇은 성벽 주위에서 뭔가를 찾듯 뒤지고 있었다.
“빨리, 빨리! 조금 있으면 정찰 시간이야. 여기도 찾지 못하면 더 이상 방법도 없어.”
“마법을 쓰지 못하니 죽겠군……. 어느 세월에 이 넓은 성벽을 모두 조사하지?”
“탐지 마법을 쓰는 순간 망토에 걸린 보호 마법이 풀리면서 우린 그대로 화살 꼬치가 될걸? 적군의 바로 턱밑이야. 걸리기라도 하면 우린 그대로 죽어.”
“실패해도 우리는 죽은 목숨이야. 세리카 님의 눈빛 봤지? 오늘도 빈손으로 돌아가면…….”
병사 중 한 명이 몸을 부르르 떨면서 중얼거렸다.
“어차피 후회해도 늦었어.”
“우리가 버린 망토 값만 해도 이미 평생 군에서 썩어도 갚지 못할 액수니까.”
흰뿔토끼의 털 자체가 흰색인지라 키만큼 높이 쌓인 눈 속에서는 충분히 위장복으로 쓸 수 있긴 하지만 고가에 거래되는 털을 입고 이런 식으로 바닥을 구르는 행위는 간부들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있을 거야. 분명. 그분이 거짓말을 하신 게 아니라면 말이지. 우리에게 보여줬던 흙에서 났던 냄새, 너희도 그게 뭔지 알잖아?”
얼굴에 눈이 잔뜩 묻은 채로 병사가 말했다.
“정말 있는 게 맞을까?”
“이런 눈보라 속에서 그게 자랄 리가…….”
데프타르 출신의 그는 처음 세리카에게 가장 먼저 자신 있게 대답했던 자였다.
그때였다.
흙바닥을 쓸던 그의 손가락에 뭔가 걸리는 듯 단단하게 잡혔다.
병사는 황급히 얼굴을 성벽과 땅 사이에 처박고는 냄새를 맡았다.
과일 같은 향긋한 냄새가 그의 코끝에 닿았다.
“……!!!”
그는 차가운 냉기에 손가락이 터져 나가는 것도 잊은 채 계속해서 흙을 파기 시작했다.
흙 안으로 보이는 나무의 뿌리처럼 굵은 식물의 줄기. 그리고 성벽 사이에 파낸 흙은 아주 옅은 수분을 머금고 있었다.
병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차…… 찾았다.”
휘이이익……!!
그 순간 성벽 아래를 훑듯 바람이 불었다.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성벽의 끝자락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 마치 굳건하게만 보였던 대성벽에 작지만 무엇보다 큰 균열이 보이는 것 같았다.
* * *
“고생하셨습니다.”
하시르는 내뱉은 말이 무색하게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카릴의 모습을 바라봤다.
“정리는 끝난 듯싶군.”
“모두 주군 덕분입니다. 독초를 써도 쉽사리 잠들지 않던 드레이크들이 일제히 조용해졌으니까요.”
그는 카릴이 데리고 온 드레이크와 똑같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드레이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공국의 귀족들이 보면 기절할 일이겠지요. 자신들의 영토를 향해 날아올 드레이크들을 바라볼 그들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궁금해할 필요 없을 거야. 지금도 볼 수 있을 테니까.”
카릴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막사의 천막을 걷는 순간 하시르는 그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프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무너졌군.”
하시르는 프란의 얼굴을 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럴 만하지. 코브, 문 에테르 그리고 비룡 1부대까지. 남들이 보기엔 연전연승의 가도를 달리는 것 같지만 그의 입장에선 끔찍한 패배의 장면을 눈앞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니까.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수밖에 없어.”
“꼭 그것만은 아닐걸. 보아하니 암폐(暗蔽)를 거의 달고 사는 것 같던데. 그 정도면 지금쯤 뇌가 녹아버려도 할 말 없을걸.”
릴리아나는 벌벌 떨고 있는 프란의 모습을 바라보며 쯧― 하고 혀를 찼다.
“게다가 금단 현상이 오기 시작하면 환각은 더욱 짙어지겠지. 아마 녀석의 눈엔 주군이 악마보다 더 두렵게 보일지도 모르지.”
“네가……!! 네놈이!!!”
프란은 카릴을 보자마자 황급히 허리에 있는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부웅―!! 부우웅―――!!
하지만 그의 검은 날카로움 따위는 전혀 없었다.
마치 미치광이가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처럼 아무런 방향성도 없이 닥치는 대로 움직일 따름이었다.
“……이래서는 귀족들의 표정 따윈 기대할 수 없겠군.”
카릴은 제자리에서 몸을 트는 것만으로 프란의 공격을 모두 피해냈다.
프란은 오히려 자신의 힘을 이기지 못해 그는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턱―
그런 프란의 몸을 카릴이 잡았다.
“으아아아악!!!”
고개를 들던 프란이 이제는 마치 악령이라도 본 것처럼 카릴에게서 도망치듯 그를 밀쳤다.
그러고는 앤섬의 옷깃을 붙잡으며 몸을 웅크린 채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기 시작했다.
주르륵―
그의 입술을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프란이 몸을 들썩이며 날뛰기 시작했다.
“주, 주군!!”
앤섬은 황급히 일어나 쓰러진 그를 부축했다.
그의 모습은 엉망이었는데 전투로 인한 것이 아니라 프란을 말리려다 난 상처 같았다.
“…….”
그런 프란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릴이 그의 목덜미를 가볍게 내려쳤다.
“컥!!”
프란이 검붉은 핏덩이를 뱉어내고는 기절한 듯 힘이 빠져 늘어진 채로 앤섬의 앞에 쓰러졌다.
“앤섬 하워드.”
카릴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의외로 떨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내가 원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보는 바와 같다. 시간의 경과 차이일 뿐 내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프란이 죽는 미래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프란은 튤리에게 진 것이지.”
“…….”
“나 역시 그가 이렇게 되었을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긴 하지만……. 통신구를 통해서 너는 프란의 말을 들었지? 저 모습에서 과연 튤리와의 협정이 제대로 이뤄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는 튤리에게 이용당했다.”
이미 모든 것이 제1공작인 튤리 루레인의 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우든 클라우드를 프란에게 줄 생각이 없을걸. 모르긴 몰라도 우든 클라우드와 튤리가 이미 손을 잡았다고 하는 게 더 신빙성이 높겠지.”
앤섬은 카릴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제가 옆에 있었는데…….”
자조적인 그의 혼잣말에 카릴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네가 있다 한들 일거수일투족을 보호할 수는 없는 일이잖은가. 애초에 이 내전에서 프란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던 거다. 패배는 예견되어 있었던 것이고 영광에 프란은 포함되지 않았다.”
카릴의 말에 앤섬은 고개를 떨궜다.
“바보처럼 튤리의 말을 믿고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두 손으로 바치는 꼴이 되어버렸지. 그리고 그게 싫기 때문에 너는 나의 개입을 묵인한 것이고.”
“……그저 궁금했을 뿐입니다.”
앤섬은 말했다.
“어쩌면 제가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전쟁에 관한 프란 경의 비상식적인 결정도 사실은 저하의 계획에 있던 것이라고.”
왕좌지재(王佐之才).
태어날 때부터 그 뛰어난 자질은 충분히 왕을 옹립할 재능이 있으며 스스로 재상의 길에 오를 만한 능력을 타고난 자를 가리키는 말.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한들 시대가 그를 받쳐주지 못한다면 그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의 사후(死後),
역사가들은 올리번을 도와 제국의 황금시대를 꽃피웠던 브랜 가문트와 항상 그를 비교했다.
하나 이와 반대로 프란 루레인, 비올라 그리고 루온 슈테안을 거치며 앤섬은 많은 자를 섬겼으나 그의 말로는 결국 비참한 패배의 죽음뿐이었다.
제대로 된 주인.
그의 인생에 유일한 부재가 바로 그것이었다.
“제가 믿고 따랐던 주군이니까요.”
카릴은 그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앤섬이 하고자 하는 말에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리로 이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하께서는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패배하셨군요.”
“그래서 나라는 독을 쓰려고 했군. 전쟁의 승자만이 이 잘못됨을 바로 잡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전에 무너져 버리셨습니다. 물론, 그것을 가속화시킨 것은 당신이겠지만요.”
앤섬은 날카롭게 카릴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런 그의 시선이 하나도 두렵지 않다는 듯 카릴은 당당하게 말했다.
“나 역시 이 전쟁에 손을 집어넣은 사람 중 한 명이니까. 네가 나를 이용했듯 나 역시 너희를 이용한 것뿐.”
“글쎄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자를 이용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앤섬은 쓴웃음을 지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카릴을 쓴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으나 그의 말대로 카릴 맥거번이란 존재가 너무나도 강했다.
카릴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그가 프란을 떠난 뒤 비올라에게 가게 될 경우 혹시나 생길 불화에 대해서 걱정을 했었던 적이 있다.’
변한 미래, 아니, 현재.
왕의 기질을 가진 비올라는 더 이상 힘없는 전생의 왕녀가 아닌 한 나라 아니 삼국을 통일할 수장이었다.
‘바보 같은 걱정이지.’
하지만 카릴은 앤섬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앤섬으로서는 그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애초에 그녀에게 앤섬을 내어주지 않으면 그만인 일인 것을.’
후대의 역사가들이 평가했듯.
앤섬 하워드에게 능력 있는 군주를 맞이할 수 있었다면 그의 역량은 호랑이의 등에 날개를 달게 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날개를 달아 줄 군주는 그 어떤 면을 보더라 하더라도 비올라보다 자신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카릴은 앤섬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 때라는 것을 직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튤리와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믿고 따라야 할 주군이 몰락함에 남은 자들의 결말은 결국 패배겠지.”
“…….”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저 남은 자들에 대해 튤리가 자비를 베풀어 주길 기도하는 것뿐이겠지만…….”
앤섬은 고개를 저었다.
“자비라……. 문 에테르를 무너뜨린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테릭스 경의 목을 베고 남은 비룡을 빼앗았습니다. 그런데 튤리 경께 자비를 빌 수 있겠습니까.”
카릴의 말에 앤섬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 목을 내어드리고 그 분노가 사그라진다면 다행이겠으나……. 이를 바라는 건 불가능하겠죠.”
혹한(酷寒)의 여왕.
눈으로 뒤덮인 화이트 벙커 속 왕좌에 앉아 있는 얼음과도 같은 튤리 루레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앤섬은 자비란 단어가 그녀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드물 거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당신의 생각대로입니다. 저희들에게 도망칠 구멍조차 남겨 주지 않았군요.”
“글쎄.”
포기한 듯 말하는 앤섬에게 카릴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말대로 나는 잔인하다.”
카릴은 단 한 번도 자신을 포장하려 하지 않았다.
“내가 걸어갈 길은 가시밭길이며 그 길에는 비난과 원망이 있을 테고 때로는 흘린 피를 밟고 서 있어야 할 것이다.”
남을 신랄하게 평가하듯 그는 자신 역시 냉정하게 말했다.
“아니, 이미 많은 피를 밟고 서 있지. 나는 조금 전 수천의 목숨을 빼앗았다.”
“…….”
카릴을 바라보는 앤섬의 눈빛이 떨렸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저 뒤에 있는 아군의 목숨을 살리기도 했다.”
어째서일까.
아군(我軍)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앤섬은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찌릿한 기분이었다.
프란 루레인에게 그토록 듣고 싶었던 이 단어를 카릴에게서 들었기 때문일까.
“나는 성왕(聖王)이 될 수는 없다.”
카릴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애초에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장난스러운 듯한 반응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조차 특별해 보였다.
“하지만 적어도 너에게 영광된 승리는 줄 수 있다.”
그리고 그 특별함은 이제 진실 됨으로 점철되었다.
“나는 확신한다. 그것이 네가 따르는 자가 줄 수 없는 진실 되고 확실한 승리일 것임을. 나는 누구에게도 타협하지 않으며 오직 내 손으로 쟁취할 것이니까.”
두근…… 두근…….
앤섬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과거 제도왕이라 불리던 하워드 가문의 후손인 네가 공국에 힘을 빌려주는 이유는 속국이 되어버린 제도의 섬들에 살고 있는 주민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설마…….”
카릴은 앤섬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들을 인질로 쓸 생각 없다. 그들 역시 나의 비호 아래 둘 것이니까.”
그러고는 손을 뻗어 뒤를 가리켰다.
“제도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공국에는 이제 너를 믿는 수많은 목숨이 있다. 지금 저 뒤에 환호를 하는 아군들처럼 말이지.”
마력이 담긴 카릴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지자 주위에 있던 드레이크들이 일제히 날개를 펼쳤다.
“앤섬 하워드.”
그는 다시 한번 이름을 불렀다.
“나의 비호 아래 있을 그들을 나는 최선을 다해 지킬 것이다. 그 길에 비록 희생이 따를지언정 패배란 없다.”
앤섬 하워드는 떨리는 눈으로 카릴을 바라봤다.
“튤리에게서 저들을 지켜라. 더불어 앞으로 쓰여질 공국의 미래 역시 말이다.”
마치 거대한 산을 마주하는 것처럼 압도되는 위압감에 그는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를 따라라. 내가 네게 그럴 힘을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