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255)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255화(255/497)
179. 요만전(戰) (2)
“…….”
공국의 소드 마스터인 가네스는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프란 군을 상징하는 닻이 그려진 깃발이 매서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지척에 있는 적군.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렇게 가까이 대치를 하고 있는 것은 전쟁이 발발한 이후 처음이었다.
“화이트 벙커에서는?”
“이렇다 할 지시는 없었습니다. 요만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전쟁의 승기를 잡을 수 있다 하셨습니다.”
“흐음…….”
그는 부하의 보고에 살짝 입술을 깨물었지만 이내 곧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요만으로 2천 정도의 적의 지원군이 충원되었다. 병력의 수는 비슷하다. 대성벽을 끼고 있는 우리에겐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의 생각대로 숫자는 문제가 않는다.
하지만 태도가 달라졌다.
그러나 적은 지금까지와 달리 단순히 요만을 두고 대치하고만 있는 것이 아닌 전투태세를 갖추어 밖으로 나온 것이다.
‘적의 증원군이 왔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 아군의 패배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튤리 경께서는 아직 전황이 괜찮다 생각하시는 것일까.’
그는 위세 높은 요만을 믿으며 패배를 산정하진 않았다.
다만 여전히 그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정도로 탄탄한 수비를 갖춘 요만에 불필요하게 자신의 발이 묶여 있다는 것이었다.
‘저 정도의 숫자라면 차라리 공세를 펼쳐 끝내버리는 것이 나았을 텐데.’
가네스는 이미 자신의 후회가 늦었다는 것을 알았다.
“놈들이 대성벽을 넘을 리는 없겠지만……. 적의 공격을 대비하라 일러라. 반격을 기회 삼아 이번 기회에 놈들을 소탕한다.”
“네!!”
부하는 경례를 하고는 서둘러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가네스는 여전히 자신의 거대한 할버드를 바닥에 세워 들고서 적군을 주시했다.
얼마 전부터 자신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한 사람이 오늘도 어김없이 성벽 위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리에 뒤집어쓴 흰뿔토끼의 털로 만든 새하얀 망토 안으로 보이는 연보랏빛 머리칼은 공국에서도 보기 드문 희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법사인가.’
저런 대접을 받는 자가 일반 병사일 리는 없고 어린 나이에 저런 위치에 있을 수 있는 상황은 대부분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네스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저런 꼬마까지 전장에 나온 건가.’
그런 생각이 그를 씁쓸하게 만들 뿐이었다. 물론 그 역시 십 대에 전장에 투입되었고 살아남고 살아남아 끝내 소드 마스터라는 위치까지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은 남자다.
성차별적인 말일지 모르지만 소년이었을 때부터 검을 쥐고 싶은 욕망으로 살아왔던 자신과 달리 눈앞에 보이는 소녀는 그의 눈엔 그저 귀여운 아이로 보일 뿐이었다.
“……음?”
하지만 그런 성벽 위에서 세리카 로렌을 내려다보던 가네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고개를 들어 자신을 향해 웃는 소녀는 정말로 환한 미소로 아무렇지 않게 가운뎃손가락을 펼쳤다.
그러고는 그 손가락을 자신의 목에 가져가면서 가로로 그으며 혀를 내밀었다.
“…….”
가네스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가 뭐라 하기도 전에 먼저 움직인 것은 그녀 쪽이었다.
전장에서의 자비?
그것이야말로 만용이자 사치라는 것을 누구보다 세리카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
그녀가 팔을 머리 위로 높이 들자 병사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미련한…….”
가네스는 그런 적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그의 눈엔 그들은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에 불과했다.
“그저 내전에 불과할 뿐. 죽음이 두려울 정도로 사명이 있어 싸우는 것도 아닐 텐데……. 목숨을 쉬이여기는 지휘관을 둔 잘못이겠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성벽 위에서 쏟아지는 화살들.
상식을 벗어 난 높이 차 때문에 위에서 떨어지는 화살들은 일반적인 화살보다 몇 배의 속도로 병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슉―! 슈슉――!!
타다당――!! 타다다다당―――!!
머리 위로 거대한 카이트 실드(Kite Shield)를 들고 있는 방패병들이 가장 선두에 서서 달렸다.
방패로 튕겨 나가는 화살들은 마치 빗소리처럼 요란하게 울렸고 쏟아지는 화살은 결국 두꺼운 강철마저 꿰뚫어 여기저기에서 병사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진격하라!!”
지휘관의 외침에 가네스의 시야가 아주 잠깐 이동했다. 흰 망토를 쓰고 있던 세리카의 모습이 너무나 눈에 띄어 오히려 지휘관을 망각하고 말았다.
‘저놈부터 처리해야겠군.’
가네스는 이런 지리멸렬한 전투를 최대한 빨리 끝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나 지휘관의 목을 베는 것이었다.
턱―
그가 성벽의 끝에 발을 얹고는 천천히 마력을 끌어모았다.
지직…… 지지직……!!
그의 특유의 속성인 뇌(雷)의 마력이 번뜩이자 할버드의 날이 전격을 머금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 힘이 조금은 약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할버드의 재료는 울티마툼(Ultimatum) 수 속성을 지닌 광물이었다.
반면 그의 속성은 번개.
비록 물과 번개가 상극은 아니지만 완벽한 힘을 이끌어낼 수는 없었다.
콰아아아앙―――!!
하지만 소드 마스터인 그에게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벽의 끝을 밟고 뛰어오르려는 찰나,
‘언제…….’
가네스는 아주 잠깐이지만 시야에서 사라진 세리카를 찾았다.
마법사란 모름지기 후방에서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마법을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가네스는 후위에서 그녀를 찾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진격하는 병사들 사이에서 오히려 그들보다 더 앞서 성벽에 다가와 있었다.
턱―
세리카 로렌은 마치 처음부터 목표한 곳인 양 병사들 무리에서 나와 성벽 어딘가에 손을 집어넣었다.
움찔.
그 순간,
그는 어째서 서로가 대치된 상황에서 지휘관보다 일개 마법사인 그녀가 자꾸 눈에 들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본능이 경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위험하다고.
“헉, 헉…….”
병사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디서 떨어질지 모를 적의 공격을 경계하며 잔뜩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처음 세리카에게 뭔가를 찾으라고 특명을 받았던 자들이었다.
“내 아버지 말이야. 실력 없는 용병이었지만 성격은 나름 좋았는지 덕분에 이런저런 자들이 우리 여관을 많이 찾았어.”
그들은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왜 그런 과거사를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세리카를 바라봤다.
“개중에 대부분은 쓰레기들도 있었지만 이따금 음유시인이라든지 별의별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어. 다들 용병 시절에 만났던 자들이라나?”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듯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때 누가 재밌는 소리를 했었거든.”
세리카는 성벽을 더듬더듬 만지다가 살짝 눈썹을 찡그러고는 피식 웃었다.
우우우우웅……!!!
우우웅……!!
그녀는 있는 힘껏 스태프를 성벽 안으로 찍어 눌렀다. 날이 달린 창과 같은 지팡이가 푸욱―! 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있는 힘껏 마력을 쏟아 내기 시작하는 그녀는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사실, ‘먼 옛날 북부는 사막이었다.’라고 말이야.”
쩌적…… 쩌저저적……!!!
쩌저저적……!!
순간,
세리카의 스태프가 박힌 벽이 우지끈거리는 갈라지는 소리가 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줄이었던 금은 위로 올라갈수록 마치 거미줄처럼 수십 갈래로 나누어졌고 금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옆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성벽 안에 갈라진 틈 속에 뭔가가 부풀어 오르더니 마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지자 그 안에 차가운 물이 다시 새하얀 김을 내며 얼기 시작했다.
‘성벽 안에서 얼음이 언다?’
‘저게 뭐지?!’
병사들은 단단하게만 보였던 요만의 대성벽이 너무나도 쉽게 금이 가는 것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콰아아아앙……!! 콰가가강……!!
성벽이 거세게 흔들리면서 지진이 일어나듯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갑자기 무슨……!!”
성벽 위의 병사들이 중심을 잃고 우왕좌왕하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 뿌리는 원래 하팝이라 불리는 고대 선인장의 일종이야. 남부에서 가끔 남아 있긴 하지만 거의 사라진 식물이지. 덩굴보다 질기고 자라게 되면 주위의 흙을 움켜쥐는 성질이 있어 이따금 과거에 흙벽을 세울 때 사용했다더라.”
세리카는 금이 가는 성벽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데 이게 원래는 이런 혹한 속에서 사는 식물이 아니거든. 그래서 처음에는 나도 반신반의했지.”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다행히 사실이고…….”
푸욱―!!
반대쪽 뿌리에 다시 한번 스태프를 박아 넣으며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인장은 수분을 머금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지.”
세리카는 하팝 안에 있는 수분을 마력으로 강제로 얼어붙게 만들었다.
선인장 안의 수분이 얼음으로 얼어 팽창하게 되면서 성벽 안쪽이 강제로 부풀게 되고 내부에서부터 폭발하듯 터지기 시작하는 성벽은 외부에 그 어떤 보호 마법이 있다 한들 아랑곳하지 않고 성벽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쿠그그…… 쿠그그그그……!!
“……!!!”
가네스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성벽 안쪽에서 튀어나온 선인장의 뿌리들이 갑자기 힘을 이기지 못하고 날뛰기 시작했다.
쫘자작……!!
쫘자자자작……!!
위로 솟구치며 성벽의 정상까지 도달한 균열은 이제 가로 방향으로 파도처럼 매섭게 밀려가기 시작했다.
콰득―――!!
콰가가강―――!!
균열 사이로 얼어붙은 두꺼운 뿌리가 부풀어 오르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뿌리들이 부서진 빈 공간과 균열의 벌어진 틈이 맞물려 성벽엔 커다란 구멍들이 생겨났다.
세리카가 그 안으로 마력을 흘려보내자 빈 공간들에 물이 차오르더니 다시 한번 얼음으로 변하며 팽창하자 성벽의 균열을 더 밀어내기 시작했다.
크드드드득……!!
그러나 성벽이 마치 고통스러워 울부짖듯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얼음이 떨어진다!!”
“모두 피해!!”
균열이 강해지자 성벽 자체가 흔들리고 맨 위의 쌓아 놓은 벽돌들이 부서져 떨어지기 시작했다.
콰가강!! 콰강!!!
성벽의 잔해들은 차가운 공기로 얼어붙어 있었고 낙석들은 마치 거대한 얼음덩이처럼 굉음과 함께 지상에 있는 병사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여기저기서 부서지기 시작하는 대성벽(大城壁).
요만의 마법사들이 황급히 얼어붙어 터져 나가는 선인장을 제어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고 있지만 이미 성벽 밖으로 튀어나온 뿌리들이 북부의 차디찬 냉기 때문에 얼어붙는 속도를 마법사들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대성벽이…… 붕괴된다.”
“말도 안 돼…….”
병사들은 전투 중이라는 것도 잊은 채 마치 차츰차츰 부서지고 있는 성벽을 바라봤다.
그들은 역사상 단 한 번도.
그리고 앞으로도 있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광경에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그리고 그것은 가네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성벽 안쪽에 저런 식물이 자라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거니와 저 정도의 마력을 쓸 수 있는 마법사가 적군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꽈득―
하지만 그는 요만의 문을 지키는 수장.
넋을 잃고 바라보던 것도 잠시,
충격은 분노로 바뀌고 병사들과 달리 냉정함을 되찾은 그는 무너지는 성벽에서 내려와 세리카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그 순간,
세리카 로렌은 살짝 입술을 내밀고는 손가락으로 목을 그으며 말했다.
“덤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