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259)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259화(259/497)
182. 검은 눈
늦은 밤.
카릴은 감았던 눈을 떴다.
“날 찾아왔다는 것은 나와 독대를 할 만큼의 공을 세웠다고 생각하는가?”
언뜻 보기엔 아무도 없는 빈방이라 생각되지만 그는 느껴지는 인기척만으로 누군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어둠 속을 바라보며 말했다.
“검은 눈.”
어둠 속에서 그보다 더 짙은 칠흑 같은 눈동자가 카릴을 바라봤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수장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의 상응하는 것을 바쳐야 한다. 마찬가지로 그것이 자신의 수장의 목이든 혹은 적의 목이든.”
카릴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직위가 같다고 천칭이 항상 수평을 이루진 않는다. 그저 고리타분한 옛 규율이야. 포격 대장의 목을 벤 것도 충분한 공이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강한 건지 융통성이 없는 건지 모르겠군. 너희 일족의 수장은 이미 죽었지 않으냐. 그렇게 규율을 지키려고 한다면 확실히 해. 내 앞에 적 수장의 목을 가져와.”
대답 없는 그를 향해 카릴은 신랄하게 말했다.
“당장 화이트 벙커로 가 튤리의 목을 따서 내 앞에 둔다면 네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지. 알겠나? 지그라 쿰.”
검은 눈 일족 전사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카릴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가면처럼 무표정의 얼굴이 처음으로 변했다.
“이름……. 하시르가 알려준 것입니까. 늑여우의 입은 그리 가볍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글쎄? 그게 중요한가? 검은 눈 일족에게 이름이란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 전사에게 있어서 필요한 건 한 자루의 검과 그걸 휘두를 상대잖아.”
“쿰의 이름은 다릅니다.”
“그래?”
카릴은 지그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뭔가 더 알고 있는 눈치였지만 이 이상 말할 필요는 없다 여겼는지 카릴은 어깨를 으쓱했다.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참는 눈치로군.”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조금 전에 했던 말처럼 문 에테르를 공략할 때 자네가 포격 대장의 목을 벤 것은 비록 적의 수장은 아니더라도 수천의 목숨을 살린 것과 같다.”
카릴은 마치 그리운 자를 바라보는 것처럼 검은 눈 일족의 전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문일답(一問一答). 그 정도는 가능하겠지.”
“어째서 아그넬을 당신이 가지고 계신 겁니까.”
지그라는 끝내 참았던 물음을 던졌다.
“그게 네 질문인가? 괜찮겠어? 네게 주어진 건 단 한 번의 질문이야. 좀 더 신중하게 좋아.”
카릴이 되물었지만 지그라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반응에 카릴은 낮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왜냐면 내가 검은 눈이기 때문이지.”
“……!!!!”
“그리고 아그넬은 대전사 칼리악이 죽음 직전 내게 물려 준 것이기도 하다.”
카릴이 지그라를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듯 가볍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이다. 4년 만이군.”
스릉―!!
그 순간 카릴은 쓴웃음과 함께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카르륵……. 카득…….
건틀렛의 손등에 차가운 검날이 닿았다.
그가 착용하고 있는 건틀렛은 미스릴로 되어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맞닿은 검날이 파고들 듯 상처를 냈다.
검날이 청린(靑燐)으로 되어 있어 미스릴 특유의 마법 방어를 무시할 수 있었다.
바스락…….
부서진 미스릴 가루들이 책상 위에 떨어졌다.
하지만 청린의 속성을 떠나 미스릴 자체의 단단함을 뚫고 금을 냈다는 것은 조금 전 소리도 없던 공격이 혼신을 다한 일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를 공격할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무슨 개수작이지?”
카릴은 지그라의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 생각하면서도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칼리악 님이 당신에게 아그넬을 물려주었다고? 그 전장에 네가 있었기라도 했단 말이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마력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 스스로를 검은 눈 일족이라 칭하는 것도 모자라 아그넬을 족장에게 직접 물려받았다고 했으니 말이다.
카득…… 카드드드득…….
지그라는 있는 힘껏 단검을 밀었지만 검을 막고 있는 카릴의 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슨 힘이…….’
비록 호표 부족처럼 완력이 강하진 않지만 포격 대장을 일도양단(一刀兩斷)했던 그였다.
두 손으로 검을 눌러도 카릴의 한 팔을 이기지 못하고 있음에 지그라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작 이 정도로 원하는 답을 들을 만큼 네게 위협이 될 거 같진 않은데……. 뭐, 일문의 기회를 봐서 대답을 해주지.”
카릴이 펼쳤던 손바닥을 움켜 주먹을 쥐자 공기가 터지듯 충격파가 일었다.
카앙―!!!
지그라가 잡고 있던 단검이 튕겨 나가며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 그리고 칼리악의 마지막을 본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지그라는 카릴이 한 마디 한 마디를 할 때마다 숨이 막힐 듯한 기세를 느꼈다.
“내가 칼리악의 아들이니까.”
“……!!!”
지그라의 눈빛이 처음에 카릴이 그의 이름을 얘기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라미느.”
쿠으으으으으으……!!!
카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의 주위에서 뜨거운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당장에라도 방 전체를 태워 버릴 것 같이 보이는 거대한 화염은 놀랍게도 그 어떤 물건에도 불이 붙지 않았다.
지그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의 눈앞에 있는 화염의 정령왕이 잡아먹을 듯 가슴을 부풀리자 자신도 모르게 주춤하며 뒷걸음질 쳤다.
“이, 이건…….”
“내가 이민족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하시르에게 들어서 알 거다. 뭐, 그 역시 내가 검은 눈 일족이라는 것은 모르지만…….”
그런 그를 향해 카릴은 말했다.
“카릴이란 이름과 마력을 가진 나를 동일 인물이라 생각할 수 없으니 누군가는 그저 그 이름을 빌린 것이라 생각하고 누군가는 내가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거야.”
화르르륵……!!
그가 손을 뻗자 라미느의 형상이 사라지며 화염은 그의 손등 위로 작은 화구(火球)가 되어 주위를 날기 시작했다.
“많은 일이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설명을 할 수 없을 만큼.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마도 시대에 존재하던 마력을 얻었고 신화시대를 살았던 정령왕과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
화아아악―――!!
다시 한번 라미느의 불꽃이 카릴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와 동시에 그가 팔을 들어 올리자 손목을 타고 이번에는 푸른 뱀이 똬리를 틀고 지그라를 노려보는 것 같은 형상이 나타났다.
[캬아아악……!! 캬악!!]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리우며 그를 향해 뱀이 입을 벌렸다.
“쉽사리 믿기 어렵겠지.”
“……!!!”
순간,
챙그랑―!!
지그라는 라미느를 보았을 때보다 더 놀란 얼굴로 쥐고 있던 단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카릴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한 마력 때문이 아니었다.
“당신…….”
그의 낮은 중얼거림에 카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타오르는 화염처럼 붉은색을 띠던 카릴의 눈동자가 서서히 검게 변했다.
이윽고 지그라의 것과 같은 칠흑의 눈동자가 된 그는 뻐근한 듯 눈을 비비며 말했다.
“남부의 디곤도 아니고 제국인과 섞인 혼종도 아닌 순수한 북부의 이민족 중 마력을 가진 자는 내가 유일무이할 테니까.”
카릴은 세워 놓은 거울에 얼굴을 비춰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마력으로 눈동자의 색을 바꿀 수 있으나 검은 눈동자만큼은 바꿀 수 없다. 그 이유는 이민족은 마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카릴은 지그라에게 말했다.
“반대로 마력으로 검은 눈동자 역시 만들지 못한다. 검은색은 마력을 잡아먹는 색깔. 그 어떤 마법으로도 바꿀 수 없다.”
“……검은 눈동자를 가졌다는 것이야말로 이민족이라는 증거.”
지그라는 그 말을 들으며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그 불변(不變)의 긍지를 가지고.”
“검은 눈으로 살아라.”
카릴의 말을 이어 지그라가 대답했다.
“기억하고 있군. 하긴, 고리타분한 규율까지 지키는 너라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의 말에 카릴은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 다르다. 달라진 미래만큼 그 불변을 지키는 것이 아닌 내 손으로 깼으니까.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운명 역시.”
‘……운명?’
벌어질 미래에 대하여 알 리 없는 지그라는 카릴의 말에 살짝 고개를 꺾었다.
하지만 그는 카릴이 그저 이민족의 미래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널 기억한다. 그리고 우린 제법 친했는데. 세 형제 모두 당신께 검을, 사냥법을 배웠었지.”
카릴은 잠시 눈을 감았다.
과거, 대전사의 아들이자 미래에 검은 눈 일족을 이끌게 될 작은 주인은 비단 자신만이 아니었었다.
그의 위로 있던 두 명의 형들.
둘은 그가 보는 눈앞에서 죽었다.
끔찍했던 전장.
그 순간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일족의 시체뿐이었으니까.
“솔직히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그렇기에 검은 눈 일족이 내 부름에 답을 했다는 말에 놀라우면서도 반가웠다.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
두 번 다시.
그 말은 카릴의 전생까지 통틀어서 하는 말이었다.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들이 모두 죽었던 멸족의 위기를 맞이했던 전쟁이었기에 당연히 살아남은 자는 없을 것이라 여겼다.
단순한 추측만이 아니었다.
이후 신탁 전쟁이 일어나고 파렐에 의해 나타난 타락들로 인해 북부는 지옥으로 변했고 더 이상 이민족들에 대한 소식 역시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타락들이 어째서 북부를 가장 먼저 전장으로 선택한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우리야말로 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후손들이니까.’
그 싹을 잘라내기 위한 싸움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신을 수호하기 위해 뽑힌 신탁의 10인을 이끄는 자가 이민족이었다.
‘율라(Yula).’
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자신들을 능욕하기 위해 신탁을 내리고 파렐을 소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그렇다면 치가 떨릴 정도로 지독하고 잔혹한 놀음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북부의 이민족이라면 검은 눈 일족의 행동 대장을 모르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안 그래?”
“정말……. 소주(小主)님 이십니까.”
“믿기 어렵다면 의심하는 지금 그대로 나를 보면 된다. 지금의 나는 자유군을 이끄는 카릴이니까.”
담담한 카릴의 대답이었지만 여전히 지그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예전에 하시르에게 스승님에 대한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카릴의 이름을 빌려 쓴다고 말했지만 그라면 그런 걸 상관하지도 않겠지. 그래도 내 검은 눈을 보이는 것은 마력을 얻은 이후 처음이다.”
카릴은 저택을 나서고 난 지금까지 자신의 태생에 대하여 비밀을 지켜왔다.
하시르나 밀리아나를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저 그가 이민족일 수 있다는 추측만을 했을 뿐 확증은 없었다.
“……장로들의 반발이 심할 겁니다.”
“예상하고 있다.”
티렌 맥거번은 카릴의 태생이 대륙인들을 통합하는 데에 있어서 걸림돌이 될 거라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반대로 현재 카릴의 태생은 대륙인이 아닌 이민족을 한데 모으는 것에 있어서 장애물이 되었다.
“그것 역시 고리타분한 생각이야. 마력이 없는 자를 이단이라 칭하는 황제나 마력이 없는 것이 이민족의 긍지라 여기는 장로들이나 매한가지니까.”
지그라의 말대로 장로들은 이민족을 이끄는 자가 마력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카릴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대전사의 칭호를 얻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
물론 장로들도 어째서 이민족이 마력이 없는가에 대해서까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저 내려오는 전통과 관습을 중요시 생각할 뿐.
하지만 신화시대의 블레이더의 후예가 자신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카릴은 그 전통의 긍지가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신에 대적한 자들이 받은 패배의 증거.’
카릴은 지그라를 바라봤다.
“언제나 비밀을 밝히는 것은 득보다는 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비밀을 네게 얘기한 것은 검은 눈 일족. 너희들이 내 검(劍)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카릴은 지그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더 묻고 싶은 것은?”
“충분합니다. 일문일답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알려주셨으니까요.”
지그라는 카릴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나머지는 규율을 이루었을 때 듣겠습니다. 솔직히 너무 많이 변하셔서……. 과연 일족들이 이 말을 믿을지 의문입니다.”
외모에서부터 풍기는 기운까지.
그도 그럴 것이 용마력을 흡수한 뒤에 카릴의 육체는 일반적인 기준을 뛰어넘어 성장했고 언뜻 보기엔 충분히 성년식을 치를 나이 정도까지 보였으니까.
“……살아계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한마디로 지그라의 생각을 카릴은 읽을 수 있었다. 그의 말을 듣고 카릴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나 역시…….”
주르륵―
그 순간,
카릴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는 한 방울의 눈물을 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얼마 만일까.
그가 눈물이라는 것을 흘려본 것이.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파렐이란 탑 안에서 억겁(億劫)의 시간을 보내며 그는 스스로 자신의 감정이 이제 더 이상 메말랐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전생에서 올리번에 대한 분노와 원망의 눈물을 흘렸을지언정 그리움으로 인한 눈물은 처음이었다.
실로 감정의 충만함.
회귀 이후 형제들을 만나고 아버지를 만났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그들은 당연히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한들 더 이상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자신의 일족을 만났으니까.
카릴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는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한 채 그저 창밖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지그라에게 말했다.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