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26)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26화(26/497)
24. 한 발 먼저
“노예왕이라니……. 무슨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수안은 퉁퉁 부은 얼굴로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글쎄. 어감이 좀 그렇긴 하지만 이민족들에게 그렇게 불린다던데. 아버님의 이단섬멸령이 있기 전부터 제국인들에게 잡힌 노예들을 도주시켜 타투르로 보내 자유를 찾아 준다는 소문 때문에 말이야.”
카릴은 그 말에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수안 하자르가 그 소문만 무성했던 노예왕이었다?’
제국의 이단섬멸령이 내려지기 전에도 제국인과 이민족의 싸움은 계속되었었다.
포로로 잡힌 이민족들 중 살아남은 자들의 대부분은 귀족의 노예가 되었다.
신출귀몰한 솜씨로 그들을 빼돌려 북부로 돌려보내거나 자유도시인 타투르로 보내던 한 사람.
‘더욱이 이단섬멸령이 시작되고서 엄청난 기세로 사람들의 입에 올랐던 인물.’
바로,
노예왕(奴隸王).
‘이민족의 영웅.’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종적을 감추고 완벽하게 사라졌다.
마치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것처럼.
‘……!!’
카릴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가. 그렇게 되는 건가.’
번뜩이는 생각.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노예왕이라 불리며 한 세력을 구축할 만큼 위세가 대단했던 그가 사라진 건 정확히 이단섬멸령이 없어지고 나서였다.’
그는 유명세에 비해 자신의 권세를 따로 만들거나 하진 않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의아했지만 이내 곧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었다.
‘노예왕과 올리번이 손을 잡았던 거군.’
그렇다면 말이 된다.
‘수안 하자르가 노예왕이라면 포나인의 조류를 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륙에서 가장 험난한 강.
하지만 노예로 잡힌 이들을 도망치도록 그런 강을 수년 전부터 수백 번 탔다면 그의 귀신같은 조타술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올리번 슈테안이 황위에 오르고 난 뒤.
‘노예왕이었던 수안 하자르는 라바트 길드의 마스터가 되어 다시 나타난 거다.’
카릴은 한 소년을 바라봤다.
일련의 사건들.
한 사람이 사라지고 또 한 사람이 나타났다.
하지만 모두가 제국의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존재감을 가진 자.
그 두 사람이 원래는 같은 한 사람이었고 그 모든 배후에 제2황자 올리번 슈테안이 있었다.
“아버님? 이제 보니 대단하신 분의 아들이셨군. 몇째지? 첫째? 아니면 둘째? 소문에 의하면 셋째는 나가리라던데.”
수안 하자르가 올리번을 향해 능청스럽게 말했다.
“무엄하다.”
올리번의 옆에 선 기사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백발의 노기사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기백을 뿜어내고 있었다.
‘자르반트, 저 노친네까지 따라온 건가. 얽히게 되면 성가시겠어.’
카릴은 그를 향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자르반트 레다크 백작.
세 황자의 검술 교관이자 황실 친위대 중 하나인 적(赤)기사단의 단장.
공작의 직위는 아니지만 위세는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인물.
게다가 일흔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검술 실력은 내로라하는 기사들에 비해 절대 밀리지 않았다.
‘신탁이 있던 후에도 가장 활발하게 전장을 누빈 노괴 중 한 명이지.’
그를 포함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네 명을 생각하며 카릴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내 소개가 늦었군. 그래도 제법 얼굴이 알려졌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수안의 말에 올리번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마치 귀족을 대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제2황자, 올리번 슈테안이라고 하네.”
“…….”
그 이름을 듣고서도 수안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네놈……!!”
무례한 그 모습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자르반트가 한 발자국 창살 가까이 다가갔다.
“그만.”
하지만 그런 노기사를 막으며 올리번이 이번엔 무릎을 꿇어 쓰러져 있는 수안의 눈높이에 눈을 마주했다.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저하……!”
올리번은 차분한 어조로 수안에게 말했다.
“나를 도와다오.”
“크…… 크큭.”
그의 말에 수안은 피식 웃었다.
“나리, 도대체 무슨 말인지 소인으로서는 모르겠나이다. 위대하신 황족께서 미천한 제게 도우라니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명백히 비아냥거리는 말투였다.
그의 목소리에서 적의(敵意)가 느껴졌다.
“나는 이민족들을 구하고 싶다.”
“…….”
“너도 알다시피 많은 북부의 이민족이 죽어 가고 있다. 내 비록 지금은 미천하나 그들 역시 대륙의 백성. 제국인이든 이민족이든 모두가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수안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조금이나마 그들을 살리고 싶다. 부디, 자네가 나를 도와주었으면 한다.”
척-
수안은 손을 들어 올렸다.
“이민족 한 명당 5골드. 왕도의 시민이 다섯 달을 살 수 있는 돈입죠. 살기 위해 그 돈을 내게 준 사람만이 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돈이 필요한가. 얼마든지 줄 수 있다.”
올리번의 표정은 진지했다.
카릴은 그의 얼굴을 훔쳐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올곧음과 순수함.
‘그렇게 보였지, 너는.’
전생(前生)의 그 역시 저 모습에 매료되었으니까.
“그런데 그 돈을 받아 겨우 들어가는 타투르는 또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수안의 목소리가 감옥 안에 울렸다.
다섯 손가락을 쫙 피었다가 그중에 네 개를 접는다. 올곧게 서 있는 가운뎃손가락만이 올리번을 향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금사자란 녀석에게 4골드를 바쳐야 하죠. 그리고 남은 1골드는 목숨값. 앞면이 나오면 살고 뒷면이 나오면 죽습니다. 돈을 내고도 모두가 사는 게 아니란 말이죠.”
“…….”
“과연 이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까? 내 손으로 그곳으로 데려가 오히려 죽어 가는 모습을 봐야 한 게 몇인지……. 잘나신 황자님께서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수안이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물론, 동전을 던지고 나서도 죽지 않은 자들도 있죠. 대신 금사자의 노예가 되는 겁니다. 자유를 위해 도망친 곳이 죽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다시 노예가 되는 겁니다.”
빠득-
“나는 그들을 구해준 적 없다. 구해주고 싶어도 구할 수 없었다. 그러니…….”
그 순간,
카릴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왼쪽의 붉은 눈동자…….’
전생(前生)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안대를 차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끝까지 그의 왼쪽 눈동자를 본 적이 없었다.
‘설마…….’
그제야 카릴은 수안이 제국이라면 치를 떨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일족보다 훨씬 더 오래전.
제국에 의해 멸족한 아귀 부족의 생존자.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 노예왕이라는 빌어먹을 이름으로 날 부르지 말고 꺼져.”
“네 이놈……!!!”
으르렁거리는 맹수 같은 모습에 당장에라도 자르반트는 그의 목을 벨 기세로 소리쳤다.
콰아아왕—!!!
울리는 쇠창살 뒤로.
수안 하자르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이민족을 살리고 싶은 성군이 되고 싶으면 타투르쯤은 내게 주고 말하십시오. 그들이 살 수 있는 땅 말이야.”
카릴은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황자 앞에서 저렇게 당당하다니. 내가 알던 수안 하자르와는 다르군. 3년의 세월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나 보군.’
그가 처음 만났던 수안 하자르는 좀 더 차분한 느낌이었다. 저런 날뛰는 야생마 같은 거친 느낌이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군.’
카릴은 피식 웃으며 계속해서 둘을 바라봤다.
“아직은 시간이 걸리겠지. 그동안 나는 널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대로 죽기엔 아까운 자니까.”
올리번은 수안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또 만나지.”
* * *
‘이렇게 된 거로군…….’
카릴은 수안 하자르를 바라봤다.
‘단순히 능력이 뛰어난 상인 길드의 마스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런 내막이 있을 줄이야.’
입안이 썼다.
만약,
그가 이 시기에 세상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자신은 결국 황제에 오른 그가 어떻게 변했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민족을 살리고 싶다고?’
……네가?
카릴은 천장 뒤에서 당장에라도 나와 그의 면상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다.
‘개 같은 소리.’
툭-
그 순간,
경비를 서고 있던 병사가 갑자기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다 풀었나?”
“……!!!”
“그렇다면 일어나.”
수안은 깜짝 놀라며 움직이던 두 팔을 등 뒤로 감추었다.
“본의 아니게 재밌는 걸 봤군. 그냥 기다려도 올리번은 내일이 되면 분명 널 풀어주라고 하겠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인영에 수안이 고개를 들어 카릴을 바라봤다.
“하지만 쓸데없이 하루를 버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쪽이야말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거든.”
자신보다 어린아이였다.
카릴의 모습을 본 순간 수안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넌 또 뭐야?”
하지만 그런 그의 반응에 카릴은 담담한 표정으로 품 안에서 금화를 꺼냈다.
“포나인을 건너는 뱃삯이다.”
수안은 자신의 앞에 놓인 다섯 개의 금화를 바라보며 인상을 구기며 그를 바라봤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이제 필요 없겠어. 애초에 금사자 따위에게 줄 건 없었으니까.”
“무슨…….”
카릴의 눈빛이 빛났다.
‘올리번, 분명 네게 먼저 온 기회였다. 하지만 넌 실패했다. 그렇다면 이번엔 내가 하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그를 바라보며 카릴이 가볍게 웃었다.
“수안 하자르.”
감옥 안에서 카릴의 목소리가 울렸다.
“타투르쯤 네게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