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266)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266화(266/497)
185. 튤리 처단 (1)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콕스 바틀러는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우락부락하고 건장한 체구만큼이나 뛰어난 그의 실력을 공국의 사람들이라면 모를 리 없었다.
과거 공국 총사령관의 직위까지 올랐던 인물이니만큼 그의 실력 역시 무시하지 못할 수준임엔 틀림없었다.
서걱―
단말마의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콕스 바틀러가 반쯤 검을 뽑았을 때 놀랍게도 노성을 지르던 그 표정 그대로 그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카릴은 아무렇지 않게 얼음 발톱을 검집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가 검을 뽑았다는 것조차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섬광 같은 속도였다.
“……!!!”
모두의 시선이 그의 주검에 꽂혔다.
하지만 놀라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튤리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 결과가 당연하다는 듯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그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비룡 1부대의 단장과 공국의 유일한 소드 마스터에 비한다면 결국 보잘것없는 실력에 불과했으니까.
게다가 초대형 골렘인 레볼마저 단신으로 상대했다.
공국이 건립되고 지금까지 오랜 역사 속에서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업적을 카릴이란 소년이 고작 몇 개월 만에 하나하나 만들어간 것이다.
“으…… 으아아악!!!”
하지만 그 업적의 놀라움 대신 튤리는 유일한 아군이었던 콕스를 잃었다는 것에 겁에 질린 듯 비명을 질렀다.
“언니, 이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백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세요. 우든 클라우드는 공국에게 독이 될 존재입니다.”
“너는…… 계속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게냐!! 너야말로 프란이 그 꼴이 되어 같이 머리가 이상해지기라도 한 게냐?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튤리는 눈에 독기를 품으며 루이체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도망칠 방도를 찾는 듯 그녀는 뒤에 있는 문을 바라봤다.
“도망쳐도 좋아. 하지만 그 문을 나가는 순간 타협은 없다. 대신 너의 목이 성문에 걸리는 미래만이 기다리겠지.”
“언니, 잘못을 인정하세요. 전쟁은 패배하였습니다.”
“미친년…….”
튤리의 입에서 결국 공작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설마……. 네놈, 루이체에게까지 무슨 짓을 한 건 아니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를 네가 꼬드긴 게 분명할 터.”
카릴은 그녀의 물음에 피식 웃었다.
차갑게 입꼬리를 올리는 그 모습에 튤리는 자신도 모르게 오금이 저리는 기분이었다.
“아이를 다루는 것쯤은 쉬운 일이야. 안 그래?”
그런 튤리를 향해 카릴이 말했다.
“……설마 그녀에게까지 약을 먹인 건 아니겠지?”
“글쎄, 약을 먹였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혹은 네가 쓴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고. 뭐, 아닐 수도 있고.”
애매한 그의 대답은 마치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이 들렸다.
“감히……!! 그랬다가는 내가 널 가만두지 않겠다!!”
으르렁거리듯 말하는 튤리였지만 카릴은 그런 그녀의 분노가 아무런 감흥이 오지 않는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네 주제나 생각해. 지금 당장 목이 떨어져도 아무도 널 구해 줄 사람 없으니까.”
“…….”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 한마디에 튤리는 현실로 돌아온 듯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고상한 척하지 마. 어린애를 이용하는 건 너희도 마찬가지 아냐?”
“……뭐?”
꽈드드득―
카릴이 튤리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큭?!”
그녀는 고통에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찔끔거렸다.
“라엘.”
그의 말을 듣는 순간 튤리는 얼굴이 굳어졌다.
카릴은 내전 내내 잊지 않았다.
단순히 공국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궁극적으로 찾아야 할 숙적의 존재를 말이다.
“네가 어떻게 그 이름을…….”
믿을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화이트 벙커의 레볼이 쓰러진 것은 이제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가네스가 우든 클라우드의 일원을 알고 있는 것도 모자라 극비 중의 극비인 그 이름이 카릴에게서 나왔으니 말이다.
“설마……. 가네스 경에게 둘의 이름을 말한 것도 너란 말이냐.”
카릴은 그녀의 말에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마치 자신이 아니면 당연히 누구겠냐는 의미였다.
“그것만이 아니지. 우든 클라우드가 노움국과 접촉을 했다는 것과 선혈 동굴에 쓸데없는 짓을 하는 중이라는 것까지 말이야.”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라바트 길드가 누구의 것인지 너도 알고 있잖아? 너희는 나를 이용하려 했지만 사람 잘못 건드린 거지. 상대를 봐가면서 손을 써야지. 감당할 수 없는 존재는 들쑤시는 게 아냐.”
카릴은 그녀에게 말했다.
“우든 클라우드는 망한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미친놈. 그게 가능할 거라 보나?”
“응.”
너무나도 당당하게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튤리는 할 말을 잃은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문제지.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네 목이 저놈처럼 바닥에 구를지 아니면 그래도 자리에 붙어 있을지니까.”
“…….”
그는 다시 한번 튤리에게 말했다.
“잘 들어. 네게 살 기회를 주마. 네놈들이 꼬드기고 있는 그 여자애를 내 앞으로 데려와. 그게 네 목이 아직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꿀꺽―
튤리는 그의 말에 다시 한번 마른침을 삼키며 눈빛이 떨렸다.
“불안한 얼굴이군. 라엘이란 아이는 너조차 감당할 수 없는 윗선의 일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답이 나오는군.”
“……뭐?”
“네가 프란에게 그랬던 것처럼 과연 우든 클라우드가 네게 공국을 줄 것이 확실한 일일까? 아니면 너 역시 그저 이용당한 인형 중 하나일 수도 있단 말이지.”
“웃기는 소리.”
하지만 조금 전까지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었던 그녀가 카릴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반응을 봐서는 그래도 확실히 윗선에 닿아 있는 것 같군. 그녀를 이용하면 라엘에 대한 단서를 확실히 잡을 수 있겠어.’
평상시대로라면 그런 맹랑한 반응을 가만히 놔둘 리 없을 카릴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건방진 그 모습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웃기는지 아닌지는 나중에 보면 알겠지.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할 거야.”
콰아아아앙―――!!
창밖으로 뜨거운 화염이 솟구쳐 오르면서 화이트 벙커의 성벽 여기저기에서 폭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
그와 동시에 성문을 뚫고 들어오는 병사들이 함성이 튤리의 귀에까지 들렸다.
여전히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지만 들리는 외침만으로도 승기가 어디로 기울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같은 3만의 병사라 할지라도 누가 이끌고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승부는 너무나도 쉽게 결정지어졌다.
[크르르르르르!!] [카아아악!!!]지금까지 잠자코 있었던 드레이크들이 레볼이 쓰러짐과 동시에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수비군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믿음의 방패였던 골렘이 무너졌을 때 이미 전의를 상실했던 그들이었기에 상공의 비룡들을 본 순간 저마다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을 했다.
“투항하는 자는 살려주겠다! 너희들은 적이 아닌 명령에 의해 움직였을 뿐!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밀리아나의 외침이 들렸다.
“하나 반항하는 자에게는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마력이 실린 그녀의 목소리가 화이트 벙커 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미 너희는 전쟁에서 패배했다. 차라리 프란이 승리했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닌 제3자인 내가 개입하게 되었지. 과연 이런 상황에서 우든 클라우드가 위험을 무릅쓰고 너를 구해줄까? 난 반대일 거 같은데.”
카릴은 튤리를 바라봤다.
“넌 가지치기 당할 거다. 아니, 뿌리니까 제거라고 해야 할까? 뭐가 되었든 예외는 없어. 그들에게 있어서 네가 뿌리라 할지라도 예외 없는 일이지. 뿌리가 하나만이 아니니까. 그리고 네 실책은 아마 목숨으로 갚아야 할 거야.”
“…….”
틀린 말은 아니었다.
카릴은 마치 그녀보다 더 많이 우든 클라우드의 방식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에 그는 수많은 비밀 조직의 일원들 잡아 왔었다.
끝내 그들의 수장을 잡지는 못했지만, 치가 떨릴 만큼 그들의 발상과 행동을 겪었으니까.
“생각할 시간을 주지. 하지만 주어지는 시간은 단 하루뿐이야. 네가 우든 클라우드에 충성을 맹세한다면 그 마음을 높이 사 나는 죽음을 선물할 테니.”
그의 말에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과연 우든 클라우드가 네 충성에 감명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으…… 으으윽……!!”
구겨지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루이체가 말했다.
“설마 언니를 살려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녀가 미치광이들에게 빠져 프란 경에게 한 짓을 생각해 보세요! 게다가 그로 인해 많은 백성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루이체 경. 그녀의 죄목은 화이트 벙커의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단상 위에서 집행될 것이니까요. 하나.”
카릴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루이체를 향해 말했다.
“그렇다면 먼저 루이체 경께서 이 전쟁의 종결을 알리시는 것이 우선일 듯싶군요. 프란의 목숨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백성의 목숨도 중히 여기신다면 말이죠.”
“……네?”
“지금도 많은 자가 죽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공국의 주인으로서 조금은 더 넓은 마음을 가지셔야 할 겁니다.”
루이체는 카릴의 말에 얼굴을 살짝 붉혔다.
단 한 번도 주인이라는 단어가 자신에게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루만 유예 기간을 주십시오. 어쨌든 튤리는 공국의 1인자였습니다. 패배자 일지라도 그 정도의 배려는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허리에서 검을 뽑으며 무너진 홀의 끝으로 올라갔다.
여전히 병사들은 싸우고 있었다.
아니,
일방적인 학살일지도 모른다.
전의를 잃은 화이트 벙커의 수비군들은 순식간에 밀려오는 프란군에게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모두 멈추거라!!!”
가녀린 목소리가 있는 힘껏 소리쳤다.
여린 그 목소리가 폭음 속의 전쟁에 들릴 리 없을 텐데 그녀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고개를 돌렸다.
루이체조차 깜짝 놀란 듯 뒤를 돌라봤다.
카릴이 계속하라고 손짓을 했다. 그가 마력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메아리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나 7공작 루이체가 전쟁의 종결을 알린다!! 모두 무기를 내려놓거라!!”
루이체는 고양된 표정으로 소리쳤다.
“서로 검을 맞대고 있는 그대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같은 곳을 향해 검을 나란히 했던 사이다. 이제 더 이상 이 잔혹한 싸움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승리, 아니, 그 누가 승리를 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이 싸움으로 희생된 자들에 대해 슬픔을 감내 해야 할 시간만이 남은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심금을 울렸다.
수만의 병사들이 무너진 홀에 서 있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본인 스스로도 감정이 복받치는 듯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러니 모두……. 다시 공국을 지키자.”
루이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카릴은 손을 들었다. 저 멀리서 밀리아나가 그것을 확인하고는 병사들에게 눈짓을 주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기다렸다는 듯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화이트 벙커의 병사들은 당연하게도 무릎을 꿇었고 전쟁에 승리한 프란군들의 사기는 더욱더 찌를 듯 올라갔다.
‘말도 안 돼……!! 튤리 경이 패하시다니!’
‘이럴 때가 아니다. 여기에 있다가는 언제라도 목이 달아날 판이야. 당장 도망쳐야…….’
대피로 아래로 도망쳤던 귀족들은 루이체의 목소리가 들리자 다급히 몸을 움직였다.
“…….”
카릴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몸을 돌렸다.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레볼의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조종석에 쓰러진 윈겔을 둘러메고는 천천히 레볼을 밀었다.
끼이이이익…….
그가 마력을 끌어올리자 거대한 기둥이 쓰러지는 것처럼 서서히 레볼이 넘어지기 시작했다.
콰가가강! 콰강! 콰가가가가강!!!!
쓰러지는 레볼이 튤리의 성을 완전히 무너뜨리며 그 뒤에 있는 귀족들을 덮쳤다.
“꺄악!!”
“으아아악……!!
도망치던 귀족들이 거대한 레볼에 깔리며 요란한 굉음과 함께 들려오던 비명이 삽시간에 침묵했다.
살아남은 귀족은 없었다.
[크르르!!] [카아아아―――!!]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상공에서 드레이크들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아올랐다.
“지그라.”
카릴인 이름을 불렀다.
“족장들을 집결시켜라.”
그는 윈겔을 벽에 기대어 놓고는 조용히 홀을 빠져나가며 옷을 여미었다. 북부의 차가운 바람이 그의 몸을 휘감고 지나가자 뜨거웠던 열기가 조금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이제 준비가 끝났다.”
* * *
화이트 벙커의 밤.
폐허에 가깝게 부서진 성이었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째서 그 꼬마가 종결의 외침을 한 거지?”
“그녀는 공국의 공작이야. 그리고 승리군에 있었던 자 중에 프란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군사를 보유하고 있으니까. 프란이 의식 불명인 상황에서 당연히 그녀가 승리를 외쳐야지.”
하지만 창밖의 소란스러움과 달리 방 안의 공기는 차가웠다. 카릴은 뜨거운 술을 한 모금 마시면서 말했다.
“병사들 수십만을 데리고 와도 당신 한 명보다 못하다는 걸 이미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어.”
그의 뒤에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밀리아나.
그리고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하시르와 키누 무카리였다.
그들의 뒤에 서 있는 릴리아나, 쿤타이, 파툰 역시 마찬가지의 얼굴이었다.
“하시르, 내가 너희들에게 뭐라 했었지?”
“전쟁을 길게 끌 생각 없다 하셨습니다.”
“맞아. 공국의 군사력은 나중에 내게 있어 필요하다. 불필요하게 그들을 죽일 필요가 없어. 솔직히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강철 함대를 다리로 사용한 것도 아까운 일이었지.”
카릴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이 정도가 좋아. 실질적으로 이번 전투에서 병사들의 피해는 별로 없었으니까. 이미 레볼이 쓰러진 뒤에 벌어진 것이라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으니 말이야.”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 아이에게 공국을 갖다 바친 꼴이 되었어.”
밀리아나의 말에 카릴은 피식 웃었다.
“너는 아직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
“……?”
카릴은 릴리아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의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밀리아나, 걱정 마라. 공국은 우리의 것이 될 거야. 내가 전쟁을 길게 끌지 않겠다고 한 것은 내 계획은 전쟁이 끝난 뒤에야 진짜 시작이기 때문이다.”
“……뭐?”
“술잔을 들어라.”
카릴은 빈 잔에 술을 다시 채워 넣었다.
“오늘 밤이 끝나기 전에 공국은 이 승리를 느낄 새도 없이 비극을 맞이할 것이니 우리는 기쁨보다 애도의 술을 마셔야겠지.”
“그 비극을 네가 만들어 놓은 것인데도?”
밀리아나의 말에 카릴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술을 들이켰다.
“물론, 이 승리는 공국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니니까. 오늘 밤이 끝나고 새로운 해가 뜰 때 나는 나의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며 모두가 잔 속의 술을 단숨에 마셨다.
“그때 나는 승리의 술을 마실 것이다.”
카릴은 술잔에 술을 한 번 더 따르며 누군가에게 건넸다.
“후회는 없는가. 이 모든 게 네 계획인데.”
모두의 시선이 옮겨졌다.
놀랍게도 이민족들 사이에 홀로 서 있는 이 남자는 카릴이 건넨 술잔을 받으며 굳은 얼굴로 말했다.
“없습니다.”
가네스에게 약을 쓴 것도, 루이체의 마음을 이용한 것도 모두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
그는 다름 아닌 앤섬 하워드였다.
“머리도 심장도 모두 차갑게 해라.”
카릴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제 곧 대격변(大激變)을 마주하게 될 것이니 너의 차가움이 공국을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