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269)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269화(269/497)
186. 공국의 새 아침 (1)
다음 날.
승리로 떠들썩했던 화이트 벙커는 어제와 전혀 다른 침묵이 도시 안을 가득 채웠다.
튤리 루레인의 죽음.
하지만 의외로 거리의 사람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의 문외한인 그들이라 할지라도 패자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었으니까.
백성들에게 있어서 공국의 주인이 누가 되는지에 대한 정통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이 과연 편안하게 이어질 수 있느냐가 더 중요했으니까.
뿌우우우우―――
화이트 벙커에서 장례식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리자 전쟁의 피해가 아직 복구되지도 않은 성안에서 행렬이 이어졌다.
작동을 멈춘 골렘, 레볼이 마치 그녀의 죽음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성벽 아래에 무릎을 꿇고 서 있었다.
“…….”
공국의 1공작을 비롯해 총 4명의 장례가 동시에 치러지는 이례적인 날이었음에도 그 뒤를 따르는 행렬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장례식에 루이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며 6공작인 보니토스만이 행렬의 선두에서 장례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군. 아무리 프란에 대한 감정이 깊다 한들 루이체 그 아이는 형제의 장례식에까지 얼굴을 보이지 않다니 말이야. 야만족도 철천지원수라 할지라도 사자(死者)에게만큼은 자비를 베푸는데 말이지.”
밀리아나는 창밖에서 장례식을 바라보며 말했다.
단 한 순간에 가족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귀족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공작가의 막내인 루이체는 고작 열여섯에 불과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아이에게 가족을 죽이는 것은 충격이 큰일이니까.”
“그 일을 시킨 게 누군데? 고작 열다섯의 소년이 엄청난 짓을 벌였잖아.”
카릴을 밀리아나의 말에 피식 웃었다.
“하지만 정말 단순한 연정으로 자신의 언니를 죽였을 거라고 생각해?”
“……뭐?”
카릴은 그녀에게 물었다.
“프란을 저렇게 만든 것은 튤리지만 루이체의 눈엔 나 역시 프란이 가진 것을 빼앗으려는 자야. 하지만 그녀는 튤리와 힘을 합친 게 아니라 나에게 굴복했지.”
“그거야……. 튤리가 프란을 망쳐 버렸으니 그런 거 아닐까?”
“성인도 되지 않은 나이의 사랑은 기껏해야 열꽃 같은 것이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쟁취하는 주인공이 되고 싶지만 의외로 현실은 냉혹하거든.”
그에게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감상을 들을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밀리아나였지만 차가운 그 대답에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활활 타오르던 감정은 또 쉽게 사그라지니까. 나는 조금 경각심을 일깨워줬을 뿐이야. 튤리의 죽음에 대한 대가가 단순히 프란의 회복만은 아니거든.”
“그럼?”
“루이체 본인의 목숨. 하나의 목숨으로 둘을 살릴 수 있으니 이득이겠지. 자신이 살고 싶다면 튤리를 죽이라고 했지. 패배의 대가라기보다는 승자의 보상이라고 해야겠지. 그녀는 내전에서 승리했으니까. 적어도 살 수 있는 기회는 줘야지.”
밀리아나는 그 말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건 협박 아냐?”
루이체의 행방은 보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었다.
지금쯤 죄책감에 시달려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냉정해서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신의 손으로 죽인 언니의 마지막을 지켜볼 만큼 모질지 못한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수백 년간 공국을 통치하던 공작가가 한순간에 무너졌군. 루이체, 그 애도 제정신은 아닐 테니 말이야.”
“원한다면 편안한 죽음까지는 내가 줄 수 있지. 허수아비 왕은 보니토스 하나로 충분하니까. 정치와는 전혀 거리가 먼 그는 알아서 내게 공국을 넘길 테지.”
왕위의 정당성.
타투르, 대초원과 남부의 5대 일가 그리고 디곤과 북부의 이민족들까지.
냉정하다 못해 냉혹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카릴은 공국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을 썼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동안 그가 흡수한 사람들은 이민족과 야만족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분명 타투르에도 대륙인들이 살기는 했지만 그들은 제국과 공국에서 도망친 이주민들이었다.
또한 이스트리아 삼국의 경우는 비올라만이 그를 삼국의 진짜 주인이라 여길 뿐 아직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즉, 제대로 대륙의 왕국을 함락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카릴은 많은 생각을 했었다.
강대국을 무너뜨리는 것.
과연 어떤 방식으로 해야 등 뒤에 위험을 두지 않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귀족(貴族).
애초에 그들은 태생적으로 힘과 권력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온 자들이다.
그런 그들을 과연 야만족들처럼 압도적인 무위와 힘으로 숭배를 받을 수 있을까?
아니다. 하나 방법은 있다.
고금(古今)의 진리처럼 수많은 정복자가 썼던 방법은 지금도 통용되고 있으니까.
적의 우두머리를 없애 반란의 싹을 애초에 제거하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검은 눈 일족의 규율과도 일맥상통했다.
“어리다고 해서 열꽃 같은 감정이다, 라……. 어떻게 확신하지? 당신 역시 어리기는 마찬가진데. 마치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처럼 말하네.”
카릴은 밀리아나의 말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래 산 노인이라 할지라도 사랑에 대해 안다고 할 수는 없지.”
“내 말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결정은 그들 스스로 내린 것일 뿐이다.”
“내가 잔인하다고 생각한 건 사랑에 대한 감상이 아니야.”
“그럼?”
“조금 전에 보니토스 하나라고 했지? 그 말은 지금 보이지 않는 루이체가 방에 웅크려 울고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지.”
밀리아나는 카릴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그녀의 눈썰미에 그는 다시 한번 웃었다.
“그는 이번 내전에서 가장 얽히지 않은 인물이니까. 자신의 영지에서 책만 보던 자야. 그러니 공국을 맡기기에 적합하지. 알아서 내게 나라를 받칠 테니까. 그의 그릇으론 이 나라를 유지하지 못해. 저 장례가 그의 마지막 귀족으로서의 임무가 될 거야.”
그때였다.
밀리아나가 뭐라 말을 더 이으려는 찰나 그녀는 황급히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
“검은 눈 일족이 주군을 뵙습니다.”
“자네 입에서 날 만나겠다는 말이 나오다니. 검은 눈 일족의 규율을 지키고서 오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어쩌지. 튤리의 목은 다른 자가 취했는데. 너는 뭘 가져왔지?”
지그라는 무릎을 꿇고서 카릴에게 작은 상자 두 개를 바쳤다.
“보시는 바와 같이.”
그의 대답에 밀리아나는 자신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떨리는 눈으로 상자를 열고 그 안을 들여 다 본 순간 밀리아나는 여러 감정이 섞인 표정으로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그녀는 낮게 말했다.
“굳이 루이체의 행방에 대해서 물을 필요가 없게 되었군. 그녀가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게 아니라는 게 확실하게 알았으니 말이야.”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두 개의 목.
그건 다름 아닌 루이체와 프란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카릴, 나는 지금까지 당신이 해왔던 모든 일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의심하거나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적 없어.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믿어. 하지만 이번 승리는 썩 유쾌하지는 않군.”
밀리아나는 상자의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
“둘을 죽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군.”
“물론이야.”
“하나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다.”
그녀를 바라보며 카릴은 대답했다.
“내게 있어서 공국에서 필요했던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로 튤리와 프란을 처리하는 것. 하지만 내 손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자멸을 해야 했다. 그래야만 공국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우리가 침략자로 보이지 않을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 루이체를 속여야 했지.”
“그거야 당연히…….”
“그리고 둘째.”
카릴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우든 클라우드.”
“……?!”
“놈들을 잡기 위해서 루이체와 프란의 죽음이 필요하다. 이건 첫 번째와 별개의 문제야. 왜냐면 또 다른 전쟁이니까. 그들은 새로운 전쟁의 희생된 것이지.”
그러고는 창밖을 바라봤다.
“전쟁이 끝났다? 실없는 소리. 내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야. 놈들을 뿌리 뽑지 못했으니.”
탁―
카릴이 창문을 열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
말릴 틈도 없이 그가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는 한복판에 내려섰다.
웅성웅성.
갑자기 나타난 그의 등장에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행렬의 맨 앞에 있던 보니토스만이 새파랗게 안색이 질려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비통한 전쟁이었다. 공국을 수호해야 할 공작가에서 서로 가족에게 검을 겨눈 내전이었으니. 나는 프란 경을 도와 이 전쟁을 끝맺기 위해 왔다.”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타투르의 주인이자 남부와 북부의 통치자인 카릴이다.”
화이트 벙커의 사람들이라면 카릴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가 레볼을 쓰러뜨리는 것을 모두가 보았으니 말이다.
“저 사람이…….”
“그 제국에 소문이 자자한 그?”
“황제 앞에서 살아 돌아왔다던데……. 어쩐지…….”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카릴은 천천히 그들을 한번 훑었다.
“북부의 시험도 치르지 않았으면서 잘도 저런 소리를 하는군.”
밀리아나는 카릴의 모습에 헛웃음을 지었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지그라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 전쟁으로 우리는 많은 자를 잃었다. 희생된 병사들, 죄 없는 백성들까지. 전쟁을 일으킨 공작들을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의 말에 보니토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하나 이것은 단순히 공작가의 문제가 아니다. 이 전쟁의 흑막에는 우든 클라우드라는 단체가 있으며 그들이 튤리 경을 꼬드겨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웅성웅성.
카릴의 말에 사람들이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프란 경은 그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를 도와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나, 이미 우든 클라우드의 마수는 프란군에게까지 뻗쳐 있었다.”
탈칵―
카릴이 상자를 열었다.
“……!!!”
“……!!!”
“프란 경은 이미 그들의 독에 중독되어 있는 상태였고 이 전쟁의 승리를 보지도 못한 채 살해당했다. 또한, 그들은 패배의 복수로 그를 도운 루이체 경의 목까지 잘랐다.”
보니토스는 그 말에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는 말했다.
“그, 그럼 저는……. 저는 어찌 되는 겁니까?”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그 모습에서 공국의 주인으로서의 위엄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거짓말!! 독살을 당했다면 어째서 두 분의 주검이 훼손되어 있는 것입니까!”
뒤에 있던 귀족 중 한 명이 소리쳤다. 겁에 잔뜩 질린 보니토스와는 달리 제법 강단이 있는 인물인 듯싶었다.
“프란 경의 시신은 크게 훼손되어 있었고 약으로 인해 사지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최소한의 보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카릴은 기다렸다는 듯 그 귀족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안심하지 마라. 그대들이 먹었던 약 중에 우든 클라우드가 뿌린 독이 있을 수 있으니.”
꿀꺽―
그의 말에 귀족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란이 먹은 약이 수도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약이라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국은 변해야 한다. 귀족들의 안일한 향락에 나라가 몰락하는 것도 모르고 서로에게 검을 겨누고 있으니……. 이 전쟁으로 희생된 자들이 그대들을 본다면 원통할 것이다!”
툭― 툭― 투툭―
카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젖어가는 것에 굴하지 않고 소리치는 그의 모습에서 어쩐지 묘한 압도감을 느꼈다.
“결국……. 이 전쟁은 승자가 없는 희생만이 남은 전쟁이 되었다. 나는 프란 경의 유지를 따라 지금부터 우든 클라우드와의 전쟁을 이 자리에서 선포하겠다!!”
웅성웅성.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로를 바라보며 웅성거릴 뿐이었다.
“내가 그들을 처단하고 루레인 가의 비통함을 풀리라!!”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
그때였다.
거리 곳곳에서 함성이 들렸고 그 외침은 마치 불길처럼 번져 화이트 벙커에 있는 모든 백성이 카릴의 말에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바람잡이들을 심어 두었습니다.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죠.”
가슴이 떨리는 광경이었다.
밀리아나는 그 모습을 보며 눈빛이 흔들렸고 조금 전 자신에게 말을 꺼낸 남자를 바라봤다.
앤섬 하워드였다.
“이것도 네 생각인가? 결국은 거짓말로 선동하는 것일 뿐이잖아.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것들이 말하는 책략이라는 것이 나와는 영 맞지 않아.”
밀리아나는 그를 바라보며 쯧― 하고 혀를 차면서 말했다.
“제 생각이 아닙니다. 카릴 님의 것이지요.”
“……뭐?”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제게는 달리 보입니다. 카릴 님은 그렇게 냉정하신 분이 아닙니다. 때로는 아픈 진실보다 거짓이 위로가 될 때도 있는 법이니까요.”
“무슨 뜻이야?”
“그저 자랑할 거리도 못 되는 일이라 하셨습니다. 카릴 님께서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무게일 뿐이라 말씀하셨으니까요.”
앤섬 하워드는 기억을 떠올리듯 눈을 감았다.
어쩐 일인지 이민족인 지그라가 대륙인인 앤섬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밤.
-루이체 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붉은 피가 카펫을 적시고 넋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서 있는 그녀를 향해 앤섬은 말했다.
창그랑―
그녀는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렸다.
그 앞에는 쓰러진 튤리의 시체가 있었다. 카릴의 명령대로 그녀가 튤리를 죽인 것이다.
-카릴 님께서 선택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대로 프란 저하와 함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오라버니를 저하라 부르십니까?
-송구하옵니다.
루이체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희는 어떻게 됩니까?
-아마……. 튤리 경의 장례식 때 두 분의 죽음을 카릴 님께서 알리 실 겁니다. 가짜 시신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보니토스 오라버니께서 충격이 크시겠어요. 그는 심신이 연약한 사람이니까요. 장례를 치르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겁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는 프란을 잠시 바라보곤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앞길도 찾지 못하는 제가 배부른 소리를 했네요. 패자의 목숨을 빼앗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겠지요. 이렇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송구하옵니다…….
앤섬은 그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것에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이것이 앤섬 경의 배려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진즉에 저희들의 목도 날아갔을 테죠.
-카릴 님의 허락이 없었다면 불가능 한 일이었습니다.
루이체는 그의 대답에 쓴웃음을 지었다.
앤섬은 비록 자신의 주군을 버리게 되었으나 프란에 대한 마지막 충정으로 그를 살리기 위해 비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의외로 카릴은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전생의 프란은 이번 내전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된다. 이번 생엔 목숨을 부지했지만 어쩌면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는 삶.
카릴은 그의 삶이 변한 것에 자신도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 생각한 것일지 모른다.
-나중에 일이 모두 끝나면 보니토스 경에게만은 진실을 전해주세요. 오라버니께서는 당장에라도 옥좌를 내려놓을 겁니다. 평생을 서로 견제하며 싸웠던 형제들입니다. 죽은 듯 조용히 여생을 마감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그녀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프란의 뺨을 쓰다듬었다.
-만약……. 제가 프란군을 이끌고 그와 싸웠다면 이길 수 있었을까요?
앤섬은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불가합니다. 언젠가 되었든 결국 공국은 무너졌을 겁니다.
그리고 그 말에 루이체 역시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그러하겠죠.
카릴의 뒤를 따르는 이민족과 비룡들 그리고 골렘조차 무너뜨리는 위용.
어느 것 하나 그를 이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앤섬, 틀렸어요.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일말의 여지없이 루레인가는 끝났습니다.
그녀는 동이 터 오는 새벽의 창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나 공국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왕을 모실 수 있길 바랍니다.
루이체는 어쩐지 후련하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