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270)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270화(270/497)
186. 공국의 새 아침 (2)
장례가 끝나고 며칠이 지났다.
카릴은 복구가 한창인 화이트 벙커에서 조금 벗어난 기사 훈련소에 세운 임시 영주관에서 두 사람을 앞에 두고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윈겔 하르트 경.”
“…….”
“가네스 아벨란트 경.”
“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될 때 윈겔은 침묵했고 가네스는 그저 짧게 대답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카릴에 대한 태도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공국에 대한 그대들의 충정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튤리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도.”
카릴은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죽었고 공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레볼은 무너졌지. 하나 그녀의 장례식에서 나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우든 클라우드는 공국을 단순히 도구로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가네스 경은 공국을 지키기 위해 나에게 힘을 빌려주기로 하였고.”
“배신자에게 그런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주군을 버린 자입니다.”
“대신 공국의 수백, 수천만의 백성을 지킬 수 있게 되겠지.”
“글쎄요. 아직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저 배신에 대한 대가를 받는 중일 뿐입니다.”
“그 약이라면 이미 해독약을 주었을 텐데.”
카릴은 가네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참으로 우직한 자였다.
비단 해독약을 먹지 않아도 그의 마력이라면 약의 독기를 충분히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체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독기를 그냥 두었다.
-가지고 있던 재료로 만들었습니다. 암폐와 똑같이 생겼지만 독성은 그에 열 배는 될 겁니다.
요만의 대성벽이 무너졌던 날.
릴리아나는 잔나비 부족의 약초를 가지고 하나의 알약을 만들었다.
-부탁을 해서 만들긴 했지만 굳이 먹을 필요는 없어. 선택은 당신의 몫이니까.
카릴은 그것을 가네스에게 건넸다.
-암폐 독 역시 환각을 일으키고 정신착란을 발생시키지만 죽진 않듯이 이 약 역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용된 독초가 달라 먹게 되면 해독약을 먹기 전까지는 온몸이 마치 칼에 베이는 듯한 고통에 빠질 겁니다.
릴리아나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가네스는 아무런 고민 없이 그 약을 먹었다.
-공국은 이미 우든 클라우드가 장악하고 있다. 당신이 충정을 맹세했던 루레인가는 없다고 봐야겠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할 겁니다.
카릴은 그를 향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이런다고 해도 당신의 충정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만 명심해. 결국 그들의 눈에 당신은 배신자에 불과한걸.
‘알아주지 않아도 그것이 튤리에 대한 그의 마지막 충정이라는 것이겠지. 자신의 손으로 그녀를 패하게 만들었으니…….’
그는 스스로 그것을 벌이라 여길 것이다.
‘아니면 그저 자기만족일지도.’
무엇이 되었든 상관은 없다.
조금이나마 그가 죄책감을 덜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비록 육신의 고통이 그를 괴롭히겠지만 말이다.
‘어째서 이런 자가 튤리마저 배신하고 우든 클라우드의 편에 서게 된 것일까.’
카릴은 처음에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가네스에게만큼은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그 이유는 역시 전생에 그의 이명인 낙인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생의 가네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정도로 공국을 위하는 충신이 과연 튤리를 배반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올리번…….’
카릴은 공국에서는 전혀 떠올리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그 이름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 녀석이 설마 가네스에게까지 손을 뻗었던 것은 아닐까.’
그가 우든 클라우드와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있는 상황에서 공국을 배신할 만큼 매력적인 유혹을 제시할 사람은 카릴의 머릿속엔 오직 올리번 한 명뿐이었다.
마치, 과거의 자신이 그렇게 믿었던 것처럼 말이다.
“…….”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용서할 수 없다.
전생에 카릴이 싸워 본 소드 마스터는 단 한 명.
지금 눈앞에 있는 그였고 그를 벤 이유가 우든 클라우드의 척살을 위한 것이었으니 그것은 가네스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속인 것이니까.
내로라하는 대륙의 검사들이 한 명의 손에 놀아 난 꼴이 되어버렸다.
‘이번 생에는 나도 가네스도 네놈의 손에 놀아 나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결국 올리번을 만나야 한다는 것만이 남았다.
그리고 곧 볼 것이다.
그에게 무릎을 꿇고 친우로서 충성을 맹세했던 과거가 아닌 그의 얼굴에 검을 겨누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말이다.
“공국에 소드 마스터가 한 명 더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리고 당신이 창왕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도 말이야.”
카릴은 생각을 마치고 가네스를 바라봤다.
그를 얻는 것은 단순히 소드 마스터 한 명을 얻는 것에 그치는 일이 아니었다.
창왕(槍王) 더스틴 필립.
그 이름이 카릴에게서 나오자 가네스는 난색을 표하며 대답했다.
“그분은 저와 다릅니다. 이미 세속을 떠나신 분입니다. 만약 공국의 정세에 관여를 하셨다면 이미 이 내전에 참가하셨을 테지요.”
가네스는 카릴의 생각을 읽은 듯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의 힘을 얻으려는 것이 아냐.”
“……네?”
“그저 그가 조금 관심을 가질 일을 알려주고 싶을 뿐이지. 그리고 그건 당신도 마찬가질 거야. 요만에서 겪은 당돌한 일 말이야.”
카릴의 말에 가네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세리카 로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
그의 표정을 바라보며 카릴은 역시나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요만에서 그는 세리카 로렌과 격돌했다.
대성벽을 무너뜨린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번에 그녀를 죽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봤던 카릴은 그 찰나의 순간에 그가 그녀의 창술에 마치 매료되듯 바라봤다는 것을 알았다.
“그 아이는 제대로 창술을 배운 적이 없어. 창왕의 흑참칠식의 근간이 되는 책들을 보고 독자적으로 만든 것이 그 정도지. 세속을 떠났다 하더라도 창왕, 그도 자신의 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을까?”
가네스는 마치 한 방 먹은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것은 바라지 않아. 그저 당신이 그녀를 창왕에게 보여주는 것. 그뿐이다.”
“…….”
카릴은 침묵하는 그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아니면 설마 당신이 그녀를 가르치고 싶어서 창왕에게 보이기 아쉬운 거야?”
“그럴 리가요……. 창술에 있어서 그분을 따라갈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제가 쓰는 할버드보다 그분의 창술이 그녀에게 더 적합하다는 걸 저도 잘 압니다.”
“강제로 시킬 생각은 없어. 창왕이 거절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내 생각엔 그도 그녀를 본다면 거절하지 못할걸.”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가네스는 못 당하겠다는 듯 피식 웃었다.
“사람을 잘 다루시는군요. 하긴 그러니 앤섬이 지금 당신의 뒤에 서 있는 것이겠지요.”
가네스는 카릴의 옆에 서 있는 앤섬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말에 대답하듯 앤섬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녀의 소질이라면 창왕도 매료될 것입니다.”
“조심하는 게 좋아. 반년 뒤에 정말 세리카가 자네를 뛰어넘을지도 모르니까.”
“그녀와의 일전은 저 역시 기대하는 바입니다.”
쾅―!!
그때였다.
“누구 마음대로?! 내전이 끝나면 돌아가기로 했던 거 아냐? 나는 누구의 가르침도 받을 생각이 없어.”
영주관의 문이 열리며 씩씩거리며 들어오는 세리카 로렌이 카릴을 향해 소리쳤다.
“세리카 양. 두 분의 관계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제부터는 예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난 그런 거 모르겠고. 동의도 없이 누구 마음대로 그런 걸 정하는 거지?”
“내 마음대로.”
“……뭐?”
카릴은 세리카의 신경질적인 말에도 담담하게 말했다.
“전에 분명 말했는데? 나는 네 가치를 관철시키라고 했지 눈 바닥에 나뒹굴며 패배하는 꼴을 보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 그거야…….”
“앤섬의 말이 맞아. 이제 너도 내 앞에서 예를 갖추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나는 패자에게 그다지 관용을 베풀지는 않거든. 너는 내 주위에 있는 자 중에 유일한 패자니까.”
“…….”
세리카는 놀리듯 웃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울컥했지만 반박을 하지 못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을 걸지. 네가 호언장담했던 반년의 시간을 주겠다. 창왕의 수업을 받고 내가 인정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을 때 너를 상아탑으로 보내주마.”
세리카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너도 걱정될 테지? 미하일이 잘하고 있을지 말이야.”
“무, 무슨…….”
“열심히 한다면 반년보다 더 빨리 끝날지도 모르지. 기회를 주는 거야. 보고 싶다면 네가 녀석을 데리고 타투르로 돌아와. 여명회의 상아탑에 출입할 수 있을 마력을 가진 자는 여기서 너뿐이니까.”
카릴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답은?”
“……알겠어.”
“다시.”
세리카 로렌은 잠시 주위를 훑어보고는 살짝 입술을 뻐끔거리더니 말했다.
“……알겠습니다.”
“좋아.”
지금까지 카릴이 세리카 로렌을 유독 편하게 대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의 기억 속에서 그녀는 신탁의 10인 중 한 명으로서 카릴과 동료였으니까.
하지만 그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은 카릴 자신뿐이었다. 그때와 분명 상황이 바뀌었고 신탁으로 인해 만난 것이 아니 군주와 신하의 위치였다.
카릴은 이제 그녀와의 관계도 새로이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신탁이 내려지기까지 앞으로 반년도 채 남지 않았다. 신탁의 10인이 뽑히고 수행해야 할 3개의 신탁을 완수하는 동안 파렐에서 쏟아지는 타락들로 많은 사람이 죽는다.’
전생에 있어서 10인이 뽑혔을 때는 모두가 제각기라 신탁을 수행하기 전에 그들을 통합하는 데에만도 시간이 걸렸다.
밀리아나, 송곳의 이스라필, 세리카 로렌…….
하지만 이제 카릴은 그들을 하나둘 자신의 수하로 두면서 신탁이 내려진 직후 빠르게 신탁을 수행하고 타락과의 전면전에 돌입하려 했다.
‘그들은 과거보다, 아니, 전생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
밀리아나에게 용마력을 깨우쳐주고 이스라필에게 초대 마법을 가르치고 세리카 로렌에게 최상위 마법인 불멸회 마법과 더불어 창왕의 창술을 만나게 하는 것.
대전쟁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그들이 강해지는 것은 언제나 부족한 일이지 결코 넘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가네스 경. 그녀를 부탁하지. 할버드는 아깝게 되었지만 대신 자네에게 어울리는 다른 무구를 찾아주겠어.”
가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의 패자는 승자의 요구에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요만에서 목숨 대신 할버드를 가져가신 것에 대해 불만은 없습니다.”
패자라는 단어에 세리카 로렌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하지만 가네스는 자신의 할버드가 가진 속성이 본인보다 세리카에게 더 걸맞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카릴이 제안을 했을 때 망설임 없이 그 창을 포기할 수 있었다.
“그럼…….”
가네스는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듯 당장 행동에 옮겼다.
두 사람이 떠나자 카릴은 가만히 서 있는 윈겔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그대만 남았군, 윈겔 하르트.”
“…….”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윈겔은 살짝 굳은 얼굴로 카릴을 바라봤다.
“레볼의 조종 실력이 뛰어나더군. 마이스터 부대의 소형 골렘들은 기사 이상의 힘을 가졌으며 레볼은 소드 마스터를 뛰어넘는 위력이지.”
“하나 패하였습니다.”
“그건 자네의 조종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야. 전투에 과감함이 없기 때문이지. 아니, 살해의 과감함이라고 해야 할까.”
“…….”
“강한 힘엔 그만큼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레볼을 운용하는 과정에 있어서 그 힘의 여파로 희생되는 아군까지 신경을 쓰다 보니 제대로 싸우지 못한 것이지.”
윈겔은 무너진 성벽에 깔린 병사들을 피하느라 주춤했던 자신의 실책을 떠올렸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야. 그대는 기사가 아니라 공학자니까. 공학자는 공학자의 길을 걸어야지. 피를 밟고 걷는 길은 검을 쥔 자가 하는 것이니까.”
카릴은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레볼은 좋은 골렘이다. 하나 보완해야 할 것들이 많더군. 크기가 큰 만큼 코어를 손보면 좀 더 균형과 파괴력을 올릴 수 있을 거야.”
“말은 쉽지만 단순한 작업이 아닙니다.”
“맞아. 하지만 할 수 있을 거야. 당신이라면.”
“…….”
카릴이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얼굴로 윈겔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과제를 줄 것이다. 마도공학자라면 한 번쯤 도전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거라 생각되거든.”
카릴이 손짓을 하자 앤섬이 작은 상자를 그에게 건넸다.
“이 책은 마도 시대에도 완성되지 못한 골렘의 설계도다. 두 권으로 되어 있지만, 그중에 하권인 이 책엔 골램의 시동석을 만들 수 있는 정보가 적혀 있다.”
윈겔은 책 표지에 적혀 있는 고대어를 보자마자 그것이 아스칼론(Ascalon)의 설계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도 시대의 천재 공학자도 시동석을 만들지 못했지. 하지만 이걸 당신이 해낸다면 현재가 과거를 뛰어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을 거야.”
두근―
윈겔은 자신도 모르게 설계도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새로운 골렘을 만들고 싶지 않은가? 이 일이 잘 풀리면 레볼을 고치는 것도 가능하겠지. 아니, 그 이상으로 강화를 시킬 수도 있고.”
윈겔은 카릴의 말에 처음으로 관심을 보였다.
“나의 측근에 의하면 멸망했다고 알려졌던 노움국의 생존자들이 살아 있다고 하더군. 정교한 세공은 그들을 따를 자가 없으며 나는 당신이 성공할 때까지 속성석을 제공할 마광산도 가지고 있다. 어때? 구미가 당기나?”
“제가 골렘을 완성시켜 반기를 들 수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시지는 않으십니까?”
“비슷한 질문을 들었던 것 같군.”
카릴이 앤섬을 바라보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 대답은 같다. 귀족이기 이전에 공학자인 그대를 믿으니까. 적어도 마도 시대의 골렘을 복원할 때까지는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을 거잖아?”
그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 뒤에 튤리에 대한 복수를 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어. 나는 피하지 않을 것이니. 자신 있다면 덤벼도 좋아. 새로운 골렘을 타고 말이지.”
“무엇이 되었든 이길 자신이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윈겔 하르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자신감이 그저 만용으로만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복수를 하든 나를 위해 싸우든……. 나는 그런 문제는 차지하더라도 당신이 아스칼론을 재현하는 것을 보고 싶은데.”
머뭇거리는 그를 바라보며 카릴은 쐐기를 박았다.
“이건 명령이 아닌 제안이야. 원하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일생일대의 역작을 만들어 봐. 마도 시대의 그들도 이뤄내지 못한 위업을 말이지.”
“…….”
윈겔 하르트는 카릴의 말에 물끄러미 아스칼론의 설계도를 바라봤다.
“……오래 걸릴지 모릅니다.”
힘겹게 꺼낸 한마디에 카릴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어쩌면 자네를 만나기 위해 천 년이나 기다려 온 녀석이야. 조금 더 걸린다 하더라도 괜찮겠지.”
그의 말에 윈겔은 그저 입을 다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앤섬.”
“네, 주군.”
윈겔 하르트까지 방을 나서고 난 뒤에 카릴은 공국에서 해야 할 숙제를 끝냈다는 듯 기지개를 켜면서 말했다.
“당분간 자네에게 공국을 맡길 거야. 나는 마지막 일을 끝내고 해협을 건너 타투르로 돌아갈 것이니까. 해야 할 일이 많을 거야. 민심도 안정시켜야 하고 군사도 개편해야겠지.”
앤섬은 고개를 끄덕였다.
각각의 공작령에 나누어져 있던 병사들을 한데 모으고 다시 1인 체제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그는 카릴에게 이런저런 많은 제안을 내놓았다.
“자네가 구상했던 것들을 해보도록 해. 시간은 아직 우리의 편이니까.”
“알겠습니다.”
“바다 건너에는 아직 싸워야 할 놈들이 남아 있다. 제국과 우든 클라우드. 그들을 섬멸하는 과정은 쉽지 않을 터니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지.”
“하지만 그들을 처리한다면 드디어 대륙에도 안정이 올 겁니다.”
카릴은 앤섬의 말에 입꼬리를 올렸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지.’
인간과의 싸움은 앞으로 있을 대전쟁에 비한다면 그저 쉬운 일일 뿐이다.
그는 창밖을 바라봤다.
“앤섬, 이민족들을 집결시켜라.”
내리는 북부의 눈이 서서히 끝날 무렵 카릴은 다음 행선지를 정했다.
“떠날 준비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