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275)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275화(275/497)
188. 서리고원 (2)
“우웁……!! 우우웁……!!!”
앤섬은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치는 고원의 추위 따윈 느낄 새도 없는 듯 눈 바닥에 엎드려서 헛구역질을 해댔다.
“좀 괜찮나?”
“……네, 출발 전에 뭘 먹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안 그랬으면 하늘 위에서 못 볼 꼴을 보여드릴 뻔했네요.”
카릴은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오랜만이군.’
추스르는 앤섬을 뒤로하고 그는 감회가 새로운 듯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드넓은 고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두 개의 기둥.
초승달이 거꾸로 되어 있는 것처럼 솟구쳐 서로 교차되어 있는 기묘한 바위기둥은 한편으로는 늑대의 이빨처럼 보이기도 했다.
‘랑아(狼牙)의 보루.’
지금은 사라진 과거 3대 위상이라 불리던 3마리의 신수 중 하나인 거대한 흰 늑대. 혼백랑(魂白狼)이라 불리는 로어브로크가 살던 둥지였다
물론 전생에도 카릴이 사라져 버린 신수를 만났을 리는 없었다. 다만 다른 의미로 그에게 있어 이 장소는 특별했다.
‘이곳에서 참 많이도 피를 흘렸지.’
아니, 피를 흘렸다기보다는 피를 보았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자신의 피가 아닌 타락과 몬스터의 피가 고원의 대지를 붉게 물들었으니까.
3개의 신탁.
그것은 신탁의 10인이 수행해야 할 고난.
그중의 마지막 유물이 바로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 시련의 장소가 서리 고원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모두가 앤섬의 반응처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놀란 이유는 앤섬과는 다른 이유였다.
-내가 앞장서지.
신탁이 내려지고 빛이 사그라진 뒤 제단에 서 있는 일행은 한 여인을 바라봤다.
스스로 유물의 안내자가 되겠다고 말한 그녀는 다름 아닌 인형술사, 케이 로스차일드였다.
-네 목소리를 들은 게 첫 만남 이후 처음이로군. 우리는 그동안 네가 벙어리가 되어 버린 게 아닌가 싶었는데 말이야.
밀리아나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크큭…….
-어쩐 일이지? 너는 그런 성격은 좀 아니잖아?
-그러게. 자진해서 안내자가 되겠다고 하다니. 놀라운걸.
여기저기에서 신기한 듯 그녀의 반응을 보며 웃었다. 기분 나쁠 수도 있는데도 케이는 그저 얼굴을 가리는 검은 로브를 조금 더 앞으로 당길 뿐이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놀리려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신탁에 대한 떨림을 떨쳐 내기 위한 너스레라는 것을.
-서리 고원의 길은 알고서 말하는 건가. 그곳은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데.
카릴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홀 안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케이 로스차일드는 예의 그 차가운 성격대로 그의 물음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10인이 이곳에 도착해 추위에 소란스러울 때 카릴만이 감회가 새롭듯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던 그녀의 말 한마디를 기억할 뿐이었다.
-돌아왔어…….
휘이이이익―――!!
“…….”
세찬 눈보라를 맞으며 고원을 걷던 카릴은 그녀의 말을 되짚었다.
‘돌아왔다라……. 그 의미를 이제는 알 수 있겠군.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이곳의 지리를 그녀가 아는 것은, 이곳이 바로 그녀의 가문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니까.’
로스차일드가(家).
올리번에게 듣기로 마도 시대에 꽤 위세가 있던 가문 중 하나였다고 했었다.
그저 거기까지였다.
신탁의 10인은 서로의 과거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니까. 카릴 역시 그녀의 혼잣말을 그다지 귀담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전생의 우리는 3개의 신탁 중 마지막 유물을 찾기 위해 서리 고원의 전역을 뒤졌다.’
케이의 안내 덕분에 유적을 찾는 것은 성공했지만 이렇다 할 저택의 흔적은 볼 수가 없었다.
‘그럼 하나뿐이겠지.’
그 당시에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이지만 카릴은 이제 와 한 가지 가능성을 더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유물이 있던 유적지가 로스차일드 가문의 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칼립손이 건네준 소개장에 적힌 위치를 확인한 순간 확신이 들었다.
“와아…….”
앤섬 하워드는 오랫동안 다물었던 입술을 떼며 낮은 탄성을 지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길은커녕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고원을 익숙한 듯 가로지르며 올라서는 카릴의 뒤를 따라 앤섬은 몇 번이나 바들바들 떨면서도 악착같이 올라섰다.
“정말 대단하군요…….”
앤섬은 대륙에서 가장 늦게 해가 뜨지만 가장 황홀한 빛으로 가득 찬 고원을 바라보며 경이로운 듯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지?”
“그냥 올라오는 곳도 힘든 이런 곳에까지 유적을 세우다니 말이야.”
카릴은 풍경 따위에는 관심 없다는 듯 어딘가를 가리켰다. 허허벌판에 엉뚱하게 하나의 비석이 있었다.
“……네?”
하지만 유적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한번 봐봐.”
카릴이 비석을 향해 고개를 까닥거리더니 앤섬에게 말했다.
머뭇거리던 그가 눈보라를 뚫고 낡은 비석에 다가갔다.
“…….”
그 안에는 빼곡하게 뭔가가 적혀 있었고 그 밑에 알 수 없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앤섬 하워드는 그것을 보자마자 마치 뭔가에 홀린 듯 눈밭을 헤치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건…….”
그런 그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카릴은 팔짱을 끼고서 바라봤다.
“이런 게 왜 여기에 있을까요?”
“알 것 같아?”
“으음, 천문진(天文進)이라 불리는 동방의 비술과 비슷하네요. 뭔가 수식과 배열이 조금 다르긴 한데…….”
비석을 살피던 그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을 했다.
“풀 수 있겠어?”
“잠시만……. 해보겠습니다.”
앤섬이 손바닥을 펼쳐 마력을 집중하자 그의 손목에 있는 팔찌에서 마치 투명한 유리 같은 창이 허공에 생성되었다.
양손으로 창을 비비듯 비틀자 투명한 창이 여러 겹으로 복제되면서 허공에 나뉘어졌다.
“흐음.”
카릴은 신기한 듯 그를 바라봤다.
마치 공국 함대의 조종실에 있는 기판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팔찌에서 생성되는 홀로그램은 마도 공학술의 산물 중 하나였다.
그러고는 마치 필기를 하듯 투명한 창 위에 빼곡하게 비석의 조합들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동방국의 천문진은 천체의 배열과 운행에 대한 것을 수에 대입하여 배열을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온 108가지의 진(進)을 통해 진법(陣法)으로 발전시킨 비술이 수장인 사이몬 코덴만이 쓸 수 있는 사둔진(蛇屯陳)입니다.”
“으흠.”
카릴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둔진에 대해서는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전생의 제국은 공국을 통일한 이후 동방국 정벌에 나섰다.
그 당시 동방국의 주인인 사이몬 코덴의 기묘한 전술에 제국군은 꽤나 애를 먹었다.
‘결국 섬을 정복하는 것은 실패했지.’
포나인의 거센 강물도 쉽사리 거슬러 올랐던 수안 하자르의 특작군조차 동방국의 파도를 넘지 못했으니 말이다.
전쟁이 장기전으로 변할 수도 있었던 그 순간 신탁이 내려졌고 제국은 동방국과의 임시 동맹을 맺게 되면서 전쟁은 종결이 되었다.
‘단순히 섬 주위의 파도가 이상하다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그조차도 비술일지 모르겠군.’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아무리 파도가 높다 한들 하늘 위까지 오르지는 못한다. 제국 때와는 달리 그에게는 비룡 부대가 있으니까 말이다.
“9를 가장 위에 두고 1을 아래에 두며 좌우로 나뉘는 3과 7을 사이에 중앙에는…….”
카릴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앤섬은 어느새 추위도 잊은 채 매료된 듯, 퍼즐을 맞추듯 여러 가지 수합을 조합하며 이리저리 허공에 만든 창을 움직였다.
조금 전 힘듦도 잊은 채 비석의 진을 푸는 데 집중하고 있는 앤섬을 보며 카릴은 그를 두고서 능숙하게 자리를 만들고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품 안에 두었던 말린 고기를 꺼내 불에 익히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쩌면 고원을 오르는 것보다 더 긴 시간이 흘렀을지도 모른다.
“아……!!!”
찬란하게 떴던 해가 금세 져버리고 카릴이 피운 모닥불만이 빛을 발하고 있는 저녁이 되고 나서야 앤섬은 낮은 탄성을 지었다.
오래 걸릴 거라는 것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카릴은 입에 물고 있던 말린 고기를 뜯어내며 그를 바라봤다.
“이…… 이건 엄청납니다.”
“그래?”
“건방진 소리지만 지금까지 통용된 천재라는 단어의 의미를 재정립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진을 만든 사람이야말로 가히 천재니까요!”
앤섬은 포기에 대한 아쉬움보다 오히려 깊은 감탄으로 목소리가 떨렸다.
“그 정도야?”
“네! 단순해 보이지만 이 진 안에는 수백, 수천의 변화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건 마치……. 하늘과 땅의 변화가 아니라 마력과 생명의 영역까지 통달한 선지자가 만든 것 같습니다.”
“만약 이걸 전술에 쓴다면, 어때?”
“엄청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전술과 전략은 그저 열과 오를 바꾸고 부대의 수를 나뉘는 정도니까요. 이 진의 변화에 비한다면 그것들은 천편일률적인 것들뿐입니다. 하지만…….”
앤섬은 어쩐지 신이 난 듯 소리쳤다가 이내 곧 침울한 목소리가 되었다.
그의 반응을 알겠다는 듯 카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보아하니 자네도 풀 수 없는 건가 보군.”
카릴의 말에 앤섬은 주위를 훑었다.
“……제가 아니라 누가 와도 이대로는 절대로 풀지 못할 겁니다. 쐐기가 될 중심이 없습니다.”
“중심?”
“네. 뭔가 예시가 될 만한 것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진법의 핵심 구절이 빠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동방국의 비술과 비슷하다 생각해서 천문진의 기본 수칙을 대입했었는데 그것과는 또 다릅니다. 이런 식의 진은 정말 처음입니다. 도대체 이걸 만든 사람이 누구입니까?”
앤섬은 아쉬운 듯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모습마저 카릴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몰라. 뭐, 궁금하면 들어가서 물어보면 되지.”
“……네?”
“이번 기회에 자네도 좀 배우면 좋겠지. 그럼 우리의 전력이 올라갈 테니까. 그래서 데리고 온 거거든.”
“그게 무슨…….”
앤섬은 물음 가득한 눈빛으로 카릴을 바라봤지만 그는 설명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콰아아아앙―――!!
콰가강―――!!
결계로 세워진 비석이 카릴의 주먹에 완전히 부서지고 말았다.
“…….”
앤섬은 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저 카릴과 가루가 되어버린 비석을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철컥…… 드르르르르…….
크가가각―――!!!
“……!!!!”
눈 아래에서 마치 기관이 작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금 전 비석이 있던 바닥이 갈라지며 거대한 지하의 문이 나타났다.
“허…….”
이런 무식한 방법으로 열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앤섬은 황당한 표정으로 아래를 바라봤다. 카릴이 말한 유적이라는 것이 이 지하를 말하는 것이라는 걸 그는 알 수 있었다.
“풀진 못해도 문은 열 수 있지. 뒤로 물러나.”
그러고는 앤섬에게 뒤로 물러서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카릴은 익숙한 모습으로 주먹을 풀기 시작했다.
“몇 놈만 잡으면 끝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