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285)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285화(285/497)
192. 헤임(Heim) (3)
크웰은 카릴의 말에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카릴.”
“아버지, 오해하지 말아 주시죠. 저는 맥거번의 사람이지만 지금은 타투르의 왕이자 남부의 주인으로서 이곳에 온 것입니다. 황제가 말한 집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
“마르트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곳에 란돌과 제이크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 아버지께서도 이제는 현실을 보셔야 할 겁니다. 혈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권위라는 것을. 권위가 달라지면 서로의 예우도 달라져야 하는 법이죠.”
카릴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크웰 경.”
“……무례한!!”
그의 말에 침묵하던 파이만이 주먹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정권은 카릴에게 닿지 않았다.
부웅―!!
카릴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매서운 공세에도 불구하고 크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스으으으윽……!!
갑자기 피어난 검은 연기가 파이만의 전신을 휘감더니 마치 단단한 밧줄처럼 그의 두 팔을 옥죄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목과 허리 다리 할 것 없이 수십 개의 검은 연기 줄이 바닥에 꽂히며 그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큭?!”
숨을 쉴 수 없어 붉으락푸르락 변한 얼굴로 파이만의 몸이 서서히 아래로 무너졌다.
쿵―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그는 자신의 목을 휘감은 검은 줄을 끊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럴수록 더욱 거세게 조여올 뿐이었다.
“너는 너의 왕 앞에서도 무례라는 말을 쓰는가?”
카릴은 자신과 눈높이가 같아진 파이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히 안 그러겠지? 내 수하들 역시 같은 생각인 모양이야. 네 행동이 그들에게 무례로 보이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크…… 크윽!!”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보며 카릴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를 감싸던 연기가 사라졌다.
그 대신 그의 뒤에 서 있는 이스라필을 모두가 주목했다.
‘처음 보는 마법이야. 저건 뭐지?’
‘검은 연기라……. 설마 불멸회? 그들은 대륙의 정세에 관여하지 않는 자들인데……. 어떻게.’
의문 가득한 그들의 시선을 즐기듯 카릴이 손을 흔들자 이스라필은 조금 긴장한 듯 낮은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초대 마법과 함께 알른 자비우스의 가르침을 받은 그는 아직 신탁의 10인 시절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뚜렷한 존재감을 나타낼 마법사로 성장했다.
‘전생에 비해 시간이 부족한 건 비단 그만의 문제가 아니니까.’
대마법사의 반열에 오를 재능을 가진 이스라필이 아직 5클래스에 불과한 것처럼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할 세 사람 역시 지금은 그저 익스퍼트에 불과했다.
오히려 전생에는 그들에 비해 뒤늦게 재능의 꽃을 피운 이스라필이었지만 현생에는 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콰직―
카릴은 무릎을 꿇고 바닥을 짚고 있던 파이만의 손바닥을 지그시 밟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큭.”
파이만은 얼굴을 찡그렸지만 더 이상 추태를 보일 수 없다는 듯 참았다.
“크웰 경.”
“……카릴 전하. 타국의 왕이라 하더라도 제국의 황자가 머무는 처소에 이런 식으로 오는 것 역시 무례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크웰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륙제일검이라는 칭호와 어울리지 않게 그건 마치 지금까지 카릴을 걱정했던 자신의 마음을 그가 몰라주는 것에 대한 상실감으로 보였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들린 이유는 황자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크웰 경에게 보여드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게? 아니, 저에게 말입니까.”
의아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크웰을 향해 카릴은 가슴 편에 손을 집어넣었다.
세 명의 제자는 그 손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해 불안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카릴의 손바닥엔 작은 단검이 하나 놓여 있을 뿐이었다.
“아그넬입니다. 얼마 전에 소실되었던 검집을 찾게 되었죠.”
“…….”
그는 어째서 자신에게 이민족의 검을 보여주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카릴을 바라봤다.
“그런데 검집을 찾는 과정에서 이번에 북부에 있는 천년빙동에 뭔가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 안에 있는 천창초(天蒼草)라 불리는 극상의 빙속성의 잎이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일전에 황제 폐하께 저지른 무례에 대한 사죄로 그 잎을 찾기 위해 떠나기 전에 폐하께 이를 아뢰기 위해 온 것뿐입니다.”
“처…… 천년빙동?”
“네. 일전에 폐하께 드렸던 서슬가시 잎이 너무 강해 일어난 부작용이라서 말입니다. 반대 속성으로 열기를 잡으면 다시금 건강해지실 겁니다. 다만 마법이나 비술로는 불가능한 일이라서 말이죠.”
카릴은 그 말과 동시에 크웰의 안색을 살폈다.
천창초라든지 황제의 몸 안에 있는 열기를 잡아야 한다는 소리는 모두 거짓말이었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풀이거니와 그의 죽음을 바라는 카릴이 다시금 황제를 살릴 리 만무했으니까.
중요한 것은 크웰이 그가 북부의 천년빙동에 간다는 말에 어찌 반응을 할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전생에 당신은 내게 천년빙동에 봉인된 이민족에 대하여 얘기했었지. 하지만 과연 그 봉인을 언제 찾은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전생에 크웰이 북부에 발을 들여놓았던 것은 황제의 이단섬멸령이 있었던 당시.
만약 그때 신화시대의 블레이더가 봉인되었던 것을 확인했던 것이라면…….
‘이미 그는 이민족이 마력을 잃게 된 이유와 실제로 이 세계를 위해 싸운 자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터.’
혹여 그 진실을 알고 있는 상태라면 카릴은 지금 크로멘의 독살에 대한 의심을 품고 이곳에 있는 마르트를 이용해 크웰을 올리번과 멀어지게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이민족들이 그리 이름을 붙인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이름으로 전승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랜 세월 동안 녹지 않은 거대한 얼음 기둥이 있는 동굴이라 합니다.”
“…….”
그때였다.
표정의 변화는 없었지만 카릴은 크웰이 동요하고 있음을 느꼈다.
제자들이 제압당했을 때에도 잔잔한 수면 같은 그의 오러가 미묘하지만 파문이 일듯 흔들렸기 때문이다.
‘역시.’
자신의 예상대로였다.
‘이미 그는 이민족이 사실은 진실 된 신살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로군.’
카릴은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 말을 끝으로 천년빙동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다.
‘이제 올리번의 귀에도 천창초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겠지. 황제의 죽음을 바라는 녀석은 내가 황제에게 그 풀에 대해서 말하지 못하게 막을 터.’
그것으로 충분했다.
황제가 죽기를 바라지만 직접적으로 그를 죽일 수 없는 상황에서 과연 올리번이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면 되는 일이었다.
“그럼, 이만.”
크웰은 그를 붙잡으려던 손을 내려놓았다.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카릴의 뒤를 바라보며 그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똑― 똑―
늦은 밤.
방문을 두들기는 노크 소리에 기다렸다는 듯 카릴은 감았던 눈을 떴다. 야심한 이 시간에 자신을 방문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탁―
손가락을 튕기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타투르의 왕을 뵙습니다.”
청명한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크웰에게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아니면 눈치가 빠른 올리번의 재치인지 그는 방 안쪽에 앉아 있는 카릴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꺾었다.
황도에서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카릴을 하대했었다. 전생을 걸쳐 카릴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존댓말을 쓰는 올리번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앉으시지요.”
카릴이 손짓을 하자 탁자에 놓여 있는 주전자가 떠오르며 올리번의 앞에 놓인 찻잔 아래로 뜨거운 김이 나는 물이 떨어졌다.
올리번이 그 모습을 보며 짐짓 놀란 표정을 감추며 말했다.
“마력의 컨트롤이 뛰어나시군요. 검사가 이 정도로 섬세한 조종을 할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별것 아닌 조잡한 능력입니다. 운이 좋게도 6클래스의 벽을 허물게 되어서 그저 차를 마실 때 조금 더 편하게 되었습니다.”
“…….”
카릴의 말에 올리번은 그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쉽사리 분간되지 않았다.
6클래스와 7클래스는 분명 큰 간극이 있긴 하지만 검사가 대마법사의 반열을 고작 1단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쉽사리 믿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정말이라면 폭염왕의 힘에 이어서 마법의 성취까지 놀라울 정도로구나.’
올리번은 카릴을 바라봤다.
“드시지요. 아, 걱정 마십시오. 독은 없으니.”
카릴은 보란 듯이 올리번 쪽에 놓인 찻잔을 가리키고는 자신의 것을 들어 마셨다.
“…….”
보란 듯이 크로멘 때의 일을 언급하듯 말하는 카릴과 김이 나는 투명한 물을 번갈아 바라보며 올리번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황궁에서 뵈었을 때보다 얼굴색이 많이 좋지 않으신 듯 보입니다. 걱정이 많으신가요.”
“국정을 돌보는 일이 어찌 쉽겠습니까. 폐하의 부재와 함께 형님께서도 그리되셨으니 말이죠. 재판의 중심에 카릴 님께서 계셨으니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울컥한 듯 살짝 눈매를 치켜세우며 말하는 올리번의 모습에 카릴은 피식 웃었다.
“하긴 세상일이 어찌 다 생각대로 되겠습니까. 저희도 마찬가지지요. 그때만 하더라도 황자께서 제게 존대를 하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일국의 왕께 당연한 대우입니다. 저는 제국의 황제가 아닌 이상 서로 존중을 해야지 않겠습니까.“
올리번은 비록 자신이 황자이지만 타국의 왕에게 굽히지만은 않겠다는 말을 에둘러 얘기했다.
“제국의 황제가 되면 만인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그러고 보니 폐하의 건강을 호전시킬 방법을 알고 있다던데……?”
“실수를 만회하기 위함입니다. 폐하께 말씀을 드린 뒤 바로 북부로 향할 생각입니다. 이번 일이 잘 성사된다면 폐하의 건강이 다시 돌아오실 겁니다.”
카릴은 마치 황제의 권좌에 오르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말을 그에게 하는 것 같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정말로 폐하를 살리실 생각입니까. 당신이 쥐고 있는 유일한 약점이 사라지는 순간 그분은 고마움에 대한 대가로 타투르를 쑥대밭으로 만들 텐데요.”
올리번의 말에 카릴은 피식 웃었다.
“교단의 성지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인 성스러운 곳이지만 반대로 이보다 더 은밀한 곳도 없지요. 이렇게 눈앞에서 황자가 황제의 목숨을 가지고 저울을 재는 모습을 보다니 말입니다.”
“…….”
그는 살짝 어깨를 으쓱했다.
“크웰 경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니까요. 맥거번가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도발이 폐하의 심기를 불쾌히 만든 것은 사실이나……. 황좌가 바뀐다면 그 불씨 역시 사라질 겁니다.”
“흐음.”
예상과 달리 올리번은 오히려 황제의 죽음에 대해 노골적으로 이야기했다.
“전에 봤을 때와는 꽤나 변한 느낌입니다. 확실히 국정을 보다 보니 눈이 달라지셨나 보군요.”
“제국뿐만 아니라 대륙을 위해서 생각한 일입니다.”
“대륙을 위해서라……·. 제국이 이미 네 것 같지?”
“……네?”
올리번은 카릴의 말에 순간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되물었다.
“타투르가 불바다가 될 거라고? 누구 마음대로? 제국의 주인이라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무, 무슨…….”
“얼마든지 덤비라고 해. 쑥대밭이 되는 게 누군지 보여줄 테니까. 황제를 믿느냐라고 물었는데. 네 말이 맞아. 뱀과 같은 그를 어찌 믿을 수 있겠어.”
카릴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데.”
올리번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는 네놈도 안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