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286)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286화(286/497)
192. 헤임(Heim) (4)
“지금 뭐라고 했지?”
올리번의 얼굴이 굳어지며 카릴을 노려봤다.
“나는 제국의 황자다. 일국의 왕이라 할지라도 내게 말을 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하지만 카릴은 오히려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제국? 그게 뭔데? 공국에서부터 이스트리아 삼국까지 그 어떤 나라도 왕이 아닌 고작 후계자 중에 나와 맞먹으려 하는 자는 없다. 제국이란 허울 좋은 이름이 네 실력이라 생각하지 마.”
그는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제국은 네가 세운 게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선대가 만들어 놓은 기틀이 자신의 실력이라 착각하지 마. 네가 한 건 아무것도 없어.”
“…….”
“그리고 지금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별 볼 일 없지. 차라리 황제가 낫지. 그는 최소한 정복왕이라는 이명 아래 제국을 확장 시켰으니까. 북부의 땅부터 남부의 경계까지. 너는 그가 뒤집어쓴 피의 땅을 그저 선한 정의를 내세워 거저 얻어먹으려는 거잖아. 착한 척은 집어치워. 안 그래?”
“말이 심하군……!!”
맞지 않는 예의를 벗어던지고 으르렁거리듯 말하는 올리번을 보며 카릴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생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친우(親友)였던 시절.
그때도 참으로 많이 다투고 서로 으르렁거리면서도 오직 뒤를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자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놈의 목을 베고 싶다.
‘지금은 아니지.’
자신과 동료들에게 오명을 뒤집어씌웠던 자다.
이곳에서 죽이는 것으로 녀석의 죽음을 그저 불의의 암살을 당한 비통한 살해로 만들 순 없었다.
철저하게 외면받는 죽음이어야 한다.
만인의 앞에 놈의 가면을 벗기고 완벽한 죽음의 무대를 만들기 전에 죽음은 오히려 배려일 뿐이니까.
“황제에 대해서 누구보다 네가 잘 알 거라 생각하는데?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나는 이곳에 와서 내 마력을 썼다. 교단은 결계가 있어 사제들이 아닌 이상 마력을 쓰면 바로 경보가 울리고 전투 사제들이 출동하지. 그런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
카릴은 올리번을 향해 말했다.
“내 마력 안에는 너도 알다시피 폭염왕의 힘이 있다. 정령의 힘은 교단의 마력의 굴레에서 벗어난 힘. 주교와 함께 있는 황제는 바로 알아차렸을 거다. 나 역시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함이었고.”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황제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
카릴은 그를 바라봤다.
“지금쯤 너를 떼어 놓고 나를 만날 궁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황제는 먼저 온 너보다 나를 만날 거다. 비록 자신에게 대들었던 건방진 놈이지만 적어도 아들보다 더 믿을 수 있거든.”
올리번은 카릴의 말에 헛웃음을 쳤다.
“웃긴 소리. 아버지께서 내가 아니라 널 먼저 만나실 거라고? 태양홀에서 그런 소리를 했는데도?”
“물론.”
너무나도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는 카릴의 모습에 오히려 올리번이 당황한 듯 고개를 올렸다.
“황제는 대놓고 검을 뽑는 자는 적어도 뒤에서 수작을 부릴 거라고 생각하진 않으니까.”
“수작?”
“예를 들어 독살이라든지.”
카릴은 올리번을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물론 나도 그런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거든. 이제는 쏘아 올릴 화살이 아까워서 말이지. 그 화살을 다른데에 써야 하잖아. 가령…….”
“네놈…….”
으르렁거리듯 자신을 노려보는 올리번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카릴은 말을 이었다.
“전쟁이라든지.”
콰앙―!!!
올리번은 탁자를 내려치며 소리쳤다.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군. 제국과 전쟁을 하고 싶다는 뜻인가?”
그가 내려친 탁자가 두 조각으로 갈라져 부서지며 놓여 있던 찻잔이 요란하게 떨어졌다.
제국의 황자였지만 다른 두 명의 형제와 달리 후궁의 아들인 그는 온실 속 화초가 아닌 잡초처럼 자라났다.
살아남기 위한 투쟁.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전생에 올리번은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에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소드 마스터까지는 아니더라도 상급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까지 올랐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자질이 아닐 수 없지만 카릴의 입장에선 고작 소드 익스퍼트에 불과했다.
“…….”
카릴은 물끄러미 올리번을 바라봤다.
이미 마력을 느낄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자신과의 격차를 모를 리 없다. 전력으로 마력을 뿜어내면 그 기세만으로도 녀석은 오금이 저려 주저앉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신에게 콧대를 세울 수 있는 이유는 녀석의 손목에 있는 수갑처럼 생긴 팔찌 때문이었다.
녹이 슬 정도로 낡은 팔찌는 황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역시. 이미 가지고 있을 줄 알았어.’
하지만 카릴은 그게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울부짓는 고원의 정기]팔찌 안쪽에는 날카로운 가시 같은 것이 돋아나 있었는데 착용자에게 도리어 고통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 같았다.
마치 죄인에게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기묘한 모습.
황궁의 보고에 있는 유물 중 하나.
신화시대보다 더 먼 태초의 과거에는 유일신의 세계가 아닌 다신의 세계라 할 수 있었다.
정령왕 비롯해서 각각의 차원마다 신에 필적하는 존재들이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신에게 대항하는 블레이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아스칼론의 설계도에서부터 수안에게 준 신수의 힘을 가진 건틀릿까지.
어찌 보면 대륙에 남아 있는 유적들은 신화시대부터 마도 시대를 거쳐 신에게 반하는 혹은 신에게 다가가려는 자들이 남긴 유산이었다.
하지만 교단은 오직 율라만이 이 세계의 유일한 존재라 명명하였기에 그렇게 발견된 유물들 역시 이단이라 칭하며 황궁의 보고 아래 그 누구도 찾지 못하도록 봉인하도록 하였다.
그것이 제국과 교단이 유적을 조사하는 이유.
‘하지만 우든 클라우드. 네놈들은 알고 있었던 거야. 부정하려던 그 유물들 역시 마력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사실상 마력이 담긴 무구들을 자신들이 독식하기 위한 우든 클라우드의 계획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렇게 발견된 유물들은 사람들의 눈에 들지 못했으며 그저 오래된 골동품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올리번이 황제가 된 이후 공국을 비롯해서 대륙 정벌을 빠르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황궁의 보고에 잠들어 있던 유물들을 개방했기 때문이었다.
‘유적의 유물들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황제조차 모르고 있는 사실.’
골동품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팔찌가 버젓이 녀석의 손목에 있는 것만으로도 올리번은 이미 유물에 어떤 힘이 담겨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건 녀석이 우든 클라우드라는 증거이기도 하겠지.’
카릴은 올리번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
명백해진 진실.
교단과 손잡고 있는 녀석들은 유물 중에서도 특별한 힘이 있는 신물(神物)이라 평가받는 물건들을 가장 먼저 독식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그의 팔찌.
‘발동되는 순간 주위의 마력을 흡수하며 일순간 모두 사라지게 만들고 반대로 소유자에게 빨아들인 마력을 제공한다.’
물론 마력이 없는 몸으로 오직 검술만으로 소드 마스터를 뛰어넘었던 그였다.
마력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같은 조건이었다면 올리번의 목을 베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자신의 마력을 빼앗아 그가 흡수하게 된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한에 가까운 용마력이 오히려 올리번에게 강대한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억 상으로 공간이 무력화되고 흡수한 마력이 유지되는 것은 1분 남짓. 내게 위협이 되진 않아.’
카릴의 머릿속에 수십, 수백 합이 빠르게 엉켰다. 마력을 빼앗긴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라미느와 에테랄의 정령력이 남아 있었으니까.
다만…….
‘저 팔찌를 이런 데 쓰게 하기엔 아깝지.’
엄청난 효과이지만 사용 횟수가 정해져 있어 아무 때나 쓸 수는 없었다.
‘내가 가져야 하니까.’
카릴은 전생에 그의 팔찌가 얼마나 유용하게 쓰였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마력을 무(無)로 만드는 효과는 인간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타락에게도 적용되었으니까.
“내 말이 말 같지 않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지?”
“별거 아니다. 팔찌가 특이해 보여서 말이야. 내가 가지고 싶은 건 가져야 직성이 풀려서 말이지. 네 팔을 베어 버리면 될까 싶었어.”
“……뭐?”
올리번은 황당무계한 그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제국을 도발하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딴생각을 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국과의 전쟁? 해야 한다면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당장 일어나진 않아. 왜냐면 황제는 아직도 궁금해하고 있을걸. 그 독약이 정말 크로멘에게만 쓴 것으로 그쳤는지.”
“……그게 궁금했다면 루온 형님을 유배 보내지 않고 곁에 두셨겠지.”
그의 입에서 루온의 이름이 나오자 카릴은 피식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마치 진심이냐는 차가운 눈빛.
그러나 그 이상 말을 하진 않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다 하는 게 좋을 거야. 네게 주어진 시간은 결국 동이 트기 전까지니까. 황제의 죽음을 원하나?”
카릴은 올리번과 그의 사이에 놓인 부서진 탁자 위에 손을 얹었다.
츠즈즈즈즉……!
손가락이 닿은 부분이 뜨겁게 달궈지더니 새까맣게 재가 되었다.
보란 듯이 올리번의 앞에서 마력을 사용하며 그는 말했다.
“반대로 나와 전쟁을 하고 싶다면 황제의 자리에 네가 오르던지.”
“…….”
똑, 똑, 똑.
그때였다.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며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주교님께서 카릴 님을 뵙자 하십니다.”
사제의 전언에 카릴은 올리번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주교가 있는 곳에 당연히 황제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으니까.
“아무래도 내 말이 맞는 듯싶군. 잘 보관하는 게 좋을 거야.”
카릴은 팔찌를 가리키며 말했다.
“난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꼭 지키거든.”
그러고는 자신의 손목 위에 반대쪽 손을 세로로 세워 날을 만들어 얹고는 마치 베어 버리는 것처럼 그으며 말했다.
“자, 잠깐!!!”
올리번은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를 향해 황급히 소리쳤다.
“나와 거래를 하고 싶다면 좀 더 구미가 당기는 조건을 생각해 봐. 아직 동이 트지는 않았으니 말이야.”
하지만 그런 그를 두고 카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걸어 나섰다.
* * *
“오랜만이로군. 제 발로 교단을 찾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자넨 나와 닮았다 생각했거든. 그런데 결국 왔군. 가족의 정인 겐가.”
카릴의 예상대로 교단의 가장 안쪽에 있는 본관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주교가 아니라 황제였다.
“핏줄도 아닌데 내가 폐하를 닮을 리 없죠. 닮은 건 내가 아니라 저 밖에 당신을 기다리는 아들일 겁니다. 가족이 아니라 둘 다 나를 먼저 찾는 꼴이 그야말로 똑 닮았더군요. 마치 자기 목숨 줄을 잡고 있는 사람처럼.”
카릴의 말에 황제는 피식 웃었다.
“클클, 건방진 녀석. 제국의 황제에게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건 네놈뿐일 거다.”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그의 모습.
황도의 태양홀에서 봤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노쇠한 모습이었다.
‘태양초의 효과 때문이겠지. 제대로 다 쓰면 미명의 독을 모두 증발시켜 버리지만 오히려 화기가 부족하면 태양초의 열기가 사라진 순간부터 독이 몸에 퍼지는 속도가 증가 되니까.’
카릴은 자신의 예상대로 황제의 목숨이 기껏해야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뭐, 내 목숨 줄을 쥐고 있는 게 너라는 것은 틀리지 않으니……. 그래, 너는 내게 해약을 주러 온 것인가.”
그는 피곤한 듯 말했다.
카릴이 황궁을 떠난 뒤 몇 개월 동안 교단의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병세는 호전될 기미가 전혀 없었던 듯 보였다.
“폐하께서는 제가 당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헤임에 온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정말로 가족의 목숨을 살리기 위함이라 여기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황제는 마치 해탈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이곳에 와서 떠올랐다. 너를 처음 만난 곳이 이곳이니……. 너와 다시 만날 계기가 되기를.”
“……? 자신을 속인 자가 뭐가 좋다고 만나려 하십니까. 차라리 저를 포박하는 게 더 이치에 맞는 일일 텐데요. 대륙제일검인 크웰 경부터 교단의 전투 사제들이 모두 집결해 있지 않습니까.”
카릴의 말에 황제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클클클……. 그럴 생각이었다면 네가 마력을 썼을 때 이미 그랬겠지. 그래, 올리번을 만난 소감은 어떻더냐. 황도에서 보았을 때와 비교한다면?”
카릴은 어째서 그런 걸 자신에게 묻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성장하셨더군요. 야심도 있고……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도 진실 되십니다.”
그는 황제의 물음에 대충 얼버무리듯 말했다.
“백성? 진실? 크큭……. 그렇지. 2황자는 그런 아이지.”
황제는 말을 이었다.
“네 말대로라면 내 목숨은 얼마 남지 않았겠지. 주교조차 손을 들었거든. 너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테니까.”
타이란 슈테안은 깊은 한숨과 동시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를 부른 이유는 하나다. 네게 제안할 것이 있기 때문이지. 네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나눴던 이야기를 기억하느냐.”
“거래…… 입니까?”
카릴의 말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내게 했던 말. 너는 당돌하게도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내게 제국을 내어 달라고 했지.”
그는 마치 추억을 음미하듯 눈을 감고는 말했다.
“그럼 사사로운 일을 아직도 기억하십니까.”
“제국을 주마.”
“……!!!”
그 순간, 카릴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황제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그 아비에 그 아들이군.”
“……뭐?”
하지만 놀라운 것 그저 황제의 태도였을 뿐. 그의 말 자체는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냉소를 지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둘 다 제국을 걸고 내게 거래를 하던데……. 고작 땅떵어리로 내가 혹 할 것 같아?”
카릴은 황제를 향해 말했다.
“제국은 어차피 내 것이다.”
성스러운 땅.
이곳에서 진정한 전쟁 선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