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302)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302화(302/497)
203. 운명
제국의 황도(皇都).
길거리는 모두 불이 꺼져 있었고 사람 하나 다니지 않았다. 죽음의 기운이 드넓은 광장에 가득 했고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또 한 번 애도의 기간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거 놓으란 말이다!!”
“저, 저하……! 고정하시옵소서.”
을씨년스러운 황도의 거리와 달리 황궁의 태양홀은 소란스러웠다.
“비켜!!”
퍼억―――!!!
재상 브린 이니크는 아찔한 충격에 꼴사납게 뒤로 자빠지며 뒹굴었다. 입가에 피가 흘렀고 이빨 몇 개가 빠졌지만 아픔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는 듯 그는 벌떡 일어났다.
“형님.”
그때였다.
태양홀의 끝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
“……정숙해 주시지요. 아직 폐하의 장례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닥쳐라. 감히 네가…….”
1황자 루온은 올리번을 향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콩가루로군. 죽은 황제가 울겠어.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제국도 아무래도 이번 대에서 끝날 것 같으니 말이지.”
비통한 얼굴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올리번과 맹수처럼 울부짖는 루온을 향해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무엄하다!! 제국의 황제 앞에서……!!”
콰앙―!!
조금 전 호기롭게 외친 기사의 안면을 향해 주먹이 꽂았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기사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 버렸고 날아간 몸뚱이는 태양홀의 기둥에 부딪혀 적나라하게 피가 흘러내렸다.
“……!!”
“……!!”
“황제?”
그 광경에 미친 듯이 날뛰었던 루온조차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고서 고개를 돌렸다.
건장한 기사들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있는 거대한 덩치는 태양홀의 입구를 꽉 채울 것처럼 보였다.
제국의 황궁 안에서 기사를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그를 저지하지 않았다.
법도? 규율?
적어도 그에게만큼은 성립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 존재 자체가 규격 외였으니까.
고든 파비안.
그는 자신이 죽인 기사의 망토를 잡아 뜯고는 손을 닦으며 나지막하게 올리번을 향해 말했다.
“애송아.”
마력이 담긴 그의 목소리에 경계를 하던 기사들의 어깨가 떨렸다.
‘마력이 더 짙어졌다.’
‘그의 완력은 5대 마스터 중 으뜸인데……. 마력마저 성취를 얻은 것인가?’
‘건강이 악화되었다던 보고는 잘못된 건가?’
망령의 성에서의 일을 알지 못하는 제국의 사람들은 떨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네가 어째서 그 자리에 앉아 왕의 행세를 하고 있는 거지?”
“그게 무슨 의미십니까?”
“명석한 네가 내 말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정통한 핏줄인 1황자를 두고 반푼이인 네가 무슨 자신감으로 먼저 그 황좌에 앉아 있느냔 말이다.”
“고든……!!!”
“말을 삼가시게!!”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크웰 맥거번과 총 기사 단장인 벨린 발렌티온이 소리쳤다.
“잘 들었겠지? 일개 용병조차 알고 있는 정의를 네놈은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내 결코 너를 용서하지 않으리……!!”
루온은 고든의 말에 힘을 얻은 듯 다시 한번 소리쳤다. 하지만 기세등등한 그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올리번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크로멘 다음에는 루온 형님이십니까. 교도 용병단은 어째 저와 연이 참으로 없는 듯싶습니다.”
“나는 누구의 편도 서지 않았다.”
고든은 자신의 앞에 있는 루온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
머리 전체를 감쌀 만큼 거대한 손은 무게 또한 엄청나서 컥! 하는 신음과 함께 루온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고든 파비안의 일격을 막아 낸다면 계약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반격까지 성공한다면 맹약을 맺을 수 있지.”
“…….”
“교도 용병단이 제국을 도운 이유는 황제와 내가 맹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지?”
고든은 손을 닦던 망토를 집어 던졌다.
망토는 마치 수의처럼 머리가 날아간 기사의 시체 위로 얹어졌다.
“애송아,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간다. 네 눈에는 그저 야망에만 가득 찬 노쇠한 늙은이로밖에 보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가 너와 같은 젊음을 가졌던 시절에 그는 나와 맹약을 맺을 만큼 대단한 자였다. 네가 과연 그 정도 그릇이 되는지 모르겠군.”
툭―
피를 닦아 낸 주먹을 올리번에게 가리키며 고든은 코웃음을 쳤다.
“해볼 테냐?”
주위는 침묵했다.
황실 친위대인 금 기사단의 기사를 단 일격에 죽여 버린 그의 주먹을 앞에 두고 냉정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니까.
“아니면 네놈이?”
고든은 자신의 아래에 있는 루온을 향해 말했다.
“그…… 그건…….”
루온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조금 전의 위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 모습은 결국 대신들에게 각인시키는 꼴이 되었다.
결국 1황자는 우리 속 맹수가 아닌 온실 속 화초였다는 것을 말이다.
“고든. 전(前) 황제께서는 비록 용병에 불과한 자넬 귀족과 같은 대우를 해주셨지. 하지만 자네의 말처럼 젊음이 영원하지 않듯 너에 대한 예우 역시 달라졌음을 인지하게. 소란을 피울 것이라면 돌아가게.”
“정복왕의 두 아들은 둘 다 그릇도 안 되는 놈들이군. 옛정을 생각해서 한 가지 조언을 해주지. 올리번. 타이란 슈테안 이외에 내 주먹 안으로 몸을 던진 자는 단 한 명이다. 그게 바로 네놈이 싸울 상대지.”
“확실히 경의 말씀대로 저는 당신의 주먹을 받아 낼 용기가 없습니다. 확실한 죽음에 몸을 집어넣고 싶진 않으니까요.”
“흥…….”
고든은 올리번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그럼 더 이상 할 얘기는 없겠군. 나는 그저 장례식을 보러 왔을 뿐. 명심하거라. 교도 용병단은 오로지 제국의 황제와 거래를 한다는 것을.”
그는 손을 저으며 뒤돌아섰다.
“경, 죽음을 무릅쓰는 용기만이 위대한 것입니까.”
뒤를 돌았던 고든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저는 살아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 크기는 서로 다르지만 사람에겐 태어나면서 자신만의 위업이 주어지는 법이지요. 논을 잘 가꾸는 것이 평생의 운명인 자가 있노라면 대륙을 평탄하게 하는 것이 삶의 목적인 자도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하나 위업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희생되는 것도 감내 해야 하는 법입니다. 선왕은 선대가 만들어 놓은 안정된 땅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 하지만 지금은 전란(戰亂)입니다. 왕의 위업을 짊어지고 태어난 자들은 겉으로는 만인을 보살피는 듯 보여도 사실 그 안은 차가운 비수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구구절절 말이 많구나.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냐.”
차앙―!!
그때였다.
태양홀에 있던 기사들이 일제히 몸을 움직였다.
고든은 황급히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그 검은 생각지도 못한 다른 곳을 향했다.
“커억……!”
루온의 옆구리를 꿰뚫는 검.
고든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기사를 바라봤다.
“저, 저하!!!!”
재상인 브린 이니크의 절규와 같은 외침이 태양홀에 울렸지만 그를 제외하고 그 어떤 자도 그 슬픔에 함께하지 않았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루온의 목을 벤 기사들이 루온과 황후가 유일하게 믿었던 등(藤) 기사단 소속이라는 점이었다.
“겁쟁이라 놀리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저의 안위를 살피겠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안위 역시.”
“크…… 크큭.”
고든은 가차 없이 루온의 목을 베어 버린 올리번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전쟁을 좋아하는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가족을 일구고 평온한 삶을 바라는 것은 떠돌이 용병이라도 매한가지. 특히나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용병들은 자신의 후손을 남기고자 하는 열망이 더 강하지 않습니까? 왕이란 본디 그대들까지 자신의 사람으로 보살펴야 하는 법입니다.”
움찔―
그 순간 고든 파비안의 눈썹이 씰룩였다.
“너…… 설마.”
“제국 국경에 한적한 곳에 영지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제 교도 용병단의 단원들도 편안하게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겠지요. 비공정이 착륙할 수 있도록 넓은 장소가 필요하다 보니 위치가 다소 북쪽으로 치우쳐졌으나 그곳엔 뛰어난 기사단이 있으니 안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국 북쪽의 국경.
그곳이 어딘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 없었다.
고든은 크웰을 바라보며 마치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청기사단이 언제부터 인질이나 붙잡고 있는 무뢰배들로 전락했지? 지금 나를 협박하는가?”
“그럴 리가요.”
올리번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병사들이 커다란 상자를 가져왔다.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교도 용병단에게 거래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수고비는 원하는 만큼 드리겠습니다.”
“아비보다 더 영악한 놈이로구나.”
“신이 정한 운명이니까요. 경께서 저를 욕하실지언정 훗날 단원들의 가족들은 우리의 만남을 오히려 기꺼워할지 어찌 알겠습니까. 평가는 역사가 할 일이나 중요한 것은 지금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이 빚은 언젠가 필히 갚을 테니까.”
올리번은 그런 그의 말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만들 제국은 그 빚마저 갚을 능력이 있을 테니까요. 역사는 우리를 새로이 기록 할 것입니다.”
* * *
“크웰.”
태양홀을 지나는 복도.
“황제를 죽인 게 저놈이겠지.”
고든 파비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난 세상이 뭐라 한들 관심 없다. 하지만 세상이 모르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지. 귀족들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더군. 황제의 장례식이 사실은 1황자를 죽이고자 그를 불러들이기 위한 판이었어.”
그는 입꼬리를 올렸다.
“제국은 연이어 태풍이 몰아치는군. 피로 쌓인 자리 위에 결국 저 녀석이 섰어. 한데…….”
고든은 크웰을 향해 말했다.
“보아하니 너는 이단섬멸령이 있었던 그 날 우리가 북부에서 보았던 것을 올리번에게 얘기하지 않은 모양이로군.”
“…….”
태양홀을 빠져 나와 고든의 뒤를 따라온 크웰이 그의 말에 얼굴을 굳혔다.
“내가 그것을 다른 사람이 아닌 네게 보여준 이유는 너도 잘 알겠지. 네놈이 제국임에도 불구하고 칼리악의 친우였기 때문이다.”
크웰은 그 이름이 나오자 마치 칼날을 집어삼킨 것처럼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직까지 네 생각을 모르겠다. 하지만 걱정 마라. 교도 용병단은 계약한 것은 이룬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가족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그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고든은 말을 이었다.
“내 눈으로 둘을 보기 위해서다. 카릴 그리고 이번엔 올리번이지. 우리가 천년 빙동의 얼음 속에서 봤던 두 사람 중 누가 적법한 왕인지 아직 모르기에……. 인성이 아닌 핏줄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래, 너 역시 북부로 갈 타당한 이유가 필요했겠지. 하지만 네가 카릴의 편이 아닌 폐하의 편에 선 것이 과연 득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르겠군. 너는 카릴을 벨 수 있는가?”
“그래.”
고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네 왕도 벨 수 있지.”
“…….”
“둘은 결국 북부에서 만날 거다.”
크웰은 고든의 말에 침묵했다.
자신들이 봤던 북부의 비밀이야말로 큰 변수가 될 것임을 두 사람은 직감했다.
“칼리악의 무덤에서.”
* * *
“후우…….”
숨을 쉴 때마다 새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산세가 험하네요. 정말 이런 곳에 사람이 살기는 하는 겁니까?”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탑 안에 사는 너희들도 있는데 그에 비한다면 여기는 훨씬 낫지.”
“하…… 하하.”
에이단은 카릴의 말에 옅은 웃음을 지었다.
“탑 안은 어둡지만 적어도 이렇게 춥진 않으니까요.”
“추위보다 어둠이 더 낫다는 말인가? 그건 익숙해졌기 때문일 뿐이야. 이민족들에게 추위는 암연의 어둠과 같은 것이지.”
카릴의 말에도 불구하고 에이단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는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온 것을 기뻐해야 할 거다.”
“그러게요. 제정신이었다면 이런 추위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 테니까요. 주군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합니다. 아마 앞으로 평생 눈이 싫어질 것 같은걸요.”
에이단은 옷깃을 다시 한번 여미면서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신화시대부터 마도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민족과 야만족 그리고 대륙인들 간의 전쟁은 끝없이 이어졌었지. 그런데 그중 단 한 번도 이민족이 승리했다는 이야기는 남아 있지 않았어. 어째서일까.”
“……?”
“이민족의 승리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것 알아? 이민족에게는 역사가 없다. 남겨 놓지 않고 남기려 하지도 않지. 그들은 현재를 살아갈 뿐이니까.”
에이단은 갑자기 무슨 말인지 그저 카릴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대륙인들은 모든 것을 역사에 남겨 놓지. 후대는 그 역사를 가지고 선지자들을 평가하고 누군가를 영웅으로 누군가는 악당으로 정하지.”
카릴은 마치 독백을 하는 듯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역사를 맹신하지 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이면 속에는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많으니.”
“……!!!”
어느새인가 까마득하게 자신을 향해 바라보는 이민족들의 시선에 에이단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카릴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산을 올랐다.
차앙―――!!
차가강―――!!!
수천의 이민족들이 일제히 카릴을 향해 검을 뽑았다.
“그대가 검 축제에 도전할 자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검을 뽑아라. 잔나비 부족의 족장 나 화린이 이민족을 대표하여 너를 맞이하겠다.”
살이 떨리는 그 순간에도 오히려 카릴은 그녀를 반가운 듯 바라봤다.
“기뻐해도 좋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에이단에게 말했다.
“드디어 마지막……. 제국의 역사를 지워 버릴 마지막 발을 내딛는 이 순간을 볼 수 있게 되었음을.”
역사를 세우고자 하는 자.
역사를 지우고자 하는 자.
검을 쥔 자와 검을 뽑은 자.
서로 다르지만 분명 같았다.
둘의 운명 역시 시간을 되짚어 돌아와도 결국 엇갈림에 똑같았다.
검이 울리고 북부가 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