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310)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310화(310/497)
206. 천년빙동
“그다지 놀라지 않는 눈치로군. 용의 심장을 먹으면 감각도 무뎌지는 건가?”
“장로의 거처 뒤로 동굴로 가는 비밀 샛길이 있는 게 뭐가 놀랄 일이지?”
“넌 정말 이민족이지만 이민족 같지 않은 녀석이로군.”
알테만은 불 한 점 없는 어두운 길을 걸어 오르면서 자신의 뒤를 아무렇지 않게 따라 오는 카릴을 보며 낮게 혀를 찼다.
“북부의 장로들은 수장들보다 오히려 가장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들이지. 그런 그들의 거처와 연결된 뒷길이 있다는 것은 이민족의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잖은가. 비밀 통로는 탈출을 위한 것이지만 반대로 비밀이 누설된 순간 암살의 위험이 극도로 높아지니까.”
그의 말에 오히려 카릴은 코웃음을 쳤다.
“장로들이 누가 약하대?”
“……음?”
“그 노인네들도 결국은 한 부족의 수장이었던 자들이다. 노쇠했다고 하지만 기사들에게도 쉽사리 죽을 위인들이 아닌 것을. 그 인간들 그냥 힘든 척하는 늙은 너구리들인데.”
“크…… 큭.”
알테만은 카릴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장로들에 대해서도 잘 아는군. 하긴, 볼수록 영악한 아이야. 하시르에게 내 이름을 팔았다지? 칼리악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하시르도 넘어간 모양이지만……. 우린 만난 적이 없는데 잘도 날 이용했군.”
“노인네들이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고 처음에는 하시르에게 내가 이민족이라는 것을 쉬이 밝힐 수 없었으니까. 북부의 스승은 적어도 이민족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존재니.”
“흐음. 그렇군.”
“나중에 가서는 이민족이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게 되었지만 말이야.”
카릴을 바라보며 알테만은 웃었다.
“그렇군.”
“이럴 줄 알았으면 케이를 데리고 올 것 그랬군.”
“케이?”
“로스차일드 가문의 생존자. 당신 동료의 후예지. 그녀 역시 인형술사거든.”
“어차피 과거의 인연일 뿐이야. 인간의 수명은 가끔 아쉽지. 기껏해야 백 년도 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자들이니까.”
알테만의 말에 카릴은 낮게 웃었다.
“그런 게 아니야. 애틋한 상봉 같은 걸 기대해서 얘기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인형 속에 들어 있는 원령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이었다.”
“원령?”
“그 안에 들어 있는 원령이 바로 망령의 성의 주인인 위치 자르카 호치거든.”
“…….”
카릴의 말에 알테만은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앞을 걸었다. 하지만 그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흔들린다는 것을 카릴은 알 수 있었다.
“자르카 호치……. 오랜만에 들어 보는 이름이군. 우리가 같은 엘프라고 해서 뭐 특별한 관계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말게. 호치가(家)는 한 가문을 제외하고는 패쇄적인 자들이었거든.”
“그래도 인간인 나보다는 엘프인 당신이 나보다는 더 알겠지.”
“무엇을?”
“망령의 성에서 자르카 호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작은 액자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내가 깨버렸지만.”
“허…….”
알테만은 카릴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깜짝 놀란 듯 황급히 입을 가렸다.
“반응을 보니 묻길 잘한 것 같은데? 자르카는 그런 내게 화를 냈었지. 액자에는 여인의 그림과 함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퓌렐(F?rrel).”
카릴의 말에 오히려 알테만이 먼저 대답했다.
“티누비엘가의 꽃.”
“맞아.”
앞만 보고 걸어가던 알테만이 처음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의 이름마저 알고 있는 건가. 참으로 인연이란 묘한 법이야. 게다가 그 액자를 부수고도 자네와 함께하고 있다니……. 수완이 대단한 것인지 아니면 자르카가 호치가(家)의 명예를 잊어버린 것인지……. 후자는 절대 아닐 테니 전자겠군.”
카릴은 아무렴 어떠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티누비엘 가문은 엘프의 나라, 엘븐하임의 통치자를 배출해 온 곳이지. 그리고 호치가(家)는 티누비엘 가문의 영토이자 엘븐하임의 수도인 에리얼 우드(Aerial Woods)를 관리하는 관리자이자 오직 그 가문만을 모시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화를 냈던 것이로군. 결국 과거의 주인에 대한 충성이었군.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닌걸.”
“놀라운 일이지. 호치 가문은 오직 여왕만을 위해 살아왔는걸.”
“죽었으니 주인을 바꿔도 괜찮지.”
“농담은…….”
알테만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내가 묻고 싶은 게 뭔지 알겠군. 왜 내가 자르카 호치의 이름을 말했는지.”
“퓌렐 여왕에 대해서 묻기 위함이 아닌가?”
“아니지.”
카릴은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향해 날카롭게 물었다.
“당신 말대로면 에리얼 우드는 엘프 왕가의 성도라는 말이잖아. 죽어서까지 왕가에 충성을 바치는 자르카를 봤을 때 그들이 반란을 꾸린 것도 아닐 텐데. 왜 그 모양이 되어버렸냐는 뜻이지.”
그의 물음에 알테만은 입을 다물었다.
“이유를 알면서 확인을 하려는 건가? 아니면 정말로 내게 그 이유를 묻는 건가.”
“후자는 아니지.”
카릴의 대답에 알테만은 결국 고개를 저으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르 디 마우그에 대한 이야기로군.”
“별거 아냐. 엘프국을 망하게 만든 장본인에게 당신은 도움을 받았지. 어떤 엘프는 죽어서까지 왕가에 충성을 하는데 천 년이나 살아온 엘프는 딱히 충성심이 없어 보여서 궁금해서 말이야.”
“쓴소리를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잘하는군.”
“쓴소리도 할 때는 해야 하니까.”
“아쉽게도 그것에 대해서는 자네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별로 없군. 단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아무리 엘프라도 천 년은 살 수 없다라는 것이네.”
그 말을 끝으로 알테만은 다시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엘프라도 천 년은 살 수 없다?’
카릴은 그가 한 말을 곱씹으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나르 디 마우그에게 받은 것은 단순히 검술만이 아니라는 뜻인가.’
생명의 연장.
그것을 가능케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절대자와의 맹약에서부터 마족과의 계약 혹은 약물로 인한 비술까지.
알테만이 나르 디 마우그에 어떠한 방법으로 지금까지 살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남긴 말 속에서 카릴은 그의 목숨을 쥐고 있는 것이 백금룡이라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다 왔네.”
카릴이 그의 뒷모습을 살피며 생각을 하던 도중 알테만이 걸음을 멈추고서 앞을 가리켰다.
휘이이이잉―――
휘이잉――
눈이 덮인 메마른 나뭇가지들로 둘러싸였던 어두운 길을 나오자 두 사람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둘 중 어느 한 사람도 이야기가 끝난 것에 아쉬워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거대한 동굴 속에 더 중요한 비밀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전사의 의식을 치르지도 않고 이곳에 온 사람은 자네가 처음일 거야. 하긴, 자네에겐 의식이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지 않을 것 같지만 말이야.”
지금까지 그 누구도 대전사의 유물이라 불리는 라크나를 쓸 수 있었던 사람은 없었으니까.
“놀라지 말게. 이 앞에 무엇을 보더라도 말이지.”
알테만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살짝 긴장된 목소리로 카릴에게 말했다.
“검귀의 검술이 이런 동굴 속에 있는 건가?”
카릴의 물음에도 알테만은 그저 묘한 미소를 지을 뿐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카릴은 동굴을 훑으며 복잡 미묘한 감정이 뒤엉켰다.
전생에서 그가 회귀를 하고자 결심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곳에 있는 얼음 기둥에 봉인되어 있는 선대(先代)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처음은 아버지가 내게 비밀을 알려줬기 때문이었지.’
이제 더 이상 크웰 맥거번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이상해진 기분이 들어 카릴은 쓴웃음을 지으며 기억을 더듬었다.
‘제국인인 그가 내게 이 비밀을 털어놓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죽기 전에 회개일까 설마 파렐이 시간을 거슬러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아니겠지.’
후자의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언제나처럼 백금룡이 걸렸다.
전생에서 신탁 전쟁에서 끝까지 제국과 함께했던 자가 바로 그였으니 제국의 충신인 크웰이 혹시라도 백금룡에게 뭔가를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아주 작지만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의심이었다.
‘올리번과 크웰. 모두 백금룡과 관련된 제국인이다.’
한 명은 천년빙동 속의 비밀을 알려주었고 또 한 명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존재.
카릴은 미래를 바꾸고자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알려준 것 역시 나르 디 마우그였다.
‘하지만 설사 그가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시간을 거슬러 오른 것은 나뿐. 나르 디 마우그는 아니다.’
혹시라도 자신 이외에 회귀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하지 않았다.
파렐 안을 겪어 본 그만이 알 수 있는 사실.
억겁의 시간 동안 그곳에서 있는 동안 카릴은 모든 감각이 탑과 공유됨을 느꼈다.
그 때문에 혹시라도 또다시 파렐의 문이 열리고 다른 자가 침입했다면 그 안에 먼저 있었던 자신이 눈치챘을 것이었으니까.
“무슨 생각을 그리 하지?”
“음?”
알테만의 목소리가 들렸다.
“검귀는 하나의 이름에 불과하다. 누구 한 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더군. 신화 시대부터 마도 시대를 거쳐 현대를 거쳐 선택받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이름이었다.”
생각에 빠져 있던 카릴이 그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검귀의 또 다른 이름. 블레이더(Blader).”
“……역시.”
카릴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화 시대에 신령대전을 일으키며 신에게 대적했던 존재인 블레이더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후예가 아닌 제국인들에게 그 이름이 역사에 이어져 마도 시대에 와서 알른 자비우스를 비롯해서 엘프와 드워프 등 최고의 무구를 만들고자 했던 괴짜들의 이름으로 탈바꿈되었다.
하지만 정작 진실 된 블레이더의 후예인 이민족들은 그 이름을 쓰지 못하고 사라졌다.
어쩌면 정령왕들이 봉인된 것처럼 블레이더란 이름을 쓰지 못하게 한 것이 인간에게 내려진 패배의 대가일지도 모른다.
“검귀……. 그 이름이 블레이더의 숨겨진 유지(遺志)로군. 북부의 스승에게 검술을 남기고 그 이름을 존속하게 만드는 것이었나.”
하지만 신살자(神殺者)들은 자신들의 명맥을 끊어지게 하지 않기 위해 이름을 바꾸어 후대에게 남긴 것이었다.
카릴은 처절할 정도인 그들의 저항에 자신도 모르게 전율을 느꼈다.
“맞아. 네가 그 이름의 유지를 이어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스스로 쟁취 해야 할 일이겠지만.”
우우우우웅…….
알테만이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자 그의 손바닥 위로 작은 마법진이 생성되었고 그 위로 탑의 형태를 가진 문양이 나타났다.
그러자 눈 앞에 어둠이 사라지고는 그 앞에 거대한 얼음 기둥이 나타났다.
화아아아악……!
차가운 냉기가 일순간 그들을 덮쳤다.
꽈악―
카릴은 전생에 자신이 보았던 그 얼음 기둥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을 주었다.
“……!!!”
그때였다.
카릴은 거대한 얼음 기둥을 바라보며 당혹스러운 듯 떨린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뭐야?”
알테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놀랄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이 광경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그가 천년빙동에 들어오기 전에 카릴에게 했던 말이 사실은 지금의 이 얼음 기둥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했던 것이기도 했다.
“수 천년, 아니, 언제 일지 모를 이민족의 선지자가 이 안에 봉인되어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일 테니까.”
얼음 기둥 안에 검을 쥐고 있는 검은 눈의 한 남자.
알테만은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아니야.”
“……음?”
하지만 카릴은 손을 들어 그가 놀라는 것을 이해한다는 듯 말하는 알테만의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듯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
알테만은 갑작스러운 그의 반응에 의아한 듯 그를 향해 고개를 갸웃 거렸다. 카릴은 고개를 들어 다시 한번 얼음 기둥을 바라봤다.
몇 번이나 눈을 씻고 쳐다봐도 그의 앞에 서 있는 얼음 기둥의 모습을 그대로였다.
“하…….”
카릴은 낮은 탄식을 지었다.
그의 그 목소리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뒤엉켜 있는 듯 보였다.
모든 것의 시작.
전생에 카릴은 크웰로부터 이곳의 얼음 기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감회가 새롭다라던 지 뭉클하고 애틋한 그런 느낌이 절대 아니었다.
당혹 그리고 의혹.
혹은 의심과 경계가 가득 담긴 첫 인상이었다.
봉인되어 있던 선대인 검은 눈의 신살자(神殺者)를 보고서 카릴은 파렐을 통해 미래를 다시 바꾸고 대륙의 진정한 주인이 자신들임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올리번이 자신을 죽이려 했던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르다.
전생에 그가 봤던 천년빙동 속 얼음 기둥이 아니었다.
“왜…….”
카릴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두 명이지?”
얼음 기둥 속엔 전생에는 보지 못했던 또 한 명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