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349)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349화(349/497)
225. 용 사냥 (3)
“장관이로군요. 이 정도의 인간이 집결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겠습니다.”
크루아흐는 황도 앞으로 정렬해 있는 끝을 알 수 없는 병사들의 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병사들만 아니라면 방 안은 전쟁 중이라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을 정도로 평온했다.
“자네가 인간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지?”
“대전(大戰) 이후 저는 꽤 오랫동안 레어에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따금 잠에서 깨어 세상을 돌아보았으나 특별히 눈에 띄는 일은 없었습니다.”
“잠이라……. 그래, 현실을 잊기엔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지.”
황금빛 머리카락을 넘기며 중후한 목소리로 말하던 남자는 살짝 자신의 대각선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주더니 머쓱한 듯 말했다.
“뭐,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지만 말일세. 대전을 치르는 동안 그저 후방에 웅크리고 있었던 헤츨링에 불과하니까.”
크루아흐는 그의 말에 옅게 웃었다.
“그만큼 두려운 일이었잖습니까. 사실 기억도 제대로 없을 정도로 어렸던 제가 이럴진대 대전을 겪으셨던 에누마 님이시야…….”
하지만 그녀 역시 에누마가 바라본 곳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눈길을 주며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실언을 했습니다.”
노련한 에누마 엘라시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다른 주제를 꺼내었다.
“퓌톤이 먼저 떠난 지 사흘이 되었군. 이제 곧 후작령의 전투 소식이 올라오겠군.”
“황도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그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겁니다. 하나 그가 전선에 가담하였으니 결과는 뻔하겠죠.”
“그러겠지. 레드 드래곤은 태생적으로 워낙 호전적이니 말이야. 조금 성급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 혼자서도 전황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존재니까.”
“인간은 할 수 없는 일이죠.”
크루아흐는 에누마 엘라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볼 일은 아닙니다.”
그때였다.
두 사람의 뒤에서 조용히 찻잔을 기울이고 있던 남자의 말에 그들이 고개를 돌렸다.
“뭔가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고견을 청하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닐 블랑 경. 아니, 나르 디 마우그.”
그 순간,
방 안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차가워졌다.
“무슨 말씀인지……. 전 제국의 공작일 뿐입니다만.”
은빛의 머리칼을 넘기며 탁자 위에 찻잔을 내려놓자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묘하게 중압적으로 들렸다.
크루아흐는 그의 행동에 살짝 초승달 같은 눈썹을 찡그렸다.
‘뭘 그리 감추는 거지?’
인간들이야 그렇다 쳐도 두 사람은 드래곤이었다.
닐 블랑의 정체가 무엇인지 애초에 알고 있는 자들인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아닌 척을 하니 그들의 눈에는 마치 되지도 않는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하하……. 저야말로 실언했습니다. 그럼, 닐 블랑 경. 그대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만.”
에누마 엘라시는 마치 이 보잘것없는 연극에 동참이라도 해주겠다는 듯 말했다.
“적의 수장은 비록 인간이나 정령왕을 셋이나 계약한 자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정령왕은 드래곤에 필적하는 존재이지 않습니까.”
“그 말씀에 대해서는 인정하기 어렵군요. 정령왕의 힘이 그렇다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정령계에 국한된 것입니다. 정령계의 힘이 거의 소실 된 대륙에서 기껏해야 그 힘을 발현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육체를 뿌리 삼는 것.”
에누마 엘라시는 턱을 스윽 훑으며 말했다.
“인간의 육체가 드래곤을 뛰어넘을 수 없는 한 그들과 계약한 정령왕이 그만한 힘을 낼 순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가 가진 신력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확실히……. 인간이 마스터 키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지요. 신화 시대의 유물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니 말입니다.”
강한 부정을 했던 처음과는 달리 에누마 엘라시는 신의 힘에 대해서 만큼은 쉽사리 답을 내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진 힘은 마엘(Mael).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최초의 블레이더가 썼던 힘입니다. 열다섯 번째 힘. 그건 신조차 대적할 수 있는 힘이죠.”
“하지만 그 역시 패배하지 않았습니까.”
에누마 엘라시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백금룡에게.”
“…….”
그의 말에 닐 블랑은 묘한 쓴웃음을 지으며 내려놓았던 찻잔에 물을 붓기 시작했다.
“닐 블랑 경께서는 설마 퓌톤이 패배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는 뜻이죠. 황도에서 그의 힘을 여러분들께서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뭐……. 신의 은총으로 세 분께서 제국에 힘을 보태어 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만.”
닐 블랑은 어쩐지 ‘신’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의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
“제가 가겠습니다.”
대화를 듣고 있던 크루아흐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녀는 여전히 못마땅한 눈초리였지만 거역을 하거나 반박을 할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그래 주시면 한결 마음이 놓일 겁니다. 제국이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크루아흐의 출전에 닐 블랑은 반가운 듯 대답했다.
“어차피 도착했을 때는 결판이 난 후겠지만요. 그렇게 되면 저는 퓌톤과 함께 남부로 향하겠습니다. 그거라면 닐 블랑 경도 만족하시겠지요.”
“알겠습니다.”
한 전장에 두 마리의 드래곤을 배치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전력 낭비였다.
드래곤 로드인 에누마 엘라시 역시 그리 생각하지만 그는 닐 블랑에게 어떤 반박도 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일단락이 되겠군요. 카릴 그자를 잡고 나면……. 크게 문제 될 자는 없어 보일 테니까요. 소드 마스터라든지 대마법사라든지 하는 자들이야 뭐…….”
에누마 엘라시는 천천히 자리를 털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새로운 지휘관은 뽑으셨습니까. 병사들이 집결된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 정작 움직이질 못하고 있는 듯싶군요.”
“이미 내정되어 있는 자가 있습니다. 북부에서 현재 황도로 내려오는 중이니……. 곧 도착할 겁니다.”
닐 블랑의 말에 에누마는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50만 대군을 이끄는 지휘관으로서 제국에서 그만큼 가장 잘 어울리는 자도 없겠군요.”
“곧 출진할 테니 여러분들께서 조금 더 신경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인간을 위해서 먼저 길을 터놓는 꼴이라니……. 고귀한 드래곤의 꼴이 조금 우습게 되었지만 ‘그것’을 위해서라면…….”
크루아흐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닐 블랑이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하라는 듯 입술 위에 손가락을 얹으며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그녀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였다.
“보, 보고 드리겠습니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뱉어내는 다급한 목소리.
“무슨 일이지?”
문을 열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기사가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도대체 무슨 소란인가.”
“후, 후작령이 함락되었다고 합니다.”
“……!!!!”
“……!!!!”
그 순간, 닐 블랑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까지의 여유로움 따위는 사라진 듯 그에게서 느껴지는 살기에 보고를 한 기사는 당장에라도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았다.
“지금……. 뭐라고 했지?”
“……예?”
“지금 뭐라고 했느냔 말이야!! 똑바로 고하라!!!”
그의 호통에 기사는 끝내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바닥에 넙죽 쓰러졌다. 하지만 닐 블랑은 갑옷의 무게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기사의 멱살을 움켜쥐며 들어 올렸다.
“켁!! 케엑!!”
허공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사는 조여 오는 목에 숨을 헐떡이며 그의 손목을 부여잡았다.
“그…… 그게…….”
“퓌톤은? 전장에 참여한 레드 드래곤을 어떻게 되었느냐!!”
“저, 저 역시 급보를 받은 거라……. 전선의 상황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 즉시 폐하께서 공작 전하를 불러오심을 명하셨습니다.”
콰앙–!!
“컥……!”
닐 블랑은 대답을 하는 기사를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말도 안 돼……. 설마 고작 인간에게 퓌톤이 당했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없어. 어떻게……?!”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가.
혼자서도 인간의 왕국 하나를 우습게 절멸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드래곤이지 않은가.
그 순간 불안한 듯 세 사람의 머릿속엔 신기하게도 한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떠올랐다.
“전장에 뭔가 변고가 생긴 게 틀림없습니다!!”
“당장에 퓌톤을 구하러 가야겠습니다.”
“잠깐.”
황급히 일어나는 크루아흐와 에누마 엘라시를 닐 블랑이 멈춰 세웠다.
“그것이야말로 적이 원하는 일입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들은 한 명 한 명이 강대한 힘을 가진 전력입니다. 그 말은 여러 곳에 분산되어 싸울 때 위력을 발휘한다는 뜻입니다.”
에누마 엘라시는 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낮은 탄식을 토해내고 말았다.
“설마……. 우리들의 발이 묶인다는 말이십니까?”
“……당했군요.”
그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모든 드래곤을 하나의 전장으로.
마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이 자신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 * *
[크아아아아아……!!!!!]퓌톤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퍼억……!!
하지만 그 외침에 대한 대답으로 돌아오는 것은 레볼의 주먹뿐이었다.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얼굴로 퓌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고통에 몸부림치며 고개를 젓는 것까지.
너덜너덜해진 그의 날개는 더 이상 재생되지 않았고 그 위에 날개 뼈는 수십 개의 쇠기둥이 박혀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박힌 쇠기둥은 레볼의 손등에 튀어나왔던 것과 비슷하지만 조금 달랐다.
청린과 새로이 합성에 성공한 무색의 속성석을 합쳐서 만들어진 이것은 퓌톤이 마력을 끌어올릴 때마다 오히려 그의 마력을 더욱 빨아들이며 단단히 지면에 박혔다.
[말도 안 돼……! 내가……!!]퍼억-!!
바닥에 엎드려 있는 그의 허리를 레볼이 있는 힘껏 짓밟았다.
“컥!!”
그러자 퓌톤의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드래곤이 대단하긴 하네요. 마력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마도포격기에 사용할 탄들을 전부 충전할 수 있겠는걸요. 주군께서 왜 마력을 충전하지 않고 가져오라 하셨는지 이유를 알겠습니다.]윈겔 하르트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의 손을 따라 레볼이 퓌톤의 날개뼈에 박혀 있는 쇠기둥을 뽑아냈다.
[크아아악!!]그러자 비명과 함께 쇠기둥 안에 있는 투명한 관에 붉은빛을 띠는 순도 높은 마력이 저장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윈겔은 속이 비어 있는 기둥을 뽑아낸 자리에 다시 박아 넣었다.
놀랍게도 퓌톤에게 박혀 있는 쇠기둥들은 모두 마력을 저장할 수 있는 통들이었다.
[네놈……!! 죽여 버리겠어!!]하지만 퓌톤이 포효를 내지를 때마다 쇠기둥 안에 마력이 차오를 뿐이었다.
[흠, 용마력으로 만든 탄이라…….]레드 드래곤의 일갈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윈겔 하르트는 그저 쌓여 가는 마력탄을 바라보며 마도공학자로서의 새로운 흥미를 느낄 뿐이었다.
[드래곤인 나를……!! 네놈, 우리를 적으로 돌리고도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그때였다.
소리치는 퓌톤의 앞에 카릴이 섰다.
“그게 뭐?”
그러고는 드래곤의 유일한 약점인 목덜미 안쪽에 숨겨 놓은 역린을 가린 비늘을 하나씩 하나씩 잘라내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화염 속성을 가진 레드 드래곤의 비늘 위로 얼음 발톱이 닿을 때마다 새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며 퓌톤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아아악!! 아아악……!!!]카릴이 손을 까닥거리자 레볼이 퓌톤의 머리를 잡아 아래로 짓눌렀다.
“처음부터 우린 적이었잖아? 안 그래? 지고의 존재라는 놈이 학습능력이 없는 건지……. 아직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
“너희가 오는 거? 그거야말로 내가 바라던 바야. 어떻게 하면 황도에 숨어 있는 놈들을 한시라도 빨리 부를 수 있을까? 네가 고통스러울수록 놈들이 서두를까?”
이 광경을 지켜보는 성안으로 후퇴한 제국군은 그저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지 오래였다.
카릴은 보란 듯이 후작령의 성문 앞에 퓌톤의 날개에 거대한 쐐기를 박아 고정시켰고 목에는 두꺼운 족쇄를 채웠다.
그 모습은 실로 지상 최강의 군림자에게 최악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굴욕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네 뜻대로 되었군. 무진의 위용을 확인한 것과 동시에 제국군의 피해를 입히지 않고 승리를 한 것 말이야. 이 모습을 보고 네게 덤빌 인간은 없겠지. 게다가 이 소식이 제국에 들어가게 되면 다른 드래곤의 발이 이곳에 묶일 수밖에 없을 터.]알른은 퓌톤의 머리 위에 올라서며 이 상황이 즐거운 듯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드래곤이 아무리 대단해도 결국 몸은 하나. 이곳에 모이게 된다면 나머지 전장은 결국 인간끼리의 승부가 될 터. 클클……. 위대한 존재라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던 놈들의 꼴이 우습게 되었군.] [알른!! 알른 자비우스……!! 감히 드래곤에게 은혜를 입은 네놈이 이따위 짓을 하느냐!]퓌톤이 자신의 머리 위에 올라타 있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뭔 개소리야? 내가 마법을 배운 건 드래곤이 아니라 백금룡에게서다. 너희들이 모두 우릴 가르친 것은 아니잖아? 그리고…….]알른이 두아트의 힘이 담긴 검은 손으로 퓌톤의 머리를 잡아 뜯을 듯 비틀며 말했다.
치이이이익……!!
어둠의 정령왕의 힘이 닿자 퓌톤의 비늘이 타들어 가는 듯 고약한 냄새와 함께 시커먼 연기를 뿜어냈다.
[내 목숨을 빼앗아 간 놈이 바로 그 빌어먹을 놈이니 내 앞에서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도마뱀 새끼야.] [이익……!! 네놈……!!]알른은 퓌톤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제국군 10만의 병력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드래곤의 힘에 비한다면 너무나도 모자란 것이지 않으냐. 이런 식으로 녀석들과 척을 둔다면……. 네가 말하는 미래에도 썩 좋지 않을 것 같은데.]“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그들에게 원하는 것은 동료가 아니니까. 더 이상 드래곤을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거든.”
“그럼?”
알른이 카릴을 향해 되물었다. 그 순간 퓌톤은 차가운 카릴의 눈빛에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그 기분에 답하듯 카릴은 천천히 퓌톤의 귀에 아로새기듯 한 글자 한 글자 확실하게 말했다.
“절대적 복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