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389)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389화(389/497)
238. 섬멸(殲滅)의 서막 (5)
“여기다…….”
홍각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름 속에 들어 있는 각(殼)이라는 의미처럼 그는 갑충처럼 딱딱한 갑주와 같은 피부를 가진 마족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랑하던 갑옷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무력했고 하나 남았던 다리마저 잃고 나서야 그는 온몸이 포박당한 채로 용뼈 무덤 안쪽은 안내했다.
“흐음.”
카릴은 그의 말에 감흥 없이 안쪽을 바라봤다. 그 안에는 마치 신전처럼 보이는 거대한 홀이 있었다.
‘신탁이 내려졌을 때 내가 찾았던 신전과 거의 흡사하군. 석벽에 그려진 문양마저 똑같아. 유물이 숨겨져 있었던 신전을 그대로 옮겼던 건가.’
카릴은 살짝 눈을 흘기며 그 안을 살폈다.
[네 말대로라면 신탁이 내려지기 이전에 이미 이 안의 신전들을 정해진 장소로 이동시켜놨다는 말이겠군.]알른은 그의 말에 주위를 훑으며 대답했다.
[신탁이 내려지기 이전에 이미 신탁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될 테지.]카릴은 이 이상 놀랍지 않다는 표정으로 홍각의 몸을 거칠게 집어 던졌다.
“컥……!! 쿨럭!!”
바닥에 내팽개쳐진 홍각은 충격에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다.
“…….”
마족 4기사라 불리는 엄청난 마족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의 모습은 측은하기까지 했다.
“우리가 나설 기회도 없겠군.”
“우리가 나선다는 것은 그저 주군께서 우리의 성취를 시험하는 자리 정도뿐이겠지.”
키누 무카리의 말에 하시르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이미 카릴의 힘이 규격 외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지만 보면 볼수록 이제는 그동안 쌓여 왔던 강함의 척도가 무뎌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세리카. 저놈을 잘 보고 있어. 마족은 회복력이 뛰어나다. 여차하면 얼려 버려.”
카릴의 명령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탈칵-
그러고는 사원 안쪽에 있는 거대한 두 개의 관을 닮은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뚜껑 안에는 카릴의 기억 속에 익숙한 물건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묵색의 반지였다.
“인간의 욕망은 신조차 막을 수 없다고 하지. 네놈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마족의 유물을 탐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카릴은 홍각의 외침을 무시한 채 반지를 꺼내어 위로 비추었다. 그러자 그 속에 박혀 있는 보석 안에 마치 먹물처럼 검은 액체가 흔들렸다.
통탄(痛嘆)의 부정.
카릴은 백금룡을 상대하느라 부서진 네 개의 송곳니가 있었던 손가락에 그 반지를 끼워 넣었다.
차르륵……! 착!!
그러자 반지의 고리 안쪽에서 날카로운 바늘이 튀어나오더니 끼워진 손가락을 꽉 물었다.
붉은 핏방울이 맺히더니 반지의 바늘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보석 속 검은 액체에 카릴의 피가 들어가자 반지는 가볍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크클……!! 멍청한 놈!! 결국 유물 사냥꾼에 불과한 인간이었구나! 네놈이야말로 그 어떤 경계도 없이 실수를 저질렀……! 으악!!”
홍각의 하나밖에 남지 않은 팔이 어깨부터 차갑게 얼어붙더니 쾅! 하는 충격음과 함께 떨어져 나갔다.
“더럽게 시끄럽네.”
세리카는 사지가 절단된 녀석의 뒷머리를 발로 밟으며 자빠뜨리며 말했다.
“크악……! 크아악!!”
“입 다물고 지켜보기나 해. 실수? 저 괴물 같은 인간에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으니까.”
세리카는 홍각을 바라보며 비웃었다.
그때였다.
놀랍게도 카릴의 피를 흡수한 반지는 검은색이었던 액체 속으로 그의 피가 섞이자 보석이 은회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홍각은 그 모습을 보며 창백한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난 백금룡의 심장을 흡수했다. 통탄의 부정을 쓰지 못하는 것이 더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카릴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홍각의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아무리 용의 심장을 가졌다 하더라도 인간의 몸으로 통탄의 부정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리 없다! 그것은 시간을 부정하는 물건……!! 기껏해야 100년 남짓 살 수밖에 없는 시간에 쫓기는 종족인 인간이 그걸 쓰는 순간 시간의 급류에 미라가 되어버릴 터인데…….”
카릴은 홍각의 말에 냉소를 지었다.
“이유가 궁금하면 차원문이나 열어. 혹시 알아? 마왕이 내게 패배를 인정한다면 네 목숨도 부지할 수 있을지.”
“…….”
홍각은 창백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마족 정예라 불리는 4기사 중에 둘이 손을 쓸 수도 없을 정도로 강력한 인간.
하지만 그래도 그는 인간이었다.
필멸자(必滅者).
인간이 유약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기도 했다.
신이 아닌 이상 시간이라는 절대적 규율은 벗어 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규율이 무너지는 것을 홍각은 목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을 거슬러 오기 위해 억겁과도 같은 시간을 파렐 속에서 이미 겪었던 사실을 그는 절대로 알지 못할 테니까.
카릴 역시 인간이기에 필멸의 수명을 벗어날 순 없었다. 하지만 마족 4기사인 홍각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통탄의 부정이란 시간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의 기억을 먹어 치우는 것.’
파렐 속을 헤쳐 나온 카릴의 기억 속에 시간이란 이미 억겁과도 같았으니 기껏해야 수천 년을 살 수 있는 마족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생의 유물들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알고 있었던 게 다행이야.’
카릴은 쓴웃음을 지었다.
츠르릉…….
그러고는 또 다른 관 속에 들어 있는 두툼한 플레이트 메일을 꺼내었다.
투박하게 생긴 은색의 갑옷이었지만 카릴이 그것을 착용하자 마치 본래 자신의 것인 양 딱 맞게 크기가 맞춰졌다.
“흠. 나쁘지 않군.”
단단한 갑주를 가볍게 두들겨 보면서 카릴은 마지막 유물인 극격(極格)의 갑주의 짧은 감상을 내뱉었다.
[드래곤의 혼효결계와 동방국의 천문진 그리고 로스차일드 가문의 진법술도 대단하지만 이건 그것들을 뛰어넘는 것이로군.]알른은 갑주를 착용하자 나타났다 사라지는 수십 개의 마법진을 바라보며 신기한 듯 말했다.
파즈즈즉……! 파각!!
그가 갑옷에 손을 가져가자 그의 손길을 거부하듯 날카로운 전격과 함께 그를 튕겨냈다.
[허…….]저릿한 기운은 알른뿐만 아니라 그와 계약되어 있는 두아트에게까지 전해졌다.
[하가네가 직접 만든 물건이로군. 방어 마법만 따지고 본다면 블레이더의 무구인 폴세티아와 견주어도 될 만큼의 방어구다. 물론……. 이 역시 저주가 걸려 있겠지. 마족의 물건이니까.]“마왕이 직접?”
[그렇다. 과거에도 마족들이 인간계에 나타난 일은 있으나……. 힘을 행사하는 것은 기껏해야 하급 마족들 정도뿐이었지. 하지만 이렇게 마왕과 직접 관련된 저주받은 것이 인간계에 남아 있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로군.]두아트의 말에 카릴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 이유는 놈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카릴은 발걸음을 옮겨 바닥에 쓰러져 있는 홍각을 일으켜 세웠다.
“들었겠지? 차원문을 열기 전에 네게 몇 가지 묻겠다. 어째서 네놈들은 인간계에 있는 거지? 4기사라면 마계에서도 정예일 터. 그들 중에 둘이나 인간계에 남아 있는 이유가 무엇이냔 말이지.”
“큭……. 크윽…….”
홍각의 뒷덜미를 움켜쥐고서 거칠게 그를 흔들며 카릴이 묻자 홍각은 고통에 찬 신음을 뱉어냈다.
“황제는 너희들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서 이 무덤을 만들었겠지. 카이에 에시르가 리세리아의 뼈로 이곳을 만들었다는 것은 적어도 황가(皇家)와 네놈들이 결탁한 것이 250년 전이라는 말이 될 테고.”
수욱-!!
사지가 절단된 홍각을 바닥에 내려놓고서 그의 옆구리에 카릴은 아무렇지 않게 검을 꽂아 넣었다.
“수백 년 동안 인류를 숨기고 마족 놈들을 대륙에 남겨 놓은 이유가 뭐냔 말이다.”
“으아아아악……!!!”
홍각은 비명을 질렀다.
카릴이 검을 쥐지 않은 손을 펼치자 손바닥 위로 낡은 고서가 나타났다.
촤르륵……!!
책이 펼쳐짐과 동시에 허공에 몇 개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중첩되며 사라졌다.
마법진은 뭉쳐지며 구체의 형태가 되었고 카릴의 손등에 박혀 있는 아인 트리거가 붉게 변하자 라미느의 불꽃이 그 구체를 감쌌다.
치이이이이익……!!
“크아아악!!!”
불에 달궈지는 것처럼 구체를 사정없이 조금 전 홍각의 잘린 어깨에 지지자 메케한 연기와 함께 살이 타는 냄새가 사방에 풍겼다.
“마족은 그 어떤 종족보다 재생 능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불로 태워버리면 상처 부위가 다시 재생되지 못하지.”
“이, 이…… 미친놈!! 죽여 버리겠어!!! 으아악!!”
홍각은 고통에 실현 불가능한 소리를 내뱉으며 그저 카릴을 잡아먹을 듯 외쳤다.
사람들은 잔인할 정도로 냉정한 카릴의 모습에 할 말을 잃은 듯 그저 조용히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주군께서 이 정도로 극노한 모습은 처음이로군.”
“마족과 무슨 일이 있기라도 한 건가?”
“글쎄……. 뭐가 되었든 간에 저들은 죽음 목숨이라는 것은 확실하겠지.”
하시르의 말에 화린조차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싸늘한 그 모습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흥, 적을 앞에 두고 사정을 봐주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짓 아냐? 저런 모습이야말로 이끄는 자로서 보여줘야 할 모습이지.”
그 둘과 달리 밀리아나는 그의 모습이 오히려 만족스럽다는 듯 말했다.
“죽이고 싶다면 어디 해봐. 하지만 그 전에 내가 물은 물음에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카릴은 소리치는 홍각의 입안으로 손가락을 걸어 밖으로 잡아당겼다.
촤악……!!
그러자 그의 오른쪽 뺨이 손가락 힘을 견디지 못하고 찢겨져 나갔다.
“으, 으아악!!”
“대답은?”
“마왕께서 이 일을 아신다면 제국을 불바다로……!!”
카릴은 홍각의 아래턱을 붙잡고 이번에는 반대쪽 입안으로 손가락을 걸었다.
“웁…… 우웁…….”
“찢어버리면 말을 제대로 못할 것 같지만……. 마족의 회복력이라면 조금 있으면 회복되겠지.”
촤아악……!!
“흐, 흐에……. 흐에에에…….”
광대뼈까지 너덜너덜하게 입이 찢어진 홍각은 제대로 발음을 하지 못한 채 울먹이는 얼굴로 카릴을 바라봤다.
“30초 정도면 되겠지.”
카릴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서 홍각의 뺨이 다시 새로 붙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럼…….”
먼저 찢어 버린 뺨이 새로이 붙자 그는 망설임 없이 다시 입 안쪽으로 손가락을 걸었다.
“자, 잠깐……!! 잠깐만……!!”
홍각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소리쳤다.
“마족의 기사란 놈이 고작 이 정도로 포기하는 건가? 몇 번은 더 해야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카릴이 실망스럽다는 듯 몸서리치는 그를 향해 말했다.
[손가락에 신력을 담았으니 피부가 뚫리는 순간 전신이 마비되는 고통이 느껴졌겠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야.]“마족의 고문은 이것에 비한다면 우스운 일이야. 놈들은 손톱 하나, 발톱 하나부터 시작하지. 팔다리를 잘라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
“큭……. 크륵…….”
홍각은 카릴의 말에 흐느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없다! 우리는 그저 명령을 따를 뿐이었다. 마계를 찾아온 인간과 거래를 한 것은 마왕님이시니까……!!”
“마계를 찾아온 인간?”
“네가 조금 전에 말했던 카이에 에시르. 그자가 마계를 찾아와 3가지 유물을 인간계로 내보내는 계약을 했다.”
그의 말에 카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짜라지만 인간계에 해가 될 수 있는 마족과 계약을 했다? 그것도 자신이 세운 제국을 대상으로……?’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그저 미친 행동으로 보이겠지만 카릴은 자신이 본 카이에 에시르는 결코 단순한 괴짜가 아님을 알았다.
‘이 무덤은 리세리아의 뼈로 만든 것이다.’
카릴은 염룡의 심장에서 봤던 그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그 기억은 비록 몇 년이 흐른 오래된 것이었지만 동화된 심장 때문인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한 가지만 묻지. 혹여 나의 죽음이 너에게 새로운 전환을 주는가?]리세리아는 마지막으로 죽기 전 카이에 에시르에게 그리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카이에 에시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하지만 내 마법은 나의 대(代)에서 끝이다. 나의 정수는…….”
카릴은 아인헤리에서 본 기억 속에서 카이에 에시르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
“……에 있을 테니까.”
카이에 에시르의 검에서 거대한 불꽃이 일어났고 하늘에서는 불타는 운석들이 떨어지며 굉음을 뿜어냈기 때문이었다.
‘설마…….’
카릴은 떠오른 기억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몸을 가볍게 떨었다.
잊고 있었던 그의 유산.
마법의 궁극이라 할 수 있는 폴세티아를 얻음으로써 더 이상 그의 유산은 관심이 없었다.
8클래스라는 대단한 실력이지만 카릴에게 있어서는 결국 인간의 영역에 머무는 수준일 뿐이었으니까.
‘카이에 에시르가 남긴 유산이 마계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말이 달라진다.
마계의 문을 열 수 있는 물건이 신탁에서 율라가 찾으라 했던 마왕의 유물이었다.
하지만 신탁이 내려지기도 전 시대의 사람인 그가 직접 마왕과 약조를 한 것이 있다는 말은 마왕의 유물 없이 그가 차원문을 열었다는 의미였으니까.
매개체 없이 차원을 연결한다?
‘그건 8클래스 마법사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카릴은 자신이 모르는 숨겨진 내막이 하나 더 있을지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들자 그는 거침없이 쓰러진 홍각을 들어 올려 신전 같은 거대한 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쪽 가장 깊은 곳에는 영혼샘과 비슷한 커다란 우물이 있었다. 카릴은 홍각의 머리를 그 안으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당장 마계의 문을 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