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39)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39화(39/497)
36. 챔피언
사실 이건 카릴로서도 도박이었다.
크웰로부터 제국 내의 안전한 통행을 위해 받은 증표를 이런 식으로 쓰게 되었으니까.
만약.
두샬라가 한 발자국 더 의심해서 그의 정체를 살피려 한다면 곤란하다.
“…….”
“…….”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 되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얻을 것을 얻는 거래에서 과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그녀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고 있을 것이다.
‘제국 내의 은밀한 임무를 맡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물건이다. 평범한 꼬마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두샬라는 황급히 당혹한 얼굴을 감추며 말했다.
“확실히…… 당신 말대로 마광산을 우리 것으로 할 수 있다면 타투르의 부강을 꿈꿔 볼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어떻게 그걸 얻을 수 있죠? 아무리 버려진 땅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주인이 있는 법. 타투르 내엔 법이 없지만, 대륙엔 법이 있으니까요.”
마지막 수였다.
이마저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그녀는 카릴이 꺼낸 증표를 슬며시 옆으로 치우고는 아래에 깔려 있는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합법적으로 가지지 못한다면 삼국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카릴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걱정 마라. 그곳을 수여 받은 귀족이 누군지 너도 알 텐데.”
그 말에 그녀의 얼굴이 다시 한번 굳어졌다.
‘이곳의 주인이라……. 삼국 중 하나인 이스탄 왕국의 노마법사, 베릴 남작이었지.’
젊은 시절 대마법사까지 바라볼 수 있을 정도의 유망주였지만 여자에 빠져 자신의 재능마저 고개를 돌려 버린 비운의 마법사.
어린 시절 천재라고 불렸지만 그런 순수했던 천재조차 성인이 되고 나서 들끓었던 성욕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걸까.
‘그자는 사랑이라고 말했지만 하필이면 건드렸던 여자가 동맹국이었던 트바넬 왕국 공작의 여식에다가 또 한 명은 펜리아 왕국 자작가의 여식이었지.’
누가 봐도 양다리였다.
그걸 사랑이라고 말해 줄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죽지 않은 게 다행이지.’
그 사실이 알려지고 유망주였던 그 때문에 오히려 멸문까지 갈 뻔했던 위기에 빠졌었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그가 참여한 전장은 모두 승리로 이끌었지. 특히 공국의 습격에서 삼국을 지키기도 했으니까. 그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아 그런 영토나마 수여 받기도 했고.’
하지만 지금은 환갑의 나이에 접어들어 이제는 전투마저 참여하지 않고 그저 환락가나 드나드는 쓸데없이 건강한 노마법사에 불과했다.
“명예로도 신념으로도 살아가지 않는 사람을 움직이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나?”
“……여자?”
두샬라는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카릴에게 말했다.
그녀의 대답에 그는 피식 웃었다.
“뭐, 그것도 베릴에겐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늙은 몸뚱이로 또다시 사랑을 할 것도 아니고…….”
카릴은 다소 가벼워 보이지만 검지와 엄지를 맞닿게 붙이면서 손가락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바로 돈이다.”
촤르륵—!!
카릴은 이곳을 찾기 전에 들고 왔던 묵직한 주머니의 입구를 열어 책상에 뿌렸다.
“눈을 속이려면 베릴 이외에도 밑 작업을 해야 할 사람들이 몇 있을 거다. 하지만 다들 별 볼일 없는 자들이니 돈으로 매수하는 건 어렵지 않을 터.”
“…….”
그 광경을 본 순간 잠시 정적이 흘렀다.
“채광권에 관한 이야기는 베릴 남작 그자에게만 은밀하게 뿌릴 거다. 나이를 먹었지만 노망이 들 정도는 아니니 마법사라면 속성석에 대해서 입맛을 다시지 않을 수 없을 터.”
한때나마 천재라고 불렸던 사람이다.
허송세월을 보냈지만 여전히 중앙으로 진출에 대한 열망은 있을 것이니까.
두샬라는 심각한 얼굴로 카릴을 바라봤다.
“후……. 솔직히 떨리는 얘기야. 하지만 당신이야말로 제국의 사주를 받은 거라면? 이런 식으로 타투르를 제국의 아래에 둘 계획이라면 어쩌지?”
“내가 보여준 이 금화는 제국의 것이지만 제국의 것이 아니다. 황가라 할지라도 이만한 옛 금화를 가지고 있지 않을 테니까.”
카릴은 금화를 보이며 말했다.
“기껏해야 암시장에 몇 개 있는 게 대륙에서 전부일걸? 진위를 감정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좋다.”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증거라면 모두 꺼내 보여줬다. 맹세하건대 이 일은 제국과 관련이 없다. 나 스스로 벌인 일.”
보이지 않는 제국.
조금 전 카릴이 했던 말을 두샬라는 되뇌면서 그를 바라봤다.
“나 참…….”
그녀는 못 이기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증표 다음에는 수백 년 전 제국의 금화라니, 당신……. 드래곤이라도 되는 거야?”
“그렇게 믿는 게 편하다면 그럴 수도. 나중에 일이 잘못되었을 때도 핑곗거리로 좋겠는걸. 드래곤의 장난에 휘말린 것뿐입니다, 라고.”
“……농담하지 마. 이쪽은 진지하다고.”
“나 역시. 제국 위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말이 헛소리처럼 가벼울 리가 없잖아.”
너무나 태연하게 대답하는 그 모습에 두샬라는 두 손을 들며 말했다.
“솔직히 당신의 능력이야 더 이상 보여 달라고 하는 것이 더 우스운 일이겠지.”
“믿어봐라. 타투르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도시가 될 테니까.”
두샬라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소년의 눈동자에 마치 빠져들 것 같은 기분이었다.
농담 삼아 말한 말이었지만 어쩌면 정말 드래곤이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시간을 초월한 듯.
외모와 상관없이 마치 자신을 어린 사람처럼 대하는 듯한 자연스러운 그 모습에서 처음으로 그녀는 전율을 느꼈다.
타투르의 운명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까지…….
걸어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능력이라고 할 건 없지만 대신에 다른 거 하나 보여주지.”
“뭐……?”
“동틀 새벽에 날 찾아와라. 재밌는 걸 보여줄 테니까.”
카릴은 가볍게 웃었다.
“타투르의 비밀.”
두샬라는 이제 그의 미소가 무서울 정도였다.
* * *
“좋아. 이로써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된 건가. 정신없는 하루였군. 안 그래?”
“…….”
두샬라의 거점을 나와 골목길을 걷던 두 사람.
수안 하자르는 카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두샬라가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셨습니까?”
“딱히 확신한 것은 아냐.”
“네?”
“여차하면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
카릴은 황당해하는 수안의 얼굴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캄마는 다루기 쉬운 자다. 오래 산 만큼 남은 생을 더 붙잡고 싶은 자라서 말이야. 그는 대세에 큰 영향이 없지. 큰 힘이 움직이는 쪽을 따를 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달라.”
속속들이 들려오는 소식들.
자신의 예상대로 베릴과의 계약뿐만 아니라 처치 곤란이었던 불모지 영토를 값비싼 가격에 처리해 준다는 말에 너도나도 두 손을 반겼다.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걸. 1년에 한 번 열리는 암시장은 유일하게 제국과 공국 그리고 삼국의 귀족들이 모두 타투르로 오는 날이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어?”
“글쎄요…….”
수안 하자르는 여전히 카릴의 말이 어렵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름 두샬라와의 계약 과정에서 큰일을 해내 자신감이 생긴 듯싶었지만 거침없는 카릴의 모습을 보면 다시 투기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카릴은 가볍게 웃었다.
“타투르에서 유일하게 암시장을 운영하는 그녀만이 귀족들과 연이 닿아 있다는 뜻이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그 귀족들에게 완전히 반하는 행동. 내 앞에서 웃고 있다고 그들의 앞에서 굳은 표정을 지을 거라곤 생각 안 해.”
“……!!”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설마……. 그녀가 배신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당장은 아니겠지. 그들을 통해서 내 뒤를 치는 것이 나을지 말지를 가늠하겠지. 하지만 귀족을 이곳에 들이는 건 그녀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일 거야. 균형 잡힌 3개의 세력 중 하나가 움직이면 그건 전쟁의 빌미가 되기 딱 좋거든.”
“그렇군요…….”
“머리를 써야 한다. 정보 상인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발이 빠른 것만으로는 부족하니까.”
수안 하자르는 카릴의 말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런 점에서 두샬라는 쓸 만하지. 상인으로서도 정보상으로서도 말이야.’
문제는.
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함이지만.
‘그건 그것대로 괜찮아. 결국, 실리에 밝다는 말이니까. 타투르의 존속과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면 나를 따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제안에도 수긍한 것일 테고 말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타투르는 자유도시로 남아 있을 것이며 관리자에 의해 관리 될 것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이 순간에도 이단섬멸령에 의해 이민족들이 죽어 갈 테니까. 너는 그들을 살리고 싶잖아. 안 그래?”
“그들을 데려올 수 있을까요?”
“너 혼자서?”
카릴은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무리지. 네가 한 번 배를 몰아봐야 기껏 강을 타고 나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수십이 고작이니까.”
“그럼…….”
“소문을 내는 거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비룡보다 빠르고 때로는 도마뱀이 용이 되기도 하니까.”
카릴은 오직 이 일을 할 수 있는 자는 수안 하자르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노예왕이라는 이름은 대륙 그 어떤 왕보다도 북부에서 유명하지. 네가 가진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들 스스로 오게 만드는 거다.”
“그들 스스로…….”
“대신, 네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을 직접 나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 수 있는 곳을 준비하는 일일 테지.”
그러나 카릴의 말에 수안 하자르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타투르는 지금도 포화상태에 가깝습니다. 이민족들이 온다 하더라도 받아들일 곳이…….”
“공터라면 잔뜩 있잖아?”
“네?”
“포나인 강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자가 이곳에 너 말고 또 있을까? 어차피 놔둬 봐야 쓸 일도 없을걸.”
“아……!!”
수안 하자르는 카릴의 말에 눈을 번뜩였다.
“그래, 무법항.”
카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두르기 위해서 그냥 뒀지만, 너라면 무법항을 정리하기 충분할 테니까.”
“제가요?”
“그럼. 충분하다 못해 너 말고 무법항을 관리 할 사람은 타투르에서 없을걸.”
되묻는 수안을 바라보며 카릴은 말했다.
“우릴 처음 봤을 때 캄마도 꽤 난처했을 거야. 암시장을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보다 널 아는체해야 하는지가.”
“그게 무슨…….”
“나는 너에게 타투르를 주겠다고 했다. 그럼 묻지. 어떻게 해야 이 자유도시를 진짜로 얻을 수 있을까. 나는 4명의 관리자 중의 한 명을 죽였다. 남은 자들을 모두 죽이면 될까?”
“…….”
“결국은 또 다른 관리자를 낳는 것밖에 되지 않아. 이곳은 이민족뿐만 아니라 버림받은 제국과 공국인들까지 있으니 말이지. 융합이란 어려운 일이다.”
카릴은 천천히 수안의 얼굴을 가리켰다.
“너의 두 눈처럼.”
그의 말에 수안의 얼굴이 굳어졌다.
“명분과 목표.”
자신의 큰 계획.
그에 가장 어울리는 자가 바로 수안 하자르였다.
이민족과 제국인 둘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명분을 가진 자였으니까.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팅-
카릴은 품 안에서 무법항에서 큐란의 건물에서 주운 동전을 손가락으로 튕겨 그에게 던졌다.
“강을 건널 때 네 손목에 그려진 문신.”
“네?”
“아귀 부족은 그런 문신을 하지 않아.”
그는 수안을 바라봤다.
‘나 역시 같은 것이 있었거든.’
신탁이 내려지고.
카릴이 처음 황궁에 불려갔을 때 이민족이라는 벽 때문에 모두가 믿지 않았다.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어야 했다.
그때 올리번은 귀족들의 앞에서 자신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투기장의 챔피언이 된다면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곳에서 죽기를 바랐던 것일지 모르지만…….’
75전 75승.
전무후무한 대기록.
최연소 챔피언으로서 카릴이 얻은 것은 지금 수안 하자르의 손목에 있는 것과 같은 문신이었다.
‘승자의 낙인.’
카릴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딱히 속일 생각은 없었지만 앞으로 네가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투기장의 챔피언.”
“……에?”
수안 하자르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
천천히 동전을 잡은 손을 펼쳤다.
그러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봤다.
손바닥 위의 동전은 앞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