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40)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40화(40/497)
37. 투기장
어스름이 내린 밤.
문이 잠긴 투기장 안으로 걸어가는 한 소년.
카릴 맥거번은 감회가 새로운 듯 무대 위에 올라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생각해 보니 칼립손 할아범에게 검 한 자루를 더 뜯어낼 걸 그랬나?’
그러고는 여기저기 바닥에 꽂혀 있는 노예병들이 썼던 무기를 뽑아 허공에 그어본다.
부우웅……!!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카릴은 바닥에 떨어진 굳은 피들을 바라봤다.
많은 자가 이곳에서 싸우고 죽었을 것이다.
남아 있는 주인 없는 무구들이 그 증거이며 앞으로도 이것들은 더 쌓일 것이다.
“흐음.”
카릴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투기장 위에 서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한 남자를 바라봤다.
단단한 근육과 양팔에는 무쇠로 된 건틀렛을 차고 다시 한번 붕대로 감은 모습이 제법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얼굴에는 날카로운 뿔 두 개가 돋아나 있었고 바다뱀의 것과 닮은 푸른 비늘로 뒤덮여 있었다.
시 서펀트의 형상.
매서운 눈매는 당장에라도 아가리를 벌려 그의 덜미를 물 것 같았다.
수왕(水王)의 가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말로 포나인 강의 절대자가 경기장에 나타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동틀 새벽에 만나자고 했지만 이런 곳에서 만나려고 한 것은 아닌데. 연애편지도 아니고 말이야. 이런 쪽지나 덩그러니 놓고 가다니.”
카릴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안에는 짧게 한 줄의 문장이 적혀 있는 종이가 쥐어져 있었다.
“뭐, 나름대로 네가 내린 결정인가 보군.”
그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수안 하자르, 아니지……, 챔피언.”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면서 카릴은 그를 향해 말했다.
순간.
가면 사이로 그의 눈동자가 떨리는 것 같았지만 이내 곧 그의 전신에서 투기가 느껴졌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서 그와 제대로 싸우는 건 이번이 처음인가.’
카릴은 가볍게 몸이 떨렸다.
‘라바트 길드의 마스터 시절에도 그의 무투는 유명했지. 노예왕이었다는 건 놀랍지만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투기장의 챔피언이 되지 않은 게 이상할 따름.’
타고난 신체 능력으로 그의 무투는 가히 산과 같았고 그의 육체는 다른 무구를 쓰지 않아도 하나의 무기였다.
권왕이라고 불렸던 발본트.
제국과 공국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오직 무(武)를 갈고 닦은 인물.
‘나중에 밝혀졌지만 어린 시절 수안 하자르가 발본트에게 어깨너머로 몇 가지 태세를 배웠다고 했다.’
아마도.
수행하던 도중 우연히 그를 발견한 것에 불과했지만 권왕은 확실히 그의 자질을 알아본 것이 틀림 분명했다.
다만.
제자를 두지 않는 그의 성격 때문인지 발본트는 수안 하자르에게 모든 것을 전수해 주지 않고 떠났다.
“후읍…….”
그가 자세를 잡았다.
오른팔로 얼굴을 가리고 왼팔을 허리에 붙이고서 허리를 앞으로 가볍게 숙인 자세.
생소하지만 카릴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발본트 8태세(態勢).
‘권왕이 완성한 8태세 중에 그가 배운 건 고작 2개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투기장의 챔피언이 되었다.’
카릴은 그 생각을 하자 가볍게 상기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만약에 다시 한번 발본트를 만나 나머지 6태세를 모두 배우게 할 수 있다면…….’
어쩌면 새로운 권왕의 탄생, 아니, 지금의 권왕을 뛰어넘는 권신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건 내가 해야 할 몫이군.’
제자를 두지 않는 발본트였지만 말년에 수안 하자르를 얻지 못한 것을 후회했으니까
‘발본트, 어디를 유랑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위함이기 동시에 권왕 당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스르릉-
하지만 그 이전에.
파앗-!!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두 사람의 몸이 서로를 향해 튀어나갔다.
파앙……!! 파앗!!
카릴의 발아래에서 공기가 원형으로 터지자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가속하며 공중에서 빠르게 회전했다.
카가가가가강—!!
아그넬의 검날이 수안의 건틀렛에 박히면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수안은 팔이 잘릴지도 모르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두렵지 않은 듯 건틀렛으로 카릴의 공격을 연달아 막았다.
‘평범한 건틀렛이 아닌가 보군.’
아그넬의 매서운 공격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생채기만 날 뿐 건틀렛의 방어력은 그대로였다.
아마도.
그것 역시 암시장의 물건 중 하나일 것이다.
“그거 혹시 뮤르가(家)의 물건인가.”
“역시 알아보시네요. 맞습니다. 투기장을 우승하고 받은 물건이죠.”
드워프 중에서도 가장 손재주가 뛰어나다고 정평이 나 있는 뮤르가(家).
그 가문을 거치고 나면 쓰레기도 보물이 된다는 명성이 자자했다.
“노움의 것은 아름답지만 드워프의 강철은 더욱 단단하죠.”
“대신 그만큼 더 무겁지.”
카릴의 말에 수안 하자르는 피식 웃었다.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으니까.
확실히 수안 하자르의 근력이 아니라면 건틀렛으로 사용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어깨가 빠져 버렸을 것이다.
“좋군.”
카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콰득—!!!
“큭!!”
수안 하자르의 몸이 비틀거렸다.
피해를 입지 않을 뿐.
방어만 해서는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수안 하자르의 얼굴은 점차 굳어지기 시작했다.
‘제길!’
지금까지 옆에서 싸우는 것을 봤지만 직접 체감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후읍…… 후읍……!!”
변화무쌍한 카릴의 검은 고작 단검임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레이피어 같기도 하면서 때로는 두꺼운 대검처럼 자신을 노려왔다.
‘훌륭하군.’
카릴은 자신의 공격을 막는 수안 하자르를 바라보며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연습해 볼 수 있겠어.’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검을 고쳐 쥐었다.
카릴의 표정을 읽은 걸까.
빠득-
수안 하자르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얕잡아 보이고 있잖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미 몸으로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걸음마 때부터 검을 쥐었다고 해봐야 고작 10년. 그는 천재인가?’
비상식적인 강함.
그렇게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물론.
전생의 기억을 떠나서 카릴이 검에 관한 천재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카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지 못해 쓰지 않았던 힘을 마음껏 써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후우…….”
순간.
수안 하자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릴의 검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기(銳氣).
강렬한 마력이 느껴졌다.
“마나 블레이드……?”
하지만 이내 곧 단검을 감싸고 있는 마력의 색깔에 수안 하자르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뭔가 다르다. 저건…….’
그 순간.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라고 해야지?’
차자자작……!!
창! 차자장—!!!
그때였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카릴의 공격.
기교도 예리함도 없이 오직 패도만으로 압도되는 검격(劍擊)의 소리.
“으, 으악!!!”
수안 하자르는 본능적으로 두 팔을 들어 그의 검을 막았다.
콰아아아아아앙—!!
강렬한 굉음과 함께 수안 하자르의 몸이 튕겨 나갔다.
몇 바퀴나 바닥을 구르면서도 그 힘을 이기지 못해 거구의 몸이 그대로 투기장 벽면에 부딪히고 나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헉…… 허억…… 헉…….”
그는 넋이 나간 얼굴로 카릴을 바라봤다.
저적…….
저저적…….
뭔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킁…….
쿠드득…….
동시에 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다름 아닌 수안의 두 팔을 감싸고 있던 건틀렛이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지는 소리였다.
자신의 무구가 부서지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은 여전히 카릴을 향해 있었다.
건틀렛이 조각난 것보다 조금 전 카릴의 일격이 더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바, 방금 그건 뭡니까.”
그의 물음에도 카릴은 뭔가 만족스럽지 못한 듯 씁쓸하게 웃었다.
‘위험했다. 마력을 집중하면 아직 세세한 컨트롤이 안 되는군. 수안의 건틀렛만 베려고 했었는데……. 자칫 잘못했으면 그의 팔까지 잘릴 뻔했으니.’
카릴이 주저앉은 수안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강하군요.”
“납득이 될 만한 결과인가.”
그의 질문에 수안은 어쩐지 홀가분한 표정으로 그에게 끄덕였다.
전심전력으로 부딪히고 완벽하게 깨졌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없었다.
“넌 더 강해질 수 있다. 아니, 강해져야지.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너는 많은 걸 해야 하니까.”
“…….”
카릴은 투기장의 무대에 걸터앉아서 말했다.
“꽤 고민을 했겠어. 내가 얘기했던 말 때문에. 온전한 컨디션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
수안 하자르는 카릴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권세를 얻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거점. 그리고 그 거점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심을 잡아야 한다.”
카릴은 바닥에 떨어진 수왕의 가면을 집어 들고는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성난 그들을 잠재울 명분(名分).”
가면 속에서 그의 눈동자가 빛나자 수안 하자르는 자신도 모르게 서늘한 기운을 받았다.
“관리자 하나의 목숨으론 타투르에 살고 있는 다른 자들의 납득을 얻기 힘들었을 거다.”
나머지 관리자인 두샬라와 캄마는 전면으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을 것이다.
‘특히, 두샬라. 그녀는 내게 힘을 보태 준다 하더라도 대외적인 이미지 때문에 힘들지.’
그리고 그걸 수안 하자르는 알아차렸다.
“하지만 둘이라면 다르지. 그것도 자유도시에 무를 상징하는 무법항의 금사자와 경기장의 챔피언이 모두 한 사람에게 졌다. 그 소문은 두샬라와 캄마에 의해 빠르게 퍼질 테고 말이야.”
카릴은 무릎을 꿇고 있는 수안 하자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말했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겠지.”
수안 하자르는 그런 무대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카릴에게 도전을 한 것이다.
아니.
형식상으로 카릴이 챔피언에게 도전을 한 것이지만.
어차피 결과는 예상하고 있었다.
“난 이곳에서 충성스러운 백성 같은 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여긴 지금처럼 대륙 누구도 손댈 수 없을 저력을 가지고 있기만 하면 돼.”
그러고는 천천히 그걸 썼다.
“언제든 제멋대로 날뛸 수 있다는 우려. 그것만으로도 제국을 견제하기 충분하지.”
카릴은 가면을 벗으며 수안을 향해 말했다.
“그 고삐를 쥐어야 할 사람이 바로 너다.”
색이 다른 그의 두 눈동자가 보였다.
“제국인의 피와 이민족의 피가 함께 흐르는 너야말로 적임자니까.”
“…….”
수안 하자르는 짐짓 할 말을 잃은 듯 카릴을 바라봤다.
쿵……. 쿠쿵…….
떨리는 심장 소리.
처음이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저주받은 자신의 피가 쓸모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저 지우고 싶은 태생.
그리고 반대로 섞인 제국인의 핏줄에 대한 투쟁으로 이민족들을 타투르로 도망치게 했었다.
‘태생을 초월한 나라.’
허무맹랑한 소리라고만 생각했던 그 이야기가 정말 현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흠.”
격렬한 전투 끝에 카릴은 벽 너머로 떠오르는 어스름을 바라봤다.
“딱 시간이 되었군.”
그러고는 주저앉아 있는 수안 하자르를 향해 말했다.
“내가 타투르의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했지?”
“……네?”
“보면 좋아할 거다.”
카릴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