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413)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413화(413/497)
253. 혈(血) (3)
“저게…… 최초의 타락?”
타락을 뚫고 돌파한 사람들은 심란한 표정으로 동굴 앞에 있는 마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카릴은 시선을 살짝 뒤로 돌리며 그들을 바라봤다.
에이단과 수안을 비롯해 밀라아나와 고든, 크웰 그리고 알테만이 타락을 뚫고 이 자리에 서 있었다.
“크흠.”
크웰 맥거번은 카릴의 발아래 부서진 말레크의 시체를 보며 나지막한 탄성을 터뜨렸다.
“확실히 대륙 10강이긴 하군. 여기까지 뚫고 오다니 말이야.”
밀리아나는 고든과 크웰을 보며 말했다. 자신을 제외하고 카릴의 사람 중 자력으로 최전선까지 뚫고 들어 온 사람은 여태껏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륙 10강이 무너진 지가 언제인데. 밀리아나, 너를 포함에서 내 수하들 역시 소드 마스터의 반열에 오른 자들이다.”
“그렇긴 하지만…….”
밀리아나는 나머지 둘을 보며 못 미더워하는 얼굴이었다.
“걱정 마. 내 주위의 자들은 약하지 않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를 포함해서 말이지.”
그의 말에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내가 꼭 당신 수하에 포함된 것처럼 말하네. 난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강했거든?”
차앙-
밀리아나는 자신의 쌍검을 서로 부딪쳐 날카로운 검명을 내며 말했다.
“그리고 디곤은 더 강하지.”
콰아아아아앙—!!
그때였다.
타락의 군세 좌측에서 요란한 폭음소리와 함께 일대의 군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밀리아나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가리켰다.
“라니온 연합 도착했습니다.”
그 순간 병력의 선두에서 말을 몰던 비올라와 그레이스가 카릴을 향해 말했다. 밀리아나는 예상치 못했다는 듯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너희가 왜 거기서 나와?”
“왜요? 저희가 오면 안 되나요?”
“그건 아니지만…….”
카릴은 그녀의 반응에 옅게 입꼬리를 올렸다.
“다른 병력은?”
“중앙을 뚫고 있던 디곤은 현재 새로이 생성된 말레크를 상대하고 있고, 우측의 불멸회와 자유군의 병력은 생성되는 타락의 시선을 집중시켜 마물의 진군 방향의 미끼가 되어 이쪽으로 오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나인 다르혼이 어울리지 않게 고된 일을 하는군.”
“대신 미하일과 세리카 로렌을 빌리겠다 전해 달라 하였습니다. 디곤 쪽으로는 키누 무카리와 베이칸이 갔습니다.”
“좌측은? 설마 너희가 다 뚫고 온 건 아니겠지.”
밀리아나는 중앙 쪽에 자신의 디곤 병력의 발이 묶여 있고 비올라의 병력이 먼저 도착했다는 것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게 그녀가 강한 이유지.”
알른이 밀리아나를 보며 잠시나마 전장의 긴장감을 풀 듯 말했고 카릴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피는 못 속이나 보군.]라미느가 그녀를 바라보며 모호한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밀리아나의 목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화린의 북부 군세가 좌측을 맡고 있다고? 뭐야, 내가 알기로 너희 연합이 좌측을 치기로 했을 텐데. 남들이 애써서 막고 있는 동안 어부지리로 쉽게 길을 뚫고 온 것이로군. 어쩐지.”
밀리아나는 자신의 부족이 일착으로 오지 못했다는 것에 살짝 자존심이 상하는 듯 말했다.
“어부지리가 아니라 이곳에 가장 필요한 전력이 바로 저희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뭘 할 수 있는데?”
쿵……!!!
그때였다.
기사들은 힘겹게 등 뒤에 메고 있던 거대한 방패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전술(戰術).”
그녀의 말에 밀리아나는 ‘풋.’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비올라의 옆에 서 있는 그레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이, 펜리아의 풋내기. 넌 기억하겠지? 네가 이스탄 왕국을 치러 왔을 때 널 맞이했던 게 누구였는지 말이야. 그때 내가 전술을 썼었나?”
그레이스는 그녀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밀리아나와의 만남은 절대 잊지 못할 기억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스탄 왕국이 비록 소드 마스터를 보유하지 않은 소왕국이라고는 하지만 단 한 명으로 인해 왕국이 공략당했으니 말이다.
“발목이나 잡지 마라. 괴물을 상대하는 데는 괴물인 자만이 가능한 것이니까. 꽃송이는 얌전하게 온실에서 승전보를 기다리기나 해.”
“스스로 괴물이라 인정하는 건가요?”
비올라는 그녀의 말에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물론.”
“디곤의 몸엔 인간의 피는 반도 안 섞여 있거든.”
우드득……! 두둑!!
그녀는 비올라의 핀잔을 오히려 비아냥거리듯 능글맞게 받아쳤다.
“다들 나서지 마. 디곤이 선수를 빼앗겼으니, 대신 다곤의 여왕이 적의 목을 뜯을 것이다.”
동시에 밀리아나의 전신에 붉은 비늘이 돋아나며 그녀는 위풍당당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괜찮을까요?”
에이단은 그녀의 모습에 살짝 불안한 듯 말했다.
조금 전 상대했던 말레크는 누가 봐도 저 앞에 있는 혈보다 약한 녀석일 것이다. 하지만 속도에서는 자신의 속도를 뛰어넘을 정도의 괴물이었다.
“뭐, 한 번쯤은 지켜볼 필요가 있겠지.”
하지만 카릴은 어쩐 일인지 조금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전생에서도 그녀는 타락과 싸울 때 혼자서 싸우는 걸 좋아했었지. 용족화를 이룬 밀리아나는 분명 전생보다 훨씬 더 잘 싸울 수 있을 거다. 다만…….’
그는 밀리아나의 옆에 있던 비올라에게 시선을 옮겼다.
‘혈(血)이 상대라면 다르지.’
카릴은 전생에 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최초의 타락을 사냥하기에 앞서 그가 먼저 나서지 않고 밀리아나를 혼자 내보낸다는 것이 결코 여유를 부리는 의미는 아니었다.
‘앞으로 번질 타락의 불씨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고 거대하다. 놈들과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는 결국 경험치가 중요한 법.’
그런 의미에서 밀리아나의 전투는 이곳에 있는 강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었다.
‘문제는 역시 저들이겠지. 어쩌면 저들이 앞으로 전투의 양상을 보여 주는 좋은 계기가 될지도 몰라.’
밀리아나와 별개로 카릴은 비올라가 이끌고 온 군사들에게서 여전히 시선을 떼지 못한 채였다.
“앤섬의 전황을 보는 시야가 예전보다 더 확장되었군.”
“네?”
카릴은 어째서 이 자리에 다른 이들도 아닌 비올라의 라니온 연합의 병력이 도착했는지, 앤섬 하워드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에이단은 무슨 의미인지 몰라 되물을 뿐이었다.
“물러난다.”
그가 손을 들어 가볍게 뜻을 표하자 밀리아나는 기다렸다는 듯 혈을 향해 걸어갔다.
“비올라. 너희는 말리지 않을 테니 앤섬의 계획대로 움직이도록.”
“아셨습니까?”
“내게 미리 언질을 주지 않은 것은 괘씸한 일이지만 나쁘지 않아.”
그의 말에 그녀는 못 당하겠다는 듯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날 실망시키지 마라. 네겐 아직 숙제가 있으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비올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콰아아아아아앙—!!!
날카로운 폭음이 터져 나왔다.
탈칵-
그 순간 카릴은 쥐고 있던 폴세티아의 검을 살짝 아래로 당기며 언제든 뽑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눈썰미 좋은 에이단은 그 모습을 보며 역시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카릴이 만일에 경우를 대비한 마지막 보험은 역시 카릴 그 자신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흐아아아아—!!!”
노도와 같은 속도로 달려든 밀리아나가 혈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디곤 쌍검술 2결–월하옥(月下玉).
쌍검이 초승달처럼 머리 위에서 곡선을 그리며 혈의 목을 노림과 동시에 그녀의 다리가 녀석의 옆구리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우드득-!
그녀의 발차기가 적중되자 혈의 옆구리가 꺾이면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밀리아나의 공격에도 놈은 아무렇지 않은 듯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서 오히려 그녀의 사각을 노리며 팔을 저었다.
손가락에 돋아나 있는 날카로운 가시가 길어지면서 마치 갈퀴처럼 밀리아나를 덮쳤다.
“흥……!”
자신을 향해 오는 공격에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돋아난 용의 비늘로 얼굴을 가리며 오히려 더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핑그르르르르르……!!
혈의 공격을 막아낸 밀리아나는 혈의 가슴 안쪽에서 뒤로 검을 밀어 넣으며 검을 박아 넣었다.
[크륵!]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혈이 물러나려는 찰나,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밀어붙였다.
콰즉……!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터져 나오며 혈의 살점이 검에 잘려 나갔다. 너덜너덜해진 육체임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여전히 밀리아나를 공격을 하기 위해 그녀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카강!! 카가가강!!!
단단한 방패를 두들기는 것처럼 용족화된 그녀의 비늘을 두들길 때마다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흐가가가가!!!”
밀리아나는 혈의 허리를 꽉 안고서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크륵……!! 크르륵!!]그녀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혈이 비틀거리자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금치 못했다.
“괜한 걱정을 했네요. 디곤의 여제는 제가 가늠할 수 없는 위인이라는 걸 잠시 잊었나 봅니다.”
에이단은 무자비하게 혈을 몰아세우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여전히 카릴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밀리아나가 혈의 가슴에 주먹을 찔러 넣자 녀석은 뒤로 자빠지며 비틀거렸다.
“최초의 타락이라 뭐라 거창한 수식어를 갖다 붙였지만, 뭐 별거 아니로군.”
붉은 비늘로 덮인 얼굴을 쓸어 넘기며 그녀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혈을 향해 걸어갔다.
“죽어.”
그녀는 짧은 한마디를 끝으로 비틀거리는 녀석의 등에 박힌 자신의 검을 뽑으려 했다.
그때였다.
쿠르르르르르……!! 쿠극!!
녀석의 몸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피해!!”
카릴의 외침과 동시에 그녀가 몸을 피하려 했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혈의 몸뚱이가 폭발하듯 터졌다.
혈(血).
그 이름처럼 녀석의 몸이 터지는 순간 사방으로 쏟아지는 핏물이 밀리아나를 덮쳤다.
“크윽?!”
그녀가 혈의 공격을 피하는 속도보다 녀석의 핏물이 더 빨랐다. 피할 수 없음에 밀리아나는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
그 순간 붉은 점액 같은 핏물이 밀리아나를 덮치려는 순간 어디선가 튀어나온 기사들이 등에 메고 있던 방패를 움켜쥐고서 벽을 만들며 녀석의 공격을 막았다.
치이익……!! 치이이익……!!!
핏물이 닿는 순간 마치 철이 녹아 내리는 듯 메케한 냄새와 함께 새하얀 증기가 솟구쳐 올랐다.
전술-철벽(鐵壁).
화아아아악—!!
단단한 방패의 벽 뒤로 비올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칼립손 경께서 직접 주물(鑄物)하신 대(對)타락용 실드입니다. 세공 마법뿐만 아니라 불멸회의 나인 다르혼 님께서 보호 마법을 걸어두었습니다. 적어도 몇 번은 녀석의 공격을 막을 수 있겠죠.”
밀리아나가 비올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끼지 말라고 했을 텐데? 너희들이 잡을 수 있는 상대가 아냐.”
“압니다. 하지만 저들은 모두 소드 익스퍼트의 실력자들이죠. 여제처럼 괴물 같은 공격은 펼치지 못하지만, 마력을 모두 쏟아낸다면 최소한 속도만큼은 따라올 수 있습니다.”
비올라의 옆에 서 있던 그레이스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대신해서 대답했다. 겹겹이 쌓인 거대한 방패 사이로 비올라는 밀리아나를 바라봤다.
“앞으로 타락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질 것이라 들었습니다.”
“…….”
“여제께서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그렇게 된다면 그 모든 곳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습니다. 결국, 저희 역시 싸워야 하겠죠.”
실드의 벽을 뚫고 튄 혈의 핏물이 비올라의 어깨에 닿자 시커먼 연기와 함께 새하얀 그녀의 피부에 선명한 상처를 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검을 들었다.
“괴물의 싸움에 저희가 끼어들 순 없지만……. 우리는 인간의 방식으로 싸울 겁니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펜리아 가문의 보구인 은빛서슬(Silver Wrath)이 차가운 서리를 품으며 번뜩였다.
“여제의 말씀처럼 저희는 녀석을 잡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검이 되어 주십시오. 대신 저희는 방패가 되어 당신이 마음껏 싸울 수 있도록 죽을 각오로 막겠습니다.”
“……흥.”
밀리아나는 그녀의 말에 뭔가를 말하려다 말고 입술을 살짝 깨물며 검을 들었다.
“온실 속 화초가 이제 드디어 들판의 잡초만큼 꺾이지 않는 의지를 가졌군.”
두샬라는 마경 속에 비친 비올라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시궁창에 좀 굴러봐야 살고자 하는 의지도 생기는 법이지. 이제야 조금 우리도 대화를 나눌 만한 눈높이가 된 것이려나?”
첫 만남 때의 그녀는 전장에서 두 발로 서 있기라도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던 어린 공주님에 불과했으니까.
그녀는 소드 마스터처럼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들처럼 강력한 마력을 가지지도 않았다.
에이단 하밀이 동료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열등감에 강해질 수 있었다지만 그 역시 결국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올라의 전투는 기사들을 뜨겁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약하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강자의 집합소라고 할 수 있는 카릴의 자유국 속에서 그녀는 이렇다 할 특출난 능력을 지닌 사람은 아니었다.
자칫 지켜줘야 할 애물단지가 되어 버릴 수 있는 강자들의 틈바구니에서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 쳐왔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오히려 기사들로 하여금 전의를 불태우게 만들었고 여왕으로서의 빛을 발하는 존재가 될 수 있게 했다.
우습지만 기사들 역시 결국 소드 마스터라는 대단한 존재에 비하면 약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신념만큼은 강자들에 못지않았기에 비올라의 발버둥은 그들의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말했을 텐데. 쓸데없이 끼어들어 발목이나 잡지 말라고.”
하지만 여전히 밀리아나는 심술궂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괴물의 싸움에 끼어들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으니까요. 대신 저희가 여제가 싸울 수 있도록 발판이 되어드리죠.”
비올라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을 듣는 순간 카릴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