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418)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418화(418/497)
256. 올리번 슈테안
“내가 할 일은 다 했어.”
케이 로스차일드는 눈을 뜬 시체를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문을 위한 거라면 난 딱히 도움이 안 될 거야. 인형술로 강제로 깨웠을 뿐 그는 나와 계약을 하지 않았으니 명령을 내릴 수 없거든.”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자(死者)가 깨어나는 모습을 태연하게 바라보는 그녀는 이제 시체를 다루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다만 그에게 흘려보내는 마력을 중단하면 영원히 잠들게 될 거야. 만약 그가 삶에 아직도 미력이 있다면 협박용으로는 쓸 수 있겠지. 그게 과연 두 사람의 대화에 의미가 있는 카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정도뿐이야.”
카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를 물러나야겠지?”
어떠한 얘기하지 않았지만 케이는 아무런 이유 없이, 그것도 파렐 공략대를 꾸리는 이 시점에서 그가 황제의 시체를 깨운 것엔 모두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주면 고맙지.”
“응. 여기서 있었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지만 사령술을 쓰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미약하게나마 마력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어. 아마도 대마법사급의 존재들은 알아차렸을 거야. 특히나 제국의 그 노마법사는 당장에라도 들어오고 싶어 난리겠지.”
[카딘 루에르…….]그때였다.
관 속에 누워 있던 시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창백한 얼굴은 생기라곤 보이지 않았고 초점 없는 눈동자는 이미 생자(生者)가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들이었지만 카릴은 어쩐 일인지 그를 바라보며 가슴 안쪽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숨기기 어려웠다.
[카릴.]알른 자비우스는 주의를 주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걱정 마.”
카릴은 그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듯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를 깨운 건 너일 테고. 이곳이 황가의 무덤인 걸 보니 내 마지막 기억 속 그 장면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말이겠군.]올리번은 의외로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 카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국은 네게 충성을 맹세하였는가.]“죽음에서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제국이라니 너란 녀석도 참 대단하군.”
카릴은 그를 바라봤다.
“글쎄. 충성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네 시체 덕분에 카딘 루에르는 날 돕고 있긴 하다. 기사단들 역시 이렇다 할 문제는 일으키지 않고 있지.”
[그렇군.]올리번은 그의 대답에 자신의 머리를 정리하듯 눈을 감고서 말했다.
[정말로 제국이 패배했군.]“그래.”
[백금룡은?]“죽었다. 내 검에 말이지. 그의 심장은 내가 가졌고 나머지 세 마리의 드래곤은 내 명령에 지금은 레어로 돌아갔다.”
카릴의 말에 올리번은 짐짓 놀라 마른침을 삼키는 듯 그의 목젖이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시체인 그는 삼킬 침이 없는 듯 메말라 버린 입안에 손등으로 쓱 입술을 닦아내며 쓴웃음을 지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최악의 이야기 중에서 그나마 듣던 중 다행인 일이로군.]“백금룡이 죽길 바랐나?”
[제국이 자유로워지길 바랐을 뿐이지.]“어째서?”
올리번의 말에 카릴인 살짝 눈을 찡그리며 그를 재촉하듯 물었지만, 천천히 고개를 들며 올리번은 특유의 냉소를 지었다.
[내가 그걸 알려줄 이유는 없지.]“재수 없는 녀석. 죽어서까지 머리 굴리긴. 그래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얻는 것은 없어도 괴롭힐 순 있으니까. 날 죽인 녀석인데 고분고분 돕는 것도 이상하잖아? 안 그래.]올리번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듯 카릴에게 말했다.
[게다가 나를 깨웠다는 것은 내가 얻을 이득은 없어도 네가 나에게 얻어야 할 것은 있다는 말이겠지. 내가 거래의 대상이 된다면…… 나 역시 지금부터 내가 무엇을 얻을지 고민해 볼 수 있지 않겠어?]확실히 범인은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리고 눈앞에 그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것도 모두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올리번은 자신에 대한 일들을 빠르게 수긍하고 오히려 남겨진 자들을 위한 거래를 하고자 했다.
“크큭…….”
카릴은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일단 내게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볼까.]“황가(皇家)의 피.”
올리번은 의아한 얼굴로 카릴을 바라봤다.
[그거라면 그냥 내 시체에서 뽑으면 될 텐데.]“조금 다르다. 단순히 혈액만을 위한 거라면 이런 번거로운 일을 벌이지 않았겠지. 내가 필요한 것은 슈테안 가문과 했던 백금룡의 맹약을 푸는 것이니까.”
[아하.]올리번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묘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선대에게 감사해야겠군. 허약한 후대들은 휩쓸리기만 하고 아무것도 못 한 채 죽었지만 선대가 만들어 놓은 언약이 비루한 우리들의 가치를 조금은 살려주고 있으니.]그는 자조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아는 척하지 마. 뭐가 가치가 있다는 거야? 대국의 흐름이 네가 살아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네가 살아 있을 당시에 병정놀이하듯 벌인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격변의 시대가 시작 올 거야.”
카릴은 그런 그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신탁이 내려졌고 신은 네피림을 지상에 불렀다.”
[…….]“게다가 재해라 불릴 타락이란 괴물들이 지상 위에 세워진 파렐에서부터 쏟아질 것이다.”
우우우웅…….
카릴이 손을 들어 올리자 그의 마력에 무덤이 반응하며 아무것도 없었던 벽면이 마치 유리창이 열리는 것처럼 곳곳에 마경이 생성되며 밖을 비추었다.
어두웠던 무덤 안은 빛으로 가득 찼고 익숙한 눈 덮인 산과 들에 올리번의 표정이 굳어졌다.
수도 주위에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로군.]“네가 날 돕지 않으면 불바다가 된 풍경을 보게 되겠지. 저 멀리 보이는 탑이 보이나? 지금은 잠들어 있지만, 곧 녀석은 마물들을 뱉어낼 거다.”
카릴은 마경으로 된 인조 창문의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은 파렐을 내렸지만 어째서 파렐이 이 세계에 나타나는 것인지 왜 저 빌어먹을 탑이 마물을 쏟아 내는지 그 어떤 이유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저 우리에게 저 탑을 막으라 했을 뿐이지.”
그는 올리번에게 한 걸음 다가가 말했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우리의 땅은 신의 유희에 공격당하고 파괴될 거다. 네가 사랑하던 제국의 백성들이 끔찍한 꼴을 당하게 되겠지.”
[뭐 어때. 더 이상 내가 이끄는 나라도 아닌데.]“그럴까.”
카릴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그를 바라봤다.
“동생을 밟고 형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오르려 했던 그 자리가 단순히 물욕 때문만은 아닐 텐데.”
‘카릴. 잘 들어.’
신탁이 내려진 지 1년이 지났을 때,
황궁의 성벽 위에서 올리번은 카릴에게 말했다.
‘저기 끝에 보이는 세 개의 깃대가 보이지? 다들 그저 제국을 상징하는 장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냐. 오래된 마법이 걸려 있다. 황궁에 비보가 있을 때 쏘아 올리는 포격대지.’
‘…….’
카릴은 올리번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쏘아지는 탄 역시 마법으로 만들어진 불꽃이야. 대륙 전역에서도 이 불꽃을 볼 수 있을 거다.’
‘그래서?’
‘만약 저 불꽃이 하늘에 솟아오른다면 네가 이곳으로 돌아와 나 대신 제국을 수호해다오. 내가 죽었다는 의미이니까.’
침묵 속에서 떠올린 기억과 함께 카릴은 모래를 가득 씹은 듯 텁텁한 입안은 느끼며 생각했다.
‘너는 네가 죽는다면 제국을 이민족인 내게 맡기려고 할 정도로 제국을 지키고자 했다. 제국의 기사가 아닌 이민족인 날 내세워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것이겠지. 네게 있어서 가족은 보잘것없을지언정 제국은 그렇지 않았어.’
왜?
전생에서 카릴은 단순히 그가 어진 왕이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형제를 죽여서 올라온 핏빛 황좌의 과거를 알게 된 이후 그저 어질기에 그가 그토록 제국에 집착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분명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과거를.
세 번째 불꽃이 암살을 뜻한다는 황궁의 비밀을 알려줬던 전생의 기억은 현생의 올리번을 몰아세웠던 잔인 도구로 쓰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는 그의 진심을 알 수 있는 도구로 카릴은 쓰고자 했다.
“어머니 때문인가.”
올리번은 카릴의 말에 얼굴이 굳어졌다.
“네가 서자라는 것은 제국인이라면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고작 그 이유 때문이라면 무른 성격이로군. 백금룡에게 휘둘리는 것이 당연해.”
[재수 없는 새끼로군. 헤임에서 보았을 때부터 역시 너는 나와 함께할 수 없는 놈이라 생각했다.]카릴은 쓴웃음을 지었다.
시체를 부활시킨 것이기에 눈빛에 생기가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일 터인데 어째서인지 그의 눈동자가 정확히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올리번은 찬찬히 그를 바라봤다.
[아니면 내 땅을 맡길 수 있는 유일한 놈이던가.]“…….”
순간 그의 말에 카릴은 당혹스러운 듯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 속에서 몇 번이나 목 안으로 단어들을 집어삼켰다.
제국은 맡길 수 있다는 말은 전생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미친놈. 네 땅? 네 땅은 고작 그 1평도 안 되는 관으로 만족해라.”
[재밌군……. 너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죽어서 오히려 더 편하니 말이야. 살아서는 서로 예의를 지키면서도 말에 칼을 겨누고 있었는데 지금은 상스러운 말을 해도 우스울 따름이로군. 너와 내가 친우가 된 것도 아닌데 말이지.]카릴은 불현듯 그의 말에 전생에 마지막 탑에 오르기 직전 자신이 올리번을 죽였을 때 그가 친우라 말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백금룡의 맹약이나 풀어.”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한 가지 부탁이 있다.]“뭐지?”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이 모두 끝났을 때 나를 한 번만 더 깨워다오.]“그렇게도 삶에 집착을 하는 녀석이었나?”
[보고 싶은 것이 있다.]“…….”
[이건 거래니까. 하지만 영혼계약이라면 사양한다. 죽고 난 뒤에야 네가 짊어지고 있는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저 많은 영혼을 그 작은 몸에 쑤셔 넣고 있는데도 머리가 어찌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야.]올리번은 카릴의 뒤를 응시하며 말했다.
거대한 장벽처럼 마치 죄업을 등에 메고 있는 것처럼 카릴의 머리 위로 보이는 거대한 산처럼 까마득한 크기의 정령왕들부터 알른의 영혼과 목을 조여오듯 감겨 있는 마엘의 형상에 숨을 조여오는 듯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맹약을 풀게 되어 백금룡의 힘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되면 뭘 하려는 거지?]“탑을 공략할 것이다.”
[너 역시 신에게 도전할 생각인가. 힘을 가진 자들은 결국 무모한 짓을 벌이지. 하지만 더 강한 존재에게 결국 패배할 뿐이야. 백금룡에 네게 졌듯 말이지.]“인간은 신보다 강하다.”
카릴은 고개를 가로젓고서 차갑게 말했다.
“뭐, 내가 강한 것이지만.”
[크큭…….]올리번은 헛웃음을 지었다.
[만약 네가 신에게서 살아남는다면……. 제국은 이제 네 이름 아래 번창할 수 있는가?]“불가능하다. 제국은 멸망했으니까.”
카릴은 올리번의 말에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서 대답했다.
“하나 자유국은 번영을 이룰 것이다. 북부에서부터 남부까지. 동쪽에서부터 해협을 건너 해가 지는 서쪽까지 내 이름이 아닌 자유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은 살아갈 것이다. 네가 날 돕기만 한다면.”
[……내가 이루고 싶었던 꿈이로군.]올리번은 허탈한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나 보고 싶은 광경이기도 하지.]그는 자신의 손목을 들어 올리고선 카릴의 허리에 있던 검을 꺼내어 베었다.
얼어붙은 것처럼 살점은 감각 없이 잘려 나갔다.
주르륵-
창백한 피부와 달리 그 안에 피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듯 흘러내렸다.
“계약은? 황궁의 보고에 언령계약서가 남아 있을 텐데. 그거라면 사자(死者)라도 가능할 것이다.”
[필요 없다. 언령이든 영혼이든 내게는 더 이상 무의미한 것이니까. 단지 약속을 해주면 좋겠군. 그게 가장 인간다운 방법이니까.]올리번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만약 네가 약속을 지켜 날 다시 깨워준다면 그때는 내 심장 속에 남겨 둔 이야기 하나 할 수 있겠지.]“뭐?”
우우우우웅…….
[비록 내 심장은 죽어버렸지만.]그 순간, 그의 몸이 산화되듯 빛무리와 함께 사라지기 시작했다.
[네가 살아 있으니. 카릴 맥거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