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442)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442화(442/497)
265. 정령계 (2)
“지금 생각하면 황금십자회의 존재 의의가 어쩌면 이 책을 보관하고 언젠가 이 책의 주인을 찾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데릴 하리안은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카이에 에시르가 살았던 차원의 파렐이 이곳에 있다는 말은 적어도 그 차원에는 파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겠죠.”
카릴은 그의 말을 말없이 들었다.
“그렇다면 카이에 에시르는 파렐과 저희가 겪고 있는 이 신의 싸움을 극복했다는 것 아닐까요?”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의 일기장에는 저희가 볼 수 없는 페이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카릴 님이라면 다르리라 생각됩니다. 제 생각엔…….”
데릴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그 페이지에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 나와 있는 것이 아닐까요?”
“됐어.”
“……네?”
카릴의 대답에 데릴 하리안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보지 않을 거니까 네가 계속해서 보관하고 있어.”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카릴 님께서 싸우시는 것 아니십니까? 그렇다면 더 확실한 방법을 찾는 것이 당연하잖습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냐.”
데릴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지금부터 정령계에 다녀올 것이다. 그곳에서 거암군주를 얻을 것이다. 정령왕들 중에 유일하게 정령계에 숨은 녀석이야. 그를 다시금 전쟁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그러니 더더욱 확실한 방법이 필요하죠.”
“지금 필요한 것은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실한 방법이 아니야. 거암군주가 나를 따라 이 확률이 낮은 전쟁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나를 믿는 것이지.”
“승리의 방법이 아니라 주군 자체를 믿게 만드는 것…… 이란 말씀이십니까?”
카릴은 그의 물음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뭐, 내가 그 일기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마 나 역시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겠지. 네게 카이에 에시르가 남긴 글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도 흔들렸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누구나 싸움에 있어서 패배를 원하는 자는 없으니까.]“하지만 그의 일기를 보고 난다면 거암군주를 만났을 때 나는 나 스스로를 말하기 전에 이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먼저 꺼내게 될 거야.”
데릴 하리안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주군의 뜻이라면 그리 하심이 마땅합니다.”
[고집스럽긴…….]“내가 모든 정령을 다스리게 되었을 때 그 일기장을 다시 찾겠다. 그때까지 네가 잘 보관해 줘.”
“알겠습니다.”
카릴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난 데릴이 물러나려 할 때 카릴이 그를 불렀다.
“내가 없는 동안 이곳을 잘 부탁한다. 아마 다음 재해 때는 황금십자회의 힘이 필요할 수도 있어.”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이제 잘린 팔을 붙이도록 해. 한 손으로 싸우는 것은 불편할 테니까. 치료하는 방법이야 알고 있겠지?”
“감사합니다.”
데릴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저 역시 한 가지 목표가 생겼습니다. 카릴 님께서 돌아오실 때 새로운 신수를 부활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 역시 황금십자회의 목적이었으니 말이죠.”
“기대하지. 앤섬에게 이야기를 해두마. 황금십자회에게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스아아아악……!!
카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붉은 비늘이 날갯짓하며 날아올랐다. 성벽 난간을 밟으며 그가 뛰어올라 녀석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크르르르르!!!]그가 고삐를 잡아당기자 붉은 비늘이 북부를 향해 날아올랐다.
* * *
츠으으으으으…….
날카로운 스파크와 함께 상공에 생성된 차원문이 사라짐과 동시에 카릴이 바닥에 착지했다.
쿵-!!
바닥에 선 카릴은 살짝 일어나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가볍게 눌렀다.
“파렐 이후로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군.”
차원을 넘는 행위와 시간을 거스르는 행위는 다르면서도 비슷했다. 카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녹음이 짙은 산과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은 겨울의 대륙과는 완전히 달랐다.
“라미느, 우리가 제대로 온 게 맞나?”
노움국에 도착한 카릴은 그 안의 동굴에 있는 영혼샘을 발동시켰다. 사실 엘프의 보고에서 얻었던 샘의 정수를 쓰면서도 짐짓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기에 그는 도착하자마자 물었다.
[흐음, 정령계가 맞군.] [얼마 만인지…….] [하하하, 돌아올 수 있다니!! 아니, 원래는 이미 돌아왔어야 할 곳이었는데……!]카릴의 주위로 정령왕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화르르륵!!!
거대한 화염 거인의 형상을 한 라미느의 본 모습을 본 것은 처음 그를 만났던 염룡의 레어 이후 처음이었다. 뿐만 아니라 에테랄, 사미아드, 라시스, 두아트까지 본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간계였다면 그들을 한꺼번에 부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나타났음에도 카릴은 자신의 정령력이 크게 소모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제대로 찾아오긴 했나 보군.”
카릴은 그들을 바라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령왕들이 저렇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내비치는 적은 처음이었다.
‘하긴, 정령왕이라 해도 결국은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하지. 신도 그렇고 인간도 그렇고 결국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인데 정령왕이라 해서 다를 건 없겠지.’
그들 역시 왕좌에 오른 존재들이지만 분명 감정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으니까.
쿠그그그그그…….
그때였다.
마치 시간을 빠르게 감는 것처럼 맑았던 하늘이 급격하게 어두워지고 보이지 않았던 구름이 먹구름이 되어 카릴을 가렸다.
“……무슨 일이지?”
[예전에 정령계가 소실되어 간다고 말했었지. 지금 이곳은 신화시대 이후로 계속해서 힘을 잃어 감에 불안정한 차원이 되어버렸다.]라미느는 주위를 훑으며 말했다.
콰강! 콰강!!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들렸고 어두웠던 하늘은 이제 다시 붉게 변했고 먹구름과 함께 쏟아지던 비가 이제는 눈으로 바뀌어 을씨년스러워졌다.
[그 불안정이 더욱 심해진 것 같군…….]“너희들이 봉인에 풀렸는데도 어째서 정령계는 돌아오지 않는 거지?”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우리의 봉인과 정령계는 무관한 일이 되어버렸어. 이 세계가 이미 율라의 지배 아래에 놓였기 때문이니까.]에테랄 역시 자신들의 차원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조금 전의 기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듯 보였다.
[그렇다고 완전히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 나쁜 쪽으로 말이야. 정령왕들의 부재는 곧 율라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의미하니 이 세계의 붕괴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겠지.]“흐음…….”
[율라는 정령계를 소멸시키고 싶어 하니까.]카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한데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왜 녀석은 인간계는 번거롭게 신탁이라는 행위를 이용하는 거지?”
[정령계와 인간계는 다르다. 율라는 정령을 소멸의 대상으로 보지만 인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령은 신과 함께 균열에서 태어난 존재이지만 인간은 신이 만든 존재니까. 자신의 피조물이기에 그런 것이겠지.]하지만 라미느의 말에도 불구하고 카릴은 오히려 차갑게 웃었다.
“피조물에 대한 사랑? 자신들의 놀이판쯤으로 생각하겠지. 장난감을 모두 부숴 버리면 가지고 놀 것이 없을 테니까.”
카릴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글쎄. 그게 사랑이든 유희든 적어도 율라는 인간계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부수려 하지 않아. 카릴, 너는 모를 것이다. 신령 대전의 패배 이후 그녀가 정령계에 강림했을 때의 끔찍한 광경을…….]라미느의 말에 다른 정령왕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보지는 못했지만 이 세계의 풍경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예상이 가는걸.”
마치 환상처럼 처음 정령계에 도착했을 때의 따스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폐허처럼 변한 풍경은 치열했던 싸움의 증거였다.
“이게 신과 싸움의 결과인 건가…….”
[우리의 세계를 이렇게 만들 순 없지.]“물론이야. 그런데…….”
카릴은 알른 자비우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을 바라봤다.
“인간계와 달리 이곳은 율라가 직접 파괴했다고 한 말이 정말이긴 한가 보군. 저기 보이는 ‘저것’이 정령계에 사는 존재는 아닌 것 같으니까.”
[……!!!] [……!!!]그 순간 정령왕들이 카릴의 말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쿠그그그그…….
카릴이 가리킨 방향엔 무너진 바위의 잔해들이 있었고 그 위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유…… 율라?]라미느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투툭……. 푸스스스…….
마치 그의 말에 대답하기라도 하는 듯 그녀의 발아래에 있는 잔해들이 부스러졌다.
[어째서 저자가…….] [설마…….]“드디어 만나게 되는군.”
그녀는 기다리느라 지쳤다는 듯 신경질적인 발길질로 바위들을 툭툭 두들겼다.
“나는 딱히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한발 늦은 모양이로군, 정령계의 문이 열린 것을 알고 날 기다렸나?”
카릴은 부서진 잔해들을 보며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녀가 서 있는 바위에서 막툰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 경계할 필요 없다.”
그녀는 가볍게 손을 털고서 카릴을 향해 웃었다.
“그래, 카릴 맥거번. 네 말대로 나는 네가 이곳에 오기를 기다렸다. 이곳이 아니면 우리가 함께 조우할 수 있는 공간이 없으니……. 신에게 반역을 저지르려는 가련한 인간을 보고 싶었거든.”
“헛소리.”
“처음 만났을 때도 그러하고 너란 인간은 참으로 흥미롭구나. 내게 이렇게까지 적대감을 품는 자는 처음이거든.”
“차원 하나를 붕괴시킨 녀석이 뭐가 그리 당당하다고 선량한 얼굴을 하고 있지?”
카릴은 자신도 모르게 한쪽 손이 허리에 있는 검을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눈앞에 있는 존재는 신이었다.
율라와의 조우를 기다리기는 했었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지 못하게 일어날 줄은 몰랐다.
[그래?]그 순간, 율라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그럼 이렇게 해야 네가 바라는 신의 모습인가?]“……!!!”
숨이 조여오는 기분이었다.
[카릴!!!]그 순간 라미느가 자신의 힘을 폭발시키며 뜨거운 화염을 뿜어냈다. 동시에 라시스와 두아트가 빛과 어둠의 힘으로 그를 보호했고 에테랄과 사미아드는 그녀를 향해 얼음 기둥과 바람 칼날을 쏟아냈다.
쾅! 콰아아앙!!
콰가가가가가강……!!!!
요란한 폭음소리와 함께 율라의 주변에 정령왕들의 기운이 강렬하게 퍼졌다.
“수천 년이 지나도 너희들은 변한 것이 없구나.”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며 율라의 표정은 평온했다. 강렬하게 쏟아지는 그들의 기세와 달리 그녀는 마치 산들바람을 맞이한 것처럼 가볍게 머리카락이 흔들릴 뿐이었다.
“여전히 나에게 반기를 들려 하는 불손한 놈들. 내가 너희들의 봉인이 풀린 것을 알면서도 왜 그냥 두었을지 생각이나 해보았는가?”
[큭…….] [으윽……!!]그녀의 목소리가 한 번씩 울릴 때마다 정령왕의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모른 척해준 것일 뿐이다. 그러니 인사치레는 여기까지다. 더 이상 나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너희들도 이 꼴로 만들 테니…….”
그녀는 품 안에서 작은 바위 조각 하나를 꺼내어 손바닥 위에 펼쳤다.
“대화에 끼어들지 마라.”
단 한마디에 불과했으나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너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이니라. 카릴. 게다가 원하는 대답을 준다면…… 네게 줄 수도 있다.”
그녀는 바윗덩이 하나를 보였다.
“막툰의 심장이다. 아직 거암군주는 죽지 아니하였으니 그의 힘을 네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율라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 순간,
차앙-!!!
카릴은 대답 대신 그녀를 향해 검을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