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446)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446화(446/497)
268. 태도
“하늘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키누 무카리는 만환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정확한 그의 시야로 저 멀리 붉은 노을이 지는 것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군께서 말씀하신 세 번째 재해가 올 징조겠군요.”
“놈들을 막을 대비는 끝났습니다.”
성벽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저 멀리 핏빛으로 물든 달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연……. 완벽한 대비일까.”
밀리아나는 키누의 말에 굳은 얼굴로 물었다.
“주군께서 말씀하시길 세 번째 재해라 불리는 타락, 라이스(Lice)는 형체를 찾기 어려운 마물이라 하였습니다. 아마 헤크트와는 반대로 그들은 아주 미세하고 육안으로 찾기 어려운 타락일 겁니다.”
“육안으로 찾을 수 없는 괴물이라면……. 과연 저희들이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베이칸 역시 그녀의 불안감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우리는 검의 길을 가는 자이지만 모든 것을 검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야. 재해 역시 마찬가지지. 바위를 검으로 가를 순 있어도 물을 베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제라면 물도 가르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시르의 말에 밀리아나는 피식 웃었다.
“늑여우의 수장도 이제 꽤 능글맞아졌군.”
그녀를 보며 하시르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가 가진 힘은 검만이 아니다. 이번 재해에 있어 필요한 것은 검이 아니라 마법일 터. 검을 쥔 자들은 마법을 보좌하며 싸워야 할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러기 위해 널 부른 것이기도 하다.”
밀리아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을 따라 다른 이들의 눈길도 그쪽으로 움직였다.
“세르가.”
그곳에는 유수한 눈빛을 가진 미남자가 서 있었다. 제국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는 아카데미를 상징하는 로브를 입고 있었다.
“아니면 레핀이라 불러줄까? 이름으로 불린 적은 어린 시절 이후로 처음 아냐? 세르가 가문은 가주를 성으로 부른다는 규율이 있다지만 제국의 세르가 가문은 이제 없어졌잖아.”
모두가 침묵했다.
낯선 이방인을 보는 듯한 긴장 된 시선.
그도 그럴 것이 제국의 최연소 대마법사라 불리던 레핀 세르가는 소문만 무성했지 그를 제대로 만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저자인가…….’
‘생각보다 어리군.’
‘무척이나 여리게 생겼는데 과연……. 전쟁에서 쓸모가 있을까? 서재에 틀어박혀 책만 볼 것처럼 생겼는데.’
그에 대한 북부와 남부인들의 평가는 썩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제국이 멸망하고 카릴의 자유국이 세워졌을 당시에도 아카데미의 수장인 카딘 루에르와 달리 투항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를 그저 콧대 높고 세상 물정 모르는 자로 보였을 테니까.
“세르가로 충분합니다. 나라가 없어졌다 한들 혈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니까요.”
“……!!!”
하지만 그의 마력이 섞인 음성을 듣는 순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무슨…….’
실로 놀라울 정도로 청명한 목소리였다.
마치 투명한 유리를 보는 것처럼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사람들은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레핀 세르가가 저 정도로 대단한 마법사였나? 천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으리라 생각되는데.’
놀라는 것은 단순히 마력의 경험이 적은 북부와 남부인만은 아니었다. 공국 출신인 앤섬 하워드는 세르가를 의아한 듯 바라봤다.
“혈통이라……. 그럼 이제부터 네가 어찌 나를 대해야 하는 것인지도 잘 알겠군. 안 그래?”
밀리아나의 말에 세르가는 살짝 굳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이내 곧 허리를 숙였다.
“물론입니다. 마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드래곤 위에 선 존재시여. 당신의 부름이라면 따르겠습니다.”
“콧대가 높은 자라고 들었는데……. 잘도 구워삶았군. 아주 만족스러운걸. 에누마 엘라시.”
세르가와 함께 나타난 그의 뒤에 서 있는 세 사람은 밀리아나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의 몸에 태초의 고룡인 토스카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우리들이 도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네.”
낮고 굵은 목소리.
드래곤 로드인 에누마 엘라시였다.
뿐만 아니라 그를 비롯하여 레드 드래곤 퓌톤과 그린 드래곤 크루아흐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물론 그를 회유하기 위해서 드래곤의 마법을 가르쳐 준 것은 아무리 자네라도 우리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이야. 당신의 주군이…… 그를 원한다고 하여 우리가 금기를 어긴 것이니까.”
“금기는 무슨. 세상이 망할 직전인데 그런 게 무슨 소용이람.”
밀리아나의 대답에 에누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에야말로 마법의 힘이 필요할 때다. 적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고 어디부터 공격할지 모른다. 우리는 그저 대비할 뿐이지.”
그녀는 세르가를 바라봤다.
“카딘 루에르를 대신해서 네가 아카데미의 마법사들을 이끌고 전선에 투입돼야 할 거야. 지금까지 얼굴을 보이지 않은 만큼 실력을 믿어도 되겠지.”
“저는 마법 병대를 이끌 만큼의 그릇이 크지 않습니다. 아카데미는 계속해서 카딘 경께서 맡아주시고 저는 따로 행동하겠습니다.”
세르가의 대답에 밀리아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너는 카릴과 함께 탑을 공략한 10인 중 하나다. 전선에 있는 시간은 그다지 오랫동안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네 존재는 확실히 증명하도록.”
“알겠습니다.”
“그건 우리가 보장하지. 그의 마력적 재능은 확실히 뛰어나더군. 로드의 명이 없었더라도 가르치는 보람이 있었어.”
둘을 보고 있던 에누마의 옆에 서 있던 퓌톤이 말했다. 그의 말에 크루아흐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 드래곤의 마법을 모두 배운 건가? 세르가, 내 덕분에 마법사로서 감당할 수 없는 행운을 받았군. 내게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냐?”
밀리아나는 농담처럼 웃으며 말했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미하일과 세리카 로렌의 표정이 굳어졌다.
같은 마법사로서 두 사람은 자신들이 활약하는 곳에서 항상 그의 이름이 거론되었던 것을 기억했다.
존재하지 않음에도 누구보다 뚜렷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던 그가 이제는 드래곤의 제자가 되어 나타났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울카스 길드는 두 분을 지지합니다. 비록 드래곤에 비할 바는 못하여도 대륙 어느 마법 집단과 겨루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톰슨이 그런 둘의 마음을 읽었는지 나지막한 귓속말을 했다. 이렇다 할 특색이 없던 마법사였던 그였기에 누구보다 경쟁자를 대하는 사람의 불안함을 잘 알았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저자와 다른 길을 걷고 있어.”
하지만 그의 걱정과 달리 미하일과 세리카 로렌은 세르가의 등장을 불안감이 아닌 새로운 라이벌로 여기고 오히려 호승심을 불태웠다.
“하하, 제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군요.”
톰슨은 자신이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세르가 못지않게 자신과 함께 있는 저 둘도 다른 의미로 천재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에게 족쇄가 되는 마법 역시 폴세티아로 만들어진 것. 그대들은 모르겠지만 황금룡의 마법은 드래곤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것이다. 물론 단순히 우리에게 채워진 목줄 때문에 너희를 돕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곳에 오니 놀라운 일이 또 있더군.”
에누마 엘라시는 밀리아나를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뒤를 주시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를 따라 남은 두 드래곤도 고개를 숙였다.
“태양을 뵈옵니다.”
“허허……. 어서 일어나게. 로드여.”
“그리 부르지 마십시오. 이 자리는 이제 당신께 다시 돌아감이 마땅합니다.”
이 세계에서 에누마 엘라시가 이토록 극존칭을 쓰는 존재는 단 한 명뿐일 것이다. 토스카는 이제 대륙에 유일하게 남은 세 드래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죽은 존재다. 그대들과는 다르네.”
“두 번째 재해를 막은 것이 토스카님의 힘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태양의 힘이 대륙 전역에 뿌려졌을 때 솔직히 저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카릴의 도움이 있었다. 그가 나를 봉인에서 풀어주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
“역시……. 그가 한 일이군요. 놀랍다는 말로는 부족하겠습니다. 그는 대륙의 모든 사건의 중심이니까요.”
“하나 그조차도 해내기 어려운 일이 있다. 그러니 그대들이 카릴에게 아니, 인류에 힘을 빌려주었으면 좋겠다.”
토스카는 에누마 엘라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육체가 아닌 마법의 힘으로 만들어진 그의 몸은 옅게 투명했다.
“과거 신화시대에 내가 그러했듯이. 인간을 낮추어 생각하지 말고 동료로서 바라보거라.”
“……명심하겠습니다.”
그는 에누마의 대답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구나. 어린 시절 보고 난 이후 처음이니……. 너 역시 고룡의 반열에 올랐겠지만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들은 감회가 새로운 얼굴로 대화를 나누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했다.”
밀리아나는 드래곤들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조금 전 느꼈던 불안감을 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것이 전투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님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카릴……. 네 존재가 이리도 컸다니. 전사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구나.’
그의 부재로 오는 불안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전사로서의 부끄러움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몰랐다.
“전투에 앞서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 사기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아무래도 연이은 싸움에 나 역시 지쳤나 보군…….”
밀리아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애써 자신의 감정을 부정했다.
“용의 여제께서 어찌 그러한 말씀을 하십니까.”
베이칸의 대답에 밀리아나는 피식 웃었다.
“그보단 너희들 얘기를 듣고 싶군. 파렐은 어떤 곳이었지? 앞으로 겪을 전쟁보다 더한 곳이었을까?”
“별것 없었다. 하지만 이 몸이 없었다면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했을걸.”
그녀의 물음에 화린은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글쎄요……. 솔직히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 적어도 이곳은 제가 나고 자란 곳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탈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끔찍한 괴물들이 즐비한 그곳은 한시라도 벗어나고 싶다는 지독한 압박이 저희를 괴롭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와 달리 베이칸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맞습니다. 만약 그런 곳에 혼자 있다면…….”
키누 무카리는 상상만으로도 긴장이 된 듯 바짝 마른 입술로 말했다.
“저희는 미쳐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 * *
“흐음.”
카릴은 천천히 눈을 떴다.
“이제야 좀 익숙해지는 것 같군.”
그러고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두 다리에 새겨진 늑대 갈기 모양의 문신 같은 검은 문양을 바라봤다.
[크르르르…….]카릴은 옆에 서 있는 거대한 늑대의 머리를 툭툭 치고는 녀석의 머리를 밟고 올라탔다.
“한숨 잘 테니까 입구 가서 깨워.”
마치 제 방 침대에 드러눕는 것처럼 몸을 풀며 경계심 없이 라이칸스로프의 등에 올라타자마자 눈을 감았다.
[크르…….]그런 카릴을 보며 늑대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그저 낮게 울 뿐이었다. 라이칸스로프의 뒤엔 마물의 시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늑대는 저 멀리 보이는 파렐의 출구를 향해 달려갔다.
화아아악……!!
카릴이 떠나는 순간 수천 마리의 시체들이 마치 불에 타 재가 된 것처럼 바스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