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456)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456화(456/497)
273. 공평한 기회
“흥미롭군.”
거대한 기둥이 원형으로 세워진 사원에는 신기하게도 천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명한 듯 밤하늘이 온전하게 보였다.
별들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고 은하수가 흐르며 저 멀리 행성들의 운행이 또렷하게 나타났다.
단순한 밤하늘이 아니었다.
사원의 한 가운데엔 원형의 탁자가 있었고 그 주위로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원탁의 한편에는 상석인 듯 보이는, 다른 의자들과 달리 화려하고 큰 의자 하나가 있었는데 그 자리만 유일하게 비어 있었다.
“인간의 기지라고 해야 할지…….”
의자에 앉아 있는 한 노인이 탁자 아래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은 어리석은 도전이라고 해야 할지도.”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무엇이 되었든 이런 식으로 파렐을 공략한 자가 있던가.”
여인이 말했다.
그녀의 입술은 신비한 청록색이었는데 마치 보석이 반짝이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새하얀 로브를 머리까지 쓰고 있었는데 목소리와 이따금 사이로 보이는 뺨과 입술 정도로 나이와 성별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파렐을 공략한 자는 없었다. 그러니 방법을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
상석의 반대편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여인은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탁자 가운데엔 일렁이는 물빛이 보였는데 그 속에는 거대한 탑과 타락과 싸우는 모습이 비쳤다.
“하지만 당신이 파렐 공략이 실패하길 바라진 않을 것 같은데.”
그녀는 그 전투를 바라봤다.
후드를 벗은 그녀는 다름 아닌 여신(女神) 율라였다.
“실로 대단하지 않은가. 어찌 되었든 파렐을 막아낸다면 이 놀이의 승자는 율라, 자네가 될 것이니까.”
“로드(Lord)의 자리를 정하는 승부를 놀이라고 말하다니. 조금은 진지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클클……. 때로는 가볍게 세계를 보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으니 말이야.”
율라는 노인을 향해 혀를 찼다.
“저런 방법으로 파렐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유를 부리는 것은 아니고? 인간을 닮아가는 것 같군. 능구렁이 같긴…….”
그녀의 말에 노인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인간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우리의 성향을 이어받은 것이겠지.”
“그리고 그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저런 무모함일 테고 말이야. 신이 만든 규율을 깨뜨리려 하다니……. 피조물은 피조물답게 허튼 생각 따윈 버릴 것이지.”
맞은 편의 남자는 못마땅한 듯 말했다.
“태초의 균열에서 태어난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율의지를 한낱 피조물에게 내려 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실수였다고 본다. 그러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반발이 일어나지.”
“자율의지를 준 것은 우리가 아닐세. 그들 역시 자신의 세계에서 스스로 깨우친 것이지.”
“그로 인해 로드(Lord)가 당한 것 아닙니까. 게다가 율라의 계(界)에선 그녀에게 반기를 든 신령 대전도 일어났고요. 애초에 세계의 구성을 위해서라면 미물도 상관없습니다.”
뱀의 입술을 가진 여자가 남자의 의견에 무게를 보태었다.
“그래서 그대의 차원은 미생물로만 가득한 겐가?”
노인의 말에 여인은 냉소를 지었다.
“그 어떤 차원보다 깨끗하죠.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니까요.”
“그래 봐야 그대도 실패하지 않았는가. 자네의 헤크트는 고룡의 빛에 소멸되었으니……. 파충류에게 급하게 지능을 주니 그런 아둔한 싸움을 하는 게야.”
“…….”
“자네도 말과 달리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지. 자신의 세계와 달리 지능을 주었으니 말이야. 지능을 주려면 지혜를 가진 자가 해야 하는 법인 것을.”
그의 비웃음에 여인의 입술이 씰룩이기만 할 뿐 대답하지 못했다.
“과연 파렐이 무너지는 것이 먼저일지, 율라 자네의 세계가 파괴되는 것이 먼저일지 궁금하군.”
“쉽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자네도 저런 식으로 파렐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당신의 타락이 내 세계를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죠.”
율라의 말에 노인은 입꼬리를 올렸다.
“나의 타락은 첫 번째와 두 번째와는 다를 것이야.”
“……과연?”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는 것 마냥 율라는 노인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웃기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신이 만든 파렐을 고작 인간이 부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 피조물이 신의 힘을 거스를 수 없다.’
그렇게 확신했다.
왜냐면 그것이 신과 인간의 차이이며 태초부터 정해진 규율이었으니까.
‘그런데…….’
다른 신들과 달리 율라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만일에 하나 파렐을 정말로 힘으로 부술 수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에 존재한다는 뜻일 테니까.
‘그럴 리 없어.’
율라는 조금 전 인간을 닮아간다며 나무랐던 자신도 어쩌면 인간의 불안감을 닮아 버린 것일지 모른다는 사실에 불쾌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 * *
[비켜라!! 비켜!!!]자르카 호치는 양팔을 들어 올려 사방으로 휘저었다. 그의 팔이 움직일 때마다 날카로운 풍압이 일었고 주위의 타락견들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골렘의 마격포나 천공성의 광포 공격과 달리 그의 공격에 당한 타락견들은 더 이상 점액으로 변하지 못한 채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산화되었다.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령술사인 그는 타락의 부활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혼자서 가능하긴 무슨……. 이래서 어느 세월에 길을 뚫겠다는 거냐. 저놈들이 평범한 뼈다귀라 생각하느냐. 타락을 다뤄본 적도 없는 사령술사 따위가 하는 일이야 고작 이 정도지.”
하지만 소멸하는 타락견들을 보면서도 나인 다르혼은 놀라지 않는 표정이었다.
“슬레이브(Slave).”
그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자 그의 주위로 불사의 군단이 나타났다.
콰가가가각!! 콰가가각!!
사방으로 흩어지는 슬레이브들은 타락견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하하, 봤느냐!!”
아스칼론의 앞으로 자르카 호치와 나인 다르혼이 만들어 낸 길이 나타났다.
“수다 떨라고 내가 너희를 부른 게 아닐 텐데.”
카릴은 아스칼론의 어깨에서 내려와 두 사람을 지나가며 말했다.
“내가 너희를 불러낸 건 타락에 가장 유효한 힘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만한 값어치를 해야지.”
카릴의 검격에 일순간 대지가 갈라졌다.
“라미느. 라시스.”
그가 호명하자 양옆으로 폭염왕과 빛의 정령왕이 나타났다.
“쓸어.”
콰가가가가가각—!!
콰가강—!!
자르카 호치와 나인 다르혼이 만들어 낸 길을 따라 빛과 화염이 쏟아지자 타락견들은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듯 황급히 물러섰다.
쿵-! 쿵-! 쿵–!!
아스칼론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불길을 밟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멈춰라.]그때였다.
타락견 뒤에 있던 모라크스 중 한 마리가 아스칼론의 앞을 막아섰다.
“흐아아아아아!!!”
크가각! 카가가가가가각—!!!!
윈겔 하르트가 있는 힘껏 아스카론의 대검을 휘둘렀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모라크스의 앞에 검이 떨어졌다.
카강!
하지만 풍압을 일으키는 검격과 달리 거대한 대검이 튕겨 나가듯 멈췄다.
“컥?!”
갑작스러운 반발력에 아스칼론이 휘청거렸다.
[엑소디아(Exordiar)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자는 오직 엑소디아를 끝낸 자만이 가능하다.]엑소디아(Exordiar).
태초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신좌의 전쟁.
최고신이라 불리는 로드의 죽음 이후 그 공석의 주인을 정하기 위한 파렐의 등장과 재해의 강림 역시 일종의 엑소디아라 할 수 있었다.
일전에 크웰과 고든을 앞에 두고 마엘이 엑소디아에 대하여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전에도 카릴은 엑소디아에 대하여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저놈들에게서.
“그래, 너희들은 그때도 그렇게 얘기했지.”
[……!!!]아스칼론의 일격을 너무나도 쉽게 막아낸 모라크스는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란 듯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놈!!!]나머지 2마리의 모라크스가 카릴을 향해 검을 들어 올렸고 뿔피리를 불던 녀석이 세게 피리를 불자 타락견들이 일제히 카릴을 향해 달려들었다.
“엑소디아는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카릴은 오히려 감회가 새롭다는 듯 모라크스들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전생에서도 파렐에 도전하기에 앞서 놈들은 지금과 똑같이 자신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기계처럼 저 말을 똑같이 내뱉었다.
재해를 막는 데 실패하고 인류는 멸망의 미래만을 앞둔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놈들은 재해를 막은 자에게만 파렐을 공략할 권리를 주겠다고 했다.
우습지 않은가.
서걱-
앞뒤 양옆으로 그를 애워싸고 있던 모라크스들이 움찔거렸다.
크그그그그그……!!!
그들 중 한 마리가 검을 들어 올렸다.
“조, 조심!!”
윈겔이 그 모습을 보며 황급히 아스칼론의 레버를 잡아당기며 앞으로 달려 나가려 했다.
그러나 자신을 공격하려는 모라크스에도 불구하고 카릴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툭-
검을 든 모라크스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던 검이 힘없이 바스라졌다.
[……!!!]그 광경에 나머지 두 마리의 모라크스들은 다급하게 검을 거두며 물러서려 했다.
촤아아악……! 촥……!!
카그극!!!
간신히 카릴의 공격을 막았지만 보이지 않는 충격파에 공기가 터져 나가며 두 녀석은 그대로 뒤로 밀려나며 나뒹굴었다.
‘그때는 백금룡의 도움으로 도망치듯 너희를 피해 파렐에 들어갔지만, 이번엔 다르다.’
동료의 시체를 보며 모라스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표정 볼만한데. 네놈들에게도 감정은 있나 보지?”
카릴은 마치 전생에 베지 못했던 놈들에게 분풀이라도 하는 것처럼 바득- 이를 갈며 말했다.
[저렇게 쉽게…….]“우리끼리 승부를 내겠다고 열을 올린 건 그의 눈엔 어린애 장난처럼 보였겠어.”
“…….”
자르카 호치와 나인 다르혼은 확인을 하듯 모라크스의 잘린 머리를 있는 힘껏 밟아 부수는 카릴을 보며 할 말을 잃은 얼굴이었다.
[너.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긴 했던 거냐?]카릴은 그의 물음에 피식 웃었다.
“물론 필요하지.”
저벅- 저벅- 저벅-
그리고 그는 천천히 파렐을 향해 걸어갔다.
[멈춰라!!!] [크아!!!]조금 전 나뒹굴었던 두 마리의 모라크스가 그의 걸음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
콰앙!!! 콰가가강—!!
“어딜?”
하지만 그 순간 나인 다르혼의 실드와 자르카 호치의 검날이 그들을 막았다.
“봐봐. 필요하잖아.”
“하, 하하…….”
나인 다르혼은 넌지시 말하는 그의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 * *
“…….”
“…….”
원탁의 주위는 침묵으로 뒤덮였다.
모라크스의 죽음에 율라를 포함하여 다른 신들 역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말레크를 죽일 때도 그렇고 어떻게 인간이 신의 종속인 세크무트의 최상위종을 저렇게 쉽게 죽일 수 있는 거지? 저들은 우리도 양산할 수 없을 만큼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인데…….”
첫 번째 재해를 일으켰던 남자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카릴을 바라봤다.
“그는 용의 심장을 두 개나 가진 인간이야. 솔직히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 정도의 힘을 가졌다면 모라크스를 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 터. 하지만 거기까지겠지.”
노인은 카릴의 전투에 흥미를 보였지만 이내 곧 평정심을 찾은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봐야 인간. 거기까지가 한계겠지.”
하지만 꼿꼿하게 허리를 세웠던 그는 처음과 달리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긴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다음에 카릴이 어떻게 나올지 그 역시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전에 내 재해가 대륙을 삼킬 것일세.”
“…….”
그런 그를 바라보며 율라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 * *
콰앙—!!!!! 쾅-!!!!
뿔피리를 불던 모라크스가 파렐을 향해 걸어가는 카릴을 저지하기 위해 타락견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그가 가는 길 앞에 아스칼론과 골렘 부대들이 방벽을 만들며 타락견들을 저지했다.
“주군!!!”
윈겔 하르트의 외침과 동시에 천공성에서 일제히 폭격이 일었다.
쾅! 쾅! 콰앙—!!!!
사방에서 나는 폭음 속에 카릴은 파렐의 앞에 도착했다. 카릴은 반쯤 박혀 있는 아이기스를 보며 천천히 검을 뽑았다.
카앙—!!!
있는 힘껏 내려친 폴세티아의 검이 튕겨 나갔다.
“…….”
카릴은 저릿저릿한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며 탑을 바라봤다.
“껄껄껄, 저것 보게. 내가 뭐라 했는가. 인간이 파렐을 힘으로 부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노인은 마경이 비추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다른 심들은 여전히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걸 부수면 율라의 승리. 하지만 부수지 못한다면 재해를 일으킨 다른 신의 승리. 이 뭣 같은 전쟁의 의의를 내가 정확히 알고 있는 게 맞나?”
파렐의 벽을 쓰다듬듯 카릴이 그 위에 손바닥을 올려뒀다.
“대답해 봐. 너희들, 거기 위에서 분명 우릴 지켜보고 있겠지.”
그러고는 천천히 위를 바라봤다.
“……저자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설마……. 엑소디아가 단순한 재해가 아니라 신좌를 결정하는 게임이라는 것을 그가 알고 있다는 말인가?”
“누가?”
“설마……!! 율라, 자네가!? 인간에게 엑소디아에 대해 얘기해 주다니!! 규율을 지켜야 할 신이 규율을 위반하다니!!!”
시종일관 침착을 유지하던 노인이 처음으로 율라를 향해 소리쳤다.
“어차피 파렐을 부수지 못할 거라 확신하지 않았나? 당신의 재해가 승리를 가져다줄 것임을 믿는다면 화를 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너……!!!”
노인은 율라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리듯 이를 갈았다. 하지만 이내 곧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등을 더욱 깊게 기울였다.
“그래, 틀린 말도 아니지. 하지만 엑소디아가 끝난 이후 율라, 자네의 조치는 따로 취해질 것이야.”
“…….”
그런 그에게서 율라는 고개를 돌렸다.
“흐음. 대답이 없군. 하긴 신이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이상한 일이려나.”
카릴은 아무런 전조도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듯 말했다.
“그럼 더 나타날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지.”
우우우우웅……!!
탑의 벽돌 위에 올려두었던 손바닥 사이로 마력이 일었다.
“파렐의 존재가 신좌를 결정하는 도구가 된다면……. 결국 내 행동에 따라 너희들의 자리가 결정된다는 말이잖아. 어쩔까. 내가 이걸 부술지 안 부술지……. 궁금하지 않아?”
푸욱-!!
그때였다.
놀랍게도 폴세티아의 검날을 튕겼던 파렐의 벽돌이 카릴의 손아귀에서 마치 사과를 베어 문 것처럼 손가락을 따라 바스라졌다.
콰앙—!!!
율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디, 디멘션 스파이럴?! 어째서 인간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인 겐가!!!”
“말도 안 돼……!”
그 순간 신전은 경악으로 가득 찼다.
꽈악-
“너희 입장을 잘 생각해라. 네놈들이 인간에게 명령한 게 아니야. 재해를 막는 것도 파렐을 공략하는 것도 결국은 내가 하는 것. 신좌를 결정하는 결정권은 내가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는 부스러진 탑의 벽돌 가루를 허공에 흩뿌리며 말했다.
“신좌(神座)를 가지고 싶은 놈. 내려와.”
그는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며 변동하는 하늘의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한다.”
“……뭐?”
“이런 미친……!!!!”
마경을 내려다보던 신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쳤다.
“감히 인간 주제에 신과 거래를 하겠다고?!”
“배은망덕한……!!!”
“상대해 줄 필요 없어! 이것은 규율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들은 저마다 분노에 찬 듯한 마디씩 내뱉었다.
“…….”
하지만 이미 권리를 잃어버린 남자와 뱀의 입술을 가진 여인만은 알 수 없게 흘러가는 이 상황을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신은 공평하다. 너희가 항상 하는 말이지.”
일렁이기 시작하는 하늘은 신들의 분노로 더욱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공평하게 기회를 주마.”
그들의 반응에 카릴은 냉소를 지으며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탁-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하나의 마경이 나타났고 그 속에서 보이는 긴장 가득한 얼굴의 이스라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뒤로 물러나 커다란 관의 뚜껑을 있는 힘껏 밀었다.
“……!!!”
“……!!!”
마경을 본 순간 기회를 잃은 두 명의 신의 눈동자가 커졌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박제되어 있는 혈과 헤크트의 시체가 있었다.
“너희들 모두에게.”
카릴의 마지막 말이 하늘에 닿는 순간 잃어버린 기회의 두 신의 입가에 기묘한 미소가 드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