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464)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464화(464/497)
274. 파렐 전(戰) (8)
“전투 준비.”
카릴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당신……. 정말로 율라와 싸울 생각이야? 100만의 인간 군세가 있다 한들 신에게 이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뱀 입술의 여인이 긴장된 얼굴로 카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너도 저쪽에 붙지그래? 그래 봐야 저 녀석과 같은 꼴이 될 것 같지만.”
“……승산은 있는 거죠?”
“과거 신화시대라 불렸던 시절에 신의 선택을 받은 최상위 종족들인 블레이더들이 반란을 일으켰었다. 하지만 그들은 패했고 모두가 봉인되거나 사라졌지.”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카릴의 말에 뱀 입술의 여인은 참지 못하고 화를 내듯 물었다.
죽음에 대한 불안감.
여느 신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이런 모습은 영락없는 인간을 닮았다.
“셀 수 없는 시간을 살았건만……. 이런 바보 같은 짓을 벌이고 말다니. 정말로 우릴 이용했던 것인가!”
“죽고 싶지 않다면 너도 싸워야 할 거다.”
불안해하는 그녀와 달리 카릴은 전투를 앞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 일인지 담담했다.
[율라……!!!!]그의 등 뒤로 거대한 화염 거인이 나타났다.
맹렬한 불길이 치솟자 기다렸다는 듯 정령왕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화시대 때의 복수를 하겠다!!] [이 날을 기다려왔도다!!]라미느를 필두로 2대 광야의 힘이 율라를 덮쳤다.
콰아아앙—!!!
율라의 정면으로 폭염왕의 화염이 쏟아졌고 그 뒤를 이어 빛의 날개가 율라를 감싼 동시에 두아트의 어둠의 칼날이 그녀의 뒷덜미를 노리며 박혔다.
정령왕들의 혼신을 담은 일격임에도 불구하고 율라는 가소롭다는 듯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막았다.
쉬이익……!!!
그녀가 팔을 한 번 휘젓자 업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빛의 날개는 부러졌으며 어둠의 칼날은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컥……!!] [크아아악……!!]날카로운 칼날에 종이가 찢기듯 정령왕들이 그녀의 일격에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섬격(殲擊).
폭발하듯 사라지는 정령왕들의 연기 사이로 카릴이 뛰어들었다. 폴세티아의 검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카로운 검격이 율라의 목을 노렸다.
스으앙……!! 스아아아앙……!!
하지만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부서졌던 정령왕들의 잔해가 마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응축되더니 날카로운 창날이 되어 그의 뒤를 노리며 날아왔다.
빠득-
카릴은 이를 꽉 깨물며 있는 힘껏 몸을 틀었다.
카앙!! 카강-!! 카카카카캉—!!
3개의 거대한 창날을 튕겨내자 그 충격에 창날이 부서졌지만 잔해들은 마치 살아 있는 듯이 카릴을 향해 쏟아 내렸다.
검날의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수백, 수천의 칼날이 그를 노렸다.
콰아아아앙……!!
그때였다.
쏟아지는 칼날을 뚫고 그의 앞을 막아선 수안 하자르가 자신의 건틀렛을 서로 마주 때리자 그의 앞에 희뿌연 실드가 만들어졌다.
“지금입니다!!!”
절대방어술이라 불리는 오토마타를 두른 수안이었지만 절대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끔찍할 정도로 그의 몸은 마치 고슴도치처럼 수많은 창날이 박혀 있었다.
“쿨럭……!!”
수안 하자르가 피를 토해내며 만들어 낸 일격의 기회.
지지지직……!! 쩌적!!!
에이단이 마치 탄환처럼 튀어 나가며 율라의 머리 위에서 뇌격과 뇌전을 찍어 눌렀다.
“으아아아아!!!!”
“눈동자에서 너무 속내가 보이는군.”
쿤겐이 뿜어내는 맹렬한 번개의 힘이 그녀를 강타했지만 율라는 에이단의 검날을 손가락으로 막아서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를 위한 틈을 만들기 위해서 몸을 내던지려는 의도가 말이지.”
그녀가 손날을 세워 에이단의 가슴을 찔렀다.
푸욱-
에이단은 황급히 피하려고 했지만 신속을 뛰어넘는 그조차 율라의 손아귀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쿨럭…….”
그의 등을 관통한 율라의 팔이 가슴 안쪽에서 빠져나오자 그녀의 손아귀에는 아직도 뛰고 있는 붉은 심장이 뽑힌 채 들려 있었다.
“어……. 어억…….”
에이단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살고 싶나? 그렇다면 빌어봐. 네 주인이 신을 우롱한 것처럼 네가 그의 욕을 뱉는다면 한 번쯤 기회를 줄 수도 있다.”
“퉷-!!”
하지만 에이단은 대답 대신 자신의 가슴 언저리에 난 커다란 구멍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빼며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율라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가 가차 없이 에이단의 얼굴을 뭉개버렸다.
퍼억……!!!
수박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동시에 그녀의 발아래 붉은 피가 터지듯 뿌려졌다.
[크아아아아아!!!!!]상공을 휘저으며 날아오른 토스카가 거대한 날개를 흔들며 포효를 질렀다.
솨아아아악—!!!
그의 입에서 수백 개의 빛무리가 호를 그리며 소나기처럼 율라를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황금룡의 브레스는 신에게 닿기 바로 직전 마치 어둠에 삼켜지듯이 사라졌다.
“여전하구나. 기억을 되찾고도 여전히 내게 반기를 들다니. 그래, 모든 드래곤이 내게 굴복했을 때도 네 고집만큼은 꺾지 못했지.”
그녀의 주위의 기운이 바뀌었다.
빛과 어둠.
신이 가진 2가지의 양면성을 대변하듯 조금 전까지 환하게 빛나던 그녀의 후광이 칠흑마저 삼킬 것처럼 어둡게 변했다.
[살아생전에 다 하지 못한 나에 대한 사죄. 그렇다면 사자(死者)가 된 지금 그 불경스러운 죗값을 치르거라.]마치 두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이중으로 들렸다.
솨아아아악……!! 차차착!!!
그녀가 싸늘하게 식어 버린 멈춘 심장을 바닥에 내던지고서 손을 들어 올리자 그녀의 그림자 속에 흡수되었던 토스카의 빛줄기들이 솟구쳤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던 조금 전과 달리 율라에 의해서 새로이 만들어진 빛줄기는 그녀의 그림자처럼 진한 어둠과 같은 색이었다.
마치 가시덩굴처럼 순식간에 자라난 어둠 줄기들이 토스카의 사지를 에워쌌다.
[크아아아악!!]어둠의 줄기가 황금룡에 닿자 마치 살을 태우는 것처럼 시커먼 연기가 그의 전신에서 솟구쳐 올랐다.
이미 죽은 본드래곤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통스러운 듯 몸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가 움직일수록 율라의 어둠 줄기는 더욱더 그의 살과 뼈를 옭아맬 뿐이었다.
[율라—!!!!!]분노에 찬 토스카의 외침이었지만 그녀에게서 돌아오는 것은 차디찬 냉소뿐이었다.
[어디 한번 발악해 봐라. 너희들이 머리를 굴린 결과가 파멸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테니!!!]신의 분노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파직……! 파가가각!!
황금룡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고룡은 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애썼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발사!!!!!”
“공격하라!!!!”
“전술 대형을 펼쳐라!!”
율라가 토스카에게 신경이 빼앗긴 순간 자유군이 일제히 진격을 알렸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
“흐아아아!!!”
윈겔 하르트의 아스칼론이 파렐에 꽂혀 있던 아이기스를 뽑아 들고서 골렘 부대의 가장 선두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판피넬 기사단이 뒤따랐고 북부의 이민족 부대와 남부의 전사들이 각자의 청린제 무기를 들고 말을 몰았다.
“속도를 늦추지 마라!! 무진의 힘을 보여라!!”
카일라 창이 소리쳤다.
“불태워라!!”
말을 모는 자유군의 앞에 두꺼운 실드가 생성되었다. 마법 병대의 원호를 받으며 수십 개의 커다란 차륜의 형태로 회전하며 파고드는 진형은 마치 소용돌이가 모여 그 안에 율라를 가두듯 몰아쳤다.
“발사!!”
키누 무카리가 있는 힘껏 활을 당겼다. 그의 뒤를 따라 비궁족의 궁수들이 화살을 쏘았고 디곤 일족의 카르곤이 대지를 질주하며 파고들었다.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전군의 함성이 요란하게 울렸다.
죽음도 불사한 그들의 돌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율라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소멸하라.”
담담하게 읊조리는 한 마디였다.
마치 여름날 모여드는 날파리를 귀찮게 치우는 것처럼 그녀가 손을 젓자,
콰가가가강!!!
골렘 부대의 발아래 지면이 갈라지고 발이 걸린 골렘들이 뒤엉켜 넘어졌다. 그 충격으로 골렘을 뒤따르던 기사단과 자유군의 병력들이 그 밑으로 깔리고 말았다.
“아악!! 아아악!!”
“사, 살려줘!”
다시 한번 그녀가 손을 내젓자 검은 줄기에 포박당했던 토스카의 거대한 육체가 산산조각이 나며 그의 뼛조각들이 비룡 부대를 덮쳤다.
카앙!! 캉-!! 카가가가가가각—!!
그 순간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카릴이 폴세티아의 검을 있는 힘껏 휘둘렀고 율라는 그의 공격을 막으며 말했다.
“이게 네가 원하던 미래인가? 주위를 보거라. 고작 이 한 번의 공격을 위해 얼마나 많은 자가 죽었는지.”
폴세티아의 검날이 휘어질 대로 휘어져 마력으로 만들어진 날임에도 불구하고 꽈드득거리는 쇠가 휘는 소리가 들렸다.
[기다렸다.]폴세티아의 검에서 마엘이 튀어나와 검날을 쥔 율라의 팔을 휘어 감으며 타고 올라갔다.
순식간에 그녀의 몸을 휘감은 푸른 뱀은 그대로 그녀의 목덜미를 콱! 하고 물었다.
“크아아아!!!”
지금까지와는 달리 율라는 마엘의 송곳니가 닿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엄살 피우지 마. 그 정도로 죽을 거라고 기대했다면 애초에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지도 않았겠지.]하지만 마엘은 오히려 코웃음을 치며 그녀의 반응에 냉소를 지었다.
화르르르륵……!!
율라를 감싸고 있던 어둠의 기운이 마엘의 송곳니에 닿자 놀랍게도 불이 꺼지듯 사그라졌다.
“……?!”
카릴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이 갈아먹어도 시원찮을 놈들이……!!”
율라는 마엘의 꼬리를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신 정도 되어서 말하는 꼴 하고는……. 너는 죽기 싫으면서 살기 위해 우리가 신을 죽이겠다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지? 발악일지라도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하지만 마엘은 물고 있는 율라의 목을 놓아주지 않고 더더욱 있는 힘껏 물어뜯었다.
[그리고 그 욕망을 위해 태어난 것이 우리다.]“네, 네가 감히……!!!”
그녀는 비틀거리면서도 있는 힘껏 자신을 휘감은 뱀을 뜯어냈다.
취익……! 취익……!!!!
끝내 떨어진 마엘이 혓바닥을 파르르 내밀며 율라를 노려봤다. 그의 송곳니에는 그녀의 살점 박혀 있었고 그 모습에 분노로 일그러진 율라는 뱀의 아가리를 위아래로 잡아 그대로 찢어 버렸다.
“마스터 키(Master Key) 중에서 열다섯 번째라 불리는 네놈들이 특별하다 여겨지니 정말로 신좌에 도전할 수 있는 열쇠라고 착각하느냐? 블레이더가 애초에 신을 보좌하는 존재였듯 너희들 역시 그저 신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일 뿐이다!!”
콰앙-!!!
율라가 마엘을 집어 던지고서 그대로 밟아 짓이겼다. 뱀에게 물린 목덜미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흘러내렸고 그녀는 한쪽 손으로 상처를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퍽……!!!
어느새 율라의 아래로 파고든 카릴이 바닥을 차고 뛰어오르며 무릎으로 그녀의 아래턱을 가격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율라의 머리가 휙! 하고 젖혀지며 비틀거렸다. 아찔한 충격은 결코 인간이 낼 수 있는 각력이 아니었다.
‘역시…….’
카릴은 공중에서 한 바퀴 물러서며 바닥에 착지했다.
신인 자신이 인간에게 공격을 허용했다는 사실에 믿을 수 없다는 듯 율라는 눈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앞을 바라봤다.
“비스트(Beast)……?”
그 순간 그녀는 푸른 빛이 마치 갑옷처럼 카릴의 두 다리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과연 네가 믿었던 비장의 수가 이거로군. 마스터 키를 두 개나 가진 인간이라니……. 오랜 세월을 지냈음에도 너와 같은 인간은 처음이다.”
율라는 라이칸스로프의 의지를 발현한 카릴을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너는 인간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영역에 도달했다. 내게 신력을 쓰게 만들다니……. 신화시대의 블레이더들도 이루지 못한 것을 네가 해냈구나.”
그녀는 천천히 카릴을 향해 걸어왔다.
“하지만 결국은 여기까지다. 주위를 둘러봐라. 네게 남은 것이 뭐지?”
수북하게 쌓여 있는 시체들.
대지는 피로 물든 지 오래였고 신을 공격했던 인간들은 허무할 정도로 그녀의 분노에 사라졌다.
“…….”
카릴은 주위를 둘러봤다.
마치,
전생의 그 날이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이곳에 살아남은 인간은 결국 너 하나뿐이다. 개미가 아무리 강해져 봐야 결국은 개미에 불과한 법. 네가 만든 결과는 너를 따르던 자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밖에 되지 않아.”
율라가 계속해서 뭐라 이야기를 했지만 카릴은 그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매캐한 타는 냄새와 피비린내를 맡으며 그는 눈을 감았다 떴다.
“너는 나의 제안을 따라 재해를 막고 파렐을 올랐어야 한다.”
그녀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네 패배다.”
그러고선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 간 그녀의 손가락이 이제 카릴을 향했다.
“확실히……. 신을 인간의 힘으로 죽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로군. 과연 압도적인 힘이야.”
하지만 패배의 결과가 역력한 지금에도 카릴의 얼굴은 오히려 결과를 알게 되었기에 평온한 듯 보였다.
“그래. 이번은 나의 패배다.”
“……뭐?”
율라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는 카릴의 모습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번?”
그녀의 물음에 카릴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고생했다. 너희들에게 끔찍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구나. 하지만 덕분에 찾아냈다.”
“누구에게 하는…….”
[그래, 정말 죽음이란 뭣 같은 것이로군.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에게 감사해야겠는걸. 잘나신 규율 덕분에 날 죽이지 않고 봉인시켜준 것에 말이야.]“……?!”
그때였다.
놀랍게도 얼굴이 뭉개진 마엘의 시체가 말을 하고 있었다. 너덜너덜해진 입이 움직일 때마다 살점이 떨어지며 기괴한 형상을 보였다.
“속은 건 저들만이 아냐.”
카릴은 경악에 찬 얼굴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남은 신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쩌적…….
쩌저저적……!!!
그 순간 카릴과 율라가 서 있는 공간이 찢어지듯 갈라지더니 마치 포장을 벗겨 내는 것처럼 모든 풍경이 한 꺼풀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율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주위를 훑었다.
찢겨 나가는 공간 안쪽으로 또 하나의 공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 안에 조금 전 전멸시켰던 병사들이 온전한 모습으로 자신을 경계하며 서 있었다.
“너도 마찬가지야.”
카릴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그녀의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스팟—!!!
율라의 시야에 새하얀 빛이 스며들더니 세계가 역전된 것처럼 지축이 흔들렸다.
카릴은 품 안에 책 한 권을 꺼냈다.
“궁금하겠지. 이해가 되지 않을 거야. 신인 네가 어떻게 속았는지. 하지만 너희 신들은 고작 내가 만든 마경 하나에도 속아 넘어가잖아?”
낡아 해진 겉표지엔 아무런 제목도 쓰여 있지 않았다.
“그건……?”
율라 조차 그가 보인 고서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해 의문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에 네가 모르는 진실이 있다.”
카릴이 마지막 전장까지 자신의 품 안에 숨겨 온 한 권의 책.
“하지만 나도 믿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나는 그걸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지.”
그건 다름 아닌 카이에 에시르가 남긴 유언이 담긴 책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확인했으니…….”
그는 눈빛을 빛냈다.
“다음엔 네 패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