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9th Class Swordmaster: Blade of Truth RAW novel - Chapter (477)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 9클래스 소드 마스터 – 검의 구도자-477화(477/497)
282. 신의 이름을 부르면
신은 이름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차원이 아닌 타 차원에 강림했을 때 그들은 스스로의 이름을 버린다.
그것은 본디 태초에 가지고 있던 힘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였고 한편으로는 그 차원의 주인에 그 어떠한 위해를 가하지 않겠다는 약속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약속이 있어야 할 이유는 뭘까.
반대로 생각한다면 약속이란 규율을 만들어야 할 만큼 다신(多神) 간의 믿음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서로를 호시탐탐 노리는 적.
결국은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위태로운 약속에 불과했지만 그 대가는 엄청나 지금껏 유지될 수 있었다.
그 어떤 신도 결코 해서는 안 될 일.
태초부터 억겁의 시간 동안 이어져 왔던 이 규율이 지금 깨어지고 말았다.
“락슈무……!!!”
첫 번째 신인 남자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뒤늦게 아차 싶은 창백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뒤늦은 후회였다.
“그녀가 그렇게나 소중했나? 열 번째는 신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태어난 존재일 뿐이고 단순히 순환되는 순서에 의해서 너와 결합을 했던 게 다인데……. 설마 행위에 의해 인간의 감정이라도 섞인 것인가? 신이라는 존재가? 균열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첫 번째라는 이름이 아깝군.”
“……너!!!”
율라는 차갑게 남자를 향해 말했다.
“열 번째에게 로드의 빈자리에 세울 새로운 신을 잉태하게 하는 것은 네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야. 피조물에게 성별을 나눈 이유가 무엇인데. 바로 반쪽짜리들이기 때문이다. 신인 우린 그런 구분을 지을 필요 없지.”
그녀의 얼굴이 각이 진 사내의 얼굴로 변했다가 다시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저 취향의 차이일 뿐. 그런데 너희들은 마치 뭐라도 된 것인 양 사랑이라는 걸 한 것이더냐. 정말 우습지도 않구나.”
“크윽!!”
율라는 남자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그 끝이 파멸이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크아아아아아……!!!”
탄탄했던 남자의 근육질 몸이 마치 소멸되는 것처럼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타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규율의 위반이다. 너는 태초의 규율에 의거하여 그 힘이 모두 소멸될 것이다.”
그녀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니……. 내게 먹혀라. 그것만이 첫 번째로서 네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의무다.”
“다, 닥쳐!!”
남자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율라의 팔을 부여잡으면서 소리쳤다.
“걱정 마라. 네가 인간과 같은 그 감정에 취해 열 번째에게 특별한 마음을 먹었더라도 결코 나는 너희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희들을 인정한다. 덕분에 너도 열 번째도 모두 나의 밑거름이 될 것이니까.”
“뭐……?”
“인간의 말을 빌리자면 죽는 이의 앞에 이렇게 말하겠지. 외롭지 않게 열 번째도 네 곁으로 보내줄 테니 먼저 가서 기다리거라.”
“크아아아!! 율라……!!!!!!”
남자는 그 말에 소리치며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피죽도 못 먹은 듯 뼈와 살가죽밖에 남지 않은 가녀린 팔은 그녀에게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했다.
“뭐, 차원의 탄생과 함께 태어난 우리가 소멸 이후 무엇이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이런 위로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는 것도 알겠지만 말이야.”
율라의 검이 남자의 목을 꿰뚫었다.
그의 입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왔고 뭔가를 말하려던 남자는 역류하는 핏물에 그저 입을 뻐끔거릴 뿐이었다.
“아…… 안 돼!!!!!”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락슈무의 눈가에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고 미칠 듯이 고개를 저으며 그녀가 소리쳤다.
“큭?!”
상체가 크게 흔들렸고 그 바람에 밀리아나의 검날에 그녀의 목이 베이며 한 줄기 상처가 나며 피가 흘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오히려 검을 쥐고 있던 밀리아나가 놀란 듯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그 바람에 락슈무가 남자를 향해 달려갔다.
“이런……!!”
밀리아나는 도망치는 그녀를 붙잡기 위해 몸을 날리려 했지만 그 순간 케이 로스차일드와 함께 있던 자르카 호치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냥 둬라.]“어째서? 잘못하면 율라가 저 신의 힘까지 흡수할지도 모른다고!”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지금은 놔둬라.]어쩐 일인지 자르카 호치의 목소리가 평상시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자 밀리아나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망령의 성의 주인이기 이전에 자르카 호치는 엘프의 성지인 엘븐하임이 있던 에리얼 우드를 수호하던 자였다.
엘븐하임의 수장인 티누비엘가(家)의 마지막 후손이자 여왕이었던 퓌렐(Fürrel)을 잊지 못해 카릴을 만나기 전까지 성안에서 허상들과 함께 세월을 보냈던 그였기에 누구보다 절실하게 이별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아무리 사랑하고 영원히 함께하고파도 필멸자(必滅者) 시간 앞에 무력하지. 신이라고 해서 다른가? 영원을 살기 때문에 오히려 소멸 앞에 무력하다 말할 거라면 죽음을 알지 못하기에 우리에게 저지른 저놈들의 짓거리를 봐라!!”
재해가 거듭될수록 죽어 가던 병사들.
밀리아나는 지금 자신이 이곳에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도 그들의 피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하듯 소리쳤다.
“신이라고 특별 대우해 줄 생각 없어. 내 눈엔 그저 베어 버려야 할 적이니까.”
[…….]“세상 어디에도 이유 없는 자는 없다. 길거리 거지에게도 마음 한편엔 사연이 있는 법. 그렇다 한들 그 거지를 위해 너는 뭘 할 거지?”
자르카 호치는 입을 다물었다.
밀리아나는 그의 대답을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네가 만약 카릴을 잃게 되었다고 생각해 봐라. 그래도 지금 같은 마음일까?]“아니겠지.”
그녀는 등을 돌린 채 대답했다.
“그 전에 그 새끼를 죽여 버릴 거니까. 그리고 지금 너희들도 그러기 위해서 검을 뽑은 거 아냐? 잃게 될 만약을 생각하지 마.”
파앗-!!!
질주하는 밀리아나의 목소리가 흐트러지듯 들렸다.
“그런 건 없으니까. 그러니 입장을 똑바로 해. 신에게 아량을 베풀 우리가 대단한 존재가 아니니 아량보다 줄 수 있는 건 칼날뿐이다.”
“그, 그만둬……!!!”
달려가는 락슈무의 등 뒤로 밀리아나는 검을 들어 올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첫 번째 신은 율라의 발아래 쓰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겹게 소리쳤다.
푸욱-
밀리아나의 검날이 열 번째 신, 락슈무의 등에 박혀 가슴 한가운데를 뚫고 튀어 나왔다.
“컥……!! 커억……!!”
락슈무의 허리가 활처럼 꺾였다.
“쿨럭…….”
잉태한 새로운 신에 의해 자신의 힘을 모두 소진한 열 번째 신은 그저 한낱 여인과 같이 아무런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밀리아나의 검에 속절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으아아아아아—!!!”
첫 번째 신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여제의 검날보다 더 자비 없는 신의 검은 그런 남자의 목을 거침 없이 지나쳤다.
툭-
검날의 속도에 튕겨 나가듯 남자의 머리가 잘려 허공에 떠올랐다.
“아…….”
락슈무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고 자신의 가슴에 검이 꿰뚫려 있다는 것도 잊은 채 그녀는 눈조차 감지 못한 남자의 주검을 바라봤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되어야 하지?”
그녀는 무너지듯 앞으로 고꾸라지며 남자의 머리를 움켜 잡았다.
“어째서라니. 엑소디아를 일으킨 것은 너희들이다. 너만이 비극의 주인공이라 생각하지 마라.”
하지만 밀리아나는 울고 있는 그녀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
“우리는 형제를 잃고 부모를 잃고 친구를 잃었다. 너희가 너희 스스로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우리를 너희들의 장기 말로 쓴 덕분에 우리는 그들의 죽음에 대해 슬퍼할 겨를도 그들을 묻어줄 시간도 없었다.”
비정하게 보일 수 있지만 밀리아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누구도 그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에게 감사해야지.”
“……뭐?”
“누군가를 잃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억겁의 시간을 지나도 알지 못했던 감정을 알게 되었으니까.”
“너……!! 너어……!!!”
일그러진 얼굴로 락슈무는 밀리아나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검에 관통된 그녀의 육신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움켜쥐고 있던 남자의 머리에 빛무리가 감돌더니 그의 주검이 사라짐과 동시에 에메랄드 빛의 조각이 남았다.
첫 번째 신의 디멘션 스파이럴이었다.
“내놔.”
밀리아나는 양팔로 파편을 움켜진 락슈무를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모든 게…… 내가 약하기 때문이다. 승자독식(勝者獨食). 너희들의 말처럼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에서 생명이란 참으로 약하디약한 힘이 아닐 수 없구나.”
락슈무는 마치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
“네가 비록 내 목숨과 내 힘을 빼앗아 갈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이 힘만큼은 안 된다.”
“……뭐?”
밀리아나가 그녀를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인간들이여. 똑똑히 기억해라. 나의 이름을……!!!”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배를 스스로 갈랐다.
“……!!!”
밀리아나는 그 모습에 깜짝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어져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나의 이름은 락슈무. 이 이름을 내 아이에게 물려주니 내 아이는 이제 이 추악한 땅이 아닌 새로운 차원에서 신의 위엄을 보이며 살아갈 것이다!!”
촤아아아아악……!!!
락슈무는 쥐고 있던 디멘션 스파이럴을 배 속으로 집어넣었다.
“싸우고 또 싸워라. 그리고 무너져라. 그것이 내가 너희 인간에게 내리는 저주이며…….”
파편은 흡수되듯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스며들었다.
“다신(多神)의 규율은 깨어지고 유일한 하나의 신만이 나의 세계에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신에게 내리는 저주이다.”
율라는 그녀의 말에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오직……. 나 락슈무의 이름을 물려받은 신만이 그 세계를 다스릴 것이다.”
솨아아아아악—!!!!!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부푼 배 속에서 빛나는 광채가 튀어나오더니 막을 새도 없이 그대로 하늘 위로 솟구쳤다.
“내 비록 여기서 죽지만 너로 인한 나의 분노는 다른 차원의 인간들을 저주하게 만들리라.”
입가에 핏물이 가득한 채로 그녀는 죽음 직전 카릴을 향해 마지막 저주를 뿌리듯 소리쳤다.
“나는 인간을 아꼈다. 아마 그 어떤 신들보다 더욱……. 하지만 이젠 아니야.”
“알게 뭐야.”
하지만 대답은 카릴이 아닌 그녀의 뒤에서 들려왔다.
“우리의 저항이 네가 품고 있던 신이 만들 세계의 새로운 인간들을 고통에 빠지게 만들 거라고? 고작 그게 너의 저주인가?”
밀리아나는 오히려 락슈무를 향해 코웃음을 쳤다.
“여기서 널 죽이는 존재도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네 아이가 만들 차원을 살아갈 인간 역시 네가 뿌린 씨앗을 죽일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니까.”
그녀는 날카롭게 말했다.
“인간을 쉽게 보지 마라.”
“퉷-!!!”
락슈무는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어찌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밀리아나를 향해 핏덩이를 뱉어냈다.
하지만 신이라 불리는 존재의 무게에 비한다면 그녀의 마지막 발악은 너무나도 허무하게도 밀리아나의 뺨 옆을 스쳐 지나가며 불발이 되었다.
푸욱-
밀리아나는 락슈무의 목에 검을 찔러 넣었다.
부르르 떨리는 그녀의 몸이 끝내 천천히 멈췄다. 밀리아나는 검을 뽑으며 낮은 한숨을 토해내고서 락슈무의 시체에 남겨진 디멘션 스파이럴을 움켜잡았다.
우우우우우우웅…….
충격적인 결말에 모두가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락슈무가 남긴 디멘션 스파이럴이 천천히 밀리아나의 손바닥 아래로 잠식되어 가며 흡수되기 시작했다.
“봤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뜨며 그녀는 이제 율라를 향해 말했다.
“이제 네 차례야.”
율라의 얼굴이 굳어졌다.